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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순례

쿰란(Qumran)/ 쿰란 문서(사해 두루마리)

by 은총가득 2018. 9. 13.

 

2. 쿰란 문서(사해 두루마리)

꿈란 제1동굴에서 발견된 사해 두루마리가 보관되었던 항아리(높이 65.7-47.5cm, 직경 25-26.5cm)

 



1947∼1956년까지 사해 연안에 있는 유대 광야의 여러 곳에서 발견된 고대 유대 문서들을

넓은 의미의 사해 두루마리(Dead Sea Scrolls)라고 하며 특별히 사해 북서 연안에 위치한

키르베트 쿰란 주변의 11개 동굴에서 발견된 850여 종류의 문서가 좁은 의미의 사해 두루마리 즉 쿰란 문서이다

20세기 최대의 고고학적 발견이라 불리는 쿰란문서는 1947년 봄 베두인 목동인 무하마드 아드-디브에 의해

우연히 발견되었다.

그는 다른 동료들과 함께 쿰란 근처에서 가축 떼를 돌보던 중 잃어버린 염소를 찾다가 동굴을 발견하였는데,

그곳에서 두루마리들이 발견되었다.

이 쿰란 첫째 동굴에서는 이사야서, 공동체 규칙서, 전쟁 규칙서, 찬양시편, 하바쿡 주해, 창세기 외경 등

7개문서가 발된 되었는데 이 문서들은 아마포에 싸여 항아리에 넣어졌기 때문에 보존 상태가 매우 양호하였다.

현재 예루살렘 히브리대학에 소장되어 있고, 이 문서들의 연대는 대체로 기원전 2-1세기의 것으로 보고 있다

제4 동굴에서는 판독이 가능한 것만도 382개의 사본 군에 속하는 수천 개의 단편이 발견되었다.

예루살렘의 고고학 박물관에는 쿰란동굴의 것만도 대소 400개 이상의 사본

또는 그 일부, 4만 개 이상의 사본단편이 소장되어 있다.

쿰란의 11개 동굴은 발견된 순서대로 번호가 붙여졌고 각 문서들이 발견된 동굴의 번호(1∼11)와 동굴의 위치(Q),

문서 이름의 첫 글자가 붙여져 각 문서의 약호가 되었다.

2.1 특징

쿰란 문서는 파피루스나 양피지에 쓰여졌다. 대부분의 문서는 히브리어나 아람어로 쓰여졌으며,

소수의 그리스어 문서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문서들은 정방형의 히브리어로 쓰여졌고, 고대 히브리어로 쓰여진 것들도 있다.

쿰란 문서는 제2차 성전 시대에 유행하던 필사 규칙과 기법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대부분의 쿰란 문서는 기원전 3세기 혹은 2세기 초에서 서기 1세기 초반 사이에 필사된 것임이 밝혀졌다.

쿰란 유적지에 대한 고고학적 연대 추정과 쿰란 문서의 연대 추정이 근접하다는 사실은

쿰란 공동체가 이 문서들을 제작하고 필사하였다는 뜻이다

 

2.2 쿰란 문서의 종류

쿰란 문서는 다음의 세 종류로 나뉜다 1) 구약성경의 사본들 쿰란에서는 에스델서를 제외한

모든 구약성경의 사본 200여개가 발견되었다.

이 사본들은 레닌그라드 사본[Codex Leningradenis, 1008, 이 사본에 현대적 사료비판을 하여 만들어진 성경은

 ‘키텔’(Kittel)의 ‘히브리어 성경’(Biblia Hebraica)이다.]이나 알렙포 사본[

 

 

Aleppo Codex, 925/930, 쿰란 문서가 발견되기 전까지 성경의 가장 오래되고

완벽한 텍스트로 알렙포의 회당에서 보존되어 오던 것으로 ‘히브리어 대학 성경’(Hebrew University Bible)은

이 사본을 토대로 한 것이다.

]보다 1000년 이상 오래된 것이다.

쿰란의 이 사본들은 구약성경 정경이 확정되기 이전의 본문으로서 마소라 본문

[ 히브리어로 '전승'이라는 뜻을 가진 마소라(masoreth에서 유래)는 서기 6세기부터 9세기 사이에

당시 구전되어 오거나 수사본으로 되어 있던 성경 텍스트를 문자 기록으로 확정하였다.

전통적으로 성경 사본에는 모음이 없었지만 마소라 사본은 올바른 발음을 낼 수 있도록 갈릴리 지방의 티베리아에서

유행하던 발성법 모음으로 표시를 해 넣었다],

70인역 본문[ 현존하는 구약성경의 히브리어에서 그리스어로 번역된 가장 오래된 번역본이며

이 번역은 기원전 3세기 중엽에 시작하여 2세기 말엽에 종료되었다.

전설에 의하면 이 번역자들은 성경의 열두 지파에서 각각 6명씩 차출되어

그리스어에 정통한 72인의 유태인 학자들에 의해 알렉산드리아에서 번역되었다고 한다.

번역자들의 숫자가 70명이었다는 사실에서 유래하여 70인역(Septuaginta=LXX)라고 부른다.

70인역은 오랜 세월동안 그리스어를 쓰는 히브리인들의 공식 경전이었으며,

신약에 인용되는 구약의 350여 인용구가 70인역에서 취해졌다는 사실로 중요성이 확인된다.

또한 초세기 그리스도교는 70인역을 교회의 공식 구약성경으로 간주하였으며

무엇보다도 제2 경전이 포함되었기 때문이었다.],

사마리아 오경 본문 등과 함께 구약성경 본문 형성의 역사를 연구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또한 제2 경전 중에 토빗기, 집회서, 예레미아의 편지 등도 발견되었다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은 70인역 대신 히브리어로 기록된 것만 성경으로 인정했다.

왜냐하면 토빗기에서 비롯된 수호천사 교리와 같은 일부 가톨릭 교리들이 히브리말 성경에 없는 70인역 본문에

그 바탕을 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쿰란에서 발견된 구약성경 각 권의 사본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창세기(19), 탈출기(17), 레위기(13), 민수기(7), 신명기(30), 여호수아기(2), 판관기(3), 사무엘서 상하(4),

열왕기 상하(3), 이사야서(21), 예레미야서(6), 에제키엘서(6), 다니엘서(8), 열두 예언서(8), 욥기(4), 잠언(2),

룻기(4), 아가서(4), 전도서(2), 애가(4), 집회서(1), 토빗기(5), 예레미아의 편지(1)이다.

에스델서의 사본이 발견되지 않은 것은 쿰란 공동체에서 이 책이 받아들여지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단순한 우연인지는 알 수 없다.

특히 시편, 신명기, 이사야서 등의 사본이 많이 발견되었는데

이것은 이 책들이 쿰란 공동체에서 매우 중요하게 여겨졌으며 또한 대중적이었다는 증거이다

 

2) 외경 사본들

쿰란 문서의 발견 이전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거나 그리스어, 에티오피아어, 라틴어 등

고대 언어의 번역으로만 알려졌던 구약성경 외경(apocrypha)의 히브리어, 아람어 원본들이 쿰란에서 발견되었다.

즉 희년서, 에녹서, 열두 족장의 유언, 레위의 유언, 납달리의 유언, 유다의 유언, 요셉의 유언, 야곱의 유언,

크핫의 유언, 아브람의 환시, 창세기 외경, 예레미아서 외경, 다니엘서 외경, 에제키엘서 외경, 모세 외경,

여호수아의 시편, 나보니두스의 기도, 거인들의 책, 노아의 탄생 등이다

 

3) 쿰란 공동체와 관련된 문서들

전체 쿰란 문서의 약 3분의 1은 쿰란 공동체의 조직, 생활, 사상을 반영하는 사본들이다.

공동체에 의해 저술된 문헌들은 대부분 히브리어로 쓰여졌고, 사용하는 용어, 문학양식, 문체뿐만 아니라

종교적 사상에서도 구별되며, 공동체의 자기 이해를 잘 표현하고 있다

 

2.3 중요성

쿰란에서 발견된 구약성경 사본들은 성경의 형성과 본문의 역사를 연구하는데 매우 귀중한 자료들이다.

그리고 쿰란의 외경 사본뿐만 아니라 공동체와 관련 있는 문서들은 신구약 중간 시대의 유대 문헌으로서

당시 유대교 연구를 위한 일차적인 사료이다.

이 쿰란 문서를 통해 에세네파와 쿰란 공동체의 조직, 생활, 사상에 대해 더 정확한 지식을 얻게 되었다.

또한 쿰란 문서는 세례자 요한과 예수, 초대 그리스도교 공동체와 신약성경의 연구를 위한 매우 귀중한 자료이

 

 

사해사본

 

< 이사야 53장 >

 

 

1947년 쿰란의 한 동굴(Qumran Cave 1)에서 산양을 쫓고 있던 베두인족(유목민) 양치기 소년에 의해 토기에 담긴 오래된 히브리어 구약성서 두루마리 등의 문서 더미가 발견되었다.

이 문서들을 쿰란문헌(사해문서, 사해 두루마리, Dead Sea Scroll)이라고 하는데, 이는 한 개의 문서가 아니라 사해 서북쪽 연안의 쿰란동굴을 포함하여 사해 서쪽의 유다의 황야로 일컬어지는 지역에서 과거에 발견되었고(특히 쿰란에서 남쪽으로 20Km쯤 떨어진 곳에 위치한 무라바트 동굴과 30Km쯤 떨어진 엔게디 바로 아래 헤베르 동굴에서 1-2세기의 귀중한 문헌들이 대량으로 발견되었다) 현재도 계속 발견되고 있는 수많은 고문서들을 총칭하는 말이다.

그동안 이 지역에서 발견된 문서로는 에스델서를 제외한 구약성서의 모든 책과 일부 주석서(하바꾹 나훔 미가 이사야 호세아 스바니야 시편 37편 등), 외경 및 위경등 성경 이외의 문서들이 있는데, 이중 중요한 것을 살펴보면다음과 같다

 

①거의 완벽하게 보존된 이사야서 두루마리(1QIsa)

②쿰란공동체의 조직과 생활에 관해 규율한 수도원 규칙서(1QS)

③쿰란 수도원 설립과정과 관련된 해설이 있는 하바꾹서 주석(1QpHab)

④종말에 이스라엘 백성이 지켜야 할 규범인 이스라엘 규칙서(1QSa)

⑤종말에 치를 전쟁과 전술을 담은 종말전쟁기(1QM)

⑥감사시편(찬미가, 1QH)

⑦시편 집성(11QPs)

⑧1910년 카이로에서 발견된 것으로 문헌상 결혼과 사유재산이 허용한 것으로 보아 일반 평신도 를 대상으로 한 듯한 다마스커스 문헌(CD)

⑨성전 설계와 성전 축제, 정결례, 형법 및 재판규정 등 다양한 내용이 들어있는 성전 두루마리(RT, 이 문헌은 베들레헴의 어느 골동품상이 엄청난 값으로 팔아먹으려 궁리를 하고 있었는데 1967년 6일 전쟁때 이스라엘군이 베들레헴을 점령하고 습격해서 압수했다고 함)

⑩노아 탄생에서부터 창세 15,4까지 재미있는 이야기 형태로 엮은 창세기 전설(1Q GenAp) 등이 있다.

 

보충(사해 두루마리)

사해 두루마리는 사해 연변의 북서쪽 11개의 쿰란 동굴에서 1947년 이후 발견된 히브리어 아람어 그리스어 문서를 말하며, 주로 양피지와 파피루스 두루마리에 기록되어 있다(양피지 두루마리는 800여개가 발견되었다).

발견된 성서는 에스델서를 제외한 구약성서 전부와 외경의 상당 부분을 포함하고 있으며, 이밖에 공동체 조직과 생활 등과 관련된 여러 문서가 발견되었다. 이중 12족장의 유훈遺訓, 요엘서의 단편 등은 신약성서 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으며, 기원전 2세기의 시대에 속하는 이사야서 필사본(약자 IQISa)은 오늘날 이사야서 번역가들이 반드시 참고해야 할 대본으로 손꼽힌다. 위 문서들은 1세기 유다교 분파와 그리스도교를 이해하는데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쿰란 제1동굴에서 발견된 점토단지

(높이 65.7-47.5cm, 직경 25-26.5cm)

 

 

제1동굴에서 발견된 쿰란 수도원 규칙서(1QS)

 

 

보충(쿰란 폐허, 공동체 거주지)

예루살렘에서 약 30Km, 예리고에서 13Km, 사해 연안에서 1.3km 거리에 있는 이 곳은 20세기 중반에 이르러서야 발굴이 시작되었다.

발굴 결과 수도원 중앙에 회의실과 도서실(→이 도서실이 발견된 쿰란문헌의 집필 장소일 것이다), 식수 등으로 사용할 여러 저수장(우물이 없어 뒷산 계곡에서 흐르는 물을 받아 저장), 남쪽과 북쪽 끝에 정결례를 위한 저수장이 있고 남쪽 저수장 곁에는 식당이 있다.

수도원 남쪽 바깥에는 옹기 가마가 있었는데 쿰란 문서를 담은 옹기는 여기서 제작되었다.

수도원 서쪽의 계곡과 산에는 자연 동굴과 인공 동굴이 많이 있는데(수도원의 동쪽은 호수) 수도자들 가운데 상당수는 이런 동굴에서 살았다.

문헌이 가장 많이 발굴된 4번 동굴(Qumran Cave 4)

 

 

쿰란 동굴에서 출토된 일상 용기들

 

* 보충(사해, 死海, Dead Sea). 죽어서 존재하는 바다 사해는 거대한 바다와 같은 호수이다.

남북 길이 80Km, 동서 길이 16Km, 평균수심 146m, 면적 1,020㎢로서 대함몰지구대에 있는 관계로 호수면이 해수면보다 392m 낮아(Earth 394m below Sea Level) 지구에서 가장 낮은 지역이다.

사해는 북쪽의 요르단강, 동쪽의 아르논강, 남쪽의 세레드강 등으로부터 물이 들어오기만 하고 나가는 곳이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정한 수면을 유지하는 까닭은 사막 건조기후여서 물이 들어오는 양만큼 증발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에 따라 염분농도가 지극히 높아 보통 바닷물의 다섯 배인 30% 정도여서 생물이 살 수 없고(→사해 이름의 연유가 됨) 부력 1.166으로 물 속에 들어가면 그대로 떠있을 수 있다.

 

 

사해의 위성사진 사해의 소금기둥

 

 

사해 Dead Sea

(하얀 것은 소금. 사해는 지구상에서 가장 염분이 많은 물로 여겨진다)

 

 

사해 Dead Sea

 

 

이스라엘 사해의 지형 높이가 해수면 아래 394m라는 사해 표지판으로

히브리어 아랍어 영어로 쓰여 있다.

호수 서쪽의 예루살렘과 동쪽의 헤스본의 지형 높이가 1Km에 근접하므로

예루살렘과 사해의 수직 높이는 1.3Km 내외가 된다.

 

 

가장 오래된 이사야 사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