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아 / 달팽이/ 귀뚜라미
당아(Cormorant)
[부엉이]를 참고하라
한글개역성경에는 구약에서만 5번 나타난다. 레11:18, 신14:17에 부정한 짐승으로 먹지못할 것으로 분류되었다. 시편 기자가 시102:6에서 "나는 광야의 당아새 같고 황폐한 곳의 부엉이 같이 되었사오며"라고 자신을 가리켜 이 새에 비유했다.
이사야34:8에서는 에돔이 황패하게 될 것을 말할 때 짐승들의 땅이 될 것을 말할 때 이 새가 언급되었으며 습2:14에서 비슷한 뜻으로 니느웨의 황무케 됨을 말하는데 사용되었다.
이 새가 확실히 당아인지는 불확실하다. 히브리어 <사랔>을 영어번역본들은 당아(Cormorant)로 번역했는데 KJV에서만은 Pelican으로 번역했다. 히브리어의 원래 의미가 "사냥할 짐승에 화살을 쏨"이기 때문에 부엉이로 보는 견해도 있다.
당아는 펠리컨을 가리킨다. 아래턱에 둥근 주머니가 달려있다. 주로 늪지나 큰 강어귀, 바다에 서식한다. 성경에 황폐한 모습을 묘사할 때도 당아새가 등장한다. (시편 102:6, 이사야 34:11, 스바냐 2:14) 성경의 해당 부분을 찾아 읽어보면 물새라기보다는 광야에서 사는 새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펠리컨이 아니라 밤새나 스코프스 올빼미로 보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마.음.이. 원.통.한. 자.들이 모여 들었던 유대광야의 아둘람 굴
" 그러므로 다윗이 그 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그 형제와 아비의 온 집이 듣고는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 환난당한 모든 자와 빚진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 장관이 되었는데 그와 함께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 (삼상 22:1-2)
다윗이라는 사람...
남들은 그가 왕이 되는 데 모든 것을 걸었던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왕이 되는 데 별로 욕심도 관심도 없었던 사람,
그보다는 시를 쓰고 하프를 연주하며 노래하며 살고 싶었고 춤추며 살고 싶었던 사람,
순정만화 같은 사랑과 우정과 의리와 인정에 못내 마음을 두었고,
복잡한 정치판과 꼬여있는 사람들을 피해 늘 어린 시절의 그 초원으로 돌아가 자연 속에서 살고 싶어했던 사람,
그러나 장군이 되어 그를 따르는 수많은 사람들을 거느려야하자 그 책임을 회피하지 않았고,
나라를 위해 사명을 감당해야할 때가 되자 슬그머니 도망가거나 몸을 사리지않고 정면으로 난관을 헤쳐나가고,
전쟁을 해야할 때 피하지 않고 앞장 서 목숨을 걸었고,
그리고 왕이 되자 무기력하거나 우유부단하게 물러서거나 무너지지도 않고 거룩한 목적을 위해 모든 정치적 방법을 동원하고 모든 지혜를 쏟아 남북을 통일시킨 사나이....
가장 낭만적이었던, 그러나 가장 정치적이었던,
그 다윗이 왕이 되기 전 쫓겨 방황하면서 겪었던 어려움과 내면의 고통을 기록한 마음의 넋두리가 있습니다. 시편 102편 3절입니다.
" 대저 내 날이 연기 같이 소멸하며 내 뼈가 냉과리 같이 탔나이다"
[냉과리]가 뭐죠? 냉과리는 히브리어 '모케드' 의 한글 번역인데 덜 구워져서 피울 때 연기와 냄새가 나는 숯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아마도 그의 상황이 '희나리'-'덜 마른 장작' 같아서, 아마도 쉽게 탈 수 없는, 젖어있는 그 어떤 마음이 있어서 눈 아픈 연기만 가득한 채 억지로 타들어가는 인생의 한 시절에 서있었던 모양입니다. 연기만 가득한 생애...
공동번역은 이 부분을 이렇게 번역합니다.
나의 세월은 연기처럼 사라지고 뼈마디는 숯불처럼 타버립니다"
새번역입니다.
" 아, 내 날은 연기처럼 사라지고, 내 뼈는 화석처럼 새까맣게 타 버렸습니다"
아참 [당아새]를 아시나요? 시편 102:6-7절의 말씀입니다.
"나는 광야의 당.아.새. 같고 황폐한 곳의 부엉이같이 되었사오며 / 내가 밤을 새우니 지붕 위에 외로운 참새 같으니이다"
당아새는 히브리어로 '카아트'라는 새인데 이스라엘에서도 분명치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kJV 성경은 '펠리컨'으로 번역했고 NIV 번역성경은 '올빼미'로 번역했어요. 공동번역에서는 사다새(펠리컨)이라고 번역했군요.
" 나는 마치 사막 속의 사다새같이 마치도 폐허 속의 올빼미처럼 / 지붕 위의 외로운 새와도 같이 잠 못 이루옵니다" (공동번역)
새번역은 올빼미라고 번역했구요....
" 나는 광야의 올빼미와도 같고, 메마른 땅의 부엉이와도 같이 되었습니다./ 내가 누워서,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 마치, 지붕 위의 외로운 새 한 마리와도 같습니다."(새번역)
당아새-펠리컨, 좀 궁상맞아 보이는 것 같군요?
앗? 이 새는/ 강렬하닷!!
어느 사진작가가 찍은 당아새-펠리컨=사다새의 매서운 눈매
다윗의 광야생활의 당시 눈빛이 이랬을까요?
아뇨, 아마도 이 당시의 다윗은 이런 강렬한 눈빛도
이미 뺏겨버린 때였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당아새가 아마도 사다새보다는 올빼미에 가까울 것 같은 것은 황야에서 홀로 밤을 새우는 새라는 표현이 밤을 새우는 올빼미와 같을 거라고 느껴지기 때문이죠.올빼미는 아라비아어로 '폐허의 어머니'란 뜻을 갖고 있다는군요. 아마 당아새는 아래의 올빼미와 더 닮았을 것 같습니다. 어스름이 내리는 광야에서 얼떨떨하게 홀로 앉아있는 그런 모습으로 말이죠...
축쳐진 올빼미- 이 당시 다윗의 모습이었던 것 같습니다..
'당아새'와 '냉과리'가 그의 광야시절의 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니 더한 표현도 많죠. 다윗은 스스로를 '죽은 개', '벼룩', '메추라기'라고 자조합니다. [삼상24:14][삼상26:20]
그런데 그는 이런 세월을 거쳐 결국 왕이 되고 법궤를 찾아오고 그리고 이스라엘을 통일시키고 성전건축의 재료를 완벽하게 준비하고 왕궁을 세우고 수많은 실수와 범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으로 알려지게됩니다.
도대체 다윗이란 인간의 진정한 정체와 내면은 무엇일까요?
지난 주간 수요 인물성경공부에서 다윗을 준비하면서 최근들어 '다윗 대통령'이라는 제목으로 그의 리더쉽이 연구되고 있고 또 다양한 다윗 리더쉽에 대한 연구들이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럴만합니다. 다윗은 왕입니다. 그는 위대한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다윗은 '왕이 되고 싶었던' 사람은 아니었다고 단정합니다. 그에게는 왕이라는 직분도 하나님 앞에서의 한 인생이었고, 목동이라는 직분도 하나님 앞에서의 같은 의미의 한 인생이었을 것입니다. 다만 그에게 주어진 상황이기에 최선을 다했던 것입니다. 그는 왕으로 규정되어야할 사람이라기보다는 한 인간으로서 노래꾼이요 춤꾼이요 그리고 시인이었고 그리고 목동의 마음을 평생 지니고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이요? 부강한 왕국건설이요?
그건 목동이 양을 치는 것과 다름없는 성실성과 최선의 결과였을 뿐 그는 제가 보기에는 영원한 춤꾼이요 노래꾼이요 시인이었습니다. 다만 그는 주어진 생애의 도전과 사명 앞에 신음하며 고통을 호소하고 때로는 두려워 떨면서도 물러나지 않고 전진하여 이겨냈을 뿐이었습니다.
다윗의 생에의 수많은 인생사를 통해 우리는 '이 사람의 사는 법'을 배웁니다.
불편하게 변질되어가는 인간관계, 시기와 질투, 모든 꿈이 무너지는 좌절과 고독, 평생 동안 만났던 수많은 대적들 속에서 복수와 용서를 결단하는 것, 위기와 고난, 초라한 삶의 현실, 전쟁의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 자기 자신의 마음을 지키는 법, 욕망과 죄의 문제 등..
그가 처음부터, 그리고 마지막까지 붙잡았던 것은 하나님이었습니다. 해법을 찾기 쉽지 않았던 인생과 신앙의 무서운 파도와 흔들림, 절대고독 속에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삶의 해법을 찾으려 애쓰고 견뎌내고 고민하고 울부짖고 이겨내다보니 어느 사이에 위대한 왕이 되어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아마 그렇게 왕이 되고서도 그는 인생의 목적을 이루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애초에 그의 인생의 목적이 왕이 되는 데 있는 것이 아니었을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윗은 영원한 서민이었습니다. 그는 그리고 평범한 인간의 욕망과 시인의 마음과 음악인의 감각과 목동의 순수함과 장군의 용기와 왕의 통치력이 혼재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런 그를 사용하셔서 이스라엘을 진정 성민의 나라로 만드셨습니다.
다윗의 인생해법의 한 특징은 성실한 단순성으로 보입니다. 복잡하지 않은 '위대한 단순성'(Simplicity)이었습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하고 지도자는 어떻게 살아야한다는 아주 단순한 상식을 그는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상식적이고 평범한 단순성이 그의 힘이었습니다. 이 넓고 투명한 단순성이 모두를 포용할 수 있는 그의 인격적 힘이었습니다. 살다보면 잃어버리게 되는 결코 쉽지 않은 이 단순성을 그가 지녔기에 결국은 지역과 인맥과 이해타산으로 사분오열 되어있던 대적들도 그의 인격에 감화되어 그에게 투항하고 자발적으로 그를 따르게되죠.
그의 단순성은 죄를 지으면 즉시 회개하는 것으로, 사람이 잘못했다고하면 그냥 용서하는 것으로, 어쩔 수 없는 초라하고 비참한 상황은 괴로워하면서도 받아들이는 것으로, 고독하면 울고 괴로워하는 것으로, 속상하면 화를 내는 것으로, 불쌍하면 같이 우는 모습들로, 사명을 감당해야하면 아무리 힘들어도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드러납니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그의 마음의 중심에는 하나님이 있었습니다.
언제 어느 곳에 있든지 그는 하나님을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광야에서 당아새와 냉과리같을 때에도
죽은 개와 벼룩과 메추라기같이 느껴질 때에도
왕궁에서 영화를 누릴 때에도
밧세바와 죄를 지었을 때에도
내 혼이 적막강산 같을 때에도
발이 미끄러지는 순간에도
마음 속에 수많은 생각이 오갈 때에도
이 땅에 소풍을 와 열심히 사는 동안에
언젠가는 돌아갈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하면서
그는 하나님께 버림받지 않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그래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시편 94편의 고백입니다.
“ 여호와께서 내게 도움이 되지 아니하셨더면 내 혼이 벌써 적막 중에 처하였으리로다 / 여호와여 나의 발이 미끄러진다 말할 때에 주의 인자하심이 나를 붙드셨사오며 / 내 속에 생각이 많을 때에 주의 위안이 내 영혼을 즐겁게 하시나이다” (시편 94:17-19)
달팽이(Helix)
달팽이의 껍질은 석회질로 되어있다. 그러므로 팔레스타인과 같은 석회질인 지역에 달팽이가 많이 서식한다. 광야에는 지면의 색깔을 바꿔 놓을 정도로 많다고 한다. 이를 이용해서 현재는 황무지를 개간하는 데에도 달팽이를 이용하는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성경에서 유일하게 한곳에 나오는 "달팽이"는 달팽이의 죽어가는 모습을 나타냈다. 본문은 시편 58:8 "소멸하여 가는 달팽이 같게 하시며 만기되지 못하여 출생한 자가 일광을 보지 못함 같게 하소서"이다.
달팽이가 기어다니면서 끈적끈적한 흔적이 남기는데 옛날 사람들은 이것을 달팽이의 몸이 녹아 내리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기어다닐수록 몸이 점점 줄어들어 드디어 없어져 버린다고 생각한 것이다. 탈무드(Talmud)에서도 이와 같은 견해를 찾아볼 수 있다.
영국의 종교가이며 생물학자인 트리스트람(Tristram, 1832-1906)은 이 성경구절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즉 `장마철이 지나 날씨가 맑으면 달팽이가 태양의 직사를 피해 나무나 바위 그늘과 같이 되도록 습기가 있는 곳에 있고 싶어하는데 만일 오랫동안 햇빛을 쬐면 달팽이는 껍질 속에서 말라 죽게되는데 이 성경구절은 이런 뜻'이라는 것이다.
시편 58,8에 "...달팽이의 진액이 말라 버리듯이"라는 구절이 있다.
달팽이가 기어다니면 끈적끈적한 흔적이 남는다. 옛 사람들은 이것을 달팽이의 몸이 녹아 내리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기어다닐수록 몸이 점점 줄어들어 드디어 없어져 버린다고 생각했다.탈무드(Talmud)에서도 이와 같은 견해를 찾아볼 수 있다.
영국의 종교가이며 생물학자인 트리스트람(Tristram, 1832-1906)은 이 성경구절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즉 `장마철이 지나 날씨가 맑으면 달팽이가 태양의 직사를 피해 나무나 바위 그늘과 같이 되도록 습기가 있는 곳에 있고 싶어하는데 만일 오랫동안 햇빛을 쬐면 달팽이는 껍질 속에서 말라 죽게되는데 이 성경구절은 이런 뜻'이라는 것이다.
달팽이의 껍질은 석회질이다. 그러므로 팔레스타인과 같은 석회질인 지역에 달팽이가 많다. 황야에는 지면의 색깔을 바꿔 놓을 정도로 많다고 한다. 이를 이용해서 현재는 황무지를 개간하는 데에도 달팽이를 이용하는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사막의 옥토화를 위해서 많은 학자들이 꾸준히 연구를 계속하고있다. 팔레스타인은 우기에 접어들기 시작하면 개천이나 육지에 살던 여러 가지 달팽이가 숨은 거처에서 나와 먹이를 찾는다.
달팽이의 입에는 혀가 있고 혀에는 이빨이 붙어 있는데 이 이빨이 채칼과 같은 역할을 한다. 초목의 줄기를 기어오르면서 그 이빨로 표면의 영양을 섭취한다. 아무리 딱딱한 줄기라도 달팽이가 먹으면 이빨 자국이 난다. 간혹 숲에서 야영을 하고 식물의 잎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끈적한 액채가 묻어있고 연록의 가는 길이 나뭇잎에 그려있는 것을 본 이들이 있을 것이다. 대개는 달팽이가 잎을 갉아먹은 것이다. 달팽이는 대개 밤에 먹이를 찾아다니고 낮에는 쉰다. 그리고 겨울에는 잠을 잔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옛날에 이 달팽이를 식용으로 사용했는데 현재도 식용으로 사용한다. 로마 시대에도 달팽이는 요리에 사용되었으며 오늘날에는 프랑스,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지에서 식용(食用)으로 기르고 있다. 포도 잎사귀와 모란채 등을 즐겨 먹는다. 엿기름이나 당근을 먹여 기르는 것은 살이 맛 좋다 상품으로 친다.
달팽이가 음식에 사용된 유래
사람들은 인류 역사 상 달팽이와 약 20,000년 전인 석기시대부터 오랜 인연을 맺어 왔다는 사실을 잘 모릅니다.
그리스 사람들은 미식용으로 달팽이를 애용했고, 특히 아리스토텔레스는 달팽이에 관해 상세하게 기술했을 정도로 과학적인 연구 대상이기도 하지요. 그리스에서는 달팽이에 관한 이름이 많이 있답니다.
본토에서는 살링가리아라고 하고, 크레타에서는 홀리라고 하며, 시프러스에서는 카라올리라고도 합니다.
홀리(Hohli)는 크레타의 인기있는 요리인데요, 부드럽고 맛이 좋기로 유명하지요.
달팽이는 냄새와 맛을 흡수하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보통 크레타인들은 여름철의 우기에는 숨을 쉴 구멍만 있는 밀폐된 통에다가 기른답니다.
그리고는 여러날을 밀과 소맥분 또는 백리향 등으로 사육한다지요.
로마인들은 달팽이를 원기를 회복시켜주는 약용식으로, 상처 또는 화상을 입었을 때나 임산부에게 사용했다고 전해집니다.
베니스인들은 달팽이를 기침약으로 대용했고 햇볕에 타거나 통풍이 있을 때 달팽이액을 이용했답니다.
또 어떤 베네치아의 가수는 자신의 목을 달래기 위해 날것의 달팽이를 먹기도 하였답니다.
중세 유럽 시대에 달팽이는 수녀원과 수도원에서 종교적인 음식으로 길러졌다고 합니다.
선사 시대의 텍사스해변의 인디언들은 구멍을 파고 자연 그대로의 달팽이를 구워먹었다고 하는데 3000년전의 일이랍니다.
오늘날 고급의 달팽이 요리점은 프랑스, 이태리, 독일, 오스트리아 등 여러 나라에서 볼 수 있답니다.
중국인들은 달팽이를 물새알과 상어지느러미와 함께 구워서 먹는답니다.
달팽이는 미국이나 프랑스 이태리, 독일 등지에서 널리 식용으로 길러진답니다.
그리고 많은 양이 뉴올리언즈에서 소비되기도 하구요.
먹을 수 있는 달팽이는 약 116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가장 유명한 달팽이는 브르고뉴 달팽이-헬릭스 포마티아(Helix Pomatia)이고, 작은 헬릭스 아스페르사(Petite Helix aspersa)랍니다.
다른 식용 달팽이는 유럽에서 소비되는 헬릭스 루코룸(Helix lucorum) 인데요
북이태리에서 터키까지 잘알려져있구요, 헬릭스 아다넨시스(Helix adanensis) 또한 터키 아다나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그리고 작은 달팽이라는 아프리칸 헬릭스(African Helix)가 있답니다.
오탈라 베르미큘라타(Otala vermiculata)는 유럽과 캐나다에서 식용으로 알려진 달팽인데요,
지금은 중국에서 미각을 돋구는 식품으로 이용된답니다.
프랑스에서는 "에스까르고 아 라 보르기니욘느(Escargots A La Bourguignonne)"라는 메뉴가 고급의 음식점과 바(비스트로)에서 기본 음식으로 제공된답니다.
크리스마스와 신년이 되면 프랑스의 빠리지앵들은 약 20톤 가량의 달팽이를 먹는 것으로 통계가 나와있답니다.
빠리지앵들이 먹는 최고급 달팽이 요리는 1kg에 약 50-60만원 정도한답니다.
최근에는 인도네시아와 타이완 사람들이 아프리칸 달팽이인 아카티나 풀리카(Achatina fulica)의 발을 요리하거나 팔기도 한답니다. 레스토랑에선 이 달팽이발 요리를 전채요리로 구워서 제공한답니다.
프랑스의 통조림 회사들은 아카티나 통조림을 만드는데 주로 미국의 소비자들에게 판다지요.
달팽이 전문가는 아카티나의 냄새만으로도 달팽이가 습지에서 살았는지, 나이가 들었는지, 피로한 상태인지 등을 알아낸다고 합니다. 익숙하지 않은 요리사들은 대개가 잘 가공된 달팽이 통조림을 사용하기도 한답니다.
우리나라는 아직 통계는 나와 있지 않지만, 주로 건강원 등에서 달팽이엑기스 등으로 이용되고 있기도 하고요,
달팽이 한방 비누 등 달팽이에 관한 미용제품이 개발되고 있답니다.
우리나라 서울에서만 달팽이 요리를 취급하는 곳이 30여곳 이상 있답니다.
달팽이 크림
1980년대 칠레에서는 식용 달팽이 재배가 한창이었고, 농가의 주요 소득은 식용 달팽이 재배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달팽이 사육사들의 피부 상처는 감염이나 부작용 없이 빠르게 회복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되었다.
이런 현상에 주목한 피부과의사 페르난도 바스쿠난(Fernando Bascunan)씨는 과학적으로 식용 달팽이를 연구하게 되었고, 달팽이가 다쳤을 때 나오는 '뮤신'이라는 점액질이 손상된 피부조직을 치료하고, 손상된 등껍질을 복원한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페르난도씨의 발견 이후 칠레에서는 이 성분을 연구 개발했고, 달팽이 점액이 함유된 크림을 개발했다.
달팽이크림은 전 세계적으로 피부 트러블에 탁월한 효과를 인정받아 왔고, 많은 사람들이 애용하고 있다.
달팽이 재앙인가, 아니면 진미인가?
때는 아침 여섯시. 장소는 파푸아뉴기니, 뉴아일랜드 도 카비엥 읍. 한 남자가 5리터들이 통을 가지고 집을 나와 뒤뜰의 채소밭으로 걸어간다. 그 통을 채우는 데는 십분 가량 걸리는데, 그가 통에 넣는 것은 채소가 아니라 달팽이다! 그는 달팽이의 맹공격을 저지하기 위한 노력으로 매일 아침 반복적으로 그렇게 하는데, 그래야 손수 가꾼 얼마의 채소를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여러 해 전에 달팽이는 사실상 파푸아뉴기니 어디에나 있었으며 해안 지역을 따라 급속히 퍼지고 있었다. 마당이라는 한 읍에만도 백만 마리 이상의 달팽이가 있었던 것으로 추산되었다. 달팽이는 농작물과 정원에 많은 피해를 주었다. 카비엥 읍에 그러한 피해를 주었을 뿐 아니라, 운전자에게도 악몽과도 같은 존재가 되었는데, 특히 비오는 밤에 그러하였다. 길에는 실제로 달팽이가 득실거렸다. 자동차를 몰며 회전할 때 미끄러지기도 하고 소란스런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러면 그토록 많은 달팽이가 어디서 왔는가?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그 달팽이의 원산지는 파푸아뉴기니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 달팽이는 대형 아프리카 달팽이(Achatina fulica)로 알려진 변종에 속한다. 현지의 뉴기니피진어로는 '뎀뎀'이라고 부른다. 이 달팽이는 동 아프리카에서 동남 아시아를 경유하여 남태평양 제도로 전래되었다.
원주민에 의하면, 일본 군인들이 제 2차 세계 대전중에 파푸아뉴기니의 뉴브리튼/뉴아일랜드 지역으로 달팽이를 가지고 왔다고 한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일본 군대의 보급선이 파푸아뉴기니 제도를 점령하고 있던 그들의 부대에 닿지 못하도록 연합군이 매우 효과적으로 봉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심각한 식량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달팽이를 도입한 것이다.
일본의 기후는 그러한 식용 달팽이에게는 너무 춥기 때문에 일본에서의 달팽이 양식은 도저히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파푸아뉴기니에서는 조건이 달팽이에게 아주 안성맞춤이어서 평생 6,000개에 달하는 알을 낳는다. 오래 지나지 않아, 뎀뎀은 단 하나의 작은 정원에서도 매일 통을 하나 가득 채울 정도로 증가한다.
통제하기 위한 노력
뎀뎀의 껍질은 10센티미터 길이로 자랄 수 있다. 따라서 이것은 꽤 큰 달팽이인 것이다. 그리고 번식력이 매우 왕성하기 때문에 농작물과 초목에 상당한 피해를 준다. 달팽이에 대해 어떻게 할 수 있는가? 일단 들어온 달팽이를 제거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러나 통제할 수는 있다.
메탈데히드와 같은 독성 화학 물질이 들어 있는 미끼를 사용해 왔고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 동족인 뎀뎀을 잡아먹는 종류의 달팽이를 들여오기 위한 노력도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뎀뎀은 자체 종족 유지에 충분한 수로 늘어나고 있다.
그 외에 달팽이에 대한 대책은 무엇인가? 도전에 정면으로 과감히 맞서 그들이 그 제도에 도입된 바로 그 목적을 위해 사용하면 어떠한가? 그들을 식용으로 사용하면 어떠하겠는가?
“뎀뎀”의 진미
멜라네시아인은 뎀뎀을 가금류와 돼지의 사료로 사용한다. 병아리에게는 달팽이를 껍질에서 꺼냄과 아울러 익히거나 햇볕에 말려서 주도록 권장되기도 한다. 돼지는 스스로 껍질을 깨뜨리는 법을 알지만, 달팽이가 옮기는 기생충으로 인해 병에 걸릴 수 있기 때문에 익힌 달팽이를 주어야 한다.
달팽이의 날것, 삶은 것 혹은 햇볕에 말린 것이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확실히 다른 조리법도 여러 가지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보잘것없는 뎀뎀이 스위스, 프랑스, 스페인, 중국 및 아프리카 여러 지역에서는 진미라는 점을 꼭 기억하기 바란다! 그 진미는 일반적으로 에스카르고라고 알려져 있으며, 일류 식당의 식탁을 돋보이게 한다.
파푸아뉴기니에서는 최근에 뎀뎀 위원회가 설립되었다. 위원회의 목적은 달팽이를 어떻게 요리하여 식탁에 올릴 수 있는지를 대중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위원회는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에 있는 한 일류 식당의 주인이 작성한 요리법을 제공하기까지 한다. 파푸아뉴기니인이 '뎀뎀'을 먹는 일의 장점을 배워 알게 하는 면에서 위원회가 성공할 것인지의 여부는 아직은 두고 볼 일이다.
출처 : 인터넷 검색발췌 : (글/ 약초연구가 & 동아대 대체의학 외래교수 전동명)
귀뚜라미(Cricket)
주로 밤에 활동하며 잡식성으로 몸길이 17-21mm의 진한 흑갈색 메뚜기목 귀뚜라미과의 곤충이다. 아시아 대륙 남부지방에 서식하며 집주의나, 정원, 초원 등에 서식하고 있다.
성경에 단 한차례 먹을 수 있는 종류의 곤충으로 레11:22 "곧 그 중에 메뚜기 종류와 베짱이 종류와 귀뚜라미 종류와 팟종이 종류는 너희가 먹으려니와"에 나온다.
히브리어 <하르꼴>인데 ASV, RSV는 한글과 같이 귀뚜라미로 번역하고 있으나 KJV는 딱정벌레로 번역했다. 이 용어는 정확히 무엇을 가르키는지 알기 어렵기 때문에 번역상의 혼란을 격는다. 이 용어가 또 다른 형태의 메뚜기를 뜻할지도 모른다는 견해도 있다. 팔레스틴에는 여러 곤충들이 서식하고 있다.
애굽에서는 귀뚜라미를 신성시 한 흔적이 있다(고대 에집트에서 투구풍뎅이 모양으로 조각한 보석에다 이 그림을 새겨, 부적 또는 장식품으로 사용했다).
중국에선 오래 전부터 귀뚜라미 싸움을 만들어 즐기곤 했다. 고양이 수염으로 귀뚜라미 뒷부분을 간지럽히면 귀뚜라미들이 흥분하여 2마리를 한 자리에 두면 서로 죽도록 싸운다고 한다. 이걸 두고 도박까지 걸면서 심각한 사회 문제를 일으켰는데, 가라 귀뚜라미! 몸통박치기! 싸움을 잘하는 귀뚜라미는 그 값어치가 엄청나서 이런 일도 있었다. 어느 내외가 빚까지 져가면서 싸움을 잘하는 귀뚜라미를 애써 샀다. 대박의 꿈에 기뻐하던 이들은 실수로 문을 열어둔 틈에 귀뚜라미가 나가서 혼비백산하여 잡으려고 할 때, 기르던 닭이 그 귀뚜라미를 잡아채 낼름 먹었다(...). 망연자실하던 내외는 끝내 동반자살했다. 포송령의 요재지이 중에는 관리에게 바칠 귀뚜라미를 죽인 소년이 아버지를 위해 귀뚜라미로 변신해서 전국 귀뚜라미 싸움대회에서 우승하고 닭까지 싸워 물리쳐서 관리에게 엄청난 상금을 안겨주고 관리는 소년의 아버지에게 새 교실을 지어 주는 이야기도 있다.
북송 때 이 귀뚜라미 싸움도박은 너무나도 엄청난 피해를 줘서 온갖 조폭까지 연루하여 문제가 심각했다. 학자인 당안흠은 "사소한 벌레 싸움에 사람이 칼부림까지 하고 전재산을 걸어 일가를 알거지로 만드니 이 어찌 보통 일이 아닌가!"라며 한탄한 글까지 남겼다고.
게다가 고위정치인까지 푹 빠졌으니 문제였다. 원래 간신이라 다른 점으로 개차반이었던 남송의 재상 가사도(1213~1275)가 그랬다. 자신으로선 못 상대할 명군일 쿠빌라이가 태자 시절 군을 이끌고 남송을 뭉개다가, 1259년 칸이 위독하여 재위를 둘러싸고 싸움이 날 분위기라서 한 철군을 지가 몽골군을 물리쳤다고 거짓으로 알려 출세까지 하던 자였다. 끝내 쿠빌라이가 새로운 칸에 오르면서 내부 문제를 해결하자 대대적인 남송침공을 벌일 때, 가사도는 바로 귀뚜라미 싸움에 푹 빠져 정사를 일절 돌보지 않았으며 벼슬을 사고파는 일과 이 귀뚜라미 싸움만 관심을 가졌다. 싸움 잘하는 귀뚜라미를 천냥이 넘는 거액에 사면서 국고금을 썼으니 나라 사정은 두고 볼 것도 없었다. 끝내 남송이 몽골에게 무너지고 가사도는 목숨을 구걸해 살아남았지만 열터진 병사들이 지방으로 압송하는 그를 참혹하게 끔살해 인과응보로 삶을 끝냈다. 다만 가사도는 간신으로 욕먹고 남송 멸망에 이바지한 인물이지만 항목을 봐도 알 수 있듯이 정책적으로는 유능한 점도 있었다. 비록 귀뚜라미 싸움이니 여러가지로 말아먹어 나라 멸망에 기여하여 묻혀졌지만.
그 밖에 명나라 선덕제도 귀뚜라미 싸움에 미친 건 마찬가지라서 귀뚜라미를 잡는 환관이 지방에 가면 무조건 우대하라는 명령을 내려 이들의 횡포가 장난이 아니었다. 위의 요재지이 이야기도 명나라 선덕제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한약제로 쓸 수 있다고 한다. 오줌이 잘 안 나올때 먹는 이뇨제로도 좋다고. 그 밖에도 중국이나 태국에선 귀뚜라미 꼬치구이로도 판다. 2014년 6월 LA 자연사 박물관에선 튀긴 귀뚜라미들을 맛도 다양하게 파니 지못미.(...) 7월에는 국내에서 귀뚜라미 튀김을 메뚜기를 이어 음식 상표에 등록했다고. https://blog.naver.com/yydu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