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45-146편
하나님께서는 광대하시고 은혜로우심(시 145편)
[1-6절] 왕이신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내가 날마다 주를 송축하며 영영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여호와는 광대하시니 크게 찬양할 것이라. 그의 광대하심을 측량치 못하리로다. 대대로 주의 행사를 크게 칭송하며 주의 능한 일을 선포하리로다. 주의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위엄과 주의 기사를 나는 묵상하리이다. 사람들은 주의 두려운 일의 세력을 말할 것이요 나도 주의 광대하심을 선포하리이다.
다윗은 하나님을 “왕이신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른다. 천지만물을 만드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왕이시다. 그는 온 세상의 섭리자 곧 통치자이시다. 다윗은 또 하나님께서 광대하시다고 말한다. ‘광대하시다’는 말은 ‘크시다, 위대하시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크시고 위대하시다. 그는 그의 능력과 존귀하심과 영광스러운 위엄에 있어서 크시고 위대하시다. 사람은 하나님의 크심과 위대하심을 다 측량하지 못하며 조금 이해하고 느낄 뿐이다.
다윗은 왕이신 하나님의 크심과 광대하심을 고백하며 그를 높이며 날마다 그를 송축하며 영원히 그의 이름을 송축하겠다고 말한다. 우리는 훌륭한 사람을 보면 그를 높이고 칭송한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홀로 섭리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훌륭한 분이시다. 또 다윗은 하나님의 능하신 일들을 묵상하며 선포하겠다고 말한다. 그가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을 체험한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의 크심을 묵상하며 그를 송축하고 전파할 것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 귀한 것을 연구하기를 좋아하고 또 귀한 것을 다른 이들에게 알리고 함께 나누기를 원한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우리가 연구하고 전해야 할 가장 귀한 보배이시다. 시편 111:2, “여호와의 행사가 크시니 이를 즐거워하는 자가 다 연구하는도다.”
[7-9절] 저희가 주의 크신 은혜를 기념하여 말하며 주의 의를 노래하리이다.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자비하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자하심이 크시도다. 여호와께서는 만유를 선대하시며 그 지으신 모든 것에 긍휼을 베푸시는도다.
하나님께서는 그 외의 그의 속성들에 있어서도 크시고 위대하시다. 특히 그는 의로우심에 있어서 크시고 위대하시며 또 그의 은혜로우심에 있어서도 그는 크시고 위대하시다. 하나님께서는 선하시고 은혜로우시고 자비하시다. 그는 죄인들을 향해 오래 참으시고 노하기를 더디하신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그러하시지만, 특히 회개하는 자들에게 그러하시다. 하나님께서는 또 모든 피조물을 선대하시며 그 지으신 모든 것에 긍휼을 베푸신다. 그는 사람들뿐 아니라, 산과 들의 짐승들과 하늘의 새들과 바다의 물고기들도 선대하신다.
[10-13절] 여호와여, 주의 지으신 모든 것이 주께 감사하며 주의 성도가 주를 송축하리이다. 저희가 주의 나라의 영광을 말하며 주의 능을 일러서 주의 능하신 일과 주의 나라의 위엄의 영광을 인생에게 알게 하리이다. 주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니 주의 통치는 대대에 이르리이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들, 즉 들짐승들과 새들과 물고기들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선대하심을 본능적으로 느끼며 그에게 감사할 것이다. 특별히 하나님의 백성된 자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베풀어주신 은혜와 자비를 인하여 그에게 감사하며 그를 송축하며 찬송할 것이다.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송하는 것은 하나님을 의식하는 모든 피조물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선하심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통치에서 잘 나타난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공의의 영광이 있고 하나님의 위엄과 능력의 크심이 나타나는 나라이다. 또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의 영광이 나타나는 나라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하며 그의 통치하심도 영원하다. 그는 온 세상에 영원하신 왕이시다. 하나님의 나라는 주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 바울의 전도의 중요한 주제이었고(마 4:17; 행 28:31) 하나님의 구원 섭리의 역사는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고 확장되고 성취되는 역사이다.
[14-16절] 여호와께서는 모든 넘어지는 자를 붙드시며 비굴한 자를 일으키시는도다. 중생의 눈이 주를 앙망하오니 주는 때를 따라 저희에게 식물을 주시며 손을 펴사 모든 생물의 소원을 만족케 하시나이다.
‘비굴하다’는 말은 ‘엎어지다’는 말로서 낙심하고 비천해짐을 말한다. 사람은 시험에 넘어져 범죄하거나 환경적 어려움 때문에 낙심하거나 비천해진다. 사람은 악한 세상 환경과 마귀의 시험 때문에 그렇기도 하지만, 보통 자신의 부족 때문에, 즉 생각과 감정이 부족하고 믿음이 부족하고 교만이나 자존심이나 욕심 때문에 넘어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죄와 마귀의 시험이 많은 세상에서 모든 넘어지는 자들을 붙드시며 낙심하고 비천해진 자들을 일으키신다. 시편 37:24, “저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잠언 24:16,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인하여 엎드러지느니라.”
다윗은 또 “중생의 눈이 주를 앙망한다”고 말한다. 중생(衆生)은 ‘모든 것’이라는 말로 모든 짐승을 포함하는 뜻이라고 본다. 성경은 짐승도 하나님을 앙망한다고 말한다. 시편 104:27, “이것들이 다 주께서 때를 따라 식물 주시기를 바라나이다.” 영혼과 육체의 필요를 가진 사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사람은 조물주 하나님을 앙망한다.
다윗은 “주는 때를 따라 저희에게 식물을 주시며 손을 펴사 모든 생물의 소원을 만족케 하시나이다”라고 말한다. 시편 104:28은, 주께서 주신즉 저희가 취하며 주께서 손을 펴신즉 저희가 좋은 것으로 만족한다고 말하며 시편 147:9는 하나님께서 들짐승과 우는 까마귀 새끼에게 먹을 것을 주신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육신의 양식을 주실 뿐 아니라, 심령의 소원도 만족케 하시며 평안을 주신다. 그는 특히 그의 자녀들이 낙심하거나 환난을 당할 때 그들에게 심리적 위로와 힘도 주시며 그들을 구원하신다.
[17-19절] 여호와께서는 그 모든 행위에 의로우시며 그 모든 행사에 은혜로우시도다.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 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의 소원을 이루시며 또 저희 부르짖음을 들으사 구원하시리로다.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행위에 의로우시며 그 모든 행사에 은혜로우시다. ‘의’는 도덕적 기준에 맞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의롭게 행하신다. 그는 모든 행위에 의로우시다. 그는 또한 모든 행사에 은혜로우시다. 그는 죄인들을 오래 참으시고 비록 그들의 죄가 클지라도 그들이 회개할 때 그 모든 죄를 용서하신다.
하나님께서는 특히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신다. 그는 그를 경외하는 자들의 소원을 이루시며 또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구원하신다. 하나님의 이름을 진실히 부르고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을 알고 그를 찾는 증거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에게 가까이 하신다. 모세는 신명기 4:7에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하심과 같이 그 신의 가까이 함을 얻은 나라가 어디 있느냐?”고 말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경외하는 자의 소원을 이루시며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어 위험에서 건지신다. 시편 34:9-10에서 다윗은,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고 말했다.
[20-21절] 여호와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는 다 보호하시고 악인은 다 멸하시리로다. 내 입이 여호와의 영예를 말하며 모든 육체가 그의 성호를 영영히 송축할지로다.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하나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아는 자들이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들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들을 보호하실 것이며 그들은 하나님의 도우심과 보호와 구원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영광과 그 거룩한 이름을 송축할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악인들도 있다. 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경외치 않고 그의 계명을 무시하고 죄를 짓고 악을 행하다가 결국 멸망을 당하는 자들이다.
본 시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을 알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왕이시며 온 우주의 왕이시다. 그는 온 세상의 창조자이시며 통치자이시다. 그의 나라는 영원하다. 또 하나님께서는 크시고 위대하시다. 그는 그 능력에 있어서 크시다. 그는 인류의 역사 속에서 기이한 능력의 일들을 많이 행하셨다. 그는 그의 의와 선하심에 있어서도 크시다. 그는 공의로 세상을 통치하시며 악인들에 대해 보응하신다. 그는 자기 백성에게 크신 은혜를 베푸시며 오래 참으시고 노하기를 더디하신다. 그는 그를 경외하며 진실히 간구하는 자들에게 응답하시며 그들을 보호하시며 공급하신다. 우리는 그 하나님을 알자.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께 찬송하자. 우리는 온 세상과 교회를 다스리시는 왕이시며 그 능력과 의와 선하심이 크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세세토록 돌리자. 하나님을 아는 자마다 하나님을 찬송하고 그 능력과 은혜를 체험한 자마다 그에게 감사와 찬송을 올리자.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하자. 하나님께서는 자기에게 진실히 간구하는 모든 자들에게 가까이 하신다.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아는 자들마다 하나님께 기도할 것이다. 우리는 시시때때로 하나님께 나아와 감사의 기도, 죄의 고백의 기도, 간구의 기도를 올리자.
넷째로,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순종하자. 하나님께서는 그를 사랑하는 자들을 다 보호하시고 좋은 것들을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오직 그의 계명들을 순종하자.
시편 145편 -메튜헨리 주석
하나님께 영광 145:1-9
'다윗의 찬송시'라는 표제로 미루어 다윗이 이 노래를 특별히 좋아하였으며 자주 불렀었으리라고 짐작해 볼 수 있다. 실제로 다윗은 어느 곳에 가든지 이 노래와 동무하여 다녔었다. 전반부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속성을 찬양하고 후반부에 이르러 영원한 나라와 그 통치하심에 대해 찬양을 하였다.
(1) 누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가. 시편 기자는 따른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하든지 상관치 않고 오로지 여호와를 찬양하는 일에 전념하려 한다. 이 일은 그에게 있어 마땅히 해야 할 의무이며 동시에 기쁨의 근원이었다. 다윗은 엄숙하게 예배를 드릴 때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대화를 통해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 하였다. 더군다나 '내가 날마다 주를 송축'하겠다고 하여 일생동안 쉬지 않고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겠다고 결심을 하였던 것이다. 아무리 할 일이 많아 바쁘거나 슬픔에 젖어 마음이 우울하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는 날이 하루라도 있어선 안 된다. 하나님은 매일을 하루같이 우리를 축복하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날마다 하나님을 송축하며 거룩하신 그 이름을 높여야 할 이유가 충분히 있는 것이다. 다윗은 다른 사람들 역시 기꺼이 이 일에 동참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열성적인 다윗의 태도가 사람들의 마음을 일깨워 하나님을 송축하는 일에 동참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 백성은 앞으로도 영원히 여호와를 송축하며 살아갈 것이다(4절). 대대로 주의 행사를 크게 칭송하며.
(2) 무엇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는가. 다윗은 다른 무엇보다도 그 광대하심과 능한 일로 인하여 여호와를 찬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마땅히 '여호와는 광대하시다'라고 선포해야 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여호와는 광대하시니 자기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하여 주의 이름을 한껏 '크게 찬양해야' 할 것이다. 여호와의 광대하심은 인간의 지혜로 도저히 헤아릴 수 없다. 우리가 아무리 찾아도 끝을 찾지 못할 때 우리는 다만 가장자리에 앉아 내려다보며 그 깊이에 대해 경탄할 수밖에 없다(롬 11:33).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낮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역사하시는 과정을 놓치지 말고 지켜보아야 한다.
여호와의 선하심은 그의 영광이 된다(출 33:19). 저희가 주의 크신 은혜를 기념하여 말하며(7절).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열심히 찬양하여도 주의 은혜를 다 거론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은혜를 풍성히 베푸신 하나님께서 앞으로도 영원히 그리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크신 은혜에 대해 말할 때에는 언제나 '주의 의를 노래해야'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하나니은 신실한 마음으로 주를 섬기는 영혼을 위해 큰 은혜를 베푸시지만, 한편으로는 주께 대적하는 무리를 반드시 의로 다스리신다는 점도 기억해 두어야 한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속성 중에는 끊임없는 선하심도 포함된다(8절). 주를 섬기는 백성들에게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그 손길을 필요로 하는 영혼에게 '자비하심'을 베푸신다. 또한 주의 뜻을 거스릴 때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간절히 구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인자하심'을 크게 베풀어주시기도 한다. 즉 하나님은 언제든지 죄를 용서하시고 은혜를 베푸시려고 준비를 갖추어 두신다.
Ⅱ. 여호와께 감사의 찬송 145:10-21
시편의 전반부에서는 하나님의 광대하심과 그 선하심에 대하여 송축하였다. 이제 이 부분에서는 여호와께서 그 선하심과 광대하심에 기반하여 찬란한 광채를 발하는 통치를 주관하니 성도들은 모두 '주의 나라의 영광'을 말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는 교훈을 얻게 될 것이다. 주의 지으신 모든 것이 주께 감사하며(10절). 만물은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도록 되어 있다. 주의 지으신 모든 것이 주께 감사한다 함은 아름다운 건물로 인하여 건축가의 명성이 높아지고 훌륭한 그림으로 말미암아 화가가 칭송을 받는 것과 같이 여호와께서도 만물로 인해 찬양받으심이 마땅하다는 뜻이다. 그 중에서도 특별히 성도들은 자녀의 입장에서 사려가 깊고 자애로운 부모를 높이는 것처럼 여호와의 이름을 송축해야 한다. 저희가 주의 나라의 영광을 말하며. 주의 나라는 실로 크고 광대하다. 왜냐하면 땅 위의 모든 나라와 그 왕들이 다 여호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기 때문이다. 물론 솔로몬이나 아하수에로왕의 궁전도 상당히 훌륭하고 장엄하긴 했었다. 그러나 이렇게 위엄있는 궁전도 하나님 나라의 영광과는 도무지 비할 바가 못된다. 마치 한낮의 밝은 태양 아래 반딧불의 빛을 내놓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다윗은 '저희가 주의 나라의 영광을 말할'때에는 항상 '주의 능을 일러서 주의 능하신 일을 인생에게 알게' 하여야 할 것이라고 훈계하였다(11,12절).
한편 주의 나라가 영원하리라는 점도 기록해 놓았다(13절). 이 땅 위에서 아무리 큰 권세를 누리는 왕이라 하더라도 보좌가 영원히 계속될 수는 없다. 언젠가 때가 이르면 왕관을 장식하던 꽃은 시들고 그의 통치는 종말을 고하게끔 되어 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다스리시는 '주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다.' 그의 나라의 성격과 다스리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 곧 은혜와 긍휼을 베푸시는 분이시다. 실제로 하나님의 통치는 그 호칭에 비해 조금도 손색이 없다. 하나님은 매사에 그 선하심을 나타내시고 모든 생물에게 골고루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15,16절). 모든 생물의 소원을 만족케 하시나이다. 지구상의 모든 생물은 하나님의 은혜에 힘입어 살아간다. 생물의 기원자체가 하나님께로서 비롯된 것처럼 주어진 생명을 계속 이어나가는 것도 역시 주의 은혜로 말미암아 가능해진다는 뜻이다.
하등 동물은 하나님에 대해 아는 것이 없으며 처음부터 그러한 지식을 소유할 능력조차 지니지 못하는 존재로 만들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도 자연을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 주신 본능에 의존하여 식물을 찾기 때문에 '주를 앙망'하는 상태라 할 수 있다. 비록 하등 동물이라 하여도 '주는 때를 따라 저희에게 식물을 주신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이성을 지닌 피조물로 인정하시고 특별히 관심을 기울이시는 인생들의 경우는 더 말할 나위도 없는 일이다. 여호와께서는 그 모든 행위에 의로우시사 누구에게나 불법을 행하시는 법이 없고 모든 피조물에게 공의로 대하신다. 인간들은 때때로 공의에서 벗어난 일을 저지르곤 하나,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한결같이 의를 행하실 뿐이다. 또한 하나님은 멸망에 이르려 하는 자를 도우사 건져 주신다(14절).
이렇게 약한 자를 도우시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는 일이기도 하다. 특별히 '모든 넘어지는 자를 붙드시며'라는 표현은 혹시 실족하는 자가 있어도 저들로 하여금 완전한 멸망을 당하도록 버려 두시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숱한 세월을 억압과 고초 속에서 보내느라 '비굴'해졌던 사람들이 당당하게 일어선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하신 일이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무거운 죄의 짐을 지고 가다가 기진해 버린 인생들이 믿음으로 그리스도께 나아오기만하면 짐을 가볍게 하사 일어나게 해주실 것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그 백성의 기도를 들으사 응답을 하시려고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 두고 계시다(18,19절). 바로 이러한 점에서 그 나라의 은혜가 밝히 드러난다.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비단 기도의 자유뿐만 아니라 담대히 은혜를 구할 수 있는 용기도 지니게 된다. 본문에 여호와께서는 '모든 생물의 소원을 만족케 하시며'(16절) 한 걸음 더 나아가 '자기를 경외하는 자의 소원을 이루어' 주신다고 하였다(19절).
공중의 새를 먹이시는 천부께서 사랑하는 자녀들이 굶주리도록 버려 두실 리가 없다. 또 저희 부르짖음을 들으사 구원하시리로다. 이는 일찍이 다윗의 음성을 들으사(이는 곧 저를 구원하셨다는 의미이다) '들소 뿔에서 구원하신'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의 기도를 들으시려고 귀기울이고 계시다는 뜻을 나타내고 있다(22:21). 우리가 진정 경외하는 마음을 품어 여호와께 경배하고 선한 사업에 힘서 봉사한다면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으사 도움의 손길을 베풀어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예배에 임할 때에는 언제나 마음 속의 생각이 겉으로 나타나는 표현과 일치해야 한다. 만약 겉과 속이 일치하지 않는다면 진실로 예배를 드린 것이라 할 수가 없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믿고 의지하는 백성들을 특별히 보호하여 주신다(20절). 여호와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는 다 보호하시고. 다윗은 '내 입이 여호와의 영예를 말하며'라는 말로 이 노래를 끝맺는다(21절). 여호와를 찬양하는 일이란 인간의 지혜를 모두 동원하여 아름답게 서술하여도 여전히 미진한 부분이 남아 있게 마련이다. 하나님의 자비로우심은 한 가지가 끝나기 무섭게 또 새로운 일이 시작되므로 감사의 찬송도 계속해서 불러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다윗은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하나님을 찬양하겠다는 결심을 밝혀 놓았다. 모든 육체가 그의 성호를 영영히 송축할지로다.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는 자가 복됨(시 146편)
[1-2절] 할렐루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 나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시편 146편부터 150편까지는 ‘할렐루야’로 시작하여 ‘할렐루야’로 마친다. ‘할렐루야’는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뜻으로 1절은 이 말을 두 번 반복한 셈이다. 시편 저자는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 나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라고 말한다. 그는 진심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의 생전에’ ‘그의 평생에’ 하나님을 찬송하기를 결심한다. 이것은 하나님을 아는 모든 참된 성도들이 마땅히 해야 할 행위이며 결심이다.
[3-4절]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
시편 저자는 방백들이나 인생을 의지함이 헛됨을 말한다. 그들은 우리에게 참된 도움이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사람의 도움은 제한적일 뿐 아니라, 그의 호흡이 끊어지는 순간 그의 모든 계획들이 소멸하기 때문이다. 이사야 2:22도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수에 칠 가치가 어디 있느뇨?”라고 말했다.
[5절]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말은 비록 아버지 이삭을 속여 그의 축복을 받은 자이었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의 복 주심을 간절히 사모한 야곱을 용서하시고 그를 돌보시고 도우시고 공급하신 하나님을 가리킬 것이다. 야곱의 생애는 이 세상에서의 성도의 성화의 과정과 같다.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다. 우리는 하나님만 우리의 도움이 되시는 줄 바로 알고 하나님께만 우리의 소망을 두는 자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신다. 세상의 삶은 허망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영원한 생명과 소망이 되신다. 시편 39:7,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시편 118:8-9, “여호와께 피함이 사람을 신뢰함보다 나으며 여호와께 피함이 방백들을 신뢰함보다 낫도다.”
[6절] 여호와는 천지와 바다와 그 중의 만물을 지으시며 영원히 진실함을 지키시며.
우리가 의지하고 소망을 두어야 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천지와 바다와 그 중의 만물을 지으신 창조자이시다. 맨 처음에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시간 세계를 초월해 계신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며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창조자 하나님께서만 참 하나님이시며 모든 인생에게 참 도움이 되신다.
또 그 하나님께서는 영원히 진실하시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거짓되고 믿을 만하지 못하나 하나님께서는 진실하시고 믿을 만하시다. 그는 변함이 없으시다. 그는 특히 그의 약속하신 말씀에 있어서 진실하시다. 그는 약속하신 바를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이시다.
[7-10절] 압박 당하는 자를 위하여 공의로 판단하시며 주린 자에게 식물을 주시는 자시로다. 여호와께서 갇힌 자를 해방하시며 여호와께서 소경의 눈을 여시며 여호와께서 비굴한[엎드러진] 자를 일으키시며 여호와께서 의인을 사랑하시며 여호와께서 객을 보호하시며 고아와 과부를 붙드시고 악인의 길은 굽게 하시는도다[둘러엎으시는도다](KJV). 시온아, 여호와 네 하나님은 영원히 대대에 통치하시리로다. 할렐루야.
그 창조의 하나님, 진실하신 하나님께서는 그가 만드신 천지만물과 인간 세상을 섭리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섭리’라는 말은 보존과 통치의 개념이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창조하신 세상을 보존하시고 다스리신다. 그는 압박 당하는 자를 위하여 공의로 판단하시며 주린 자에게 식물을 주시는 자이시다. 사람이 자기 잘못 때문에 당하는 고난은 당연한 것이지만, 부당한 압박을 당할 때 하나님께서는 공의로 판단하시고 그를 구원하신다. 또 사람이 하나님의 징벌로 기근을 당할 수도 있지만, 일반적 기근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 기근 중에도 그에게 먹을 것을 공급해 주신다. 그는 억울하게 감옥에 들어간 자를 건져내어 자유케 하시고 소경의 눈을 여시고 엎드러진 자를 일으키신다. 그는 죄짓지 않고 의롭게 사는 사람을 더욱 사랑하시고 또 객이나 고아나 과부를 보호하시고 붙드시고 도우신다. 그는 악인들의 행위는 미워하시고 그것을 막으시고 좌절시키신다. 이와 같이, 우리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영원히 대대에 통치하신다.
본 시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사람을 의지하지 말자. 우리는 세상의 권력자나 돈 있는 자나 세상의 그 무엇도 의지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다 허무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죽으면 그와 그의 모든 일들이 다 허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만 의지하자. 시편 39:7,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시편 118:8-9, “여호와께 피함이 사람을 신뢰함보다 나으며 여호와께 피함이 방백들을 신뢰함보다 낫도다.” 세상의 것들은 다 허무하지만 하나님만 영원하시다. 우리는 하나님만 의지하고 소망하며 하나님께만 찬송과 감사를 돌려야 한다.
셋째로, 우리가 하나님만 의지해야 할 이유는 그가 세상의 창조자이시며 통치자이시기 때문이다. 창조자께서는 또한 세상을 다스리시는 자이시다. 그는 압박 당하는 자를 위해 공의로 판단하시고 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주시고 갇힌 자를 놓으시고 소경의 눈을 여시고 엎드러진 자를 일으키시고 의인을 사랑하시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돌보시고 악인은 멸하신다. 통치자 하나님을 의지하고 소망하는 자들은 복되다.
시편 146편
Ⅰ. 왕좌에서도 찬양하는 다윗 146:1-4
다윗은 만백성을 다스리는 왕으로서 사람들 앞에서 소리높여 찬양하는 일을 삼가므로 위엄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기는커녕 자신이 왕의 위치에 올랐기 때문에 더욱더 찬양에 힘써야 한다고 여기는 인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다윗은 스스로 분발하여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라고 외쳤으며 평생 동안 주의 이름을 찬송하는 일을 쉬지 않겠다는 결심을 밝혔다. "온전히 마음을 바쳐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하나님은 스스로 영광과 송축을 받으시는 여호와이시며 나와 함께 언약을 세우신 주가 되시므로 이제로부터 영원까지 저를 찬양하는 일에 힘을 쏟으리로다." 간혹 이 구절을 보고 다윗이 그 당시 이방 민족 사이에 널리 퍼진 풍습을 따라 자신도 영웅 대접을 받고자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품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그 무렵 여러 나라에서 영웅을 신격화하는 경향이 있었으므로 다윗이 이것을 보고 스스로 이스라엘 백성을 복된 생활로 인도하였다는 공을 앞세워 모든 사람을 자기 그늘 아래 모으려 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견해를 내세운다. 그러나 다윗은 전혀 그런 뜻이 없었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 놓았다.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3절). 다윗은 "나는 물론이요 다른 어떤 사람도 의지하지 말지니라. 절대 사람을 믿고 의지하지 말라. 원래부터 사람은 영원히 신실할 수 없는 존재이니 지나치게 의지하지 않는 편이 현명하도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이 변하기도 하고 때에 다라 약속을 어길 수도 있는 존재이니라"고 백성들을 훈계하였다. 오늘날에도 사람을 영원히 변함없는 존재로 믿을 수 없다는 점은 마찬가지이다. 간혹 신실한 사람이 있어 살아있는 날 동안 최선을 다하여 도움을 주겠다고 하였더라도 그 손길이 가장 필요한 순간에 갑자기 세상을 떠날 수도 있는 일이다(4절). 방백들도 언젠가는 평범한 서민과 같이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방백들이 영원히 살아 계시는 권능의 하나님과 같이 늘 도움을 베풀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갖지도 말아야 한다.
Ⅱ. 여호와께 소망 주는 자에게 내려지는 복 146:5-10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권면하고 있다.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는다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자신의 주로 모셔들인다는 뜻이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을 섬기고 늘 예배에 힘쓰며 모든 소망을 주 안에 둔다. 이들은 오로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함으로써 생명을 영위해 나가는 것이다. 믿음을 가진 자들은 누구나 하나님이 야곱의 하나님으로서 땅 위에 모든 교회를 관장하시는 분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교회가 곤경에 빠졌다면 하나님께서 건져 주실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 또한 이들은 여호와께서 자기 개인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점을 인정함으로써 개인적인 곤경의 해결은 물론이요 그 바라는 바 소망까지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질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해몬드 박사는, 이스라엘 랍비 중의 한 사람이 10절은 메시야의 날에 실현될 내용이라고 말하였던 사실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난 다음 7,8절 내용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메시야의 특징을 설명하신 구절 곧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라 하신 표현과 비교해 봄으로써 자신의 생각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삼았다(마 11:5,6).
뿐만 아니라 예수께서 메시야의 특징을 설명하실 때 말미에 해당하는 부분 곧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신 것은 5절과 부합되는 내용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여호와는 천지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로서 본질적으로 전능하시며 모든 피조물을 다스릴 권세를 지니고 계시는 분이다(6절). 이와 같은 여호와의 특성이 예수 그리스도께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물론 예수께 이런 능력을 부여한 이는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이시다.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다.' 무엇보다도 구세주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주 여호와와 동일하신 하나님이시며 똑같이 인생들을 사랑해 주신다는 사실은 성도들의 믿음 성장에 큰 도움이 된다. 예수 그리스도는 곧 영원히 변함 없으신 하나님이시다. 우리 주 예수는 '아멘이시오 참된 증인이시오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분'이시다(계 3:14). 이 구절을 통해서 예수는 창조의 주체이시며 원칙을 세우신 분이라는 점이 밝혀진다. 하나님은 무고히 상처 입은 자들의 후견인이 되신다. (본문에서도 밝힌 바와 같이) '여호와는 압박 당하는 자를 위하여 공의로 판단하여' 주시는 분이라는 뜻이다.
메시야는 큰 압제자 사단의 손아귀에서 압박당하고 있는 인류를 구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다. 이로써 이 세상을 심판하실 권세를 지니게 된 메시야께서 남을 억압하는 자를 포함하여 뭇 사람을 심판하실 날이 올 것이다(유 1:15). 그러나 한편으로 궁핍한 무리를 위하여 큰 은혜를 베푸실 것이다. 주린 자에게 식물을 주시는 자시로다. 따라서 하나님은 대개의 경우 자연의 이치에 부응하는 일상적인 방법으로 주린 자에게 식물을 베풀어주신다. 그러나 간혹 까마귀로 하여금 엘리야에게 먹을 것을 주셨을 때처럼 특별한 방법을 동원하시는 경우도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께서도 적은 식량으로 수천 명에 달하는 인원을 한꺼번에 먹이셨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에게, 예수께서 생명의 양식으로 성도의 영혼을 먹이신다는 점을 믿고 소망 중에 힘을 얻게 하는 요인이 된다. 여호와께서 갇힌 자를 해방하시며. 하나님은 속박 받는 무리에게 자유를 허락하시는 분이시다. 실제로 하나님은 그 백성 이스라엘을 애굽의 손에서 건지셨고 바벨론의 압박에서도 벗어나게 해주셨다. 예수께서도 많은 기사를 행하셨다. '에바다'라는 단 한 마디의 말씀으로 벙어리로 말하게 하시고 귀머거리로 소리를 듣게 하셨다(에바다란 '열려라' 라는 뜻이다). 또한 문둥병자를 깨끗케 하시고 저들로 하여금 여러 가지 제한 규정에서 벗어나게 하셨으며 무덤 속에 갇힌 죽은 자를 일으키신 일도 있었다.
이 모든 기사와 이적을 한데 묶어 '갇힌 자를 해방'시키셨다는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있다. 언젠가 예수께서 오셔서 신령한 자유를 선포하실 것을 믿고 그 안에 소망을 둔 채 기다렸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새삼 용기를 얻게 해준다(사 61:1,2). 그는 또한 시력을 상실한 지 오래된 자들도 다시 볼 수 있게 해주셨다. 여호와께서 소경의 눈을 여시며. 때때로 이 구절은 고난에 처한 주의 백성이 큰 기쁨을 목전에 두고도 깨닫지 못하거나 마침내 보게 된다는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하나님은 이 일의 증거를 보이셨으며(창 21:19) 선지자를 모시던 사환의 눈을 뜨게 하사 놀라운 광경을 보게 하신 일도 있었다(왕하 6:17). 그러나 이 구절은 특별히 그리스도께 적용되어야 한다. '창세 이후로 소경으로 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으니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요 9:32).
이로서 우리들은 장차 영의 눈을 밝히 뜨기 위해 그리스도께 소망을 두는 일에 용기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비굴한 자를 일으키신다' 하였으니 이는 무거운 짐을 지고 헤매이는 백성들의 짐을 가볍게 하시며 때가 이르면 그 짐을 벗게 해주실 것임을 나타내고 있다. 예수께서는 문자 그대로 비굴한 자를 일으켜 주셨다. 어느 안식일에 예수께서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불쌍한 여인을 보시고 그 자리에서 병을 고치셨던 것이다(눅 13:11). 하나님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은혜를 베푸사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을 쉬게 하시며 비참하게 멸망해 가는 무리를 위로하사 다시 일어나게 해주신다. 여호와께 의인을 사랑하시며. 하나님께서 특별히 그 손길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이신다는 점은 '여호와께서 객을 보호하시며'라는 부분에 잘 표현되어 있다. 언젠가 때가 이르면, 하나님은 땅위의 권세잡은 자와 음부의 세력이 연합하여 교회를 대적하려 하는 것을 분쇄하사 메시야의 영광으로 삼으실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시간의 흐름하여금 용기를 얻게 .... cafe.daum.net/correcttheolog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