고린도 지역 유적지와 유물

코린토스라고도 불리며 그리스 남북육상교통의 요지이자 이오니아해와 에게해를 잇는 해상교통의 요지였다고 한다.
고린도는 고대 그리스의 도시 국가이자 현대의 도시이다.
또한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 중 가장 유명한 항만도시의 하나였다고 한다.
아래지도에 코린트라는 지역이 고린도 이다.
아테네와 아주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다(40마일)
[고린도 소개]
[글/사진출처: http://blog.naver.com/vinjmh?Redirect=Log&logNo=118655720]
고린도는 그리스 아테네에서 서쪽으로 80Km 떨어진 곳에 있는데
동쪽의 에개해로 진출하는 겐그라마 항구와 서쪽의 아드리아해로 나가는
레기웅 항구를 가지고 있어 고린도를 '두 항구의 주인이 되는 부유한 도시'라고
불렀다.
본래는 그리스 본토와 펠로폰네소스 반도가 이어져 있었으나
지금은 고린도 운하때문에 다리에 의해 연결된 섬으로 되어 있다.
고린도를 현지어(헬라어)로 '코린토스(장식이란 의미)라 말하는데
고린도 유적은 고대로부터 로마시대까지 세워진 유적으로
B.C 146년 로마군의 침입으로 폐허가 된 도시국가를
B.C 44년 로마황제 시저가 재건한 로마 시대의 유적지이다.
이 유물들은 현존 고린도 시에서 약 7Km 떨어진 아크로코린트
산기슭에 흩어져 있다.
사도 바울이 전도했던 고린도는
그리스에서 가장 활발한 상업 중심지로 국제적인 도시였다.
아카 지방의 수도였던 고린도는 번창한 항구 도시였으나
심한 빈부 격차와 퇴폐적인 윤리생활로 악명이 높은 곳이기도 했다.
사도 바울은 제3차 전도여행 중 에페스에 3년 머물면서
고린도 전서를 집필했고 57년경 그리스의 북부 마케도니아에서 후서를 써 보냈다.
아테네에서 펠로폰네소스를 방문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처음으로 정착한 곳으로 이곳은 지진으로 2번(521년과1858년)이나 파괴 되었다가 재건된 곳이다.
이유적터의 발굴은 1882년 그리스 고고학회에서 시작이 되었지만, 쳬계적인 발굴은 1896년 미국인 학교 고전 연구부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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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 고린도전서와 후서가 바로 이 고린도에 있던 교회에 써 보낸 편지이다.
바울 사도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만났던 곳이 바로 고린도이다.
바울이 약 3년을 머물며 복음을 전했던 곳이다.
고린도는 구고린도와 신고린도가 있다.
구고린도는 유적지로 발굴해 놓았다.
우리 돈으로 1만원 정도를 내고 들어가야 한다.
지금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고린도에서 살고 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할 당시에는 아덴보다도 컸다.
성경에 아가야지방이라고 나온다.
아가야지방은 고린도와 아덴을 포함한 하나의 주였다.
아가야의 수도가 당시 고린도였다.
지금은 아덴은 인구 450만의 그리스의 수도로 바뀌었고,
고린도는 작은 소도시로 남아 있다.
구고린도 뒤로는 돌 산 하나가 있고 앞으로는 바다가 있다.
고린도 사람들은 그곳에 시가지를 형성하고 살았다.
마을에서 항구로 연결되는 대로의 흔적들이 지금도 남아 있었다.
고린도교회는 우상의 제물을 먹는 문제와 음행 문제로 바울에게 훈계를 받은 교회이다.
고린도 뒤로 있는 돌산에는 신전이 있다. 그 신전 이름은 아프로디테 신전이다.
이 신전에서는 여사제들이란 이름의 여인들이 신전을 찾는 이들을 대상으로 매춘행위를 했다. 고린도 사람들은 신전에 제사하러 간다고 가서는 음행을 범했던 것이다.
음행이 제사로 포장되어 공공연히 행하여졌던 시대에 바울은 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향해 음행을 멀리하라고 책망했다.
[출처: http://www.sls.or.kr/_bbs/index.php?mid=israel&page]

아폴론 신전과 함께 보이는 아크로코린트산
고린도 유적지 남서쪽에 있는 바위산으로 높이는 해발 575m 밖에 안되나 이곳엔 고대에 세워진 아크로폴리스로 로마가 비쟌틴 시대에 요새로 사용하였던 산이다. 이산 정상에는 아프로디테 신전 유적이 있다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시자프스는 고린도의 왕이었다고 한다. 그는 거만한 태도로 신들을 무시했으므로, 거대한 바위를 언덕 꼭대기가지 밀어 올리는 형벌에 처해졌다. 바위를 밀어 정산에 올리면 바위는 또다시 언덕 아래로 굴러 내려 그는 또 이 바위를 밀어 올려야만 했다 한다.
20세기 철학자인 까뮤는 (시지프의 신화)란 소설을 썼는데 고린도 왕에 대한 이 전설속에서 목적없이 불합리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라고 한다.
고린도성 뒷편에 상주했던 아태미 신전이 산 정상에 보인다.
산 정상의 아테미 신전의 여사제들은 스스로 거룩한 매춘부들로 몸을 팔았다. 그로인한 성적 타락으로 고린도는 음행과 방탕한 도시로 된 것이다.
그래서 '고린도'란 이름은 타락과 방탕의 도시를 칭할때 불리워지는
대명사가 되기도 하였다고 한다.(코린티아조마이)

고린도의 아폴론 신전
이 신전은 B.C 6세기경에 태양신 아폴론을 모시기 위해 건설한 신전으로
건설 당시에는 정면에 6개, 측면에 15개씩 2줄, 횡단벽 메인 신전에
2개로 38개의 기둥으로 되어 있었으나,
지금은 7개의 기둥만 남아 있다.
기둥의 높이는 7.2m 원주의 직경은 1.8m이다.
고린도 유적 중에서 가장 유명하며,
그리스 신전중 올림피아 해라 신전 다음으로 오래된 것이라 한다.
아폴론 신전의 기둥은 도리아 식으로 아래쪽은 굵고 위로 올라갈수록 가늘어지는 한개의 거대한 돌덩어리로 만들어 졌다고 한다.

고린도 피레네의 샘

아고라 상가와 시장 상점터와 주택들이 있었던 곳
상가 점포별로 석조 칸막이와 돔형 지붕으로 만든 아고라 상가 건물 지붕은 거의 파손 되었으나, 칸막이는 그대로 남아있는 점포들과 시장의 상점터가 있다. 지금의 연립 다세대 형식의 주택으로 521년에 지진으로 큰 타격을 입어 중세 이후 쇠퇴하다가 1858년 지진으로 다시 더 파괴 되었다고 한다.

고린도운하
폭군 네로황제의 전설적인 현장 고린도 운하
고린도 운하는 세계 3대 운하 수에즈, 파나마, 고린도 중 하나이다.
이 중에서 2번째로 개통되었으며
옛날 네로 황제에 의해 착공되었다가 여러 반대로 인해
중단되었었습니다. 하지만 추후 프랑스에 의해 1893년에 완공되었다.
그리스 고린도 운하는 세계3대 운하중 하나로 두번째 개통된 운하다.
이오니아해의 코린티아코스만과 에게해의 사로니코스만을 연결하여
430Km의 거리를 6.3Km로 단축시킨 운하로 운하의 길이는
6.3Km, 폭 24Km, 높이 78m, 수심 8m이다.
기원전 6세기에 고린도의 참주 페리안드로스가 운하 건설을 시도 하였고, 그후 로마 황제 네로가 6,000명의 노예를 데리고 운하 건설을 시작하였으나 이듬해 네로 황제가 죽고 Galba 황제가 경비가 많이 든다는 이유로 중지한 이후 1881년 프랑스 토목 전문가인 레셉스가 프랑스의 자본을 끌어들여 13년만인 1893년에 완공했다고 한다.

[출처: http://blog.chosun.com
겐그리아 항구
[글/사진 출처: http://blog.chosun.com
사도 바울이 에베소로 가기위해 배를 탔던곳.
바울이 서원이 있어 머리를 깍았던곳.
여집사 뵈뵈가 사도들간의 연락을 위해 자주 이용했던곳이다.
고린도가 부유한 도시였기 때문에 이 항구도 매우 큰 항구였다고 한다. 그러나 여러 차례 지진으로 고린도가 쇠락하고 또 고린도 운하 건설로 인해 항구가 물에 잠겨서 옛날 겐그리아 항구의 모습은 볼 수 없다고 한다.

고린도에 있는 상가와 교회 모습
고린도에 있는 상가는 주로 그리스의 전통적인 석상, 도자기 등을 판매하였고 고린도 교회는 사도 바울이 깊은 애정을 가지고 사랑했던 교회이다. 그러나 분쟁과 신학적 갈등, 도덕적 문제가 많은 도시임을 글로에 집 종으로부터 전해듣고 근심하여 고린도 전서를 기록하여 보낸다. 이는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이에게 교훈을 주시는 말씀으로 현대 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갈등과 분쟁, 신앙의 미성숙으로 분열되고 있는 피할 수 없는 실제적인 믿음과 삶의 문제 등 바른 진리가 무엇인지 언급하고 있다.

고린도 유적 박물관
고린도 유적지 입구 전경

고린도 박물관
니케상 모습
니케상은 Nike, 전쟁이나 경기의 승리의 여신사으로서
스핑크스의 영향을 받은 듯 반인반수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 시절 고린도의 승리를 위해 다른곳으로 날아가지 못하게
날개를 잘라 놓은것을 후세에 다시 붙여 놓았다 한다.
니케상 모습
고린도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도자기류
신석기 시대부터 로마시대의 유물들로 코린토스식 도자기들은 B.C 8c~7c 때 만들어 진 것들이다. 고린도는 고령토가 풍부해 질 좋은 특산품 항아리가 유명하다.
항아리엔 동물과 상상속의 괴수와 식물들이 그려져 있다.
이곳의 특산품인 청동그릇과 항아리는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소아시아, 이탈리아 등으로 수출하여 많은 돈을 벌었다 한다
고린도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도자기류
정복자 로마 네로 황제의 두상으로 워낙엔 폭군이나 고린도에선
미남으로 조각했다하고 고린도 사람들은 고린도 운하를 만들어
준 사람이므로 네로 황제를 추앙하였다고 한다.
고린도 박물관에 전시된 석상 유물
머리가 잘려진 조각상이지만 비교적 정교하게 만든 석고상으로
가슴에 여러 사람을 조각해 넣은 특징이 있다고 한다.
고린도 박물관에 전시된 석상 유물
많은 유적들이 인간의 몸을 본뜬것이 대부분인데
환락의 도시답게 인간의 몸에 대한 관심이 높았던 탓인것 같다.
완벽한 몸매를 과시하기 위해 옷은 거추장 스러운 듯
어깨와 팔에 걸치기만 하고 있다.
고린도 박물관에 전시된 모자이크
제우스의 아들이고 술의 신인 디오니수스(바커스)를 위한 모자이크로
원래는 바닥에 깔린 모자이크 였다고 한다.
고린도 박물관에 전시된 여러가지 종류의 유물
고린도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
금방 다린듯한 섬세한 주름의 옷을 입고 치장한 고린도 사람들이 생각나며.
대리석을 가지고 이렇게 옷주름까지 미세하게
표현한 놀라운 조각 기법이다.
고린도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
목이 잘린 석고상으로 고대
고린도의 생활상을 표현했다고 한다.
코린도식 기둥 장식속의 이 아름다운 남자의 머리는
구불구불 아름답게 파마를 하고
주름이 많이 잡힌 아름다운 옷을 입고 있다.
고린도 박물관 내부 전면에서 뒷쪽을 찍은 전경
(석상들의 모습이 정교하고 아름답다)
고린도 박물관 내부후면에서 앞
쪽을 찍은 전경
(석상들의 모습이 정교하고 아름답다)
고린도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
(이 도자기들은 B.C 300년부터 900년 사이의 것들로 추정된다)
고린도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
(이 도자기들은 B.C 300년부터 900년 사이의 것들로 추정된다)
고린도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
발굴 당시의 모습을 재현시켜
놓은 인골과 부장품
고린도는 많은 우상 신들과 다양한 우상 숭배가 있었던 도시였다.
그리고 유대교는 그당시 고린도에 있던 동방 종교 가운데 하나였다.
그 시절에는 병의 치유가 되면
그 신체의 부분을 조각품으로 만들어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바쳤다 한다.
고린도 박물관에는 유난히도 성기의 조각이 많았는데
성적으로 문란한 도시이다 보니 성병도 많았던 듯 하다고 한다.
박물관 뒤뜰의 머리없이 몸만 있는 석상 모습
박물관 뒤뜰에는 묘비명과 함께 머리없이 몸만 있는 석상들을 볼 수 있다.
그당시에는 문앞에 문패 대신 자신의 전신상을 세웠다는데
전쟁도 많았고 이동도 많았던지라
전신상이 완성되기 전 본인이 죽거나 이사를 해야 했었다고 한다.
고린도의 아폴론 신전 모습
이 신전은 B.C 6세기경에 태양신 아폴론을 모시기 위해 건설한 신전으로 건설 당시에는 정면에 6개, 측면에 15개씩 2줄, 횡단벽 메인 신전에 2개로 38개의 기둥으로 되어 있었으나, 지금은 7개의 기둥만 남아 있다.
기둥의 높이는 7.2m 원주의 직경은 1.8m이다. 고린도 유적 중에서 가장 유명하며, 그리스 신전중 올림피아 해라 신전 다음으로 오래된 것이라 한다.
아폴론 신전의 기둥은 도리아 식으로 아래쪽은 굵고 위로 올라갈수록 가늘어지는 한개의 거대한 돌덩어리로 만들어 졌다고 한다.
아고라 상가와 시장 상점터와 주택들이 있었던 곳
상가 점포별로 석조 칸막이와 돔형 지붕으로 만든 아고라 상가 건물 지붕은 거의 파손 되었으나, 칸막이는 그대로 남아있는 점포들과 시장의 상점터가 있다.
지금의 연립 다세대 형식의 주택으로 521년에 지진으로
큰 타격을 입어 중세 이후 쇠퇴하다가
1858년 지진으로 다시 더 파괴 되었다고 한다.
아고라 상가와 시장 상점터와
주택들이 있었던 곳 전경
고린도 운하 전경
그리스 고린도 운하는 세계3대 운하중 하나로 두번째 개통된 운하다. 이오니아해의 코린티아코스만과 에게해의 사로니코스만을 연결하여 430Km의 거리를 6.3Km로 단축시킨 운하로 운하의 길이는 6.3Km, 폭 24Km, 높이 78m, 수심 8m이다.
기원전 6세기에 고린도의 참주 페리안드로스가 운하 건설을 시도 하였고, 그후 로마 황제 네로가 6,000명의 노예를 데리고 운하 건설을 시작하였으나 이듬해 네로 황제가 죽고 Galba 황제가 경비가 많이 든다는 이유로 중지한 이후 1881년 프랑스 토목 전문가인 레셉스가 프랑스의 자본을 끌어들여
13년만인 1893년에 완공했다고 한다.
고린도 운하 전경
(고린도 운하는 로마 네로황제 때 공사를 시작 하였으나 경비문제로
중단했다가 1800년대 후반에 완공되었는데 그 모습은 사진으로 보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실제 현장에서 내려다 보면 까마득하고
엄청난 규모이고 그 기술력 또한 대단한 것이었다)
고린도에서 아테네로 돌아오는 중 창 바깥으로
그리스 정교회 성당과 에게해가 보인다
고린도에서 아테네로 돌아오는 중 에게해에서 시민들이 여유롭게 휴식을 즐기고 있다
그리스 아테네 축구장 모습
(삼성 로고가 부착된 광고판이 보여 가슴이 뿌듯했다)
그리스 아테네 이면도로 모습
(태양열을 에너지로 사용하고 있는 주택가 모습이다)
http://blog.naver.com/vinjmh/118319569
(중복된 부분도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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