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를 교구로 삼은 복음 전파자 존 웨슬리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전반기까지 여러 차례의 부흥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그 주역으로는 존 웨슬리, 조지 휫필드에 일어난 감리교운동과 조나단 에드웨드로 대표되는
미국의 대각성 운동, 윌리엄 부쯔가 주창한 구세군 운동입니다.
♠ 존 웨슬리의 생애와 신앙
18세기의 영국의 복음주의 부흥운동의 기수요 감리교 창시자인 웨슬리는 1703년 영국국교회의 목사인 사무엘 웨슬리와 엄격하면서도 지혜로운 수산나사이의 15번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 중10명은 일찍 죽었으며, 존이 5살 때 불이 일어났는데 극적으로 구출되어, 어머니의 특별한 배려 가운데 성장하였으나 육신적으로 연약한 소년으로 자랐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그를 철저히 복종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엄격한 가정교육을 시켜 어려서부터 성경읽기와 아침저녁 기도하기 등 철저히 실천하는 삶이었으나, 청년시절의 신앙은 인간중심의 신앙이었습니다. 그러나 올더스게잇에서의 성령체험 사건을 통해 하나님 중심신앙으로 바뀌었으며, 옥스퍼드에서 학위를 받았고 ‘신성회’ 라는 소그룹의 모임의 리더로서 경건한 생활을 장려하였으며, 목사가 되었는데 목사 안수 받는 날 너무 감격하여 눈물까지 흘렸다고 합니다.
존 웨슬리는 종교개혁자의 정신, Sola Scriptura(오직 성경: 마틴루터의 종교개혁 정신)를 이어 받아, 처음 설교했을 때 200명, 다섯 번째는 1 만명, 그 다음에는 1만 8천명이 모여들었고 그 후 설교 청탁이 쇄도했다고 합니다. 존 웨슬리는 집회할 곳이 없어서 옥외집회를 하였습니다.
그의 생애 중 50년 동안 말을 타고 지구의 10바퀴(40만km)이상, 하루 평균 32Km의 거리를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파했다고 합니다.
그는 ‘세계를 나의 교구로 삼는다’ 라는 구호아래 수많은 영혼을 주님께 인도하였고, 옥외집회, 즉석기도, 평신도전도, 찬송, 연회, 속회, 전도인의 안수 등을 하였습니다.
웨슬리는 또 동생 찰스 웨슬리와 함께 만든 수많은 찬송가 중에 좋은 것만 뽑아 525곡의 찬송가를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웨슬리 형제의 찬송가를 살펴보면 ‘만 입이 내게 있으면(23)’, ‘천사찬송하기를(126)’, ‘웬말인가 내 형제여,(269)’, ‘천부여 의지 없어서(338)등입니다. 키 168센티미터의 단신에 평생 55Kg을 넘지 않으나 사람들은 그를 가르켜 ‘성경이 만든사람’ 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죽기 전 5일, 32Km떨어진 곳에서 복음을 전하였으며, 평소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돈을 많이
벌어 하나님의 사업과 구제에 쓸 것’ 을 강조하였습니다. 종교생활의 근면 검소를 주장하며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원리를 주장하였습니다.
“많이 벌고, 많이 저축하고, 많이 도와주라”.
웨슬리는 근면, 검약, 자선의 세 가지를 지키지 않으면 감리교 회원권을 주지 않았고 술과 차를 마시는 것과 사치와 노동조합을 싫어하였는데, 영국은 결국 혁명 없는 개혁을 하게 되었습니다.
웨슬리가 89세로 죽었을 때에 ‘두개의 숟가락과 하나의 차 주전자, 낡아빠진 코트 한 벌’ 밖에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자기의 모든 것을 나누어주었다고 합니다. 그의 임종을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 몰려들었을 때, “제일 좋은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말을 남기고, 그는 주님 곁으로 갔다고 합니다. 우리도 존 웨슬리를 본받아 항상 전도하며 철저히 하나님 앞에서의 삶이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전파하라!(딤후 4:2)"
146
'신앙 및 신앙 서적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천국의 8계단 (0) | 2010.05.01 |
---|---|
성경 잘 읽는 12가지 방법 (0) | 2010.05.01 |
♠ 기도는 기적을 낳는다 (0) | 2010.04.27 |
거짓 신앙체계와 분별력 (0) | 2010.04.24 |
로마 근교 카타콤은 초기 기독교 매장지 (0) | 2010.04.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