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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신학 1

그림으로 보는 복음의 핵심 3 - 성령의 법과 죄의 법

by 은총가득 2021. 2. 12.

성령의 법과 죄의 법(롬 8장)

 

성령의 법은 생명을 주는, 성령의 주관하시는 능력을 말합니다. 그리고 죄의 법은 궁극적으로 사망을 가져오는 죄의 힘을 말합니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진리 안에서 우리를 자유케 하시며, 생명을 주시는 분입니다.

 

성육신의 목적(롬 8장)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신 것은 율법의 요구를 이루시기 위함입니다. 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로 율법의 요구를 만족시키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는 의로운 율법을 폐기하지 않으시고 도리어 은혜와 사랑을 베푸셔서 인간으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율법의 요구를 성취하게 하셨습니다.(롬 10:4)

 

 

 

그리스도의 사람(롬 8장)

 

이는 그리스도의 영을 자기 마음 속에 모신 사람을 말합니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접한 사람은 더 이상 육신의 지배 아래 있지 않고 성령의 지배 아래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생명을 누리는 승리의 삶을 살게 되며 성령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는 생활을 합니다.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사는 삶은 일시적으로 고통과 희생이 따를지라도 궁극적으로는 참 생명을 누리는 삶입니다.

 

 

양자의 영(롬 8장)

 

성도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것은 양자의 영 곧 성령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전에는 하나님의 원수된 죄인이었으나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따라서 성도에게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행위가 요구됩니다.

 

 

피조물들이 바라는 것(롬 8장)

 

피조물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날 때를 바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날 때란 성도들이 부활할 때 변화하여 예수님과 같은 영광을 지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때를 말합니다. 이와 같이 모든 자연 만물까지도 마지막 날 이루어질 예수 그리스도의 우주적 구속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또한 사람들은 누구나 오늘보다 내일이 나아지는 소망과 기대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탄식하며 삽니까? 그것은 죄와 계속 싸워야 하며 좋지 않은 환경 속에서 고난을 당해야 하며, 허무한 데 굴복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탄식에서 소망이 있음은 주님이 오시면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화하여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지지 않는 성도( 롬 8장)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완전하기 때문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우리를 하나님에게서 빼앗을 자가 없는 것입니다.

전도의 능력(고전 1장)

 

전도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미련해 보이는 방법입니다. 그러므로 전도의 능력은 인간의 능력이 아닌 성령의 인도하심과 함께 기도가 있어야 나타나게 됩니다. 또한 자신에게는 그 능력이 없다는 철저한 겸손함과,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구하는 기도를 통하여 주어집니다.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 세상

 

세상이 그리스도를 못 박은 것은 하나님의 비밀스러운 지혜를 전혀 몰랐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내신 이러한 구원의 지혜는 오직 성령의 역사를통하여만 증거됩니다. 성령의 역사는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신령한 구속의 의미와 적용은 성령의 은혜를 통하지 않고서는 누구에게도 주어질 수가 없습니다.

교회의 정의(엡1장)

 

교회는 머리되신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는 유기체로 성도들은 그 몸의 각 부분을 이루는 지체가 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구속과 부활을 통하여 이 땅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성경의 증언이 항상 교회에 적용될 수 있도록 깨어 근신하는 자세가 모든 교회에 필요합니다.

그 은사가 사랑을 따라(고전 12장)

 

사랑을 따라 구하라’는 말씀은 성령의 은사를 구하려는 성도들의 내적인 의도의 순수성을 촉구하는 권면입니다. 은사의 효용성은 과연 그 은사가 사랑을 따라 사용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은사가 사랑과 유리되면, 이미 그 은사는 주신 바 목적에서 이탈되고 맙니다. 또한 은사는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 교회 전체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은사를 사모하거나 활용하는 사람들은 교회 전체의 유익을 위하여, 사랑이 충만한 기초 위에서 열매맺어야 합니다. 방언의 은사는 개인적인 유익에 그치는 반면, 예언의 은사는 교회 전체에 유익을 가져옵니다.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배워야 하는 것은 ‘교회를 위한 유익’입니다. 즉 개인적인 덕을 세우는 것보다 교회 전체의 유익과 덕을 세우는 일이 우선되고 더 가치 있게 평가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출처] JOY 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