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11장 28-30절
내게로 오라(마 11:25-30)
예수님은 많은 능력을 보고도 끝내 회개하지 않는 갈릴리 도시들을 형해 엄히 책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두로와 시돈, 그리고 소돔에서 이러한 권능을 행했다면, 그들이 벌써 재에 앉아서 회개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예수님은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 그리고 소돔이 완악한 갈릴리 도시들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많은 은혜를 베푸신 곳에서 더 많은 것을 요구하십니다. 그러므로 많은 것을 받고 충성하지 못한 사람은 더 큰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천국의 비밀을 지혜자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에게는 나타내신 것에 대해서 감사하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하나님의 계시 방법에 동의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계속해서 교만한 자를 낮추시고 겸손한 자를 높이시는 하나님의 계시 방법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1. 예수님은 역경 중에도 감사하셨다.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25)."
예수님은 회개치 않는 도시들을 통해 하나님의 계시 방법을 발견하시고, 다음과 같이 감사하셨습니다.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감사하나이다." 예수님은 교만한 자를 낮추시고, 겸손한 자를 높여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셨습니다. 이때에 예수님의 상황은 그리 좋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당시에는 세례 요한과 예수님의 가족들조차 예수님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또 당시에는 예수님께서 가장 많은 능력을 행한 도시들조차 끝내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러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하고 감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많은 권능을 보고도 회개치 않는 도시들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을 닫으셨다는 사실을 아셨습니다. 또 예수님은 연약한 사람들이 자신을 믿고 따르는 것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연약한 사람들에게 천국의 비밀을 계시하셨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들은 많이 배우지는 않았지만 열린 마음으로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께 돌아왔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하나님의 계시 방법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가장 어려운 순간에도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하고 하나님께 감사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손길을 발견하는 사람은 가장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의 계시 방법
예수님은 갈릴리의 여러 도시들을 찾아가서 천국 복음을 전하셨고, 천국의 도래를 알리는 여러 가지 기적들을 행하셨습니다. 이러한 가르침과 기적은성령님에 의해 일어난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정직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이러한 가르침과 기적이 하나님에 의해 일어난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권세를 가지고 사람들을 가르치셨고, 여러 가지 권능으로 자신의 신적인 권세를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열린 마음으로 예수님의 가르침과 사역을 보는 사람은 예수님의 신적인 권웨를 충분히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지혜자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고의로 마음을 닫고 예수님을 거부하고 반대했습니다. 그들은 심지어 예수님께서 귀신의 왕의 힘을 빌려서 귀신을 쫓아낸다고 비난하기까지 했습니다. 또한 그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에 걸린 사람을 고치는 것을 보고 예수님이 안식일을 범했다고 비난했습니다. 그들의 판단은 이중적이었습니다. 그들은 금욕적인 삶을 사는 세례 요한을 보고 귀신에 들렸다고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즐겁게 사는 예수님을 보고 탐욕스러운 죄인의 친구라고 비난했습니다. 이와 같이 그들의 판단은 정직하지 못했고, 또 왜곡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이나 기적이 선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고의로 예수님을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백성들 중에는 정직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들에게 천국의 비밀을 계시해 주셨습니다. 그들은 종교 지도자들처럼 많이 배우지 않았고, 또 권력과 많은 부를 가지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정직한 마음으로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또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기적들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성령님께서 예수님과 함께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분이 아니면 이러한 말과 기적을 행할 수 없다고 인정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달게 받고 순종했으며, 또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을 보고 그 일을 행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들은 어린 아이들처럼 복잡한 정치적인 계산을 하지 않고 단순하게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에게 천국의 비밀을 계시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있었습니다.
3. 예수님은 하나님의 계시 방식에 대해 동의하셨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26)."
예수님은 이러한 하나님의 계시 방법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교만한 자에게 천국의 비밀을 숨기시고 겸손한 자에게는 그 비밀을 열어 주신 하나님이 "옳다"고 인정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수많은 권능을 행한 갈릴리 도시들이 회개치 않는 것을 보고 낙심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일들을 보면서, 그 배후에 있는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옳습니다. 이렇게 된 것은 아버지의 뜻입니다!" 우리는 때로 최선을 다해도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낙심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때에도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해할 수 없어도, 하나님의 방법이 최선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우리는 어떤 때에는 많은 노력을 하지 않았는데도 많은 열매를 거둘 때가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교만하지 말고 이렇게 된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 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처럼 그 모든 모든 일을 이루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때로 하나님의 길은 미련해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길은 항상 최선의 길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방법대로 교만한 자를 낮추시고 겸손한 자를 높여주십니다. 이러한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은 옳고 정당합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하거나 선을 행하다가 열매가 없어서 낙심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이러한 때에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해하지 못해도 하나님의 방법이 최선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는 적게 일하고도 많은 열매를 거두고 있지 않습니까? 이러한 때에 우리는 교만하지 말고 그 일을 행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낮추시고 연약한 자를 높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최선을 다한 후에 어떤 결과가 나오든지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우리가 이해하든 이해하지 못하든 항상 최선의 길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게 되면,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교만한 자를 낮추시고 겸손한 자를 높이시는 하나님의 계시 방법에 감사하고 동의하셨습니다.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 지혜자들은 수많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능력을 보고도 예수님을 거부했습니다. 그들에게 천국의 비밀은 닫혀진 비밀이었습니다. 그러나 백성들과 세리들은 열린 마음으로 예수님을 믿고 따랐습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사람들에게 천국의 비밀을 계시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하나님의 계시 방법에 대해 감사하고 동의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에 대한 계시의 중보자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계시의 종보자이신 예수님에 대해서생각해 보겠습니다.
1. 중보자이신 그리스도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마 11:27(상))..."
예수님은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에 대한 모든 계시를 예수님께 맡기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4:6). 예수님은 우리를 하나님께 인도할 유일한 길입니다.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우리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 4:12)." 이 세상에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고,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밖에 없습니다(딤전 2:5). 그러므로 하나님을 알기 원하는 사람은 예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철학과 과학, 그리고 인간이 만든 종교들은 우리를 하나님께 인도하지 못합니다. 이는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하나님을 가르쳐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사람을 연결하는 유일한 중보자이십니다.
2. 유일한 계시자 그리스도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마 11:27(하))."
첫째로 예수님은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온전히 아시는 분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은 극히 일부분에 속합니다. 예수님은 창세 전부터 아버지와 함께 존재해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육신을 가진 인간은 예수님을 온전히 알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온전히 아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아들의 뜻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을 가르쳐 주실 분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은 영이신 하나님을 볼 수 없으며, 사람들의 제한된 지식으로는 무한하신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에 대한 모든 계시를 예수님께 맡기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뜻대로 계시를 받는 사람이 아니면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떠나서 하나님을 알려고 하는 사람은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서만 자신을 온전히 계시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알고 싶은 사람은 예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셋째로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나는 아버지 안에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0:38). 하나님과 예수님은 항상 동행하셨습니다. 회후의 만찬 때에 예수님은 자신이 아버지께 돌아갈 때가 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에 빌립은 예수님께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그리고 예수님은 계속해서 빌립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않느냐?' 또한 예수님은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4:9-10).
하나님은 자신에 대한 모든 비밀을 예수님 안에 감추어 두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통해서만 하나님을 온전히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 여러 가지 노력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떠나서 하나님을 찾으려는 사람은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서만 자신을 계시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알기 원하는 사람은 예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에 대한 모든 계시를 예수님께 맡기셨습니다. 세상에는 오직 한 분의 하나님이 계시고,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한 분의 중보자가 계십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하나님께 인도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아버지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 우리에게 하나님에 대해서 가르쳐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알기 원하는 사람은 예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수고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자신에게 초청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에게 오는 사람들에게 안식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안식의 주인이신 예수님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1.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28)."
예수님은 인생의 무거운 짐을 지고 수고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내게로 오라!"고 초청하셨습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말하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은 어떤 사람일까요? 이 사람은 다음과 같은 사람을 말합니다. 첫째로 이 사람들은 "무거운 죄의 짐을 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사람이 진 짐 중에서 가장 무거운 짐은 죄의 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지은 사람은 그 죄 값을 모두 지불할 때까지 억눌린 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은 염려와 근심 속에 살아가다가 마지막에 하나의 심판을 받고 영원한 불에 던져지게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람들은 죄의 무거운 짐을 지고 하나님의 진노 속에 힘들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둘째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사는 사람들은 "율법의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율법에는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이 613가지나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러한 법들을 자원하는 마음으로 준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잃은 사람들에게는 율법들이 무거운 짐이 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 안에는 강력한 죄성이 있어서 이러한 율법을 지키는 데 자주 실패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수많은 율법들로 인해 고통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셋째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사는 사람들은 "노동의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아담의 타락 이후에 사람들의 노동 환경은 크게 악화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이마에 땀이 흐르도록 일을 해야 먹고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무거운 노동의 짐을 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사람들은 "질병과 악한 영에 의해 고생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스트레스와 질병, 그리고 악한 영에 눌려 힘들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상에 계실 때에 가는 곳마다 질병과 악한 영들로부터 사람들을 헤방시켜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질병과 스트레스, 그리고 악한 영에게 사로 잡혀 살아가는 사람들을 치유해 주실 수 있습니다. 지금도 예수님께 나아가는 사람들은 질병과 악한 영으로부터 해방되어 모든 짐을 벗고 안식할 수 있습니다.
2. 다 내게로 오라!
예수님은 지금도 수고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초청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참된 안식을 얻기 원하는 사람은 예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님께 나아가서 자기 짐을 내려놓는 사람은 참된 안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참된 안식은 철학이나 인간이 만든 종교로 얻을 수 없고, 오직 예수님 안에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이는 인간의 문제는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만이 해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무조건 안식을 얻는 것은 아닙니다. 매주 교회에 나가도 예수님께 모든 것을 맡기지 않으면 안식을 얻을 수 없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 짐을 대신 져주실 때에 우리가 안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영혼의 갈급함과 무거운 짐을 진 채 허덕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지금도 그들을 향해서 "내게 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참된 안식을 얻기 원하는 사람은 다른 곳으로 가지 말고 오직 예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3.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예수님은 자기에게 나오는 자들을 향해서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는 말은 무슨 말일까요? 이 말에는 다음과 같은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첫째로 이 말은 우리를 죄의 짐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든 사람은 죄의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죄값을 지불하기 전에는 안식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의 모든 죄값을 지불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무거운 죄의 짐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둘째로 이 말은 우리를죄와 싸워 승리할 수 있게 해 주신다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들 안에는 강력한 죄의 세력이 존재합니다. 이러한 죄의 세력은 너무나 강력해서 인간의 힘으로는 이길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지 않는 죄를 지으면서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에게 나오는 사람들에게 성령님을 주실 수 있습니다. 성령님은 사람들에게 죄와 싸워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 나아오는 사람은 죄와 싸워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셋째로 이 말은 우리를 노동의 짐에서 벗겨 주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더 이상 자신을 위해 살아가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제 자신을 위해 피를 흘려주신 예수님을 위해 살아갑니다. 그들은 이제 하나님의 자녀와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로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노동은 더 이상 무거운 짐이 아니라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 나아오는 사람은 노동의 짐을 벗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축복 속에 살아갈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말은 우리를 질병과 악한 영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신다는 것을 말합니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은 스트레스와 질병, 그리고 악한 영에 눌린 채 힘들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질병과 악한 영들로부터 헤방시켜 주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질병과 스트레스, 그리고 악한 영에게 사로 잡힌 사람들을 치료해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 나아가는 사람은 질병과 악한 영으로부터 해방되어 건강하고 온전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 나아오는 사람이 참된 안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첫째로 그들은 예수님의 피의 공로로 자신의 모든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거역할 때에 우리의 양심은 하나님의 진노 아래 고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통해서 죄의 문제를 해결한 사람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고, 영혼과 양심이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둘째로 예수님께 나오는 사람은 하나님의 완전한 보호를 받습니다. 세상의 경호원들은 실수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보호는 불완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보호는 실수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졸거나 주무시지도 않고 우리를 지켜 주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 나오는 사람들은 완전한 하나님의 보호를 받을 수 있습니다. 셋째로 예수님께 나오는 사람은 성령님을 통해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성령님은 믿는 자들의 마음에 샘처럼 솟아 나서 강처럼 흐릅니다. 예수님께서 성령님을 통해 주시는 기쁨은 완전하며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습니다. 오늘은 여기에서 마치고 다음 시간에 한 번 더 이 주제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을 계시해주실 분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천하 인간 중에 자신을 계시할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뜻대로 계시를 받는 사람 외에는 하나님을 알 수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떠나서 하나님을 알려고 하는 모든 시도들은 실패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알기 원하는 사람은 예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또한 예수님은 우리에게 참된 안식을 주시는 분입니다.예수님은 지금도 인생의 무거운 짐을 지고 수고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자신에게 초청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에게 나아오는 사람들에게 안식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참된 안식을 얻기 원하는 사람은 예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계속해서 예수님 안에서 안식을 얻는 방법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 11:29-30)."
1. 내 멍에를 메고
참된 안식을 얻는 첫 번째 방법은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에 대해서 지난 시간에 생각해 보았습니다. 참된 안식을 얻는 두 번째 방법은 '예수님의 멍에를 메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내 멍에를 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멍에"는 소가 메는 멍에를 말합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소 한 마리가 멍에를 메고 밭을 갑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땅은 우리 나라와 같지 않고 거친 곳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에서는 소 두 마리가 함께 멍에를 메고 밭을 갈았습니다. 이때에 농부가 소의 목과 어깨에 밭을 갈 수 있는 기구를 걸었는 데, 이것이 바로 "멍에"입니다. 예수님은 "내 멍에는 쉽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소 두 마리가 함께 멍에를 멜 때에, 한 마리가 힘이 세면 다른 한 마리는 쉽게 밭을 갈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멍에를 매는 사람도 쉽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는 강하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짐을 대신 져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리심으로 친히 우리의 모든 죄값을 지불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모든 죄의 짐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모든 율법에 온전히 순종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자신을 믿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완전한 의를 입혀 주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완전한 의인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죄와 사망과 싸워 승리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성령님을 통해서 죄와 사망을 이길 수 있게 해주십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과 함께 멍에를 메는 사람은 무거운 짐을 쉽게 질 수 있습니다.예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2. 내게 배우라!
우리들이 안식을 얻을 수 있는 세 번째 방법은 "예수님께 배우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내게 배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깨 배우는 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고 그 가르침대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본문에서 "배운다" 고 번역된 말(마쎄테)은 "제자"라는 말(마쎄테스)과 그 어원이 같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 배우라"는 말은, 결국 '예수님의 제자가 되라'는 말과 같습니다. 참된 안식을 얻기 원하는 사람은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예수님은 우리에게 인생을 성공적으로 사는 법을 가르쳐 주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사는 사람은 온전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세상 교육은 우리에게 진정한 안식을 주지 못합니다. 이는 인간의 지혜와 능력은 제한되어 있어서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세상 교육은 항상 결핍과 부족함을 경험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히려 세상 교육을 더 많이 배운 사람이 더 사악하고 간교한 경우도 많습니다. 세상 교육은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오직 예수님만 성령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죄를 이길 수 있는 법을 가르쳐 주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는 사람은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삶은 우리를 영생으로 인도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사는 사람은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3. 예수님 안에서 안식을 누릴 수 있는 이유
예수님께 가서 함께 멍에를 메고, 그 뜻대로 사는 사람이 안식을 얻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수님은 본문에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이유를 제시해 주셨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은 "나는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주인은 소를 데리고 밭을 갈 때에 무자비하고 거칠게 다룹니다. 무자비한 주인을 만난 소는 무거운 짐을 지고 죽도록 고생하고 잘 먹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어떤 주인은 소를 가족처럼 사랑합니다. 이러한 주인을 만난 소는 비교적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주인이신 예수님은 온유하고 겸손한 분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억압하거나 거칠게 다루시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온유하고 겸손하기 때문에 군림하지 않고 사람들을 섬깁니다. 예수님은 뒤에서 사람들에게 앞으로 가라고 명하시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앞서 가시면서 사람들에게 자기를 따라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신 사람은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둘째로 우리가 예수님께 가면 안식을 얻을 수 있는 이유는, 예수님의 멍에는 쉽고 그 짐이 가볍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멍에를 매는 일은 참으로 쉽습니다. 왜냐하면 전능하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멍에를 대신 져주시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 "쉽다"고 번역된 말(크레스토스)은 "쉽다"는 뜻 외에 "잘 어울린다"는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짐은 우리들에게 잘 어울리는 짐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잘 아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가장 적절한 짐을 메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질 수 없는 무거운 멍에를 메게 하시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짐은 매우 가볍습니다. 세상의 가르침과 철학, 또는 종교는 인생이 메기에 힘든 짐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종교는 극단적인 고행을 요구하기도 하고, 어떤 가르침은 우리를 너무 방종하게 만듭니다. 이러한 가르침은 사람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짐은 우리에게 적합하고 또 가볍습니다. 때로 이 짐은 무거울 때도 있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 그 짐을 져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멍에를 메는 사람은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참된 안식을 주실 분은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참된 안식을 얻기 원하는 사람은 예수님과 함께 멍에를 매고,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온유한 음성으로 사람들을 초청하고 계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예수님은 사람들이 자기에게 나와서 무거운 짐을 벗고 안식을 누리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우리 중에 수고하면서 무거운 짐을 지고 비틀거리며 살아가는 사람은 없습니까? 이러한 사람이 있으면 지금 바로 예수님께 나아가서 모든 짐을 예수님께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해서 그 모든 짐을 대신 져주실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만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참된 안식을 원하는 사람이 있습니가? 그렇다면 바로 지금 예수님께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는 세상에서 안식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