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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상징들 1

은총가득 2021. 12. 7. 14:41

성경의 상징 폭풍 Storm

폭풍은 성경 안에서 독특하게 사용된다. 바람과 따로 구분하기가 모호한 부분이 있지만 바람은 작은 바람으로 폭풍은 거센 바람으로 구분하여 설명할 것이다. 하지만 구분하지 않을 때도 있다. 폭풍은 종종 하나님의 피조물인 동시의 하나님의 의지이다. 바람과 구름 등은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것들이라 하나님의 신적 속성을 드러낼 때 사용되기도 한다. 성경에서 사용된 폭풍의 의미들을 살펴보자.

자연의 현상으로서의 폭풍

폭풍은 자연의 법칙으로 하나님께서 만드시 자연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나님의 임재로서의 폭풍

폭풍은 하나님의 현현으로 종종 등장한다. 애굽에서의 구원을 이루실 때 폭풍으로 드러나시신다. 엘리야에게 강한 바람으로 하나님을 드러내신다. 여기서 하나님의 임재로서의 폭풍은 하님의 구원과 심판이 서로 맞물려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나 1:3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권능이 크시며 벌 받을 자를 결코 내버려두지 아니하시느니라 여호와의 길은 회오리바람과 광풍에 있고 구름은 그의 발의 티끌이로다


욥기의 마지막 부분에서 하나님께서 욥에게 현현하실 때 폭풍 안에서 말씀하신다. 폭풍은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공간으로서의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한다.


욥 40:6 그 때에 여호와께서 폭풍우 가운데에서 욥에게 일러 말씀하시되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서의 폭풍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이들을 심판하실 때 하나님은 강한 바람을 사용하신다. 여기서 사용된 바람은 서풍이 아니라 ‘동풍’이다. 동풍은 하나님의 심판을 드러낸다.

창 41:6 그 후에 또 가늘고 동풍에 마른 일곱 이삭이 나오더니

출 10:13 모세가 애굽 땅 위에 그 지팡이를 들매 여호와께서 동풍을 일으켜 온 낮과 온 밤에 불게 하시니 아침이 되매 동풍이 메뚜기를 불어 들인지라

시 48:7 주께서 동풍으로 다시스의 배를 깨뜨리시도다

렘 18:17 내가 그들을 그들의 원수 앞에서 흩어 버리기를 동풍으로 함 같이 할 것이며 그들의 재난의 날에는 내가 그들에게 등을 보이고 얼굴을 보이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을 대적하는 폭풍


성경 안에서 폭풍은 어둠의 영의 상징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물론 하나님은 그러한 폭풍에 종속되거나 굴복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사용하시고 정복하신다. 태초의 바다는 깊은과 혼돈이다. 이러한 혼돈의 바다는 창조가 계속될수록 질서를 잡아간다. 즉 정복된다. 갈릴리 바다에서 폭풍을 예수님께서 밟으신 사건과 창조는 연속선상에 있다.

예를들어 시편 29:10에서 여호왂서 홍수 때에 좌정하셨다는 표현이 등장하는데 이것은 정복과 통치를 뜻한다. 역으로 생각하면 홍수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존재이다. 창1장에 등장하는 창조의 완성 이전에 깊음의 바다와 동일한 맥락이다.

시 29:10 여호와께서 홍수 때에 좌정하셨음이여 여호와께서 영원하도록 왕으로 좌정하시도다

 

시편 32:6에서 홍수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되는 존재로 등장한다. 욥 9:17은 하나님께서 폭풍을 통치하고 있음을 고백한다.

 

시 32:6 이로 말미암아 모든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서 주께 기도할지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그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

 

욥 9:17 그가 폭풍으로 나를 치시고 까닭 없이 내 상처를 깊게 하시며


성경의 누룩(yeast, leaven, malt)

 

누룩은 굳이 성경이 아니더라도 지구의 거의 대부분의 나라와 민족들이 사용하는 일반적인 것이다. 누룩 자체만으로 음식이라 할 수 없어서 음식으로 분류하기는 모호하다. 이유야 어떻든 성경에는 누룩이 굉장히 상징적인 존재로 등장한다. 땅의 맛과 부드러움을 위해 누룩이 사용된다. 하지만 출애굽 이후 무교절이 생기면서 누룩은 더욱 상징화되어 인간의 탐욕과 죄, 악 등으로 사용된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물은 누룩이 들어가면 안 된다. 일부 제물에는 누룩이 허용되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누룩은 어떤 의미로 사용되는지 살펴보자. 여기서는 거의 비슷하지만 누룩이나 이스트, 엿기름을 명확하게 구분하지 않았다. 하지만 필요하면 구분할 것이다. 성경에 번역대로 '누룩'이란 단어를 사용했다.

 

누룩 보관법

현대에는 따로 누룩이나 효소 등 발효용 세균이 있기 때문에 따로 보관하지 않는다. 하지만 고대세계에서는 즉석 해서 만들 수 없어서 누룩이 들어간 반죽의 일부는 남겨 놓아 그것을 사용하여 빵을 부풀렸다. 레반트(Levant) 지역의 주식은 빵이기 때문에 거의 매일 일정 양의 빵을 만들어야 해서 반죽을 남겨 놓는 것은 지극히 상직적인 일이었다. 성냥이 없던 시절 불씨를 남겨 놓는 것과 거의 비슷한 방식이다. 이러한 맥락을 이해하고 성경의 누룩 이야기로 들어가 보자.

누룩이 들어간 빵

 

유월절(무교절)에 사용하면 안 되는 것

누룩은 일반적인 제사의 제물에는 넣지 않는다. 무교절에 누룩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누룩을 넣어 빵을 부풀리면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구원의 긴박성을 위해 누룩을 넣지 않는다. 물론 누룩이 갖는 부패적 성향을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강조되지 않았다. 불필요하게 누룩을 죄악 결부시키는 것은 과한 생각이다. 초점은 구원의 긴박성이다.

 

  • 출애굽기 12장 15절 너희는 이레 동안 무교병을 먹을지니 그 첫날에 누룩을 너희 집에서 제하라 무릇 첫날부터 일곱째 날까지 유교병을 먹는 자는 이스라엘에서 끊어지리라
  • 출애굽기 12장 19절 이레 동안은 누룩이 너희 집에서 발견되지 아니하도록 하라 무릇 유교물을 먹는 자는 타국인이든지 본국에서 난 자든지를 막론하고 이스라엘 회중에서 끊어지리니
  • 레위기 2장 11절 너희가 여호와께 드리는 모든 소제물에는 누룩을 넣지 말지니 너희가 누룩이나 꿀을 여호와께 화제로 드려 사르지 못할지니라

오순절 소제에는 들어간다.

모든 제사에 누룩이 들어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기쁨과 즐거움을 표시하는 감사제에는 누룩과 더불이 꿀이 들어간다. 단맛을 최대한 많이 내는 것이다.

 

  • 레위기 23장17절 너희의 처소에서 십 분의 이 에바로 만든 떡 두 개를 가져다가 흔들지니 이는 고운 가루에 누룩을 넣어서 구운 것이요 이는 첫 요제로 여호와께 드리는 것이며

 

 

부패한 정신과 세속성

바리새인의 누룩은 외식이고, 사두개인의 누룩은 세속성이다. 외식이든 세속성이든 결국 하나님을 떠난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들은 진정으로 하나님에 대해 관심이 없다. 바리새인들은 경건을 가장한 자기 명예를 추구했고,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을 거룩한 공간에 가두고 자신들은 타락한 삶을 살았다.

(바리새인 VS 사두개인)

  • 마태복음16장 6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 마가복음 8장 15절 예수께서 경고하여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교회 안의 죄악

교회 안으로 파고 들어온 세상의 악을 누룩으로 비유한다. 누룩이 퍼지듯 더러운 악이 교회 안에서 빠르게 퍼진다.

  • 고전 5:6 너희가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 고전 5:7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 고전 5:8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으로도 말고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으로도 말고 누룩이 없이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

거짓 교사들의 잘못된 교훈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 잘못된 가르침을 거짓 교사들을 누룩에 비유한다.

  • 갈 5:9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느니라

천국의 비유

누룩에 대해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모두 누룩이 갖는 생명과 확장성에 주목한다. 마태복음 13장에 소개되는 누룩의 비유 역시 확장성에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작고 초라해 보이지만 폭발적으로 확장된다.

 

  • 마태복음 13장 33절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성경의 상징 푸른 녹색(Green)


녹색은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명확하다. 성경 밖에서도 녹색은 생명과 탄생을 뜻하며 성경 안에서도 여전히 동일한 맥락으로 사용된다. 그런데 성경에 녹색이 등장하기는 할까?


양식으로서의 푸른색


성경에서 녹색이 가장 선명하게 사용된 곳은 시편 23:2의 다윗의 고백이다. 다윗은 여호와께서 목자임을 선언하시면 자신ㅇ르 ‘푸른 풀밭’에 누인다고 말합니다. 양들에게 풀은 먹이이며 안식의 장소이다. 걱정이 아닌 즐거움과 행복의 수단이다.


시 23: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푸른 색과 먹을 것이 연결된 것은 비단 시편 23편 뿐 아니라 창세기 1장에도 등장한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먹을 것을 허락하시는데 그곳에 ‘푸른 풀’이 등장한다. 어떤 이들은 이 구절을 근거로 홍수 이전에는 하나님께서 육식을 허락하지 않았다는 황당한 주장을 펼친다. 반대로 생각해보자. 그럼 육식을 금지했는가? 아니다. 금지하지 않았다. 다만 풀을 주었다라고 말씀하신다. 성경에서는 금지가 아니면 대부분 허락의 의미가 포함된다.


창 1:30 또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 거리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평화와 안식으로서의 푸른 색


시편 23:2이 그렇든 푸른 색은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의미한다. 팔레스타인 지역은 강수량이 적기 때문에 풀이 자라기가 힘들다. 그래서 ‘푸르다(녹색)’라는 표현은 종종 ‘비’와 ‘이슬’ 내림과 연관된다. 수분이 없으면 풀이 자라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실 때 종종 푸름을 걷어 가신다는 표현을 사용하신다.


하나님의 복으로서의 푸른색

잠 11:28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는 자는 패망하려니와 의인은 푸른 잎사귀 같아서 번성하리라
시 52:8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 같음이여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의지하리로다

 

하나님의 심판으로 푸르름을 걷어가심

출 10:15 메뚜기가 온 땅을 덮어 땅이 어둡게 되었으며 메뚜기가 우박에 상하지 아니한 밭의 채소와 나무 열매를 다 먹었으므로 애굽 온 땅에서 나무나 밭의 채소나 푸른 것은 남지 아니하였더라
욥 15:32 그의 날이 이르기 전에 그 일이 이루어질 것인즉 그의 가지가 푸르지 못하리니

 

우상 숭배적 의미로 사용된 푸른색


성경에서 푸른은 먹을 거리와 양식의 의미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양식은 곧 생명과 생존에 대한 것이다. 이렇다보니 반대로 양식을 주시는 분을 하나님이 아닌 우상에게서 찾는 악도 행한다. 성경에서 ‘푸른 나무’가 종종 우상숭배의 자리로 사용된 것은 이러한 의도가 다분하다. 푸른은 하나님께서 주신 평안과 복을 뜻하는데 이러한 복을 우상 숭배하는데 사용한다.


사 57:5 너희가 상수리나무 사이,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서 음욕을 피우며 골짜기 가운데 바위 틈에서 자녀를 도살하는도다


렘 3:6 요시야 왕 때에 여호와께서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배역한 이스라엘이 행한 바를 보았느냐 그가 모든 높은 산에 오르며 모든 푸른 나무 아래로 가서 거기서 행음하였도다


렘17:2 그들의 자녀가 높은 언덕 위 푸른 나무 곁에 있는 그 제단들과 아세라들을 생각하도다


겔 6:13 그 죽임 당한 시체들이 그 우상들 사이에, 제단 사방에, 각 높은 고개 위에, 모든 산 꼭대기에,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 무성한 상수리나무 아래 곧 그 우상에게 분향하던 곳에 있으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성경에 나타난 손가락의 용도와 상징

[성경 속 신체상징] 손가락(finger)

 

성경에서 손가락은 31회 정도 언급된다. 다른 신체에 비해 그리 흔하지 않지만 독특한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성경 안에서 다양하게 사용되는 손가락을 살펴보자.

 

일반 의미의 손가락

손가락은 손의 마지막 부분에 위치한다. 손가락 안에 손톱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 팔의 끝에 손이 있고, 손안에 손가락이 자리한다. 손가락은 5개씩이며, 모두10개이다. 하지만 더 적거나 많은 사람도 가끔 있다. 손가락을 통해 물건을 잡아 움직이다.

 

성경의 손가락

성경에서 손가락한 일반 의미의 손가락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문학적이고 상징적인 성향의 의미가 더 강하게 드러난다. 하나님의 권세와 의지, 뜻을 드러내기도 하고, 척도의 단위로도 사용된다.

 

척도로서의 손가락

도량형이 정형화되지 않았던 시기에 무엇인가의 두께나 길이를 말할 때 대개 사람의 신체가 기준이 되었다. 손목과 팔목의 사이를 규빗으로 보았다. 한 뼘과 양 팔의 넓이 등도 흔하게 사용되었다. 성경의 세계 뿐 아니라 우리나라를 비롯한 모든 나라의 일반적인 특징이다. 성경에는 손가락으로 두께를 나타내는 기록이 있다.

  • 렘 52:21 그 기둥은 한 기둥의 높이가 십팔 규빗이요 그 둘레는 십이 규빗이며 그 속이 비었고 그 두께는 네 손가락 두께이며

 

창조의 도구로서 손가락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할 때는 대게 '손'으로 지으셨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손은 하나님의 의지와 행위를 드러내며, 하나님의 힘을 상징하기도 한다. 하지만 유일하게 딱 한 번 시편 8:3에서 '주의 손가락'으로 하늘을 만드셨다고 표현한다. 손가락은 손에 비해 작지만 섬세하다. 시편 8편 기자는 하나님의 세밀함을 드러내기 위해 손이 아닌 손가락으로 지으셨다고 표현한 듯하다.

  • 시편 95:5 바다도 그의 것이라 그가 만드셨고 육지도 그의 손이 지으셨도다
  • 시편 8:3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

바로 앞에서 이적을 보일 때 바로의 요술사들이 '이는하나님이 권능'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권능으로 번역된 히브리어단어는 '에체바'로 손가락이다. 왜 권능으로 번역했는지 알 수 없다.

  • 출애굽기 8:19 요술사가 바로에게 말하되 이는 하나님의 권능이니이다 하였으나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게 되어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

사소한 것

손가락은 손에 비해 작기 때문일까? 손가락은 사소한 것을 의미하거나 전제하기도 한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주의하라 명하시며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않다고 하신다. 매우 작고 연약한 것도 행하지 아니하려 한다는 말이다.

  • 마태복음23:4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욥기에서도 하나님은 사탄에게 욥에게 몸에 손(가락)을 대지 말라 하신다. 여기서도 몸에 관련된 사소한 것이라도 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 욥기 1:12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맡기노라 다만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 사탄이 곧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니라

하나님의 계시 또는 기록

출애굽기 31:18에서는 시내산에서 받은 두 돌판을 '하나님이' 쓰신 것이라 말한다. 하지만 이곳에 하나님은 '하나님의 손가락'이다. 왜 이렇게 번역을 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않는다. 이런 실수는 큰 실수이다. 대부분의 영어성경들은 'the finger of God.'로 직역했다.

  • 출 31:18 여호와께서 시내 산 위에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마치신 때에 증거판 둘을 모세에게 주시니 이는 돌판이요 하나님(의 손가락)이 친히 쓰신 것이더라

개역개정: 하나님이 친히 쓰신 것이더라
NIV: tables of stone, written with the finger of God.
KJV: the tablets of stone inscribed by the finger of God.

 

손가락으로 귀신을 쫓아냄

하나님의 손가락이란 표현은 신약에도 등장한다. 예수께서 귀신을 쫓아낼때 '하나님의 손'이라 표현한다. 그런데 헬라어는 정확하게 '하나님의 손가락이다. 영어 성경도 손가락을 직역해 넣었다. 안타깝게 한글 개역은 '하나님의 손'(δακτύλῳ Θεοῦ)으로 표현했다.

  • εἰ δὲ ἐν δακτύλῳ Θεοῦ ἐγὼ ἐκβάλλω τὰ δαιμόνια, ἄρα ἔφθασεν ἐφ’ ὑμᾶς ἡ βασιλεία τοῦ Θεοῦ.
  • [개정개정] 눅 11:20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 [NIV] 눅 11:20 But if I drive out demons by the finger of God, then the kingdom of God has come to you.

죄사함의 방법: 손가락으로 피를 뿌림

구약 제사에서 속죄의 제사는 반드시 제물의 피를 손가락으로 찍어 제단 등에 뿌려야 한다.

 

  • 출애굽기 29:12 그 피를 네 손가락으로 제단 뿔들에 바르고 그 피 전부를 제단 밑에 쏟을지며
  • 레위기 4:6그 제사장이 손가락에 그 피를 찍어 여호와 앞 곧 성소의 휘장 앞에 일곱 번 뿌릴 것이며
  • 레위기 14:28 그 손의 기름은 제사장이 정결함을 받을 자의 오른쪽 귓부리와 오른쪽 엄지 손가락과 오른쪽 엄지 발가락 곧 속건제물의 피를 바른 곳에 바를 것이며

가슴과 관련된 상징들

 

목는 머리와 가슴이 이어주는 연결 고리다. 하지만 성경에서는 기능적 위치보다는 목이 존재의 힘과 능력을 뜻한다고 보았다. 교만한 자를 '목이 곧다'라는 표현을 통해 그 사람의 숨겨진 마음을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여성이 목이 드러나는 행위는 자신의 속을 드러내는 행위가 같아 고대 세계에서 목은 숨겨야할 부분이었다.

어깨

 

성경의 신체상징 팔(arm)

신화와 성경 등에 나타난 팔에 대한 의미와 상징을 살펴봅니다. 성경에서 팔은 의지와 능력을 나타냅니다. 팔의 연장인 손도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팔보다는 구체적인 의미입니다.

1. 용어

βραχίων 팔, 어깨, 군사의 좌우익
ἀγκοίνη 굽은 팔

2. 팔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

팔은 몸의 신체의 일부이다. 팔은 손과 함께 있어 의지를 실현하는 수단이다. 많은 팔은 많은 일, 많은 행동을 표방한다. 인도의 힌두 신인 여신인 두르가는 여덟개의 팔을 가지고 있다. 두르가는 전쟁의 여신이며, 많은 팔에 다양한 무기를 가지고 있다. 많은 팔은 능력과 힘, 또는 전능성을 뜻한다.


3. 성경 속의 팔

성경에서 팔은 협소한 한도 내에서 사용될 때가 많다. 대체로 하나님의 의지와 뜻을 말한다.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낼 때는 팔을 사용하지만 오른팔을 전제한다. 성경에서 오른쪽은 바름과 옳음, 능력과 힘을 뜻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오른팔로 구원하시지 왼팔로 구원하지는 않는다. 팔은 그런 의미에서 구권과 긴밀히 연관된다. 하나나님의 뜻을 드러내기 때문에 정의와 공의, 거룩을 뜻한다.

힘과 능력의 팔

욥 22:9 너는 과부를 빈손으로 돌려보내며 고아의 팔을 꺾는구나
욥 31:22 내 팔이 어깨 뼈에서 떨어지고 내 팔 뼈가 그 자리에서 부스러지기를 바라노라
욥 38:15 악인에게는 그 빛이 차단되고 그들의 높이 든 팔이 꺾이느니라


팔을 펴다.

팔을 펴는 것은 행동을 개시한다는 의미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힘과 능력을 드러내실 때는 '펴신 팔'이란 표현을 사용하는데 종종 '강한 손과 펴신 팔'과 함께 사용한다.

  • 신 11:2 너희의 자녀는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였으나 너희가 오늘날 기억할 것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교훈과 그의 위엄과 그의 강한 손과 펴신 팔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기억해야 하라고 당부하는데 특별히 '그의 강한 손과 펴신 팔'을 기억하라 한다. 손과 팔은 하나로 사용되면 하나님의 능력과 위험을 말한다. 앞서서 '여호와의 교훈'과 함께 기억하라 함으로 하나님의 가르침과 능력이 분리된 것이 아니 하나님을 강조한다.
  • 왕하 17:36 오직 큰 능력과 편 팔로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만 경외하여 그를 예배하며 그에게 제사를 드릴 것이며
신 11:2과 동일한 맥락으로 이스랄엘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편 팔'은 연결시키고 있다.

팔 아래

팔은 힘과 능력을 상징한다. 팔 아래는 능력 아래 또는 하나님의 보호를 뜻하게 된다. 그래서 '팔 아래 두다' 또는 '팔 아래 거하게 하신다'는 하나님의 보호 아래 두신다는 뜻이다.
  • 신명기 33장27절 영원하신 하나님이 네 처소가 되시니 그의 영원하신 팔이 네 아래에 있도다 그가 네 앞에서 대적을 쫓으시며 멸하라 하시도다
  • 사 40:11 그는 목자 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심판의 팔

하나님의 팔은 하나님의 의지를 드러낸다. 구원을 위해 사용되기도 하지만 심판을 위한 목적으로도 사용된다. 예레미야 21:5에서는 불순종한 이스라엘을 향하여 하나님의 심판이 주어질 것임을 드러낸다.

렘 21:4-5
4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너희가 성 밖에서 바벨론의 왕과 또 너희를 에워싼 갈대아인과 싸우는 데 쓰는 너희 손의 무기를 내가 뒤로 돌릴 것이요 그것들을 이 성 가운데 모아들이리라 5 내가 든 손과 강한 팔 곧 진노와 분노와 대노로 친히 너희를 칠 것이며

[참고 자료]

그림출처 위키백과 두르가 ko.wikipedia.org/wiki/%EB%91%90%EB%A5%B4%EA%B0%8

 

 

팔은 의지를 나타낸다. 성경은 '하나님의 팔' 또는 '하나님의 오른팔' 등으로 하나님의 능력과 힘을 표현할 때 '팔'을 사용한다.

 

가슴

손은 의지와 힘, 권세 등을 뜻합니다. 손은 방향을 지시하거나 물건을 집는 데 사용하지만 이러한 특징들로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 상징적인 지체로 사용됩니다.

 

[내장과 관련된 상징]

창자

고대 히브리 인들은 마음과 영혼이 창자에 있다고 생각했다. 바람이 의심되는 아내에게 저주의 물을 먹일 때 창자에 들어간다고 표현한다. 이사야 16:11에서 마음과 창자가 교차적으로 사용된다. 창자는 곧 마음이다.

  • 민수기 5:22 이 저주가 되게 하는 이 물이 네 창자에 들어가서 네 배를 붓게 하고 네 넓적다리를 마르게 하리라 할 것이요 여인은 아멘 아멘 할지니라
  • 이사야 16:11 이러므로 내 마음이 모압을 위하여 수금 같이 소리를 발하며 내 창자가 길하레셋을 위하여 그러하도다

해독 작용을 하는 간이 기능을 상실하면 부종(붓게)에 걸린다. '담대하다'는 표현은 간이 부었다는 뜻인데, 간이 부으면 바른판단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성경에서는 간이 명확하지 않다. 다만 창자와 같이 중심, 마음이 거하는 곳 정도이다. 바벨론 사람들은 간 모양으로 점을 쳤다.

하체와 관련된 상징들

 

허벅지

 

무릎

 

정강이

 

발, 발바닥


 

[성경의 상징] 나무(Tree)

성경에서 나무처럼 다양한 의미를 가진 생물은 없을 것입니다. 동물도 각자의 동물처럼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나무도 역시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나무에 사용된 비유와 상징은 먼저 장수입니다. 나무는 대체로 수십 년에서 많게는 수천 년을 삽니다. 이러한 특징으로인해 나무는 종종 신성시 되거나 영원성을 나타낼 때 사용합니다. 또한 그늘이 부족한 팔레스타인 지역(또는 레반트(Levant)에서 나무는 그늘을 만들어 주어 쉼과 평안, 복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반대로 나무임에도 그늘을 만들지 못할 경우 쓸모없고 가치없는 존재로 그려지기도 합니다. 로뎀나무나 가시나무들이 그렇습니다. 이제 나무에 사용된 다양한 의미들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보호, 그늘을 제공하는 나무

사막지역인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그늘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그늘은 쉼과 평안을 의미합니다. 무화과나무와 상수리나무는 그늘을 제공해 주기 때문에 쉼터가 되어주고 휴식을 제공합니다. 습기가 적은 팔레스타인 지역은 그늘은 열기로부터 보호해 줍니다. 다습한 우리나라는 한 여름에 햇빛을 피해 그늘로 들어가도 온도차는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지역은 햇빛을 피해 그늘로 들어가면 곧바로 시원함을 느낄 정도로 기온 차이가 많이 납니다. 그늘을 제공하는 나무는 좋은 나무지만 그늘을 제공하지 않는 가시 나무는 저주 받은 존재로 그려집니다. 기드온의 아들 아들 아비멜렉을 가시나무에 비유한 것을 봐고 그늘이 갖는 의미를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그늘은 대체로 보호와 안전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그늘 아래라는 표현은 보호를 받는다는 뜻으로 사용됩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그늘을 제공하는 나무는 사랑을 받았습니다. 가장 거대한 수목인 상수리 나무가 가장 많은 그늘을 제공합니다. 올리브나무와 종려나무, 무화과나무, 포도나무 등도 그늘을 제공했습니다. 요한복에서 무화과 나무 아래라는 표현은 '묵상하다'는 뜻이지만 무화과 나무가 제공하는 그늘 아래 있다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레바논 백향목

2. 번성과 생육을 의미

포도나무와 종려나무 열매는 번성을 의미합니다. 나무는 열매를 맺히기 위한 몸입니다. 나무에 열매가 맺히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열매 없는 나무는 저주와 긴밀하게 연결됩니다. 특히 종려나무와 포도 열매 등은 많은 열매를 맺히기 때문에 번성과 축복의 상징으로 사용됩니다. 성경에서는 포도를 이스라엘에 비유하여 하나님의 복을 받은 백성으로 표현하곤 한다.

 

시편 80:8-11
8 주께서 한 포도나무를 애굽에서 가져다가 민족들을 쫓아내시고 그것을 심으셨나이다 9 주께서 그 앞서 가꾸셨으므로 그 뿌리가 깊이 박혀서 땅에 가득하며 10 그 그늘이 산들을 가리고 그 가지는 하나님의 백향목 같으며 11 그 가지가 바다까지 뻗고 넝쿨이 강까지 미쳤거늘

번성을 뜻하는 나무 열매는 포도, 종려나무열매, 무화과 등 한 번 열리면 많이 열리는 과실을 사용합니다.

 

[대추야자열매, 수많은 열매는 번성과 자녀의 축복으로 비유된다.]

 

3. 영생, 생명 나무

창세기 2장에서 생명나무가 등장하고 또한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도 등장한다. 요한계시록에서 에베소 교회를 향하여 이기는 자에게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계 2:7)고 약속하신다. 나무는 하나님의 계명을 뜻하는 것일 수도있다.
나무는 사람의 수명보다 훨씬 길기 때문에 종종 신성이 부여됩니다. 물론 이것을 잘못된 것이지만 이러한 잘못된 습성은 영원을 사모하는 사람이 갖는 특성입니다. 나무는 짧게는 수백에서는 길게는 천년을 넘게 살기 때문에 사람의 수명보다 훨씬 깁니다. 성경에서 나무는 종종 신성한 존재로 그려집니다. 올리브나무를 일반 세계나 성경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지닌 나무처럼 여겨진다. 이유는 올리브 나무의 수명이 1000년을 넘기기 때문으로 보인다.[참조 올리브 나무]

4. 저주의 상징으로 나무

십자가는 저주의 상징입니다. 십자가는 놋뱀와 연관이 있으며, 더 오래 전으로 가면 에덴 동산 중아의 선악과도 상관이 있습니다. 죄인을 나무에 매달아 둔다. 죄를 폭로하는 것입니다. 율법에도 나무에 달린 자는 저주 받았다고 선언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나무에 다리심으로 인류가 받아야할 저주를 대신 받으십니다. 성경에 나타난 가장 강력한 상징중의 하나입니다. 다음의 두 구절을 비교해 읽으면 보다 명확하게 드러난다.

  • 신명기 21:23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그 날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 갈라디아서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5. 하나님의 백성

구약 속의 다양한 나무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상징화되빈다. 포도나무 뿐 아니라 백향목의 경우도 하나님의 복을 받은 이스라엘을 뜻합니다.

  • 민수기 24:5-6: 5 야곱이여 네 장막들이, 이스라엘이여 네 거처들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6 그 벌어짐이 골짜기 같고 강 가의 동산 같으며 여호와께서 심으신 침향목들 같고 물 가의 백향목들 같도다
  • 시편 92:12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성장하리로다
  • 시편 104:16 여호와의 나무에는 물이 흡족함이여 곧 그가 심으신 레바논 백향목들이로다
  • 에스겔 17:23 이스라엘 높은 산에 심으리니 그 가지가 무성하고 열매를 맺어서 아름다운 백향목이 될 것이요 각종 새가 그 아래에 깃들이며 그 가지 그늘에 살리라
  • 호세아 14:5-7 : 5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그가 백합화 같이 피겠고 레바논 백향목 같이 뿌리가 박힐 것이라 6 그의 가지는 퍼지며 그의 아름다움은 감람나무와 같고 그의 향기는 레바논 백향목 같으리니 7 그 그늘 아래에 거주하는 자가 돌아올지라 그들은 곡식 같이 풍성할 것이며 포도나무 같이 꽃이 필 것이며 그 향기는 레바논의 포도주 같이 되리라

신약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자들을 향하여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고 소개합니다.

  • 요한복음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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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나무

출처: [Pensé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