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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적치유

5강 상한심령 Ⅰ- ①

by 은총가득 2010. 5. 12.

 

하나님백성의 회복을 위한 내면세계의 회복 No. 5                                                상한심령 Ⅰ- ①


상한심령의 시작

                 

  시편 51편 17절입니다.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시 51:17)


  이 시간에는 성경 안에서 인간의 상한심령들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마음과 인간의 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 사건 자체에 신경을 쓰기보다는 사건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마음과 인간의 마음이 어떠했는가를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간혹 하나님의 길 또는 주의 뜻으로 묘사되기도 합니다.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보이시고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  (시 25:4)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엡 5:17)


  왜 우리는 성경을 통해 상한심령을 공부해야만 할까요? 예를 들어 설명하겠습니다. 의학적으로 상한 감정이나 스트레스는 원했던 바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 오는 상처들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아픔이나 상처, 스트레스는 외부의 환경에서 온다고 생각을 합니다. 가령 누가 자신을 배신했다거나 직장상사가 심한 욕을 했을 때 등등입니다. 그런데 무엇이 개인에게 상처가 되느냐 하는 문제는 다분히 주관적입니다. 즉, 어떤 상처가 이 사람에게는 병이 되지만, 저 사람에게는 아무 것도 아닐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어떤 사람에게는 그 상처가 도움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스트레스를 피곤하거나 일이 많아서 오는 상처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그 사람은 하루 종일 걸어 몸이 피곤해졌지만 피곤해 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지 않습니다. 마음이 아파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기분 좋아 합니다. 여기서 상처란 상대적이라는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스트레스는 일의 양이 많고 적음에 따라 오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어떤 태도로 그 일에 접근하느냐에 따라 받고 안 받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선택하고 자유롭게 하는 일은 스트레스가 되지를 않습니다. 오히려 기쁨이 됩니다. 그러나 주어진 일에 대해 구속을 받는다던지 부정적인 생각을 가질 때 그것을 스트레스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상처나 스트레스를 주는 환경이나 사람도 문제지만 상처를 쉽게 받는 사람도 문제라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똑같은 욕설 한 마디를 들었는데 어떤 이는 그냥 흘려듣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흥분합니다. 분해서 어쩔 줄을 모릅니다. 이는 말을 듣는 내면세계의 확성기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증폭해서 듣는 이가 있는가 하면, 그냥 작게 듣는 이가 있습니다. 단순히 지나가는 이야기인데도 자기를 굉장히 무시했다고 피해의식에 빠지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내면세계에 있는 피해의식 등이 단순한 이야기를 확대시켜놓았기 때문입니다.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것일까요? 성경에 그 해답이 나와 있습니다. 인간들의 마음이 상해있기 때문이지요. 상한 심령이 인간들 속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서는 또한 사람들의 마음이 왜 이렇게 상하고 아프게 되었는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나아가 어떻게 그 상처들을 치유하는 지를 성서는 상세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상한 심령을 가지고 한평생을 살게 마련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상한 심령의 정체를 알아야 신앙생활을 새롭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십자가의 복음에서 내적치유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상한심령들을 이해하려면 창세기 3장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나와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를 알아야 합니다.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의 형상대로 만드셨습니다. 비록 인간이 피조물이긴 하지만 조금도 부족함이 없이 에덴동산에서 살았습니다. 자연세계를 지배하면서 살도록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셨던 것입니다. 적어도 죄가 들어오기 전까지 인간은 이와 같이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죄가 인간세계에 들어오면서부터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는 뒤틀리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들, 어릴 적에 여러분과 여러분의 아버지와의 관계가 비뚤어진 경험이 있었나요? 있었다면 언제 어떤 사건을 통해서입니까? 대개 우리가 부모님께 잘못했을 때 부모님과의 사이도 멀리 느껴지는 법입니다. 잘한 일을 가지고 아버지와의 관계가 비뚤어지지는 않을 테니까요. 죄는 인간에게 많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거기다 인간이 살아오면서 그 상처로 인해 생긴 아픈 경험들을 자꾸만 마음에 쌓았습니다. 쌓여진 아픈 마음들은 점점 썩어 병이 들었습니다.


  상한심령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원죄로 인한 상한 심령이 있습니다. 둘째는 인간이라면 갖고 태어난 죄의 후유증에다가 개인이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아픔 등이 함께 쌓이면서 형성되는 상한 심령입니다. 셋째는 느헤미야의 경우처럼 하나님의 기준이나 길을 보았을 때 소위‘인식’에서 오는 상한 심령입니다.


  첫 번째 상한심령은 아담과 하와의 원죄로 인해 인간이면 누구나 상한 심령을 갖게 되었습니다. 죄가 남긴 후유증에 해당됩니다. 이러한 상한 심령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다 태어날 때부터 가진 아픈 마음, 상한 마음, 상처, 쓴뿌리들입니다. 한 의사는 원마음이라고 부릅니다. 두 번째 상한 심령은 태어날 때부터 갖고 태어난 상한 심령이 인생의 풍파를 겪으며 더욱 병들게 되는 데 바로 이것을 가리킵니다. 아픈 마음이 더욱 병드는 경우입니다. 세 번째 상한 심령은 하나님의 기준 앞에 서서 회개하는 상한 마음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부흥을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단계에 나타나는 심령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 상한 심령을 이해하기 위해 느헤미야서 1장을 읽겠습니다.


[4]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5] 가로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 [6] 이제 종이 주의 종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이스라엘 자손의 주 앞에 범죄함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나의 아비 집 이 범죄하여 [7] 주를 향하여 심히 악을 행하여 주의 종 모세에게 주께서 명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 [8] 옛적에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만일 너희가 범죄하면 내가 너희를 열국 중에 흩을 것이요 [9] 만일 내게로 돌아와서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 너희 쫓긴 자가 하늘 끝에 있을지라도 내가 거기서 부터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 하신 말씀을 이제 청컨대 기억하옵소서 [10] 이들은 주께서 일찍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구속하신 주의 종이요 주의 백성이니이다 [11] 주여 구하오니 귀를 기울이사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오늘날 종으로 형통하여 이사람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하였나니 그 때에 내가 왕의 술 관원이 되었었느니라  (느 1:4-11)


  여러분들이 잘 알고 있는 성경말씀입니다. 알다시피 느헤미야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백성 중의 한사람입니다. 그는 왕의 총애를 받아서 노예의 신분으로 술 맡은 관원장에까지 관직이 이르렀습니다. 어느 날 예루살렘에서 사람이 찾아 왔습니다. 아마 자기 동생이 온 것 같습니다. 느헤미야는 그에게서 예루살렘 소식을 듣습니다. 학자들에 의하면 “이 때가 아마도 어쩌면 예루살렘 성전이 중건되어가다가 중단된 상태에 있었던 때일 수도 있다”라고 합니다. 바벨론왕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 오면서 바벨론의 사람들을 예루살렘에 살게 하였습니다. 예루살렘성은 그들로부터 능욕을 당합니다. 성벽은 훼파되어 불에 그을린 상태 그대로 남아있었습니다. 성벽은 다 무너져 여우들이 하나님의 성소에 들락날락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얘기를 전해들은 느헤미야는 하나님 앞에 금식하고 엎드렸습니다. 그리고 수일 동안을 앉아서 울며 하나님께 간구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현실을 인식하는 겁니다. 잘 들어보십시오. 당시의 모든 사람들은 이스라엘이 패망한 것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건 분명한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다 아는 사실입니다. 모르는 사람 하나도 없습니다. 정신 나간 사람 외에는 다 알아요.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 성전이 폐허 상태에 있다는 것을 유대인이라면 다 알았습니다. 지금 이스라엘 사람들이 포로로 잡혀있는 것은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서도 생각하기를“우리가 문제야. 우리는 역시 안 돼. 우리가 하나님의 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서 오늘날 이렇게 된 거야. 우리는 역시 안 돼”하면서 불평불만 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여기서 지금 말하고 있는“현실을 인식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건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현실을 보는 것 일뿐입니다.


  그렇다면 느헤미야는 어떤 시각에서 현실을 보았던 것일까요? 그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현실을 보았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관점에서 본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의 형편은 이러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방 백성들에게 능욕을 당하고 있는 모습을 본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서와 하나님의 성전에서 하나님의 구름이 떠난 지가 오래된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성 예루살렘이 훼파 되었으며 여우가 하나님의 성을 마음대로 드나들고 있는 모습을 본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하나님의 백성들로 인해 땅에 떨어진 것을 본 것입니다. 자 보십시오. 그는 이러한 현실을 하나님의 안목에서 보았습니다. 이게 현실을 인식하는 겁니다.


  오늘날 형편은 어떻습니까? 주님께서 의도하셨던 교회는 영광스러운 지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거룩하고 하나 된 교회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교회는 과연 영광스러운 지위를 가지고 있나요? 오히려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욕을 먹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의 평가만을 소중히 여기면서 살다가 욕을 먹는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의 그것과 전혀 다르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의 가치관 때문에 욕을 먹지는 않습니까. 느헤미야는 바로 이런 상황 속에서 자신의 처지를 하나님의 관점에서 인식하고 상한 심령으로 하나님 앞에 엎드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흥이 예비 되는 첫 단계에서 일어나는 일은‘자기의 처지를 인식함’입니다. 세 번째 상한 심령이란 바로 이 단계에서 나타나는 상한 심령입니다. 부흥을 위해 하나님이 친히 부으시는 깨어진 마음, 애통함입니다. 다음부턴 첫 번째와 두 번째 상한 심령의 종류, 그 원인과 치유를 집중적으로 다루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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