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경과 신학 1

사도행전(Acts) 15장 - 예루살렘 공의회

by 은총가득 2021. 2. 11.

사도행전(Acts) 제15장


예루살렘 회의


1.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하니
2. 바울 및 바나바와 그들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의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
3. 그들이 교회의 전송을 받고 베니게와 사마리아로 다니며 이방인들이 주께 돌아온 일을 말하여 형제들을 다 크게 기쁘게 하더라
4. 예루살렘에 이르러 교회와 사도와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고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 행하신 모든 일을 말하매
5. 바리새파 중에 어떤 믿는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6. ○사도와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러 모여
7.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8.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언하시고
9.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
10.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11.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12. ○온 무리가 가만히 있어 바나바와 바울이 하나님께서 자기들로 말미암아 이방인 중에서 행하신 표적과 기사에 관하여 말하는 것을 듣더니
13. 말을 마치매 야고보가 대답하여 이르되 형제들아 내 말을 들으라
14. 하나님이 처음으로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시려고 그들을 돌보신 것을 시므온이 말하였으니

 

15. 선지자들의 말씀이 이와 일치하도다 기록된 바
16.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허물어진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17.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18. 즉 예로부터 이것을 알게 하시는 주의 말씀이라 함과 같으니라
19.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고
20.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옳으니
21. 이는 예로부터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음이라 하더라

이방인 신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22. ○이에 사도와 장로와 온 교회가 그 중에서 사람들을 택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으로 보내기를 결정하니 곧 형제 중에 인도자인 바사바라 하는 유다와 실라더라
23. 그 편에 편지를 부쳐 이르되 사도와 장로 된 형제들은 안디옥과 수리아와 길리기아에 있는 이방인 형제들에게 문안하노라
24. 들은즉 우리 가운데서 어떤 사람들이 우리의 지시도 없이 나가서 말로 너희를 괴롭게 하고 마음을 혼란하게 한다 하기로
25. 사람을 택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는 자인 우리가 사랑하는 바나바와 바울과 함께 너희에게 보내기를 만장일치로 결정하였노라
26. (상동)
27. 그리하여 유다와 실라를 보내니 그들도 이 일을 말로 전하리라
28.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는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옳은 줄 알았노니
29.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할지니라 이에 스스로 삼가면 잘되리라 평안함을 원하노라 하였더라
30. ○그들이 작별하고 안디옥에 내려가 무리를 모은 후에 편지를 전하니
31. 읽고 그 위로한 말을 기뻐하더라
32. 유다와 실라도 선지자라 여러 말로 형제를 권면하여 굳게 하고
33. 얼마 있다가 평안히 가라는 전송을 형제들에게 받고 자기를 보내던 사람들에게로 돌아가되
34. (없음)
35.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에서 유하며 수다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주의 말씀을 가르치며 전파하니라

바울과 바나바가 갈라서다

36. ○며칠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고
37.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38.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39.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40.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41.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니며 교회들을 견고하게 하니라


 

 

예루살렘 공의회(행15:1-5)

 

예루살렘 공의회(The Conference of Jerusalem)

 

행 15:1-21에 기록된 예루살렘 공의회는 명실공히 역사상 최초의 기독교 종교 회의였다.

신학적으로는 이 공의회는 이제 구속사(救讀史)가 우리 주 예수 안에서 구약에서 신약으로 갓 이전되었던 과도기였던 초대 교회 시대에 있어서 최대의 현안 문제였던 구약 율법에 대한 신약 성도의 자세 문제를 최초로 그리고 공식적으로 정립한 회의였다. 즉 이 공의회는 표면적으로는 구약 율법 중에서도 의식법 그리고 의식법에서도 극히 일부에 속하는 할례(割禮)를 신약 시대 기독교에 개종한 이방인 출신 성도들이 시행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여부를 가렸던 단순한 회의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기실은 구약 율법 전체에 대하여 유대인 출신 및 이방인 출신 성도를 막론한 신약 성도 모두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인가에 대하여, 구원은 시대를 불문하고 오직 믿음으로써만 얻는 것이며, 의식법은 물론 도덕 및 시민법까지 포함한 전분야의 구약 율법이 신약 복음으로 부분적으로는 성취되고 부분적으로는 승화된 신약 시대에는 구약 율법에 자구적으로 얽매일 필요가 없음을 초대 교회의 공식 입장으로 결정한 회의였다. 그리하여 이 회의로 말미암아 초대 교회는 공식적으로 구약 율법에 대한 신약 성도의 준수 문제를 신학적으로 해결함으로써 이방인 선교에 있어서 가장 심각했던 장애물 하나를 제거하게 되었으며 사실상 기독교의 세계 전파에 있어 확고한 기틀을 다진 셈이 되었다.

 

이와 같이 중차대한 의의를 갖는 예루살렘 공의회에 대한 전반적인 사실들을 살펴봄으로써 우리는 초대 교회 당시의 역사적 ․신학적 배경과 이를 반영한 사도행전을 비롯한 서신서의 제반본문을 이해하는데, 그리고 구약 율법과 신약 성도의 관계를. 나아가 궁극적으로는 구약과 신약의 관계를 이해하는데 큰 유익을 얻게 될 것이다.

 

 

1. 공의회 소집의 배경

행 15:1-5을 보면 예루살렘 공의회가 소집되게 된 것은 사도 바울이 바나바와 함께 제 1차 전도 여행(A.U.47-49년)을 끝마친 뒤 자신을 이방 지역의 선교사로 파송한 수리아 안디옥 교회(Church of Antioch)로 돌아와 머물 무렵이었다. 이때에 이방인들이 주축이 된 안디옥 교회에 유대인 출신 성도로서 예수를 구약에서 예언된 메시아로 믿기는 했으나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막론하고 여전히 구약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고 믿는 소수의 유대주의적 율법주의자들이 들어와 안디옥 교회의 이방인 출신 성도들에게 구원을 위해서는 구약 율법을 준수하여 선민 이스라엘의 회중에 드는 것이 필수적이므로 그 일환으로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으라고 가르쳤다.

 

이러한 그들의 가르침은 이방인 선교 사역을 전적으로 담당하면서 신, 구약 시대를 막론하고 율법의 준수가 인간 구원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으며 더욱이 이제 구약 율법이 예수를 통하여 신약 복음으로 부분적으로는 성취 종료되고 또 부분적으로는 승화 확장된 신약 시대에는 구약 율법의 자구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고 가르쳤던 바울과 바나바의 가르침과 충돌될 수밖에 없었다. 이들 양자간의 논쟁이 격해지자 안디옥 교회는 바울과 바나바 및 몇 사람을 당시 초대 교회의 중심이었던 예루살렘 교회에 파견하여 이 문제의 공식적 해결을 요청함으로써 예루살렘 공의회가 열리게 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공의회 소집의 배경 뒤에는 근원적인 신학적인 문제가 깔려 있다. 즉 초대 교회 시대는 구속사의 시대(時代)가 예수의 초림의 약속을 직 간접으로 보여 주는 율법과 예언을 중심으로 선민 이스라엘을 통해서 진행된 구약 시대에서, 이제 구약의 성취로 초림하여 구속 사역을 성취하신 예수께서 새로이 주신 재림과 천국 구원의 새약속을 중심으로 전 세계 만민 중에 택한 성도 모두를 통해서 진행되는 신약 시대로 갓 이전된 일종의 과도기(過渡期)였다.

 

그리하여 이 당시는 구약과 신약으로 나뉘며 성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연속성과 점진성을 가지고 진행되는 구속사의 섭리에 대한 전반적 이해가 미비된 결과, 심지어 사도들조차도 구약 율법과 신약 복음 그리고 선민 이스라엘의 후손인 유퍼인과 이방인의 바른 관계 등에 대하여 명확한 신학적 이해를 아직 갖고 있지 못했었다. 여기에다가 외적 체제로만 볼 때에는 초대 교회 당시의 선민 이스라엘의 후손인 유대인들의 유일한 종교였으나 기실은 구약을 왜곡 변질시켰던 유대교(the Judaism)가 초대 교회에 더욱 큰 혼란을 야기시키고 있기도 하였다.

 

이 유대교는 비록 선민 이스라엘의 후손인 유대인들의 종교였으나 태초 아담의 때부터 계승된 순수한 정통신앙은 아니었다. 즉 그들은 배타적인 민족주의적 편견을 가지고 하나님의 계시인 순수한 구약 전체가 아니라 구약의 일부 내용만을 취하여 이를 왜곡 해석하고 거기에 유대인 자신들이 인본주의적 전승(tradition)까지 가미하여 여러 가지 그릇된 교리를 갖게 되었다. 그리하여 유대교의 분파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었으나 전반적으로 하나님이 주시려는 구원(救援)은 유대인 자신들만을 중심으로 한 이 지상에서의 정치적 승리와 평화이며 이런 구원을 얻는 길은 율법을 지켜서 스스로 의인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한 메시아가 와서 이루어 줄 것을 고대했다.

 

이런 잘못된 교리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께서 참 메시아(Messiah)로서 구약의 성취로 오사 구속 사역을 성취하고 새로이 신약을 주셨음에도, 주님이 그들의 착각과 달리 세계 만민 중에 택한 모든 자들을, 오직 믿음을 통하여서, 이 땅이 아니라 하늘나라의 새 천국으로 인도하심으로써 구원을 주시겠다고 선포하시자 이를 거부하고 오히려 메시아 예수를 죽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 예수의 제자들이 다시금 예수의 부활과 그리스도의 구속의 복음을 선포하자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다시금 '그리스도의 도'를 전파하는 무리들을 무조건 유대교를 문란케 하는 이단으로 규정하고 그들의 정치․종교적 기득권을 수호하기 위하여 박해를 가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 사실은 기독교가 구약 전체를 온전히 계승한 신약을 믿음으로 결국 정통성을 가졌음에도, 오히려 구약을 부분적으로만 취하여 그 의미를 곡해한 유대교도들이 기독교를 구약 특히 모세 율법을 모독하고 나아가 하나님까지 모독하는 종교로 매도하고 핍박했던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런 소위 유대교적 오류의 영향을 미처 탈피하지 못한 일부 유대인 출신 성도들이 유대교적 민족주의와 율법주의를 버리지 못하고 이방인 출신 성도들의 할례 실시 등을 고집하며 교회에 물의를 일으켰던 것이다. 심지어 이보다 조금 전에는 즉 A.D.30년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태동된 직후 소위 이방인 고넬료의 회심 사건이 있기까지 한 10년 동안은 사도들에게 있어서도 이방인에게 복음이 전해지는 것조차 이상하게 생각될 정도였다(행 10:1-11, 18).

 

그러나 이제 신약 시대에 복음이 유대인을 넘어 전 이방인 만민에게로 확장되는 것만은 일단 분명해진 상황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이방인 성도, 나아가서는 유대인 출신 성도까지 포함한 신약 시대의 전성도가 의식법 관련 분야 뿐 아니라 전구약 율법에 대하여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최대의 현안 문제가 되었다. 그러던 중 이 문제가 구약적 관점에서의 선민 이스라엘의 회중에 참여하기 위한 결정적 증표요 또한 구약 율법 중 가장 초보적이고 가시적 율법 조항이었던 할례의 법을 놓고서 이방인 출신 성도에 대한 할례 시행 문제로 표면화된 것이다.

사실 유대인과 이방인을 막론한 신약 성도의 구약 율법에 대한 자세 문제는 우리의 구속주이신 예수께서 구약의 성취로 이 땅에 오사 공생애를 수행하실 때부터 시작하여 이제 주께서 십자가 수난을 통하여 구속 사역을 마치시고 새로이 신약을 주시고 승천하신 이후 내내 문제되어 왔었다.

 

더욱이 이제 사도 바울 등의 본격적인 이방 선교 사업으로 이방인 출신 성도들이 대거 초대 교회에 참여하기 시작한 이 당시에는 초미의 현안이었다. 왜냐하면 이 문제는 결국 신약과 구약의 근본관계라는 본질적이고도 포괄적인 구속사적 문제와 직결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또 이 문제를 분명히 규명해야만 이방인 선교에 임하는 초대 교회의 기본 입장을 확립할 수 있었다. 이같은 시급한 시대적 요청에 의해 예수의 형제 야고보와 베드로 및 사도 바울을 중심으로 예루살렘 공의회가 개최되게 된 것이다.

 

 

2. 공의회의 진행 과정

공의회 진행 과정은 행 15:6-21에 기록되어 있다. 이를 보면 위에서 언급한 문제들에 대한 실질적인 토의는 공의회가 공식적으로 개최되기 전 예비 회의에서 예수의 수제자로서 예루살렘 초대 교회의 수장이기도 하였던 베드로와 예수의 형제 야고보, 그리고 이방인의 대사도였던 바울과 바나바간에 먼저 이루어졌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니까 실질적으로 공의회는 이 예비 회의에서 결의된 사실에 대해 변론을 한 뒤 그것을 교회의 공론(公論)으로 인정하기 위한 회의였던 것이다. 공의회는 사도들과 예루살렘 교회 장로들을 중심으로 개최되었다(6절).

 

그리고 얼마간의 변론 끝에 1차적으로 베드로가 최종적으로 이제 곧 예수의 형제 야고보가 발표할 예비 회의 결의 내용의 정당성을 입중하기 위하여 유대인과 이방인을 불문하고 율법을 행함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구원 얻는 교리를 다시한번 변증하였고(7-11절), 이어 바나바와 바울이 자신들의 이방 선교사역시 겪었던 경험담에 대한 중언(12절)과 이 회의를 주최했던 주의 형제 야고보의 공의회 결정사항에 대한 발표(13-21절)로 공의회는 끝났다.

 

 

3. 공의회의 결정과 그 신학적 의의

공의회의 결정 사항에 대해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막론하고 구원받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주 예수의 은혜로 말미암는 것이므로 이방인 성도에게 율법의 멍에를 메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는 베드로의 발의(7-11절)와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말자'는 야고보의 결의(19절)로 확정되었다. 이는 결국 이방인 출신 성도뿐만 아니라 유대인 출신 성도까지 포함된 신약 성도 전체는 할례 등을 포함한 구약 의식법을, 나아가 구약 율법 전체를 문자적으로 준수치 않아도 된다는 대원칙을 확정한 셈이었다. 여기에는 앞서 말한대로 유대인이냐 이방인이냐를 막론하고, 그리고 신, 구약 시대를 막론하고 율법 준수가 구원의 근본 조건이 아니라는 신학적 대원칙이 근본적으로 깔려있었다.

그러나 보다 직접적으로는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에게는 분명 하나님의 명령으로 요구되던 이런 율법 조항의 준수는 이제 신약 시대에 이르러서는 더 이상 성도에게 요구되지 않는다는 구속사의 시대 경륜에 의한 구약 율법의 문자적 준수의 폐기라는 원칙이 전제된 것이다. 이제 이를 약술하면 다음과 같다.

 

태초 인간의 타락 직후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의 법을 세우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를 즉각 성취하신 것이 아니라 일단은 예수의 초림과 구속 사역의 성취를 주 내용으로 하는 옛 약속 즉 구약(舊約)을 주셨다. 그리고 이를 중심으로 하여 예수께서 성육신 초림하실 때까지의 구약 시대의 역사가 진행되게 하셨다.

 

그리고 이제 예수께서 성육신 초림하셔서 구속 사역을 일단 성취하신 후에는 새로이 예수께서 성취하신 구속 사역의 복음을 믿는 자에게는 세상 끝날 예수가 다시 재림하셔서, 그 구속 사역의 최종 실현으로서 영원한 천국을 주실 것에 대한 새 약속 곧 신약(新約)을 성자 예수께서 새로이 세우게 하셨다. 다시 말하여 하나님은 신약 시대에 예수의 구속 사역이 성취되기 전에 우선 구약 시대를 두시고 구약 시대에 신약 시대를 직,간접으로 약속하는 여러 예언과 예표를 그리고 특히 구원의 온전한 계시인 복음(福音)이 있기 전에 먼저 그 복음이 필히 요청됨을 보여 주는 율법(律法)을 먼저 주시고자 하셨다.

 

이는 훗날 마침내 예수가 이 모든 것을 성취하고 또 복음을 온전히 계시하셨을 때 우리 완악한 인간들이, 주님이 구속 사역의 최종 실현에 대한 약속으로 새로이 주신 천국 구원의 새 약속도 필히 성취될 것을 보다 더욱 쉽게 확신하고 또한 복음도 더욱 온전히 깨닫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리하여 전 민족을 대표하여 이런 구약의 약속과 율법들을 먼저 받아 보존할 자들로서 이스라엘을 선민(選民)으로 구분하시고 예비 하셨던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구약 율법은 1차적으로는 구약 시대 성도의 생촬 기준으로 본질적으로는신약의 복음 계시 이전의 그리고 예수의 구속 사역과 그를 믿음으로써 구원을 얻음을 보여 주는 복음의 필연성을 역으로 확증하기 위한 또 한 측면의 계시로서 주어진 것이었다.

이런 구약 율법은 하나님 앞에서 인간 행위의 선악 기준을 제시하는 도덕법(moral短w), 선민 공동체로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함께 생활을 영위함에 있어서 요구되는 시민법(civil law), 그리고 궁극적으로 예수의 구속 사역의 여러 측면을 예표하는 가운데 여호와 백성으로서의 정결과 여호와와 백성의 정당한 관계 수립과 유지를 나타내 보이기 위한 제사나 성결법등의 의식법(ritual law)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제 예수께서 오셔서 구약을 모두 성찰하시고 신약을 주시며 복음을 주신 후에는 의식법 분야는 그 예표성이 성취됨으로 그리고 도덕 및 시민법은 보다 더 승화된 복음의 법으로 대체됨으로 종료된 것이었다. 즉 분야별로 그 종료의 양상은 달랐지만 어쨌든 구약시대, 이스라엘에게 요구되었던 소위 모세 율법으로 불리는 구약 율법 자체(Old Testament law, of Moses)는 신약 시대에 이르러 복음의 법(Gospel law)으로 대체되었음으로 해서 시효 종료된 법이었다.

 

이에 성령의 지도를 받은 초대 교회 사도들은 신약 시대 성도들의 구약 율법의 문자적 준수의 불필요성을 교회의 공론으로 정립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예루살렘 공의회의 표면적으로는 단순히 이방인 출신 성도들만의 할례 의식의 이행 여부에 대한 결론인 것 같으나 기실은 이와 관련된 근원적인 문제 곧 신약과 구약의 근본 관계 전반에 대하여 교회의 신학적 입장을 정리한 것이었다.

 

둘째 이방인 성도는 구약 율법 더욱 정확히는 구약 시대의 의식법을 준수할 필요가 없다는 대원칙을 깨트리지 않는 범위 내에서 교회의 대단합과 불신자들에게 교회의 건덕을 일하여 그 행위가 현저하게 유대인 출신 성도들에게 있어서 부정하게 보이는 것으로서 혐오감을 주는 행위, 곧 우상에게 바척진 음식을 먹는 것, 이방인들은 자연스럽게 행하는 풍습들 가운데 유대인들이 보기에 음란하게 보이는 행위들, 목매어 죽인 것과 퍼를 먹는 행위들은 금할 것을 결의했다.

 

이는 그 꿸위 자체는 의식법과 관련된 구약 율법 이외 성경 전체의 가르침으로 볼 때 선,악과 직접 관련이 없는 아디아포라(adiaphora)에 해당하는 것들로서 이를 특별히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금하고 있는 것은 그 행위 자체가 악해서라기보다는 이방인출신 성도들과 유대인 출신 성도 간에 마찰을 줄이기 위한 조치였다.

 

 

4. 공의회의 역사적 의의

예루살렘 공의회(The Co턴erence of Jerusalem)는 기독교 역사상 최초의 공식 공의회였다는점에서 그 역사적 의의가 매우 크다. 이 회의를 기점으로 하여 기독교는 성경 전체의 관점에서 볼 때 유추적으로 어떤 신학적 결론을 내릴 수 있기는 하나 성경에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은 어떤 사실들을 규명할 때 이같은 공의회를 통해 교회의 공식 입장을 정리하는 관례를 가지게 되었다.

 

그 대표적인 실례로 A.D.325년에 열린 제 1회 니케아 회의는 그 유명한 삼위 일체 논쟁을 다룬 회의로서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로 존재하신다는 사실을 천명하였다. 그 이후에도 수많은 종교회의가 있었는데 예루살렘 공의회는 그 모든 기독교 종교 회의(基督敎 宗敎 會議)의 시초가 되었다.

 

또한 예루살렘 공의회의 결정으로 초대 교회의 이방 선교 사업이 기독교의 정통성을 공고히 한 가운데에 더욱 활성화되었다. 만약 신약 시대에도 이방인들의 개종의 조건으로 할례와 같은 구약 의식법을 요구했었더라면 그것은 이방인들을 복음화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유대인화하는 셈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되었을 경우 기독교는 유대교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유대인의 민족종교의 성격을 벗어나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신약 시대에는 이방인은 물론 전성도에게 구약 의식법 및 모든 율법 조항의 문자적 준수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공의회의 결정으로 말미암아 이방인들은 복음을 받아들이기 위해 자기 민족과 문화를 떠나지 않아도 되었으며 이렇게 됨으로써 기독교는 세계적 종교로 발전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하게 된 것이다. 이는 이제 신약에 이르러 세계 만민에게 구원의 복음이 확장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의 결과였다.

 

 

사도행전 15장이 이야기하는 예루살렘 공회

 

사도행전은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 진행된 사도들의 사역을 통해 복음의 확장이 이루어진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 준다. 그 이야기는 복음이 진전되는 과정에 아무런 갈등이 없었다는 내용을 전달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사도행전 15장에서 소개되는 예루살렘 공회에 대한 이야기는 초대 교회가 직면한 갈등의 한 사례를 보여 주며, 어떻게 하나님이 교회의 권위 있는 지도자들로 하여금 그 문제에 대해 회의하고 심사숙고하여 마침내는 복음의 확장에 도움이 되는 결과에 이르게 하셨는지를 가르쳐 주고 있다.

 

 

논쟁

 

예루살렘 공회는 구원의 본질을 다루는 심각한 논쟁에 의해 촉발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논쟁은 사도들의 지시를 받지 않은 어떤 교사들이 이방인을 중심으로 새롭게 세워진 안디옥 교회에 이르러서는 할례와 모세 율법에 대한 순종이 구원에 필요하다고 가르친 데서 비롯되었다(행 15:1, 5, 24). 당시 안디옥 교회에서 목회하던 바울과 바나바는 그러한 가르침이 복음의 진리에 상반된다는 사실을 알고 직접적으로 그에 반대하였다. 그러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다]”(행 15:2). 결국 이 문제가 가볍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로부터 발생한 논쟁의 범위도 확대되었기에, 안디옥 교회는 바울과 바나바를 예루살렘으로 보내 사도들과 장로들의 도움을 요청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게 된다.

 

공회의 소집

 

이렇게 안디옥 교회가 도움을 요청하자, “사도와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러 모[인다]”(행 15:6). 여기서 우리는 “이 일을 의논”할 때 그들이 취한 방법을 살펴보기 위해 세 가지 질문을 던짐으로써 예루살렘 공회에 대한 누가의 설명을 더 깊이 이해해 보고자 한다.

그 세 가지 질문이란 ‘누가 결정하는가’, ‘어떻게 결정하는가’, ‘무엇을 결정하는가’이다.

 

누가 결정하는가

 

첫째로, ‘누가’ 문제의 해결 방안을 결정하는지를 주목해야 한다.

바로 “사도와 장로들이” 결정한다. 누가는 다섯 차례나 반복하여 사도들과 장로들이 예루살렘 공회에서 수행한 역할을 주목하도록 우리의 시선을 이끈다(행 15:2, 4, 6, 22-23). 물론 여기서 사도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그리 놀랄 만한 내용이 아닐 것이다. 예루살렘 교회의 시작부터 그들은 계속해서 교회를 지도하는 책임을 감당해 왔기 때문이다(행 2:42-43; 4:33, 35, 37; 5:29; 6:1-6; 8:1, 14; 9:27; 11:1). 오히려 주목할 만한 부분이 있다면, 사도행전 11장 30절에서야 처음으로 언급된 직분인 장로들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이야기의 현재 단계에서 장로들의 역할이 갖는 중요성은, 그 역할을 통해 리더십의 전환이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 주고자 한 누가의 의도를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사도행전 15장 이후로 누가가 더 이상 베드로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되듯, 교회를 설립하는 데 필요했던 사도들의 근본적인 역할이 마무리되어 가자, 초대 교회의 리더십은 장로들의 손에 위임되고 있었다(행 20:17-38). 즉 사도들과 더불어 장로들은 당면한 문제를 논의하며 해결 방안을 결정하는 일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결정하는가

 

둘째로, ‘어떻게’ 사도들과 장로들이 문제의 해결 방안을 결정하는지에 주목해야 한다.

여기서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드러난 대로 그분의 구원 계획이 펼쳐지는 방식을 고찰하여 결정을 내리게 된다.

 

베드로가 주장하듯이, 이 문제에 대한 교회의 결정은 하나님이 자신의 구원 계획을 성취하는 과정에서 행하신 일과 조화를 이루는 방식대로 이루어져야 했다. 베드로는 하나님이 자신의 입을 통해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기로 선택하셔서 그들이 복음을 듣고 믿게 하셨을 뿐 아니라(행 15:7),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어”(행 15:8) 이방인의 회심에 대한 증거로서 하나님 자신의 사랑과 은혜를 드러내셨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그에 의하면, 하나님이 이방인을 구원하셨을 때 행하신 일 외에 할례나 율법 준수와 같은 다른 요구 사항을 구원의 조건으로 부가하는 일은 “하나님을 시험하”(행 15:10)는 행위가 되었다.

 

더 나아가 이방인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대언하는 권위를 과연 누가 가지고 있는가 하는 문제에 관해서도 공회에 참석한 회원들은 명백한 이해를 가지고 있었다. 다시 말해, 그들은 하나님이 스스로 세우신 권위 있는 대변자인 사도와 선지자를 통하여 그분의 계획이 드러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먼저 이 공회에서 (신약의) 사도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베드로를 통해 주어졌다. 그는 “하나님이 처음으로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시려고 그들을 돌보신 것을” 말했다(행 15:14). 다음으로 (구약의) 선지자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아모스 9장 11-12절을 공회에서 인용하며 구약성경의 여러 본문들을 암시한 야고보에 의해 주어졌다(행 15:13-21). 결국 야고보가 주장하듯이, 사도와 선지자를 통하여 전달된 하나님의 말씀은 이방인을 구원하시는 그분의 목적에 대해 서로 “일치”된 메시지를 드러냄이 확인되었다(행 15:15).

 

따라서 예루살렘 공회에서 권위 있는 결정을 내린 자들은 교회의 지도층이지만, 그들은 “신앙의 모든 논쟁”과 “공회의 모든 판결”을 결정짓는 기준이 되는 최고의 권위(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조 10항), 즉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그 결정을 내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무엇을 결정하는가

 

셋째로, 사도들과 장로들이 예루살렘 공회에서 ‘무엇을’ 결정했는지를 주목해야 한다.

교회가 당면한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사도와 선지자를 통하여 확인한 이상, 공회의 남은 절차는 분명해졌다. “성경이 말씀하니, 문제가 해결된다”라는 옛 교훈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결의하는 과정만 남게 된 것이다. 하나님이 이방인을 모세 율법에 대한 순종 여부와 상관없이 자신의 은혜로 구원하셨기 때문에, 공회는 할례나 율법의 다른 요구 사항을 구원의 조건으로 부과함으로써 이방인을 “괴롭게 하고 마음을 혼란하게” 할 권한이 없었다(행 15:19, 24). 대신에 이방 기독교인들이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해야 한다고만 결의하게 되었다(행 15:20). 왜냐하면 “예로부터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왔기 때문이다(행 15:21).

 

여기서 다음과 같은 까다로운 물음이 제기될 수 있다. 곧 어떻게 이방 기독교인들에게 모세 율법을 준수하지 않아도 된다고 자유를 허용한 공회의 결정과 레위기 17-18장에 근거한 사도행전 15장 20절의 네 가지 금기 사항의 예처럼 율법의 몇 가지 요구 사항에 대해서는 준수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제한한 공회의 결정이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답변은 신약학자 리처드 보캄(Richard Bauckham)의 해석을 통해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다. 보캄에 의하면, 레위기 17-18장에 근거한 네 가지 금기 사항은 이방인으로서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 살고 있지만” 할례를 받아 모세 율법 전체를 준수할 책임이 있는 경우가 아닌 자들을 위해 특별히 마련된 사항들이었다고 이해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여기서 야고보는 모세 율법을 준수할 책임이 없는 이방인이 유대인에 의해 둘러싸여 있는 특수한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그 지침을 제시해 주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만일 이런 추론이 옳다면, 공회의 결정은 복음의 본질과 그 복음이 제시하는 율법의 자유가 무엇인지를 깊이 이해하는 신학적 통찰을 반영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를테면, 공회는 이방인이 행위가 아니라 오직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았기에(엡 2:8-9), 모세 율법이라는 짐을 구원의 조건으로 삼아 그들에게 부과하는 일을 하지 못하게 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방인이 선한 일을 위해 구원받았기에(엡 2:10), 그들에게 “각 성에서”(행 15:21) 함께 사는 이웃인 유대인을 섬길 기회로 그 자유를 활용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결국 사도행전 15장 20절의 금기 사항을 지킴으로써 이방 기독교인들은 그들 주변에 있는 유대인과의 관계에서 불필요한 마찰을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몇 사람이라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할 수 있었을 것이다(고전 9:19-23).

 

그리하여 예루살렘 공회는 율법과 복음의 관계에서 제기될 수 있는 두 가지 중대한 오류를 피하게 되었다. 먼저는 하나님에 대한 순종을 구원의 필수 조건으로 내세우는 율법주의를 피하게 되었고, 다음으로는 하나님에 대한 순종이 구원의 필수 결과임을 부인하는 반율법주의를 피하게 된 것이다.

 

사도들이 정한 규례

 

사도행전 15장 22-29절에서 보내진 편지는 사도들이 정한 규례(the Apostolic Decree)를 담고 있으며, 이는 예루살렘 공회가 내린 결정을 요약하고 있다. 이 규례는 교회의 권위 있는 지도자들에 의해 하나님의 구원 목적과 조화롭게 공포되었기에, 예루살렘 밖에 있는 다른 교회들에게 결정적이며 교의적인 권위를 갖게 되었다(참고로 사도행전 16장 4절에서 언급된 ‘규례’는 문자적으로 교의를 가리킨다). 안디옥 교회에 이 편지가 전달되자, 그 안에 담긴 규례는 그들에게 기쁨, 위로, 능력, 평안을 가져다주었다(행 15:31-33). 더 나아가 그 규례는 안디옥 교회 말고도 다른 이방인 교회들에까지 전달되었다. 사도행전 16장 5절은 그 결과를 이렇게 설명한다.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건해지고 수가 날마다 늘어가니라”(행 16:5).

 

결론

 

거짓된 가르침은 교회를 “괴롭게 하고”, “혼란하게 한다”(행 15:24). 사도행전 15장은 거짓된 가르침이 일으키는 괴로움이 확장될 때 교회가 취할 수 있는 한 가지 해결 방안을 보여 준다. 지난 역사 동안 많은 문제들을 다룰 때 교회는 사도행전 15장의 예를 따라 왔다. 그 사례로는 니케아, 콘스탄티노플, 에베소, 칼케돈 공회만이 아니라 웨스트민스터 총회까지 들 수 있다. 이처럼 교회가 예루살렘 공회의 모범을 따르며 진행했던 지난 회의들은 교회의 평안과 순결 및 복음의 확장을 촉진시켜서 결국에는 하나님의 더 큰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그분 자신이 정하신 수단으로 입증되어 왔다.

 cafe.daum.net/correcttheology

 

                                           blog.naver.com/bee9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