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너희가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어찌 천기는 분별할 줄 모르느냐?

은총가득 2021. 10. 22. 17:08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구름이 서에서 일어남을 보면 곧 말하기를 소나기가 오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고 남풍이 붊을 보면 말하기를 심히 더우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니라 외식하는 자여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분변할 줄을 알면서 어찌 이 시대는 분변치 못하느냐 |눅12:54-56

 

고대 문명을 찬란하게 꽃피웠던 중동지역은 하늘의 색, 구름의 모양과 움직임 등의 변화를 보고 날씨를 예측하는 '관천망기법'(觀天望氣法)이 다른 어느 지역보다 발달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하늘의 변화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유대 랍비들은 천지의 징조를 연구하여 기상의 변화를 분별하곤 했습니다.

 

 

 

너희가 구름이 서에서 일어남을 보면 곧 말하기를 소나기가 오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고” 유대인이 거주했던 팔레스타인 지역은 지중해와 접하고 있어서 서쪽 지중해에서 습도가 높은 바람으로 구름이 서에서 일어나는 것을 보면 "아 곧 비가 오겠구나"하고 예측할 수 있었고 남풍이 붊을 보면 말하기를 심히 더우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니라” 남쪽 아라비아 사막으로부터 불어오는 ‘시로코’ 바람이 사막의 더위를 함께 몰고 오기 때문에 이 바람이 부는 것을 보면 아주 더워질 것이라 유대인들은 예측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천기는 분별할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마16:2-3 

 

하늘이 햇빛에 물들어 붉게 보이는 현상을 우리는 '노을'이라고 부릅니다. 이스라엘에서 저녁 노을은 서쪽에 있는 지중해 연안으로 해가 질 때 생깁니다. 서쪽 하늘이 붉다는 것은 지중해 쪽이 고기압이라 다음 날에는 맑은 날씨가 될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와 반대로 아침에 동쪽 하늘이 노을로 붉게 물들면 동쪽은 고기압, 서쪽은 저기압 상태라는 것을 나타내는데 이는 서쪽 지중해의 수증기가 상승하여 비구름을 몰고 올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붉은 노을빛 하늘을 보고 유대인들은 기상을 예측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하늘의 빛깔, 바람의 방향, 구름의 모양과 움직임 등의 변화를 보고 날씨를 예측할 수 있는 육신의 눈은 밝았지만 영적인 눈은 감겨 신령한 것을 볼 수 없는 영적 소경들이었습니다. 구약성경을 그렇게 달달 외우고 익혔던 그들이지만, 예수님의 사역과 하신 말씀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들었음에도 약속대로 오신 메시야를 알아보지 못했으며, 그리스도 초림의 시대와 재림의 시대를 분별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시대에 대해서 분변하지 못하고, 시대의 표적은 분별하지 못하는 유대 종교가들과 유대인들을 향해 책망하셨던 것 입니다.

 

 우리도 하늘이 점점 흐려지고 먹구름이 몰려오는 것을 보면 "곧 소나기가 오겠구나" 하고 예상할 수 있습니다. 먹구름이 몰려오는 징조를 보고 소나기를 대비해서 우산을 준비하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이렇게 천지의 기상에도 징조가 있는 것 처럼 시대에 따른 징조가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마지막 시대의 징조들을 눈으로 보고 살아가는 세대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집값이 오르기 전에 나타나는 징조, 주가가 오르기 전에 나타나는 징조, 비트코인 폭락의 징조 등등 물질적이고 현세적인 징조에만 관심을 가지고 그것에 주목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마치 완성된 방주 안에 하나님의 이끄심으로 짐승들이 암수 한 쌍씩 들어가는 징조를 보고도, 방주로 들어가서 대비할 수 있는 7일간의 마지막 기회가 있었음에도 심판을 대비하지 않고 오직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집 짓고 사고파는 일에만 몰두하고 있으면서 깨닫지 못함으로 멸망했던 노아 시대의 어리석은 사람들과 같이 말입니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마24:37-39

 

 하나님께서 기상의 징조를 허락하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다가올 날씨를 미리 예측하고 대비하게 하시기 위함인 것처럼 시대의 징조를 주시는 것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로 대비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앞에 이른줄 알라 |마24:33

 

 

 

먹구름이 몰려오는 징조를 보고 소나기를 대비해서 신속히 우산을 준비하듯이 마지막 시대의 징조를 보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실 그 날’을 대비해야 합니다. 이 땅에서는 ‘7년 환난’이 시작되고, 하늘에서는 ‘어린양의 혼인잔치’가 시작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어린양의 혼인잔치를 대비하여 자신을 단장하는 신부와 같습니다. 신부가 마땅히 갖춰야 할 예복인 ‘구원의 옷’, ‘의의 겉옷’,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온전히 갖추었나 다시 한번 자세히 점검하고,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간절히 사모해야 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그리스도 재림의 징조들과 '이스라엘' 이라는 역사의 시계가 결혼식이 곧 시작될 것을 알리고 있습니다. 잠시 후 그토록 고대하던 신랑 예수님의 등장을 알리는 나팔 소리가 들려 올 것입니다. 이제 단장을 마무리 해야할 시간이 곧 다가옵니다. 우리의 마음과 행실을 더욱 단정하게 하여 점도 흠도 없이 정결하고 아름다운 신부로 신랑을 기쁘게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주님 곧 오십니다. “마라나타”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마24:42-44

 

 

 

너희가 천기는 분별할 줄 알면서..

 

"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3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마 16:2~3)

무상하게 변하는 하늘을 보고 천기를 분별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더구나 시대에 나타나는 표적을 보고 분별하는 것은 더욱 더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시대에 나타나는 표적을 보고 분별력을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는 뜻으로이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시대의 표적들 중에 가장 큰 표적은 예수님과 예수님이 행하셨던 모든 일들이 그 시대의 가장 큰 표적들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일들을보고도 하늘로서 온 표적을 보여 달라고 하는 바리새 인들과 사두개인들을 향하여 위선자들아 너희가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고 책망하십니다. 이 모든 표적을 보고도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왜 표적에 대한 분별력이 필요하고 중요합니까? 그것은 예수님의 재림과 이 땅에 하나님 나라 통치가 온전히 회복되는 것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고 또 이 일을 위해 우리가 취해야 할 일들이 그 안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천기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신앙의 본질은 ‘내가 누구인가를 깊이 자각하고 깨달아 나의 자리로 내려가는 것’이다. 내 자리를 찾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리에서 내려와서 내 자리를 찾아가는 것이다. 그분 앞에서 나는 피조물에 불과한 나약하고 불가능하고 무력한 존재일 뿐이구나를 알고 내려가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어떠한 은혜로 나를 건지셨으며 어떠한 사랑으로 나를 사랑하셨는지 올바로 인식하고 그분 앞에 순종하는 자로 서는 것이다. 이 세상은 그 구원의 완성지점을 향해 한시적으로 쓰이는 것일 뿐이다. 거기에 여러분의 모든 것을 올인 하면 안 된다.

 

마귀는 아주 교묘한 방법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희망을 심어준다. 세상의 우물물도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교묘하게 희망과 기대를 심어준다. 사람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이 세상을 불멸과 영생의 땅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착각한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거기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던 것이다. 우리가 좀 전에 찾아서 읽었던 마태복음 16장의 바리새인들의 누룩 이야기 바로 앞에 이런 구절이 붙어 있다.

 

마16:1-4

1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와서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는 표적 보이기를 청하니

2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3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천기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4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저희를 떠나가시다

 

너희들이 예견하는 것들이 진짜로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너희들은 진짜 보이지 않는 그 세계는 전혀 예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여러분들이 경험하고 계신 것처럼 인간들이 예측하고 예견하는 것들이 하나하나 들어맞아 가고 있다. 앨빈 토플러 같은 미래학자들의 예견은 거의 모두 적중을 하고 있다. 화상전화 인터넷 인공장기 이런것들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었던 것들이다.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이 시대는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 앨빈 토플러 같은 미래학자 경제학자 사회학자 이런사람들이 예견해 놓은 것들이 90%이상 적중하고 있다.

 

 

 

최근에 제가 읽은 책 중에 ‘특이점이 온다, The singularity is near’라는 책이 있다. Ray Kurzweil이라는 걸출한 미래학자가 쓴 책이다. 이 중에도 그 Ray Kurzweil이라는 사람을 아시는 분들이 꽤 많이 계실 것이다. 그 사람은 13개의 박사학위를 가지고 토마스 에디슨의 적자라는 평을 들을 만큼 무수한 발명품을 만들어 내었으며 과학 기술을 근거로 한 정확한 미래 예견으로 월 스트리트 저널이나 포브스, PBS등으로 부터 미국을 만든 16명의 혁신가들 중 한 사람으로 뽑혔고 ‘지칠 줄 모르는 천재, 궁극의 사고 기계’ 등으로 불리는 사람이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제 삼의 물결의 앨빈 토플러가 가장 신뢰하고 칭찬하는 미래학자이기도 하다.

 

그가 ‘The singularity is near’라는 책에서 주장한 것이 무엇인가 하면 이제 30-40년 후면 인간이 죽음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의 과학 기술의 수준과 발전 속도를 감안해서 볼 때 ‘The singularity’ 그러니까 기술 변화의 속도가 상상 할 수 없을 만큼 빨라지게 되는 어떤 지점이 곧 오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의 그러한 주장은 수확가속의 법칙에 근거한 아주 과학적인 것이다. 무어의 법칙을 조금 확대 해석을 한 것이다.

 

그러한 특이점이 지나고 과학 기술 수준이 상상 할 수 없이 깊어지고 그 진보 속도가 빨라지게 되면 이제 인간들은 인간의 뇌를 기계에 upload하는 방식으로 뇌 패턴을 보존하고 전승해 나갈 수 있게 된다고 한다. 만약에 인간의 육신에 무슨 사고가 생기면 그 인간의 뇌를 기계에 업로드 해서 다른 기계적인 몸으로 환생할 수도 있고 심지어 수십억 개의 보이지 않는 나노 로봇을 인간의 몸속에 집어넣어 인간의 생물학적 노화를 막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튜링 테스트를 통과하는, 아니 튜링 테스트 정도가 아니라 인간의 지성과 감성과 인식·판단·추론·문제해결 능력 등 그 모든 것들을 능가하는 인공지능 (人工知能) artificial intelligence이 등장하여 인간의 지능과 결합하는 사이보그 시대가 곧 올 거라는 것이다. 인간의 생물학적 지능과 컴퓨터 지능이 결합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과학 기술의 발전 속도는 폭발적으로 빨라지게 될 것이어서 그때부터 인간의 죽음은 운명이 아니라 선택이 되는 것이고 기술과 정보의 가격대 성능비가 기하급수적으로 성장을 할 것이기 때문에 모든 기술들이 아주 싸져서 빈부의 격차까지도 없어지는 아주 살기 좋고 행복한 지상 낙원이 도래 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될 날이 오겠는가? 가시적으로 그러한 현상이 올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진짜 좋은 세상인가?

 

 

 

주님이 말씀하셨다. ‘과연 그러 하니라’ ‘너희들이 비가 올 것이다 하면 비가 오고 심히 더우리라 하면 날씨가 더운 것처럼 너희의 예견은 맞아 떨어질 것’이라는 말이다.

 

지금 왜 이렇게 빈부의 격차가 많이 나는가? 돈 있는 사람들이 기술과 정보를 선점하고 독점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게 너무나 싸지고 보편적이게 되어지면 빈부의 격차도 없어진다는 것이다. Ray Kurzweil이 한가지 놓친 것이 있는데 인간의 죄성이라고 하는 것은 절대 그러한 상황이 와도 자기를 이 세상 꼭대기에 올려 놓고 싶어 하지 다른이들과 절대 나누고 싶어하지 않는다.

 

우리의 뇌가 사이보그처럼 컴퓨터의 지능과 결합하여 무엇이든 척척 풀어내는 그런 지능이 되는 게 좋으세요? 우리의 몸이 수십억 개의 나노 로봇으로 가득 차 생물학적인 나와 기계적인 나가 결합이 되어 인간도 아니고 로봇도 아닌 사이보그가 되어 영원히 살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하십니까? 그때가 되면 인간이 자기가 원하는 몸을 선택하여 취할 수 있게 된다. 그러니까 지금 몸에다가 너무 돈 들이지 마세요. 그런데 그게 좋으세요?

 

성경은 그들이 얼마나 오래 살던 얼마나 똑똑하던, 얼마나 강하던 간에 그들을 모두 죄와 허물로 죽은 자들이라고 규정한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죄와 허물로 죽은 자들이 스스로의 힘을 발휘하여 과학 기술을 발전시키고 그 과학을 인간의 몸에 적용하여 영생불사의 몸을 만들어 내어 영원히 자기의 유익만을 위해 사는 그런 곳을 성경이 무어라 합니까? ‘지옥’이라 한다. 그러니까 지옥은 죄인들이 스스로 들어가는 것이지 하나님이 집어 넣으시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삶, 그것은 궁극적인 하나의 결국이지만 지금 그 삶과 방불한 삶을 우리가 살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지옥이라고 하는 것이다.

 

 

 

인간의 고독과 외로움과 공허함과 무료함은 이 세상 그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다.

수명이 천년이 되고 이 천년이 되어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인간이 인공지능을 가지고 모든 문제들을 다 해결할 수 있는 존재가 된다 해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그 상태로 영원히 죽지도 못하고 살아야 한다면 그게 지상 낙원이겠는가? 눈만 뜨면 내 이웃의 것을 탈취해서라도 끝없이 나를 업그레이드 하려는 좀비 같은 사람들이 눈을 부릅뜨고 나와 나의 소유를 노리는 그런 세상에서 영원히 사는 것이 복일까? 하나님은 우리를 로봇이 아닌 인간으로 만드셨는데 우리 인간들 스스로가 천하무적, 영생불사의 로봇이 되기를 갈망하고 있다.

 

아니다. 사단은 그런 세상이 되면 인간들은 아무 걱정도 없이 편안하게 지상 낙원 속에서 살 수 있을 거라 속이다. 그건 인간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이다. 칼 막스가 공산주의 이론을 내 놓았을 때 전 세계의 지식인들이 ‘과연 그러 하니라’하고 거기에 열광했다. 지상낙원이 올 것이라고 기뻐 뛰며 광분했다. 모든이들이 동일하게 일하고 동일하게 나누기 때문에 지상낙원이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주님이 그것을 막아서고 계신 것이다. 그러니까 영생불사를 꿈구며 사는 자들에게서 죽음을 준비하라는 것이다. 다른 세상을 준비하라는 것이다. 그것을 성도라고 하는 것이다. 이 세상 사람들이 전부 강해지기를 원하는데 너희들은 거기에서 내려와 다른 세상을 준비하라는 것이다. 세상의 우물물이 아닌 하나님이 준비하신 하늘의 생명수 이 세상 그 어떤 것으로도 인간들의 가슴에 뻥뚤린 무저갱같은 공허와 심심함과 무료함 외로움을 채울 수 없다. 오직 하나님으로만 채워지는 것이다. 여러분은 예수를 알아야 한다. 예수를 배워야 한다 거기에서만 평안과 안식과 기쁨과 행복이 주어질 수 있다.

 

사단은 끝없이 하나님 이외의 대안을 이 세상에 던진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그때마다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오직 구원은 하나님으로만 말미암는다는 믿음을 발휘해 보였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구원은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선물로,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다. 행복과 안식과 평안도 거기로 부터만 올 수 있는 것이다.

세상이 아무리 바리새인들의 누룩으로 여러분을 미혹하다 할지라도 거기에 속지 마십시오.

오히려 그러한 때에 더욱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붙들고 우리의 무력함을 고백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신랑을 좇아 그 영생불사를 좇는 세상에서 나와 약속의 땅으로 발걸음을 옮겨야 하는 것이다. 힘들 것이다. 외로울 것이다. 나그네의 길이고 이방인의 길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가야 하는 것이다. 세상의 우물가에서 그 우물물을 부정하시고 하늘의 우물물을 준비하고 우리를 기다리시는, 우리의 신랑이 주시는 진짜 생명수를 마시십시오.<김성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