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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순례

성서고고학 연구

by 은총가득 2018. 9. 7.

성서고고학 연구(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이스라엘)  

 

성서고고학

I.서론

성서는 종교적, 문학적 문서인 동시에 구체적인 역사적 시기동안 특정한 지리적 범위에서 발생한 사건들이 기록된 역사적 문서이기도 하다. 19세기 서양의 합리주의적 역사연구의 결과로 성서의 역사성이 부각되면서, 한편으로는 고고학 연구에 편승하여 당시까지 신앙적 순례의 대상이었던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하는 "성서의 땅"이 성서의 지리적 문화적 종교적 배경으로서 새로운 학문적 연구의 장으로 인식되기 시작되었다. 성서에 등장하는 지역과 도시들에 대한 지리적 확인작업으로 정확한 성지지도가 작성되었고, 이에 기초하여 중요 성서도시들이 차례로 발굴되기 시작하였다. 최근에는 성서의 역사적 사건들뿐만 아니라 고고학적 발굴에서 출토된 제의관련 유적 및 유물들의 분석을 통하여 성서시대의 다양한 종교현상들도 좀 더 구체적으로 이해하기에 이르렀으며, 성서의 사건들을 현장의 지리적 고고학적 배경에서 구체적으로 이해하고 해석하려는 역사적 지리학(Historical Geography)의 발달로 성서사건들의 연구는 이젠 더 이상 형이상학적이고도 관념적인 연구방법론으로는 한계에 부딪칠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오늘날 성서 고고학은 성서연구에 있어서 필수적인 기초학문 분야로 자리잡았고, 성서이해에 새로운 장을 열어 주었으며, 나날이 증가하는 현장에서의 고고학적 발굴 결과들의 축적으로 끊임없는 성서의 재해석이 가능하게 되었다.

 
성서지리의 중요성

구약성서의 맨 처음 사건인 천지창조와 에덴동산, 노아홍수와 바벨탑 사건 등은 모두가 비슷한 지리적 문화적 여건을 지닌 메소포타미아를 그 배경으로 하고 있다. 또한 출애굽 사건과 구약성서의 시가문학, 지혜문학, 특별히 왕정 초기의 행정체제나 물질문명들은 이집트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리라 추정된다. 따라서 구약성서의 역사는 고대 근동의 지리적인 관점에서 "바벨론에서 바벨론으로"와 "이집트에서 이집트로"라는 두 가지 명제로 개관할 수 있다. 즉 신앙의 조상 아브라함과 그의 가족들은 서기전 20세기 경 메소포타미아 하류지역의 전통적인 바빌로니아 세력권의 중심도시인 갈대아 우르에서부터 시리아의 하란을 거쳐 가나안으로 들어오면서 구약의 역사가 시작되었다면, 서기전 586년 느브갓네살에 의해 유대인들이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가면서 구약역사가 마감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또한 서기전 13세기 모세의 영도 하에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를 탈출한 것이 선민 이스라엘의 구체적인 시작이었다면, 서기전 608년경 여호아하스왕이 이집트로 잡혀가고(왕하 23:34), 유다왕국이 멸망하면서 "대소 백성과 군대장관들이" 이집트로 망명함으로써(왕하 25:26) 구약의 역사가 일단락 되었다. 신약시대에 들어와서 소아시아(터키)의 다소(Tarsus) 출생의 바울은 기독교인 박해의 임무로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커스로 향하던 중 그리스도를 체험하고 시리아의 안디옥, 소아시아의 버가, 이고니온, 에베소, 밀레도, 키프로스의 살라미스, 비포, 그리스의 네압볼리, 데살로니가, 아테네, 고린도,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탈리아의 로마에서 순교하였다. 따라서 성서에 언급된 지역은 오늘날의 국가들 기준에서 이스라엘을 비롯하여 이집트, 요르단, 레바논, 시리아, 이라크, 이란, 터키, 키프로스, 그리스, 이탈리아 등 모두 11개국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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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소포타미아의 지리

 
1. 지리적 경계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는 희랍어로 "강들 사이에"라는 뜻이며, 북동쪽의 티그리스강과 남서쪽의 유프라테스강 사이의 넓은 평야지대를 지칭한다. 메소포타미아는 북서쪽에는 해발 3000-5000 미터 높은 자그로스(Zagros) 산맥으로 둘러 쌓여져 있고 남서부에는 끝없이 펼쳐진 아라비아 광야에 접하고 있다.


2. 기후와 토양 및 물
메소포타미아는 고산지대와 광야 사이에 위치한 전형적인 아열대 기후를 보이고 있다. 여러 강과 하천들의 끊임없는 범람으로 인한 기름진 퇴적토로 이루어진 경작지가 형성되었으나, 연중 강수량이 150-200 밀리미터 정도로 매우 적기 때문에 연중 흐르는 강물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이용하느냐가 농사의 성패를 좌우하게 되었다.

 
3. 농업과 목축업
하지만 이러한 자연적 악조건의 극복을 통하여 이곳에서 고등문명이 발생하게 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4. 농업혁명 (서기전 10000-8000)

a) 야생 농작물의 패배
대규모의 수확이 가능하고 식품의 기본 영양분을 제공해 주는 밀과 보리 등의 곡물류는 연중강수량이 500 밀리미터 이상인 지중해변의 산악지대와 자그로스 산맥의 산기슭 지역에서 서기전 1만 년 경 처음으로 야생의 밀과 보리를 계획적으로 재배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소위 "농업혁명"의 결과 이 곳의 거주민들은 오랜 기간의 구석기 시대의 유랑 생활을 청산하고 농사를 근거로 하는 정착생활이 시작되었다.

b) 야생동물의 각축화
야생동물들을 가축으로 길들여서 사육하기 시작하였다. 고대근동 지방에서 역사상 최초로 길들여진 가축들은 다음과 같다. 개: 서기전 11000년 경. 염소 : 서기전 8500년 경. 양 : 서기전 80000년 경. 돼지 : 서기전 7500년 경. 소 : 서기전 7000년 경. 고양이 : 서기전 7000년 경. 당나귀 서기전 4000년 경. 말 : 서기전 4000년 경(러시아 남부지역). 낙타 : 서기전 3000년경(아라비아 광야).

c) 농업혁명의 결과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좀 더 효율적으로 진행하기 위하여 일상생활 전반에 걸틴 다음과 같은 개혁들이 이루어졌다.
① 통치권의 확립 : 농사에 필수적인 관개사업은 대규모의 토목공사이기 때문에 이에 필요한 노동력을 확보하고, 그들을 조직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통치 세력이 요구되었다.

② 계획경제 : 밀이나 보리 농사는 최소한 6개월 이상이 소요되기 때문에 이에 따른 장기적 안목의 파종 및 수확 계획이 필요하게 되었다. 또한 대량의 곡식을 저장하고 분배하며, 나아가 잉여 농산물을 타 지방으로 수출하기 위한 조직적인 경제활동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5. 지하자원
또한 메소포타미아는 대부분의 지역이 충적지이기 때문에 목재나 석재, 기타 자원이 전혀 생산되지 않는 곳이다. 따라서 일찍부터 자그로스 산악지대와의 무역을 통하여 필요한 나무와 돌 그리고 구리나 주석 같은 금속들을 구입하기 시작하였다.


6. 도시의 발달(서기전 4000년경)
메소포타미아에서 도시의 발달은 농업혁명의 결과 대규모의 관개사업과, 잉여 농산물의 교환 등을 주도하는 세력이 자연스럽게 건설한 요새로부터 비롯되었다. 고고학적 관점의 도시는 성벽으로 둘러 쌓인 곳으로서 성안에는 사람들이 주거지로 사용했던 건축물의 흔적이 남아 있는 정착지로 규정된다. 도시들은 자연스럽게 근처의 농경지의 실 소유주로서 농사와 목축을 관장하고, 외부의 침입에 대처하며, 농산물의 교환을 주도하는 통치세력을 왕을 중심으로 확립하게 되었고, 나아가 신전과 제사장들을 중심으로 종교도 성립되었다.

 
7. 메소포타미아 역사의 시대

1)도시국가(City State) 시대(서기전 4000-3000)
메소포타미아에서 도시들은 남쪽의 수메르 지역에서부터 비롯되었다. 서기전 4000년경부터 이곳에서는 우룩(Uruk), 라가쉬(Lagash), 우르(Ur), 니푸르(Nippur), 슈루팍(Shuruppak), 키쉬(Kish) 등의 도시들이 건설되기 시작하였다.

2)왕국(Kingdom) 시대(서기전 3000-2000)
이 시대에 들어와서는 여러 도시국가들이 가장 강력한 도시를 중심으로 동맹을 맺어 일종의 왕국을 형성하게 되었으며, 대표적으로 남쪽의 수메르 왕국과 북쪽의 아카드 왕국으로 분류된다.

3)제국(Empire) 시대(서기전 2000-330)
서기전 2000년경부터 메소포타미아의 세력권은 좀 더 북쪽으로 확장되었고, 서기전 1800년경부터는 하무라비왕이 바빌론 도시를 중심으로 바빌로니아 제국을 건설하였고 북쪽의 티그리스강 유역에서는 샴시-아다드(Shamshi-adad) 왕이 앗수르 도시를 중심으로 잇시리아 제국을 형성하였다. 이 두 세력이 함께 경쟁하며 발전하다가 서기전 1100년경부터는 앗시리아의 세력이 메소포타미아 전체를 통치하기에 이르렀으며, 서기전 612년에는 신 바빌로니아(Neo-Babylonia)가 그 통치권을 이어받았다. 서기전 539년부터는 이란지역의 페르시아가 이 지역의 중심세력으로 등장하였으며, 서기전 330년경 마케도니아 출신의 알렉산더가 페르시아 제국을 점령함으로써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역사는 막을 내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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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의 지리

1. 나일강


이집트 문명은 지구상에서 가장 긴 강(6700km)인 나일강 유역에서 발생하였다. 3세기전 5세기 희랍의 역사가 헤로도투스가 이집트를 "나일강의 선물"이라고 표현할 만큼 이집트의 생존은 문명은 나일강에 절대적으로 의존해 왔다. 나일강의 원류는 오늘날 수단의 수도인 카르툼에서 갈라져서 각각 청나일(the Blue Nile)과 백나일(the White Nile)로 나뉘어진다. 청나일은 우간다, 케냐, 탄자니아의 세 나라에 걸쳐 있는 거대한 빅토리아 호수에서부터, 그리고 백나일은 이디오피아 고산지대의 타나 호수에서부터 각각 발원한다. 나일강은 이 지역의 유일한 수원지이자, 해마다 여름철의 범람으로 새로운 흙들을 실어다 주고, 나아가 유일한 교통로로서 이집트 전역을 통일할 수 있는 수단이 되기도 하였다. 또한 나일강은 지중로 흘러 내려오면서 해변에 거대한 삼각주를 형성하여 넓은 농경지에서 일찍부터 농경 및 목축이 가능하게 되었다.


2. 상부 이집트(Upper Egypt)와 하부 이집트(Lower Egypt)

이집트는 예로부터 나일강 유역을 따라 전체 국토를 양분하였는데, 상부 이집트가 나일강 상류 지역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하부 이집트는 지중해 쪽의 삼각주 지방을 일컫는다. 이 두 지역의 경계는 현재 카이로 남쪽 20km 지점의 멤피스(Memphis)이며, 두 지역을 효과적으로 다스리기 위해 이집트 고왕국 시대부터 멤피스는 정치적 종교적 수도로 발전되었다.


3. 시기구분

⑴ 초기 왕조 시대 (Early Dynastic Period) : 제 1-3왕조 (서기전 2920-2575)
⑵ 고왕국 시대 (Old Kingdom) : 제 4-6왕조 (서기전 2575-2134)
⑶ 제 1 중간기 (First Intermediate Period) : 제 9-11왕조 (서기전 2134-2140)
⑷ 중왕국 시대 (Middle Kingdom) : 제 11-13왕조 (서기전 2040-1650)
⑸ 제 2 중간기 (Second Intermediate Period) : 제 14-17왕조 (서기전 1650-1540)
⑹ 신왕국 시대 (New Kingdom) : 제 18-20왕조 (서기전 1540-1070)
⑺ 제 3 중간기 (Third Intermediate Period) : 제 21-24왕조 (서기전 1070-712)
⑻ 후시대 (Later Period) : 제 25-30왕조 (서기전 712-332)
⑼ 희랍-로마 시대 (서기전 332 - 서기 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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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지리

이스라엘은 전체 국토의 넓이가 3만 8천 평방킬로미터로 우리나라 남한 면적의 40퍼센트에 불과한 작은 나라이지만, 이 곳에는 한대지방의 얼음으로 뒤덮인 툰드라 지역을 제외한 지구상의 거의 모든 종류의 지리적 조건들이 존재하는 매우 독특한 나라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에서는 알맞은 온도와 습도가 유지되는 셰펠라(Shephelah)의 농경지대, 일년중 절반은 눈에 덮여 있는 헤르몬(Hermon) 고산지대, 그리고 국토의 60 퍼센트를 차지하는 유대 광야, 네겝(Negev)과 아라바(Aravah) 광 야 지대, 여름철에는 건조하고 겨울철에는 비가 오는 지중해성 기후를 보이는 해안 평야지대 등의 다양한 지리적 모습들을 보여준다.


1. 중앙산악 지대
성서적 사건의 핵심지역은 이스라엘이며 이스라엘 중앙산악지대이다. 중앙산악 지대는 아브라함을 비롯한 족장들의 주된 활동 무대인 세겜의 모레 상수리, 베델, 아이, 살렘, 헤브론의 마므레 상수리, 브엘세바 등이 위치한 지역이다. 또한 이 지역은 출애굽 이후 열 두 지파중 중심적인 에브라임, 므낫세, 베냐민, 유다 지파가 차지한 곳이기도 하다. 사울 왕이 고향이 베냐민 지파 지역의 중심지인 그브아였으며, 다윗은 유다 지파의 한 소읍인 베들레헴에서 태어났고, 헤브론에서 왕이 된후 예루살렘을 점령하여 유다왕국의 수도로 삼았다. 솔로몬이 죽은 후 갈라진 북 왕국 이스라엘의 전통적인 중심지는 비옥한 골짜기 평야에 자리잡은 세겜이었으며, 그 후 디르사와 사마리아로 수도가 이전되었다. 역사적 아이러니 때문에 오늘날 중앙산악 지대의 대부분은 소위 "요단강 서안"이라 불리우는 지역으로서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이 주로 많이 거주하고 있는 곳이다.

 
2. 해안평야 지대
고대로부터 해안평야를 지배하는 세력이 결국 전체 가나안 땅의 주인 노릇을 하였다. 지중해 해안 평야는 남쪽의 이집트와 북쪽의 시리아, 나아가 힛타이트와 메소포타미아를 연결하는 국제 무역로가 통과하는 곳이어서, 예로부터 이 곳을 차지하기 위한 전투가 자주 발생하였다.

 
3. 갈릴리 산악 지대
갈릴리 산악지대는 이스라엘에서 숲이 가장 많이 우거진 지역이다. 지중해 연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키 작은 상수리 나무와 소나무 숲이 우거졌으며, 평균 해발 600-800 미터의 고지에다 연간 강수량도 800-1000 밀리미터로 넉넉한 편이어서 목축을 주로하고 산 사이의 골짜기 평야에는 대규모의 밀, 보리 농사도 가능한 지역이다. 특별히 갈릴리 산악 지대의 남부에는 지중해에서부터 요단 계곡에 이르는 이즈르엘 평야가 펼쳐져 있어서 이스라엘 최대의 곡창지대를 이루고 있으며, 이 곳이야말로 샘과 하천의 물이 풍부하고 연간 기온도 온화해서 문자 그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복지이다.

 
4. 요단계곡 지대
요단 계곡은 지구상에서 가장 긴 골짜기인 시리아-아프리카 대단층(Syro-African Great Rift)의 일부로서 요단강의 근원인 단(Dan)에서부터 상부 요단강을 지나 해저 210 미터의 갈릴리 호수, 그리고 하부 요단강을 따라 지구상에서 가장 낮은 지대인 해저 400 미터의 사해에 이르는 약 200 킬로미터 길이의 저지대이다.


5. 요단 건너편(트랜스 요르단)
요단 건너편은 평균 해발 1000 미터 이상의 고원지대로 형성 되어 있다. 이들 지역은 북쪽으로부터 차례대로 골란, 길르앗, 암몬, 에돔 지역으로 구분되며, 이중에서 암몬, 모압, 에돔은 구약시대 이스라엘의 전통적인 적대 세력들이었다.

 
6. 남부 광야 지대
이스라엘 전체의 약 70 펴센트를 차지하는 광야는 일년 중 거의 비가 내리지 않아서 예로부터 사람들이 살기에 부적합한 땅이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거쳐간 곳이 바로 이 지역이었고, 주변의 유목민들의 침략을 효과적으로 저지하기 위하여 서기전 950년경 솔로몬 왕은 이 지역에 체계적인 요새들을 새로이 건설하였다. 대표적인 요새들로는 가데스 바네아, 에시온 게벨, 아라드, 브엘세바, 타마르 등이 있다. -김 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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