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니키아 문자알파벳 혁명, 세계 문자의 탄생
페니키아 문자
알파벳 혁명, 세계 문자의 탄생
기원전 1100년 경 ~ 기원후 300년 |
레반트 |
표음문자-자음문자 |
페니키아어 |
목차
1. 개요
2. 레반트 - 문명의 교차로
3. 페니키아 문자
4. 페니키아
5. 알파벳 혁명
6. 페니키아 문자와 히브리 성경
7. 비블로스 문자
1. 개요
페니키아 문자는 원시 가나안 문자 등의 영향을 받아 레반트 지역에서 만들어진 문자이다. 페니키아 문자는 자음문자로서, 적은 수의 문자 기호만을 가지고 인간의 언어를 자유롭게 표기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문자는 페니키아 사람들의 교역 활동을 통해 지중해 연안 여러 곳에 널리 퍼졌으며, 현재 세계에서 사용되고 있는 대부분의 문자들이 페니키아 문자에서 발달하였다.
2. 레반트 - 문명의 교차로
레반트 지역
지중해 동쪽에 닿아 있는 아시아 서쪽 끝 지역은 오래전부터 지금까지도 매우 중요한 곳이다.
이곳은 동쪽으로는 메소포타미아를 거쳐 아시아 중부 지역으로 이어지고, 서쪽으로는 아나톨리아와 지중해, 남쪽으로는 아라비아 반도와 아라비아해, 북쪽으로는 흑해와 카스피해 지역 등과 접해 있어서 지리적으로 개방된 교통의 중심지였다.
이 때문에 문명이 발생한 초기부터 주변 여러 민족들의 침입을 자주 받았고 여러 나라의 흥망이 빈번히 일어났었다.
오랫동안 유사한 문화를 보존해 왔으며, 동일한 역사적 배경을 지니고 있는 이 지역이 역사적으로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 지역을 이르는 명칭의 다양성이다.
유럽에서 바라볼 때에 동쪽에 있는 이 지역은 ‘가나안, 팔레스타인, 메소포타미아, 오리엔트, 근동, 중동, 레반트’ 등 다양한 용어로 불린다. 이 용어들이 실제 아우르는 범위는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서아시아 역사의 복잡성과 민족 교류의 다양성이 이 용어들에 잘 드러난다.
가나안(Canaan)은 지중해와 요르단강 사이에 있는 지역의 옛날 명칭이다. 가나안이라는 이름의 기원은 히브리 성경에서 노아의 손자 이름으로 등장하며(창세기 9장 18절~27절, 10장 6절), 히브리인들에게 약속된 땅으로 묘사된다(민수기 34장 1절~12절). 팔레스타인(Palestine)은 현재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국(요르단 강 서안 지구 및 가자 지구)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이 단어는 성경에 등장하는 종족 이름인 필리스티아(블레셋)에서 나왔다.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는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사이의 여러 지역 특히 현대의 이라크를 중심으로 해서 시리아 동북부, 이란 서남부 지역을 가리킨다. 그리스어로 ‘강과 강 사이’라는 뜻으로서 기원전 4세기 알렉산드로스 시대 이래로 이 지역을 일컫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오리엔트(Orient)는 로마 시대에는 로마 동부 및 로마 외부의 여러 나라를 가리키는 용어로서 사용되었으며, 서양사에서는 특히 고대 이집트, 메소포타미아를 통틀어 지칭한다. 이 단어는 ‘떠오르는, 동쪽’이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oriens에서 유래하였다. 하지만 유럽을 중심으로 세계를 바라볼 때에 유럽과 다른 지역을 총칭하는 차별적 용어로 사용하여 왔기에 때로 비판받기도 한다.
근동(近東, Near East)은 서아시아는 물론 터키, 북아프리카, 아라비아 반도 등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으로, 원래 오스만 제국의 1683년 당시 최대 영토를 지칭하는 데에서 유래한 말이다. 유럽과 가까운 동쪽이라는 뜻이다. 이와 비슷하게 중동(中東, MiddleEast)은 19세기 이후 영국이 인도의 서쪽 지역을 식민지로 만들면서 고안된 개념이다. 아시아를 극동, 근동으로 구분할 때에 그 가운데 있는 지역이라는 뜻이다.
처음에는 이란, 아프카니스탄 주변 지역을 가리키다가 이후 서아시아와 아프리카 동북부 지역을 모두 가리키게 되었으며, 요즘에는 이슬람 문명을 이르기도 한다. 근동과 중동은 모두 유럽의 시각에서 아시아의 지리적 거리를 지칭한 것이다. 이에 따르면 한국, 중국, 일본 등이 위치한 동아시아는 극동(極東, Far East)이 된다.
레반트(Levant)는 ‘동쪽, 떠오르는’이라는 뜻의 이탈리아어에 기원을 둔 단어로서, 이탈리아에서 바라보아서 해가 떠오르는 동쪽 지역을 폭넓게 의미한다. 그리스, 터키, 이집트 등까지 포함하는 용어로써 사용되기도 하였는데, 현재는 이스라엘, 팔레스타인국, 시리아, 요르단, 레바논 등의 나라들을 주로 가리키며 때로 북서부 이라크 및 시나이 반도까지 포함하는 경우도 있다.
3. 페니키아 문자
기원전 20세기부터 레반트 지역에서는 문자를 만들려는 다양한 시도가 있어 왔으며, 또한 이미 이 지역에서 오래전부터 사용되고 있는 설형문자는 물론 이집트 문자와 크레타 섬의 문자들, 히타이트 문자 등 다양한 문자들이 소개되었다. 그렇기에 페니키아를 비롯한 레반트 지역 사람들은 일찍부터 문자의 효용과 가치를 알고 있었다. 아울러 여러 문명권이 만나 교역하는 과정에서 여러 언어를 쉽고 빠르게 표기할 수 있는 문자의 필요성이 점차 증가하였다.
이러한 배경에서 기존의 문자들을 활용하여 새로운 문자가 만들어지는데 이것이 바로 페니키아 문자(Phoenician alphabet)이다. 페니키아 사람들은 지중해 주변 여러 곳에 자신들이 만든 문자를 전파하여 기원전 1050년부터 기원전 850년까지 페니키아 문자는 이 지역 제1의 문자의 위치를 차지한다.
이 문자는 서쪽으로는 그리스 문자를 거쳐 현재 세계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는 라틴 문자로 이어졌으며, 동쪽으로는 아람문자를 거쳐 히브리 문자, 아랍 문자를 포함한 아시아 여러 문자들의 선조가 된다. 따라서 현재 세계에서 사용하고 있는 대부분의 문자들은 바로 페니키아 문자에 기반을 두고 있다.
페니키아 문자 비문
페니키아 문자는 원시 가나안 문자에서 발전하였으며1), 대체적으로 기원전 1050년 이후의 것을 페니키아 문자라고 구분한다. 원시 가나안 문자는 원시 시나이 문자와 더불어 이집트 성각문자에서 발전한 것이므로 지금 지구 상에서 사용하고 있는 대부분의 문자는 간접적으로는 이집트 문자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직접적으로는 페니키아 문자의 표음성을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페니키아 문자에는 한편으로 우가리트 설형문자, 비블로스 문자의 영향도 보인다. 페니키아 문자로 기록된 가장 오래된 유물은 1923년 비블로스에서 발굴된 석관이다. 이 석관은 기원전 11세기 경 이 지역을 다스렸던 아히람 왕의 것으로서, 석관의 뚜껑에는 도굴을 막기 위한 저주의 글이 페니키아 문자로 쓰여 있다.
페니키아 사람이 페니키아 문자를 쓰고 있는 모습을 그린 레바논 우표
아히람 석관을 그린 레바논 우표. 상단에 페니키아 문자가 보인다
기원후 17세기 경 페니키아 문자가 처음 발견되었을 때에는 이집트 문자의 변종이라고 생각되기도 했으나 19세기 이후 해독되면서 기원이 밝혀졌다. 2005년 페니키아 문자 자료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페니키아 문자
페니키아 문자는 모두 스물두 개로서, 하나의 문자 기호가 하나의 소릿값을 가지는 표음문자이며 특히 자음을 나타내는 자음문자이다. 페니키아 문자는 인류가 사용한 최초의 알파벳(표음문자)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이집트 성각문자도 하나의 문자가 하나의 자음을 나타내는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이집트 문자는 수천 개의 문자 중에서 극히 일부 문자만이 소리를 표시하였으며, 대부분은 단어문자 또는 의미지시자로만 사용되었다. 자음문자로 사용된 문자 기호일지라도 문맥에 따라 단어문자나 의미지시자로 읽어야 했기에 서기들과 같이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복잡한 체계였다.
또한 앞서 살펴본 와디 엘 홀 문자, 원시 시나이 문자, 원시 가나안 문자도 자음문자로서 페니키아 문자의 발달에 영향을 주기는 했다. 하지만 이 문자들은 현재 아주 제한된 자료만 남아 있을 뿐만 아니라, 후대에 끼친 영향력도 매우 제한적이어서 페니키아 문자에 비길 수 없다.
4. 페니키아
페니키아의 여러 도시국가
페니키아는 기원전 15세기 무렵부터 레반트 지역에서 주요한 역할을 했던 셈족들의 공동체를 이르는 말이다. 페니키아는 지형이 복잡해서 교류가 쉽지 않았기에 정치적 통일을 이루지 못했는데, 이는 고대 그리스가 여러 도시 국가들의 연맹체인 것에 비견된다.
따라서 페니키아는 하나의 통일된 나라가 아니라, 지중해 해안을 따라 건설된 도시국가들을 통틀어 부르는 말이다. 처음에 발달한 항구 도시는 비를로스였으며, 점차 시돈, 티레 등 여러 도시로 확대되었다.
비블로스, 시돈, 티레 이 세 도시가 페니키아에서 가장 발달한 도시였기 때문에, 이 도시들 중 하나의 이름이 시대에 따라 페니키아 전체를 가키기기도 했다.
예를 들면 비블로스와 접촉했던 이집트인들은 나중에 티레와 교역을 하면서도 티레의 선박을 ‘비블로스 선박’이라고 불렀다는 기록이 나온다. 또한 시돈이 제일 번성한 도시였을 때에는 페니키아 사람들을 시돈 사람들이라고 부르기도 했으며, 마찬가지로 티레 또한 페니키아 전체를 가리키는데 쓰였다.
비블로스(Byblos)는 현재 레바논의 주바일(??????)이다. 기원전 8000년 경 신석기 시대부터 사람이 지속적으로 거주해 왔으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이다. 히브리 성경에서는 ‘그발’로 나타난다(여호수아서 13장 5절). 비블로스라는 이름은 당시 이집트에서 수입한 파피루스를 이곳을 통해 지중해의 다른 지역으로 수출하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비블로스는 ‘책, 종이’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biblio(βιβλ?ο)에서 유래하였다. 성경을 뜻하는 ‘바이블(bible)’도 비블로스와 관련이 있는 단어이다.
시돈(Sidon)은 현재 레바논의 ‘사이다(????)’이다. 시돈은 성경에서 노아의 손자인 가나안의 맏아들의 이름으로 처음 등장하며(창세기 10장 15절), 바알 신을 숭배하는 사람들로 묘사되어 있다(열왕기 상권 16장 31절, 열왕기 하권 23장 13절, 판관기/사사기 10장 6절, 에제키엘 28장 22절 등). 티레(Tyre)는 현재 레바논의 수르(???)이며, ‘티로스, 티로, 두로’ 등 다양하게 표기된다.
성경에서는 시돈과 더불어 함께 언급되는 경우가 많으며(예레미아 47장 4절, 마태 15장 21절, 사도행전 12장 20절 등), 여러 이방 도시들 중 가장 가혹한 심판을 받는 것으로 기록되었다(에제키엘 27장, 아모스 1장 9~10절, 이사야 23장 등). 나중에 시돈보다 크게 더 발달하였다.
백향목이 그려진 레바논 국기
페니키아는 백향목(향백나무, 송백나무, 레바논 삼나무, cedar of Lebanon)이라는 품질 좋은 나무로 유명했다. 이 나무는 추운 곳에서 생장하기 때문에 재질이 굳으며 높고 크게 자라므로 건축재로 많이 이용되었다.
페니키아는 이집트, 바빌로니아 등에 이 나무를 수출해서 번영할 수 있었다. 또한 배와 항해에 관한 기술이 발달했으며, 재목을 다듬는 건축 기술자들이 많은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였다.
히브리 성경에는 백향목이 얼마나 소중하게 사용되었는지 잘 묘사되어 있다. 다윗과 솔로몬은 성전을 짓기 위해 페니키아산 나무를 준비하였으며(역대기 상권 22장 4절, 열왕기 상권 5장 15절~24절), 성전 중요한 곳을 이 나무로 장식하였다(열왕기 상권 6장 9~15절, 7장 2절~12절).
또한 성전을 수리할 때에도 레바논의 백향목을 사용했다(에즈라 3장 7절). 또한 이 나무는 정결 예식에서도 사용되었다(레위기 14장 4절).
티리언퍼플, RGB(102, 2, 60)
페니키아는 자주색(진홍색, 심홍색) 염료와 발달한 염색 기술로도 유명했다. 당시 자주색은 페니키아의 지중해 연안에서 채집된 소라, 조개 등에서 채취했는데 소라나 조개 한 개에서 얻을 수 있는 염료가 고작 한 방울 정도에 불과했었기에 매우 귀한 색으로 취급되었다.
신약성경에서 예수가 입은 옷 색깔이 자주색으로 묘사되어 있으며(마르코복음 15장 20절), 로마와 비잔틴에서도 황제나 고위 성직자들의 옷 색깔로 사용되었다.
영어에서도 ‘born to the purple’이라는 표현은 “왕가에서 태어난, 특권 계급에 속하는”라는 의미를 가진다. 우리나라 신라시대에도 보라색은 성골과 진골을 나타내는 색이었다. 특히 페니키아산 자주색은 그리스인들에게 잘 알려져 있어서, 그리스어에서 페니키아를 뜻하는 포이닉스(phoinix)는 ‘자주색, 소라’라는 뜻도 가졌다.
그리스 신화에서도 “티레산 보라색 천을 씌운 긴 의자”(피그말리온), “티레산 염료로 물들인 자주색 실”(아테네와 아라크네) 등으로 표현되어 있다. 페니키아의 티레는 티리언퍼플(Tyrian Purple, 적자색[赤紫色])이라는 색채 이름에 지금까지 남아 있다.
이처럼 페니키아가 위치한 레반트 지역은 여러 문화와 문명이 만나는 곳이었다. 페니키아는 기원전 3천 년 전부터 이집트와 교역을 해 왔으며 이집트산 파피루스를 다른 지역에 되팔아 부를 축적했다. 또한 지중해 여러 곳에서 실려 온 물건들과 백향목, 자주색 염료, 포도주, 향신료 등 페니키아와 내륙의 여러 물건들이 교환되면서 상업이 발달한다. 이집트와 크레타, 히타이트 등의 영향력이 약해진 후 페니키아는 지중해에서 주도권을 행사하게 되며, 이후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문명 등 동양의 문명을 서방에 전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페니키아 사람들은 발달한 항해술을 바탕으로 해서 지중해 연안에 많은 도시를 세우고 식민지를 건설했다. 이들은 남유럽과 북아프리카는 물론 지중해 끝 스페인 남부까지 진출하였으며(열왕기 상권 10장 22절) 이후 대서양으로 나아갔다. 기원전 2~3세기 로마와 세 번에 걸쳐 포에니 전쟁을 벌인 카르타고 역시 페니키아 사람들이 세운 식민도시였다(‘포에니’는 페니키아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페니키아 사람들은 기원전 600년 경 홍해에서 시작하여 아프리카 동쪽 해안을 따라 아프리카를 일주하였다. 이는 1497년 바스쿠 다 가마의 아프리카 일주보다 2천 년 앞선 일이다.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자신의 저서 ≪역사≫에서 해가 오른쪽에 떠있었다는 페니키아인들의 기록을 믿지 않는다고 했지만(Hdt. 4.42.4), 이 기록이야말로 페니키아인들이 아프리카를 일주한 명확한 증거이다. 남반구에서는 북반구와는 반대로 태양은 정오에 북쪽으로 치우쳐 있어서 서쪽을 향해 항해할 때에는 오른쪽, 즉 북쪽에 보이기 때문이다.
페니키아 사람들은 셈어를 사용하는 가나안인이다. 이들은 원래 팔레스타인에도 거주하였지만, 히브리인이 이 지역에 정착함에 따라 북쪽에 한정하여 거주하게 되었다(마르코복음 7장 24~26절, 마태오복음 15장 21절~22절 참고).
5. 알파벳 혁명
하나의 문자가 하나의 소릿값을 가진 표음문자가 만들어지고 당시 세계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지중해를 중심으로 널리 퍼진 것은 인류 역사에 큰 획을 그은 혁신적 사건이다. 이를 알파벳 혁명이라고 한다.
표음문자가 얼마나 혁명적인지는 다른 문자들과 비교해 보면 쉽게 유추할 수 있다. 이를테면 메소포타미아의 설형문자, 이집트의 성각문자 및 중국의 한자 등은 기본적으로 표의문자이며 단어문자이다. 따라서 그 언어에 있는 단어의 수만큼 문자가 필요하므로, 문자 생활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는 수천 개가 넘는 문자를 익혀야 한다. 그렇게 때문에 문자를 배울 기회가 없는 이들은 자신들의 지식을 후세에 남기는 데에도 어려움이 있었고, 이미 축적된 지식에 접근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표음문자를 사용하게 되면 한 언어의 말소리를 전부 기록하는 데에 필요한 문자의 수는 대폭 줄어든다. 한 언어가 가진 소리(음소)의 수는 보통 3~40개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처럼 적은 수의 문자 기호는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고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다. 또한 자신의 생각을 기록하고 널리 전파하는 일이 쉬워졌으며, 특정 계층, 특정 권력 집단에게만 독점되었던 지식에 누구나 용이하게 접근할 수 있게 된다.
페니키아 문자로 적힌 히브리 신의 이름
6. 페니키아 문자와 히브리 성경
히브리인들의 이집트 탈출을 다룬 영화 ≪십계≫ (1956)
페니키아어는 아프리카아시아어족 셈어파 가나안어군에 속하는 언어로서, 같은 어군에 속하는 히브리어와도 매우 유사했다.
바빌론으로 잡혀갔던 히브리인들이 함께 잡혀갔던 페니키아 사람들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성경 중 신명기의 기록 방식은 페니키아의 역사 기록 방식과 공통점이 있다고 한다.
이스라엘의 사해 주변에서 발견된 성경의 사본 중에는 다른 부분은 히브리 문자로 적혀 있지만 신의 이름을 나타내는 부분은 페니키아 문자로 기록되어 있는 것이 있어서, 초기 성경이 페니키아 문자와 관련이 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히브리인들의 이집트 탈출을 다룬 영화 ≪십계≫에서는 모세가 들고 있는 십계명 돌판에 히브리어가 페니키아 문자로 새겨진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오른쪽 석판의 첫 두 행은 다음과 같이 옮겨 쓸 수 있다(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는다).
이 문장은
’NKY
YHWH ’LHYK
라고 옮길 수 있으며, 모음을 넣어서 읽으면 “’?n??i y?hwa ’?l?hey??”가 된다. 이는 “나는 야훼 너의 하느님이다”(신명기 5장 6절)이라는 뜻이다.
이후 만들어진 다른 영화에서도 페니키아 문자로 십계명이 기록되어 있다.
영화 ≪이집트 왕자≫(1998)
영화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2014). 180도 회전화면
. 비블로스 문자
기원전 1800년 ~ 기원전 1500년 |
레반트 |
표음문자-음절문자 |
셈어파의 언어 |
원시 시나이 문자, 원시 가나안 문자와는 조금 다른 문자가 레바논의 비블로스(현재의 주바일)에서 발견되었는데, 이 문자를 비블로스 문자(Byblos writing) 또는 비블로스 음절문자(Byblos syllabary)라고 한다.
비블로스 문자는 돌이나 금속 비문 위에 기록되어 있는데, 현재까지 10여 개의 비문이 발견되었다. 이 문자는 글자의 모양이 이집트 성각문자와 비슷하다는 이유로 ‘유사성각문자’라고 불리기도 한다(다음 그림에서 □ 표시를 붙인 글자 참고). 비블로스 문자에는 페니키아 문자와 비슷한 모양을 가진 기호도 많이 포함되어 있다(다음 그림에서 ○ 표시를 붙인 글자 참고). 따라서 비블로스 문자는 이집트 문자와 가나안 지역의 여러 문자들(원시 가나안 문자, 페니키아 문자 등)을 연결해 주는 문자로 볼 수 있다.
비블로스 문자
비블로스 문자는 프랑스 고고학자 모리스 뒤낭(Maurice Dunand)이 1928년 발굴을 시작한 이래 세상에 알려졌지만, 모두 90개 또는 114개의 문자 기호가 있는 음절문자로 추정되고 있을 뿐, 현재까지 아직 정확하게 해독되지는 않았다.
[네이버 지식백과] 페니키아 문자 - 알파벳 혁명, 세계 문자의 탄생 (세계의 문자 사전, 연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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