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경과 신학 1

그림으로 보는 복음의 핵심 4

by 은총가득 2021. 2. 12.

육신에 속한 자(롬 8장)

 

육신에 속한 자란 그리스도 안에 있으나 성령을 좇아 행하지 않는 자를 가리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과 은혜 안에서,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고 믿는 영혼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영광을 얻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하고 시기와 분쟁을 일삼는 것은 오히려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으로 육신에 속한 부끄러운 것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지 못한 자로 현실적인 문제와 도덕적 타락을 스스로 해결치 못하며, 자유케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깊은 은총을 생활 속에서 맛보지 못할 것입니다.

교회의 터

 

교회의 터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진정한 교회 공동체는 대속하신 그리스도의 피와 공로로만 그 터를 삼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전(고전 3, 6장)

 

성령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사람의 심령을 하나님의 성전이라고도 합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성령께서 거하시는 거룩한 곳이므로 성전인 그리스도인은 영혼의 순결함과 기도와 헌신의 열정이 항상 충만해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소유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니 사람은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이 말은 결국 이 세상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소유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돌려 드려야 합니다. 자랑할 만한 모든 선한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이므로 모든 영광과 찬송은 당연히 선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화평의 언약(롬 5장)

 

새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 약속이다. 이 언약은 궁극적인 평안을 보증한다. 하나님이 자연과 인간 및 인간 상호간의 적대 관계를 해소시키고, 영원한 안전과 번영을 성취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이 언약은 풍요로운 축복과 번영을 보증한다. 하나님은 세상에서 얻을 수 없는 온갖 풍성한 축복을 허락하시고, 자신과의 교제를 통해 충만한 삶을 누리게 하신다. 또한 이 언약은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임마누엘의 약속을 보증한다. 이는 이스라엘 구속 역사의 중심이며 언약의 중보 되시는 예수님에 의해 성취된다.

 

새 영과 새 신(성령)

 

새 영을 주시는 목적은, 새 마음을 주어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갖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새 영은 죄에서 돌이키게 하는 회개의 영을 의미합니다. 사실 죄에서 돌이키는 것조차도 하나님께서 그의 새 영을 주시지 않으면 우리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또한 새 신이란 우리 속에 두어 우리로 하나님의 율례를 행하게 하는, ‘주의 신’, ‘주의 영’으로 번역되기도 하는 성령님을 가리킵니다. 성령께서는 무엇보다도 우리 안에 내주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아버지라 고백하게 하고, 그분의 뜻을 행함으로써 의롭다 인정받게 하십니다.

 

성령이 거하시는 성도의 몸(고전 3, 6장)

 

성도의 몸은 성도 안에 거하시는 성령의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으로 성도들에게 주어진 은혜는 위대한 변화를 낳습니다. 그 변화의 기초는 성령께서 성도들의 심령에 믿음으로 내주하시는 것입니다. 죄에 종노릇하던 인생들이 이제 성령께서 내주하시는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된 것입니다.

​참된 자유자(갈 5장)

 

참된 자유는 그리스도 안에 거할 때에만 가능합니다. 복음 안에서는 종이나 자유자의 구별이 있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만이 모든 사회적 차별이 극복되고 참된 평등이 회복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성도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씨(롬 9장)

 

이는 단순한 혈통적 후손이 아니라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태어난 자녀를 말합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바울은 약속의 자손 이삭을 특별히 그 예로 들고 있습니다. 이로 볼 때 하나님의 자녀란 혈통이나 육정이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않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난 자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보면 이스마엘과 이삭 두 사람은 틀림없는 아브라함의 혈육이요, 후예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마엘과 그의 어미 하갈을 아브라함 집에서 쫓아내십니다. 여기에서 아브라함의 약속된 축복과 하나님의 선택이 따로 있음을 배웁니다.

 

하나님의 선택(롬 9장)

 

에서는 미워하였다’라는 말은 에서가 하나님께서 선택하시는 대상이 아님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관심 대상이 된다는 사실만으로도 항상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함을 여기서 알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바로를 세우실 때도 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해 내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시고 또 당신의 이름을 온 세상에 전파하시려는 데 그 목적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자들뿐만 아니라 대적하는 자들을 통해서도 당신의 영광을 나타내시는 분입니다.

 

토기장이 비유(롬 9장)

 

이 비유에서 우리는 피조물인 인간이 하나님께 헌신해야 하고 순종해야 하며, 운명이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배워야 합니다. 또한 인간은 창조주에 의해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복음 전파 과정(롬 10장)

 

보내고, 전파하고, 듣고, 믿으며, 주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심으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전파된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와 같이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말씀 듣기를 거부하는 자에게는 믿음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먼저 믿은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받은 그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 알릴 책임이 있습니다.

유월절

 

정월 14일부터 7일 동안 계속되는 유월절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은혜로 애굽에서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유월절에는 누룩 없는 떡을 먹었는데, 이는 출애굽시 급히 떠나기 위해 그 떡을 만들어 먹은 것을 기억하고 그때의 고난의 삶을 잊지 않기 위한 것입니다. 출애굽은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한 가장 큰 사건이므로, 이스라엘에서는 3대 절기 중 하나로 간주되어 모든 사람들이 이날을 기념해야 했습니다. 한편 이 절기는 신약에서 그리스도에게로 초점이 맞추어졌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종종 하나님의 어린 양, 유월절 양으로 지칭되곤 하였습니다. 이렇게 구약의 모든 절기와 제사는 오직 한 분 그리스도 예수의 구원 사역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소금 땅

 

사해 지역에 우기가 닥치면 바닷물이 넘쳐 진펄과 개펄의 낮은 지역을 덮는다. 여기에 고인 물은 곧 증발하고, 소금 기운만 남게 된다. 염분이 많은 이런 땅에는 결코 생물이 살 수 없다. 이것은 영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는 완악한 자들이 영원한 저주를 받는다는 사실을 교훈한다.

복음을 전하는 자들

 

바울은 복음을 값 없이 전하고, 자신의 권리를 다 쓰지 않았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성도들의 실제적인 상급은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썩지 않을 영광의 면류관입니다. 복음을 전하면서 그 대가로 세상의 것을 추구하거나 자기의 권리를 요구한다면, 그는 전도자로서의 진정한 임무와 가치를 망각한 사람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복음으로 말미암아 사는 것입니다.

영적 전투의 승리자들의 특징

 

영적 전투의 승리자들은 모든 일에 절제하며 썩지 않을 면류관을 얻고자 정진합니다. 영적 전투에서의 승리는 자기 부정과 십자가의 고난을 감내하는 생활 정도에 따라 좌우됩니다. 이는 자기 자신의 의지를 꺾어서 주님께 철저히 복종시키는 것으로써, 분명한 구원의 목표를 붙잡아야만 끝까지 인내할 수 있습니다.

의롭다 함을 받은 성도의 삶(롬 12장)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성도는 자신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려야 합니다. 여기서 ‘몸’은 인격 전체를 대표하는 것으로, 이는 우리의 인격 전체를 구약의 제물처럼 죽여서 드리는 제사가 아니라 살아서 드리는 ‘삶의 제사’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함이 신앙적 삶의 기초요, 출발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성도 관계의 비유(롬 12-14장)

 

성도들의 관계 혹은 교회를 사람의 몸과 그 몸에 속한 지체들로 비유합니다. 몸에 속한 여러 지체는 각각 다양한 기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하나의 유기적인 생명체입니다. 이러한 비유는 몸의 통일성과, 각 지체의 다양성과 이에 따르는 기능의 다양성, 그리고 여러 지체들의 상호 보완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이렇게 각기 다양한 믿음의 분량을 가지고 있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차별되지 않는 것입니다.

 

은혜를 확신한다면

 

구약의 조상들은 하나님보다 죄악을 더 기뻐하고 즐겼습니다. 때문에 그들은 결국 멸망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확신한다고 하지만 그 은혜의 사실이 죄악된 방종한 생활을 합리화하는 수단이 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확신한다는 것은 죄의 용서를 확신할 뿐만 아니라, 죄의 세력을 이기고 승리한다는 성화의 의미도 포함하기 때문입니다.

 

성만찬(고전 10장)

 

성만찬은, 유월절 전날 만찬을 통해 예수님께서 친히 주신 성례로서, 행동하는 설교의 형태를 가집니다.

성만찬은 교회의 2,000년 역사를 통하여 끊임없이 거행되어 왔습니다.

이는 주님의 구속 사역을 기념하고, 재림의 소망을 더욱 견고히 하는 것으로 말세의 교회에서 더욱 강조되어야 할 것입니다.

성만찬에 참여하는 성도는 먼저 자기를 살피고 분변한 후에 믿음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자신을 살피지 않고 성만찬에 참여하는 것은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또한 성만찬은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친히 임재하시는 귀중한 교회의 모습입니다.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시는 이 의식은 단순한 교회의 의식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재림을 대망하는 구속 사건의 재연으로써, 이미 주신 위대한 구원을 재확인하는 놀라운 은혜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만일 합당치 않게 성만찬에 참여하면 주님의 징계를 받아, 초대 교회처럼 교회 안에 병든 자와 죽는 자들이 생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때로 징계를 통해 우리들에게 우리의 무지와 죄를 가르쳐 주십니다.

따라서 환난이나 어려움이 닥쳤을 때 겸손히 자신을 돌아보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증거

 

예수님께서 사도들과 제자들에게 친히 부활의 증거를 보이신 이유는 사도들의 복음 선포를 더욱 능력 있게 하시고, 초대 교회의 전도 사역을 크게 부흥시키시기 위해서입니다. 증인이란 직접 보고 듣고 체험한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사도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보고 전한 그리스도의 증인이었습니다. 우리도 사도들과 마찬가지로 복음 선포의 사명을 받은 증인들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고전 15장>

 

그리스도의 부활은 장차 있을 죽은 자들의 부활을 증거하는 첫 열매로서, 원수된 사망을 이기신 것을 뜻합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에게 연합한 성도들의 부활을 예표하는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이 부활을 예고하는 것처럼, 성도들의 고난 역시 동일한 영광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짊어지는 성도의 어려움은 도리어 부활의 영광을 확신하는 은혜의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부활을 믿는 자의 삶

 

생명을 얻은 성도는, 아직 그 영생을 얻지 못한 자들이 생명을 얻도록 하기 위해 생명을 거는 모험을 감행합니다. 삶과 죽음은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것으로, 새 생명을 얻은 성도가 아직 이 땅에 남아 있는 이유는, 그로 인해 이웃이 생명을 얻도록 하는 사명 때문입니다. [출처] JOY 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