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21 - 39장 묵상
이사야 21장 입니다.
메대와 바사의 연합군이 대대적인 바벨론 침공을 준비하는데도 바벨론의 지도부는 파티에 열중하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환난과 곤고한 때 우리는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합니까?
1. 바른 자세로 살아야 합니다. (1-10절)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에 의해 핍밥받는 약소 민족들의 부르짖음과 신음 소리를 들으셨습니다.
그래서 바벨론을 무너뜨리십니다. 혹 나 때문에 다른 이웃이 탄식하거나 원망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또 이웃의 간절한 도움의 소리에도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 합니다.
고대 근동의 최강의 국가가 된 바벨론은 넘치는 재화로 말미암아 그 사치스러움이 극에 달했습니다.
왕들 스스로가 마치 신이라도 된듯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이러 바벨론을 향해 하나님은 계속해서 경고의 멧시지를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경고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어느날 아침 갑자기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의 자세를 살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경건하고, 사람들 앞에 겸손하며, 세상 앞에 휘둘리지 않는 믿음의 대장부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2. 시대를 지키며 깨우는 파숫꾼으로 살아야 합니다. (11.12절)
11절은 두마에 대한 경고 입니다. '두마'는 이삭의 이복형인 이스마엘의 여섯째 아들 입니다.
이사야 선지는 '두마'를 '에돔'에 대한 상징적인 용어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두마에 대한 경고의 내용은 파수꾼에게 묻는 말로 시작합니다.
' 밤이 어떻게 되었느뇨' 파수꾼의 답은 '아침이 오나니 밤도 오리라'
즉 평안의 아침이 오지만 곧 환난의 밤이 오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지자는 덧붙입니다. '물으려거든 물으라 너희는 돌아올지니라'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으면 바라는 평안이 없다는 것입니다.
파수꾼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적군이 오는지를 살피고, 오면 자기 진영에 알려야 합니다.
영적인 파수꾼은 날마다 하나님이 일을 살피고 들어야 합니다.
모두가 잠들었으도 파수꾼은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교회가 살고 교회가 살아야 나라가 삽니다.
3. 죄인들을 하나님께 돌아오게 해야 합니다. (13-17절)
사람은 누구나 만족을 원합니다. 그래서 세상을 휘집고 돌아 다녀봅니다. 그러나 참된 만족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죄를 떠나야 참된 평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돌아올 때 참 행복이 있습니다.
오늘 이 세상의 성도들이 할 일은 하나님 안에서 행복들 누리고 그 행복을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22장 입니다.
지나온 13장 부터 선지자 이사야는 이스라엘 주변 국가와 민족에 대한 예언을 했습니다.
이제 예루살렘에 대한 예언을 합니다. 예루살렘도 이방 나라들과 같이 심판의 대열에 포함되었다는 것은 슬픈일입니다.
이사야는 이 일로 통곡합니다. 예루살렘이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1.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11절)
'환상의 골짜기에 관한 경고라'(1절)했습니다.
환상 골짜기는 이상과 묵시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에 대하여 가르침을 받았던 예루살렘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큰 복을 받아 누리며 살기 좋은 곳이었습니다.(2절)
그런 예루살렘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애굽도 광야도 아니라 모든 것이 풍성한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정착한 다음 이었습니다.
그것도 그들을 그렇게 사랑하시던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서 입니다.
칼에 죽은 것도 아니고, 전쟁에 나가 명예롭게 죽은 것도 아닙니다.
활을 버리고 도망하다가 사로잡혀서 포로가 되어 끌려가 죽게 됩니다.
이 예언은 이사야가 죽은뒤 100년이 지나
시드기야왕이 바벨론의 침공에 도망하다가 붙잡혀 두 눈이 뽑힌 채 바벨론으로 끌려감으로 성취됩니다.
이사야는 그것을 내다보며 통곡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저들이 성벽과 저들의 군사들을 의지했던 것입니다.
어느 민족이나 나라보다 하나님은 유다와 예루살렘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예루살렘은 그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징계를 받습니다.
교회에 출석해도, 예배와 헌금을 드려도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의 모든 문제의 해결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2. 권고를 받았을 때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12-14절)
하나님은 회개하며 돌아올 것을 권고하셨습니다(12절),
그러나 예루살렘 거민들은 내일이면 죽으리라고 자포자기 합니다.(13절)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라는 잘못된 신앙에서 온 태도 입니다.
죽음을 인생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죽음 후에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히 9:27)
하나님의 권고를 잘 받는 사람이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3. 하나님의 은혜를 감당치 못했기 때문입니다. (15-25절)
[셉나]라는 사람은 당시 예루살렘의 궁정 살림을 맡았던 사람입니다. 그는 비참하게 버림을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를 바르게 사용하지 않고 교만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헛되이 사용하는 사람들은 멸망하고 맙니다.
셉나는 자기가 가장 높은 사람인줄 알았습니다. 세상의 가장 높은 사람보다 높은 신 분이 있으십니다. 하나님 이십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 주신 직분을 어떻게 감당하고 있습니까? 정말 겸손히 성심껏 감당하는 모두가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모두가 되시길 바랍니다.
이사야 23장 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시돈과 두로는 지중해 연안에 위치해 있었고, 고대 중동의 상업 중심지로 유명했습니다.
그리고 이사야 시대에는 환락의 도시 였습니다. 이런 두 도시가 멸망하게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1. 자만했기 때문입니다. (1-12절)
다시스와 애굽과 교역했습니다. 나일강 유역에서 생산되는 곡식를 지중해를 통해 운송하여 많은 재화를 쌓았습니다.
얼마나 번성했는가 하면 '면류관을 씌우던 자요 그 상고들은 방백이요 그 무역자들은 세상에서 존귀한 자'라고 불리울 정도였습니다(8절).
이렇게 부유한 두로가 황무하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하신 일임을 깨닫지 못하고 스스로 성취한 일로 생각하고 교만했기 때문입니다.
여신 아스다롯을 숭배하고, 방종하고, 사치하며 환락의 생활을 했습니다.
우리는 늘 하나님을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인정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온전한 겸손이고 하나님은 그 겸손한 사람을 귀히 여기십니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사치와 향락을 일삼는 자들은 망하고 말았습니다.
가정도, 교회도, 나라도 잘 될때 교만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2. 물질을 바르게 사용하지 못했습니다.(15-18절)
하나님이 주신 물질을 두로는 바로 사용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멸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70년 후 회복될 것이지만 다시 하나님 앞에 범죄함으로 망하게 되리라는 예언입니다.
은혜를 기억하지 못하고 옛 생활로 돌아갔던 두로가 다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돌아와
자신들이 받은 것을 하나님께 드려 하나님의 백성 전체에 유익을 주는 존재가 되리라고 하십니다.
두로를 회복시키신 것은 하나님께서 쓰시기 위함이셨습니다.
욥은 주시는 이도 여호와시요 취하시는 이도 하나님이시라고 했습니다.
늘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주신 물질을 바르게 사용하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사야 24장 입니다.
세상의 심판에 대한 예언의 말씀이 특별한 영역(개별민족)으로 부터 보편적인 영역(온 세상)으로 심판의 관점이 옮겨지고 있습니다.
왜 세상이 심판을 받게 됩니까?
1. 심판의 결과 (1-4절).
땅을 공허하고 황무케 하며, 뒤집어 엎으시며, 흩으시는 그야말로 땅이 기초부터 흔들리는 심판 입니다.
이 심판 앞에는 빈부귀천이나 상하구별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공평하십니다. 철저하십니다.
2. 심판의 이유 (5절).
5절에 심판의 이유를 '율법을 범하며, 율례를 어기며, 영원한 언약을 파하였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결국 죄 때문입니다.
3. 심판의 결과 (6-13절).
즐거움과 기쁨이 변하여 슬픔과 탄식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지으시고 보시기에 좋았건만 그 모든 아름다움은 사라지고 황무와 피폐가 땅을 뒤덮은 것입니다.
이사야는 이런 상황이 어느 특정한 나라나 민족에 국한 된 것이 아니라 온 세계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그러나 이사야의 예언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소망의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4.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남은 자들(14-16절).
세상이 심판을 받는 와중에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무리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들은 어디서 옵니까? 땅끝에서, 동방에서, 바다 모든 섬에서 여호와의 이름이 영광을 받을 것입니다.
마지막 심판 앞에 남은자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들로 서시기를 바랍니다.
복된 하루 되시길 기도 합니다.
이사야 25장 입니다.
바벨론의 멸망 후 이스라엘이 회복될 것을 예언하면서 하나님을 찬야합니다.
구체적인 찬양의 이유가 무엇입니까?
1. 하나님의 성실하심과 진실하심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1-3절)
무엇에 성실하시고 진실하신가 하면 한번 정하신 그분의 뜻에 그러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그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하나님은 식언하지 않으십니다.
우리 사람은 사정에 따라 약속을 어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십니다.
이사야는 약속에 성실하시고 진실하신 하나님이 자신의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며 찬양하고 있습니다.
2. 하나님은 피난처 이심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4,5절)
인생을 살다보면 생각치 못한 어려움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럴 때 피할 수 있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천지와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생명의 보장이 되십니다.
원수들이 몰려 온다 해도 하나님께서 강한 성이 되어 주십니다.
세상의 여러 환난이 있다해도 하나님의 우리의 피난처 되십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보호해 주셨듯이 오늘도 하나님은 밤과 낮으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3. 영원한 생명과 기쁨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6-12절)
6-8절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위해 마련하신 마지막 날의 잔치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 잔치의 주재자는 하나님이시고, 참여할 사람들은 하나님의 선민과 만국에 흩어져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 입니다.
그날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실 것입니다. 그것은 영원한 생명과 기쁨 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
이사야 26장 입니다.
25장에 이어지는 찬양의 내용입니다.
이사야 선지는 이 장에서 부활을 노래 하고 있습니다.
부활신앙을 간직한 이사야 선지는 어떤 삶을 살았습니까?
1.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늘 사모하며 살았습니다. (1-7절)
하나님 나라는 어떤 곳입니까?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입니다.
내가 어디 있든, 어느 때든, 내가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면 그 곳은 하나님 나라 인 것입니다.
어떻게 그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믿음으로 입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도성의 문을 엽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통치를 받습니다.
또 3절에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신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심지가 견고한 자란 하나님만 의뢰하는 사람을 의미 합니다.
하나님을 의뢰하는 사람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어떤 환난과 파도와 풍랑에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주 여호와는 흔들리지 않는 '반석'이라고 했습니다.(4절)
2.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하며 살았습니다.(8-15절)
이사야는 하나님의 심판의 날을 사모합니다.
그날에 온전한 공의가 펼쳐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세상 사는 동안에 늘 하나님의 심판을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다.
불의한 자들의 형통도, 그들의 악행도 부러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정말 진심으로 이땅에서 의롭게 살려는 간절함이 우리에게 있습니까?
그래서 그렇게 살아가기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분명히 도와 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을 통하여 영광 받으십니다.
3. 죽은 자들의 부활을 믿었습니다. (16-12절)
이스라엘 백성들이 환난날이 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였으나 너무 늦고 말았습니다.
이미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은 시작되었고, 바벨론의 무력 앞에 예루살렘은 처절하게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들에게는 아무 소망도 없었습니다.
그 절망의 때 이사야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가운데 부활의 소망을 노래 합니다.
'죽은 자들이 살아나고, 시체들이 일어나리이다' (19절).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불가능한 일이 가능하게 됩니다.
할 수 없고, 될 수 없는 일들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죽은자가 살아나는 부활을 우리는 믿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불가능한 일일까요?
부활의 소망중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이사야 27장 입니다.
읽고 지나온 5장 1-7절에서 이사야는 포도원 비유를 통해 이스라엘이 열매를 맺지 못함으로
하나님의 진노로 인한 무서운 형벌이 있음을 선포했었습니다.
그러나 본장에서는 아름다운 열매가 지면에 가득하여 포도원이 소생한 기쁨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특히 본문의 내용은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확장되어 가는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어떻게 살아가야 합니까?
1. 포도원의 주인은 하나님 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1-6절)
날랜 뱀 '리워야단'은 앗수르를 상징하고, 꼬불꼬불한 뱀 '리워야단'은 바벨론을 상징합니다.
깊이 엎드리어 숨어 있어 잡기 어려운 바다의 '용'은 애굽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견고하고 강한 칼로 죽이시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포도원지기가 포도원을 지키듯 당신의 백성들을 사탄의 세력에서 보호하시고 보살펴 주십니다.
때때로 물을 주시고, 밤, 낮으로 간수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포도원지기가 되실 때 우리 인생은 희망의 움이 돋고 꽃이 피어 생명의 열매로 충만케 됩니다.
2. 책망을 통해 성장함을 알아야 합니다. (7-11절)
하나님은 마치 자녀를 책망하시는 부모와 같으신 분이십니다. 이스라엘을 책망하셨습니다.
멸망시키고자 하심이 아니라 살리시고자 였습니다. 책망하시는 중에도 하나님은 자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책망을 듣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의 훌륭한 백성이 될 수 없습니다. 책망은 사랑입니다.
3. 하나님의 백성으로 모으는 일에 동참해야 합니다. (12,13절)
하나님은 흩어진 당신의 백성들을 모으십니다.
그 모아진 백성들이 하나님의 성산에서 하나님께 경배하게 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고 있습니다.
일을 찬양해야 합니다. 우리도 이 귀하고 복된 일에 동참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고국을 떠나있는 온 세계의 선교사님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이사야 28장 입니다.
28장 부터 33장 까지는 '화 있을진저'라는 말씀이 반복되어 나옵니다.
이스라엘의 심판에 대한 예언의 말씀입니다.
왜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고 말았을까요?
그 이유를 살펴 봅시다.
1. 교만했기 때문입니다. (1-5절)
에브라임은 요셉을 둘째 아들로 할아버지 야곱으로 부터 장자의 축복을 받았던 사람입니다.
북 왕국 이스라엘의 중추적이 지파였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에브라임이라고 부르기도 했던 것입니다.
그 에브라임이 마치 술에 빠진 성과 같았다고 했습니다.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저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당시 세계 정세가 극도의 혼란속에 빠져들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사치와 방탕에 빠져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앗수르를 들어서 에브라임을 벌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를 사랑하십니다(잠 16:5).
늘 교만을 조심해야 합니다. 교만은 곧 패망의 지름길 이기 때문입니다.
2. 도덕적으로 부패했기 때문입니다. (6-8절)
얼마나 부패했는가 하면 제사장들이 거룩한 예복을 입고도 독주에 취해 비틀거리고 다녔습니다.
제사장은 종교 지도자들 입니다. 그들이 타락했다는 것은 그 사회의 마지막 보루가 무너졌음을 의미 합니다.
오늘 교회의 지도자을 위해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 이유 입니다.
말씀을 충실히 전할 수 있도록, 전하는 말씀대로 삶의 모범을 보일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3. 백성이 말씀에 불순종 했기 때문입니다. (9-13절)
이사야는 생명을 내어놓고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을 이사야를 조롱하고, 그가 전하는 말씀을 농담으로 여겼습니다.
왜요?
많은 종교 지도자들이 타락을 길을 가고 있었기에 진실한 하나님의 종이 나타나서 전해도 소용이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겨서는 안될 것입니다.
주의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 되신다고 했습니다(시 119:105)
4. 거짓으로 피난처를 삼았기 때문입니다. (14-29절)
백성의 지도자들은 애굽과 손잡으면 안전하리라고 백성들을 호도했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은 그 거짓을 믿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거짓을 믿었고 거짓을 피난처로 삼았습니다.
그리고는 멸망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세상의 그럴듯한 거짓에 넘어가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피난처가 되십니다. 피할 바위가 되십니다. 산성이 되십니다.
승리하세요.
이사야 29장 입니다.
유다 왕 히스기야 때 앗수르 왕 산헤립이 18만 5천의 군사를 이끌고 예루살렘을 포위했으나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적적으로 구원을 받은 사건의 기록입니다.
이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생각해 봅시다.
1. 신앙생활의 형식에 치우치지 않아야 합니다. (1-4절)
'아리엘'이란 '하나님의 제단', '하나님의 사자'라는 뜻입니다.
바벨론을 '세삭'이라 불렀던 것과 같습니다.
저들은 절기때마다 제사를 드리긴 했지만 속은 없고 겉만 있는 것과 같았습니다.
제사를 반복해서 드릴 때 마다 익숙해지고 화려해지고 있었지만
어느새 습관적으로 아무런 감동없이 드리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성심으로 정성을 다해 예배해야 합니다.
2.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5-8절)
이제 저들은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 어려움을 당합니다.
그러나 그 어려움은 하나님의 관심과 사랑의 표현입니다.
사랑의 채찍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3.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9-16절)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은 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말씀이 없어서가 아니라 옆에 있었어도 보지 못하는 소경과 같았습니다.
말씀을 말씀으로 보아야 합니다.
4. 하나님을 바라 보아야 합니다. (17-24절)
이제 이사야는 연단이 끝난 후 하나님께 받을 복에 대해 언급합니다.
하나님께서 저들의 눈을 뜨게 하셔서 말씀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말씀을 가까이 하며 기도로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복된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복된 하루 되세요.
이사야 30장 입니다.
우리는 흔히 '죄' 하면 '도덕적인 죄'를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말 무서운 것은 '영적인 죄' 입니다.
'영적인 죄'란 하나님 앞에서 바르지 못한 것입니다.
유다의 '영적인 죄'가 무엇이었습니까?
한마디로 '하나님을 떠난 삶' 입니다.
1. 저들은 하나님께 묻지 않았습니다. (1-7절)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묻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앗수르가 쳐들어 오자 저들은 하나님께 묻지 않습니다.
그대신 애굽의 도움을 구합니다.
많은 뇌물를 가지고 애굽으로 내려가서 애굽과 동맹을 추진합니다.
하나님보다 애굽을 의지했던 것입니다. 당연해 보이는 조치 입니다.
그러나 이같은 행동은 저들의 마음이 하나님을 따났다는 증거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크든, 작든 모든 일을 하나님께 물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첨단의 애굽의 무기도 쓸모없이 되어 버립니다.
2. 진리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8-14절)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싫어 했습니다 (9절).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한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 내가 변화되기 보다는 나를 위해 말씀이 변개시키려고 할 때가 있습니다.
유다 백성들은 이사야에게 주문합니다.
'예언하지 말라, 정직한 것을 보지 말라. 부드러운 말을 하라.
거짓된 것을 보이라. 심지어 하나님으로 떠나게 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실 듣기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듣지 않으면 망합니다.
그러므로 힘들고 어려워도 들어야 합니다.
3. 하나님을 불신하며 인내하지 못했습니다. (15-33절)
누구나 사람은 위기를 당합니다.
그 위기의 때 우리는 조용히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리며 인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어떤 위기도 우리를 망하게 할 수 없습니다. 아주 넘어뜨릴 수 없습니다.
그 위기는 단순한 하나님의 징벌이 아니라 은혜를 베푸시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의 일부 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신뢰하며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어떤 복이 있다고 했습니까?
슬픔을 제하시므로 다시 통곡하지 않게 하시고(19절),
하나님께서 스승이 되사 바른 길을 가르쳐 주시며(20,21절),
재물을 풍성케 하시며(23-25절),
모든 상처를 치료해 주시고(26절),
원수를 멸해 주시겠다(27-33절)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안전하게 인도해 주시고 방패가 되어 주십니다.(잠 2:7).
하나님 안에서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이사야 31장 입니다.
이사야 선지는 계속 애굽을 의지하려는 유다를 책망하면서 하나님께 돌아와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권면합니다.
우리 인간의 진정한 도움은 하나님께로 부터 옵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합니다. (1-3절)
애굽에 도움을 청하러 내려가는 자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1절).
하나님 보다 애굽의 마병을 의지한 것은 명백한 잘못 이었습니다.
애굽의 마병을 이용하여 앗수르를 막아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유다는 애굽을 전지전능한 신으로 생각했으나 아니었습니다. 그들도 사람들 이었습니다.
하나님 만이 참된 도움이시요, 구원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백성들은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그분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합니다.
2.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4-6절)
애굽으로 유다가 내려간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했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을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어미새가 새끼를 보호함 같이 그렇게 유다를 보호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은혜를, 그 돌보심을 잊은 겁니다. 그리고 몸과 마음이 애굽으로 내려간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하십니다. 그래야 살 길이 있습니다.
3. 회개해야 합니다. (7-9절)
우상을 버리라고, 심지어 우상의 재료인 금과 은도 아까워하지 말고 내어 던지라고 하십니다 (7절).
허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죄악을 끊음에 있어 아무것도 아까울 것이 없어야 합니다.
회개하면 살 길이 열립니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우리의 삶이 세상의 헛된 것을 의지했다면 하나님께 돌아오고
하나님만 의지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이사야 32장 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선언과 그 후에 주어질 안식에 대한 예언의 기록 입니다.
이사야 당시 왕들은 선하지 못했습니다. 당연히 백성들은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들을 기억하셨고 그들에게 메시아 통치를 말씀하셨습니다.
메시아가 통치하실 때 어떤 일이 있습니까?
1. 의로운 나라가 됩니다. (1-8절)
이사야는 장차 한 왕이 의로운 통치자로서 백성을 공의로 다스릴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 한 왕은 가까이는 히스기야왕을 말하고 있으나 또 한편 먼 장래에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는 광풍이나 폭우로 부터 당신의 백성을 보호할 것이고,
동시에 마른 땅이나 곤비한 땅에 처한 백성들에게 우물 혹은 그늘 같은 역할을 할 것이라고 합니다.(2절)
주님은 우리의 피난처 이시고, 생수의 강이시며, 신령한 반석이십니다.
우리가 곤고한 땅을 걷고 피곤한 나그네와 같은 삶을 살아갈 때에 주님은 우리의 안식처가 되어 주십니다.
그분의 통치하시면 영적인 귀와 눈이 열리고, 올바르게 깨닫게 되며, 올바른 말을 하며, 바르게 판단하게 됩니다.
불의를 품거나 간사를 행하거나 악한 계획을 베풀지 않게 됩니다.
장차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시는 나라는 의와 공평이 행해지는 나라 입니다.
2. 심판이 있습니다.(9-14절)
예루살렘의 부녀들은 임박한 심판에도 불구하고 이를 깨닫지 못하고 안일과 향락으로 소일하는데 대한 경고의 말씀 입니다.
어느 가정이건 아내가 건강하고 건전하면 그 가정은 건강하고 건전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면 참으로 위태합니다. 유다가 그러했습니다.
유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데 여인들의 역할이 컷던 것입니다.
3. 성령을 부어주십니다.(15-20절)
심판으로 황폐된 예루살렘을 하나님은 그냥 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예루살렘을 회복시키시고 복을 주십니다. 그 주신 복은 성령입니다.
메시아가 오셔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이 성령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공평과 공의릐 세상이 될 것입니다. 화평과 평안이 깃들 것입니다.
성령이 충만하게 되면 사람이 이상하게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이 오시면 평화의 사람이 됩니다. 회복의 사람이 됩니다.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사람이 됩니다.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이사야 33장 입니다.
유다 나라는 앗수르의 침략으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선지자는 앗수르의 파멸을 내다보면서 승리의 확신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시온을 지키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고 위로하시며 함께 하십니다.
어려움 가운데서 승리의 노래를 부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기도해야 합니다. (1-6절)
민족이 환난에 처했을 때 이사야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엎드렸습니다.
기도하되 믿음을 가지고 승리를 확신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했습니다(3,4절).
공평과 의를 내리실 하나님을 찬양하며 기도했습니다(5-6절).
적의 침략에 도망할 궁리를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앗수르를 순식간에 섬멸하셨습니다(왕하 19:35-37).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기도하는 사람을 향하여 얼굴을 드십니다.
그 기도자를 눈동자 같이 아끼시고 보호하십니다.
환란중에 있으십니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 입니다.
2. 의롭게 살아야 합니다. (7-16절)
하나님의 백성들도 어려움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하나님께서 다시 일으키시고 구원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의로운 사람, 정직한 사람, 악을 미워하는 사람을 오늘도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의 피난처가 되어 주십니다.
3. 하나님게 맡겨야 합니다. (17-24절)
사람의 눈에 약해 보이는 것도 하나님께서 강하게 하시면 사람이 감당할 수 없고,
사람이 볼때 강해보여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않으시면 아무 소용이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대소사를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승리의 노래를 부르시는 모두가 되시길 바랍니다.
이사야 34장 입니다.
본문이 말씀은 열국에 대한 최종 선고의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 열국을 심판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1. 불순종 때문입니다. (1-7절)
하나님의 선고는 피할 수 없습니다. 그분의 판결은 모호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피고에 대한 뼈아픈 마음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래서 더욱 분노하십니다.
오랫동안 참으셨으나 이제 더이상 참으실 수 없습니다. 더 이상 침묵하지 않으십니다.
회개할 기회를 주셨으나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치 않았고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들을 심판하십니다.
사형당한 시체들이 들짐승의 밥이 되는 수치를 당하게 됩니다.
온 땅과 하늘이 슬픔에 가득찰 것입니다.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불순종 때문입니다.
불순종의 결과는 비참하고 무섭습니다.
2. 당신의 백성을 신원해 주시기 위해서 입니다. (8-15절)
하나님께서 이제 당신의 백성들을 괴롭히던 에돔성에 대해 심판을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살던 성읍이 짐승들이 사는 곳이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사람이 살지 않는 마을, 도시가 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혔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억울한 송사를 들으십니다.
그리고 친히 갚아 주십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때로 억울한 어려움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신원해 주실날이 반드시 옵니다(8절)
3. 하나님의 심판에는 착오가 없습니다. (16-17절)
하나님의 판결은 착오가 없습니다. 번복되지 않고 영원합니다.
말씀에 근거한 판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말씀을 자세히 읽고, 들어 하나님의 명령을 잘 따라야 합니다.
나와 함께 하시며 나를 돌보시는 주님 안에서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이사야 35장 입니다.
34장에서 심판을 말씀하셨고,
35장에서는 구속함을 얻은 성도들에게 일어날 일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어떤 일들이 일어난다고 하셨습니까?
1. 그들의 영토의 회복되리라고 하셨습니다. (1,2절)
광야와 메마른 땅, 사막에서 아름다운 꽃이 피게 됩니다.
사람들이 이 아름다운 꽃을 보고 기뻐 뛰며 환호를 지릅니다.(1,2절)
고난에서 기쁨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입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가능합니다.
광야와 사막과도 같은 심령에 예수님이 오시면 아름다운 꽃이 피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의 심령도 이런 회복의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2. 백성들이 회복됩니다. (3,4절)
백성을 회복시키시되 자기만 알면서 살던 백성들이 다른 사람을 돕는 사람이 되도록 회복시키십니다.
이 말은 저들의 인심이 변했다는 것이고, 인심이 변했다는 말은 저들의 삶의 질이 좋아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약한 손을 강하게 하며, 떨리는 무릎을 굳게 하여 주시며 겁에 질인 자들을 격려해 주는 자로 변화시켜 주십니다.
교회 안에는 모든 것이 넉넉한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서로 격려하며 피차 의지가 되어 주기를 바라십니다.
믿음이 강한 사람도 있고 조금 약한 사람도 있습니다.
조금 강한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을 보살펴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회복 입니다.
3. 영적이 복을 받습니다. (5-10절)
이 부분의 말씀은 신약시대에 이루어질 일을 말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우리 인류의 가장 큰 문제인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는 말씀은 우리의 갈함을 해결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에 이르는 시온의 대로가 되셨으며(8절),
그 안에서 우리는 구속함을 받았습니다(9절).
영원한 구원의 복 입니다.
우리를 구속하신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이사야 36장 입니다.
히스기야 왕 14년 앗수르왕 산헤립이 유다의 견고한 성읍들을 치며 예루살렘을 향해 물밀듯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북 이스라엘은 이미 앗수르에게 멸망한 뒤 였습니다.
산헤립은 랍사게를 사신으로 예루살렘으로 보내 유다를 협박했습니다.
그러나 협박에도 불구하고 유다는 이 전쟁에서 승리를 거둡니다.
어떻게 승리했을까요?
1. 불신의 생각을 물리쳐야 합니다. (1-10절)
히스기야 왕은 다윗 왕이래 가장 믿음이 훌륭했던 성군이었습니다.
우상을 타파하고 백성들이 하나님께 신실함으로 나아가도록 했으며, 하나님을 의지할 것을 권면했습니다.
그러나 랍사게는 유다가 상한 갈대 같은 애굽을 의지하고 있으며,
히스기야의 말대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라고 협박했습니다.
불신의 씨를 뿌린 것입니다. 이 일은 다름아닌 사탄이 하는 일입니다.
사탄이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 바로 이것 입니다.
아무리 환난의 때라 할지라도 불신을 조심해야 합니다.
2. 거짓에 미혹되지 말아야 합니다. (11-20절)
랍사게는 협박만 한 것이 아닙니다. 듣기 좋은, 그래서 마음을 빼앗길 만한 약속을 합니다.(17,18절)
자기의 포도와 무화과 또 각각의 우물물을 마시게 될 뿐만 아니라 좋은 땅도 얻을 것이라고 합니다.
거짓말 입니다. 사탄의 거짓의 영 입니다. 거짓말 자꾸하는 사람은 사탄에게 휘둘리고 있는 것입니다.
사탄의 거짓에 미혹되지 않아야 합니다.
3. 침묵할 수 있어야 합니다. (21.22절)
히스기야 왕은 랍사게의 이런 협박과 거짓 앞에 침묵하도록 신하들에게 명령합니다.
또 백성들은 히스기야의 말을 듣고 잠잠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원수와 타협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인 것입니다.
오늘 많은 성도들이 기도하고는 기다리지 못합니다.
기도했으면 응답을 기다려야 합니다.
기도는 많지만 응답이 적은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그 시간까지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세상에서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사탄과의 싸움에서도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이사야 37장 입니다.
앗수르의 왕 산헤립은 랍사겔를 예루살렘으로 보내 유다 백성과 하나님을 모독하며 협박을 합니다.
힘없는 유다는 치욕과 환난의 날을 맞게 됩니다.
이때 유다왕 히스기야는 이 위기를 어떻게 대처했는지를 오늘 말씀은 보여 주고 있습니다.
히스기야의 행동은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도움이 됩니다.
1. 하나님의 전으로 들어갔습니다.(1절)
위기의 때 히스기야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많은 경우 사람들은 어려움을 만나면 인간적인 방법으로 일을 해결하려 합니다.
아니면 무당이나 점장이를 찾아 시원한 답을 얻고자 합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옷을 찢고 베옷을 입고 하나님 앞에 나아갔습니다.
하다 하다 안되서 간 것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하나님께 문제를 가지고 나아가면 하나님은 해결해 주십니다.
2. 하나님의 종에게 기도를 부탁했습니다.(2-4절)
왕은 중신들을 이사야에게 보내 기도를 요청합니다.
옛날 다니엘도 위기를 만났을 때, 믿음의 친구들에게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내가 혼자 기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이에게 기도를 부탁하는 것도 중요 합니다.
3.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5-7절)
이사야는 히스기야가 보낸 중신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 주었습니다.
6절과 7절 입니다. 내용은 '두려워 말라' 그리고 '앗수르를 멸하겠다' 였습니다.
위기의 때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아야 합니다.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4. 산헤립의 편지를 놓고 기도했습니다. (8-20절)
산헤립이 보낸 협박 편지를 가지고 히스기야는 성전에 올라가 하나님 앞에 펼쳐놓고 기도했습니다.
낱낱이 사정을 하나님께 아뢴 것입니다.
5.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습니다.(21-38절)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에게 주신 말씀은 앗수르가 이스라엘을 패망시키지 못할 것이며,
앗수르는 그들이 오던 길로 다시 돌아가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셨습니다.
크든 작든 인생의 모든 문제을 가지고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도 나의 문제를 하나님 앞에 가져가는 우리가 됩시다.
이사야 38장 입니다.
앗수르가 물러가지 히스기야는 점점 교만해지고 말았습니다.
그 교만 때문에 그는 병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그때 히스기야는 어떻게 했습니까?
1.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1-8절)
병으로 죽을 것이라는 통보를 받은 히스기야는 자기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기도했다고 했습니다.(2절)
이것은 하나님만 의지하겠다는 결단 입니다.
용하다는 의원을 찾지도 않았고, 평소 의지하던 중신도 부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통곡하며 하나님의 은총을 구했습니다.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은 들으십니다.
하나님이 들으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2. 죽음 앞에 히스기야는 자기의 무력함을 고백했습니다. (9-14절)
하루 하루의 삶이 사실은 기적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강력한 앗수르 앞에서도 담대했던 그가 자기의 죽음 앞에서는 지극히 연약한 한 인간이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깨닫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합니다.
3.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15-20절)
자기 생명이 주인이 하나님 이심을 깨닫고 자기 생명을 연장시켜 달라고 기도 합니다.
건강을 회복시켜 달라고 기도합니다. 히스기야는 고난을 통하여 신앙이 성숙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을 깨닫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의 신앙 여정도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습니다.
교만해 지기도 하고 때로 벌레 만도 못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과 함께 하십니다. 그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복된 하루 되세요.
이사야 39장 입니다.
히스기야 왕이 죽을 병에서 회복된 후
바벨론 왕 므로닥발라단이 히스기야 왕에게 문병차 보낸 사신과의 사이에서 있었던 사건의 기록입니다.
히스기야의 실수와 또 그의 신앙의 단면을 볼 수 있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 세상의 보물과 무기들을 자랑하는 실수를 범했습니다. (1,2절)
히스기야 왕의 건강이 회보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신흥 바벨론의 왕 므로닥발라단은
사신을 통해 히스기야에게 위로의 글과 선물을 보내왔습니다.
말이 문병이지 사실은 앗수르를 견제하기 위한 파트너로 히스기야를 택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신에게 히스기야는 국가의 모든 보물과 무기들을 다 보여주며 자랑 했습니다.
타국의 사신에게 하나님을 소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그는 놓치고는
나라의 보물과 무기체계의 비밀을 다 보여주는 어릭석은 행동을 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빼고 자기를 자랑한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건강할때, 물질적으로 어려움이 없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마땅히 돌려야 할 영광을 내가 받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늘 자신을 살피며 기도 생활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2.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견책을 잘 받았습니다. (3-8절)
바벨론의 사신들이 돌아간 뒤 이사야 선지는 히스기야 왕을 찾아왔습니다.
왕을 책망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히스기야는 자신이 한 행동을 거짓없이 다 고했습니다.
우리는 늘 겸손하게 처신해야 하지만 만약에 실수를 하였을때는 솔직히 그 실수를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잘못된 자리에서 속히 돌이켜야 합니다.
이사야 선지가 장차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망하리라는 예언을 하자 히스기야는 모든 것을 인정합니다.
이사야의 책망이 옳다는 것입니다.
한 나라의 왕이 아무 힘이 없는 선지자 앞에서 잘못을 시인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했습니다. 실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훌륭한 신앙인 이었습니다.
우리도 실수 합니다. 우리도 많은 잘못을 범합니다. 깨닫게 해 주실 때에 인정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거기에 소망이 있습니다.
혹 양심에 거리끼고, 말씀에 거리끼는 잘못된 일에 연루되어 있거나 도모하고 있습니까?
속히 돌아서시길 바랍니다. 아니면 망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사는 복된 하루 되세요.
by Pastor Joseph Y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