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환상 -네 생물
성경묵상 ]
[ 질문 하나 ] 에스겔이 어디에서 어떤 형편에 있을 때 하나님의 말씀과 비전이 임하였는가?(1-3절)
에스겔은 바벨론 땅에 포로로 잡혀 와 있다. 하나님의 백성이 이방 땅에 끌려와 수치와 모욕을 당하고 있는 상황이다. 유다 왕 여호야긴이 사로잡힌 지 5년째 되는 날이다. 하나님의 영광은 이스라엘을 떠났고 그들은 하나님께 버림받았다.
포로된 땅은 하나님이 얼굴을 가리시는 절망과 눈물의 땅인데도, 그곳에서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영광이 선지자의 눈 앞에 나타났다.
비록 죄로 멸망한 백성이지만,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향한 사랑과 긍휼을 거두지 않으시고, 언약을 기억하신다. 절망 가운데 있을지라도 한 줄기 희망을 여전히 가질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이 살아 계시기 때문이다.
[ 질문 둘 ] 에스겔이 본 하나님의 영광은 어떤 모습이며, 어떻게 움직였는가?(4-9, 12절)
에스겔이 본 하나님의 임재의 영광은 이스라엘의 대적이 있는 '북쪽'에서부터 폭풍과 함께 오고 있다. 하나님의 영광이 움직이는 목적이 심판을 위해서라는 것을 암시한다.
하나님의 영광은 신비스럽고 두려운 네 생물(스랍)의 엄호를 받으며 일제히 앞을 향해 직진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뜻은 돌이키거나 우회하는 법 없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말한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움직이신다는 사실이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부동의 존재가 아니라, 역사와 나라들과 만물을 움직여 나가시며 새 일을 행하시는 분이시다.
그런데 왜 자기 백성에 대한 심판이 먼저일까?
죄로 부패한 부분은 깨끗이 도려내야 다시 새롭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회개가 필요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깨끗하게 하신 후에 새로운 것으로 채워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구원과 재창조, 회복의 역사는 심판과 회개 없이 이루어질 수 없다.
[ 성경대조 및 주해 ] - 개역개정과 표준새번역
1. 서른째 해 넷째 달 초닷새에 내가 그발 강 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을 때에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모습이 내게 보이니
때는 제 삼십년 넷째 달 오일이었다. 그 때에 내가 포로로 잡혀 온 사람들과 함께 그발 강 가에 있었다. 나는 하나님이 하늘을 열어 보여 주신 환상을 보았다.
2. 여호야긴 왕이 사로잡힌 지 오 년 그 달 초닷새라
여호야긴 왕이 포로로 잡혀 온 지 오 년째가 되는 그 달 오일에,
3. 갈대아 땅 그발 강 가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부시의 아들 제사장 나 에스겔에게 특별히 임하고 여호와의 권능이 내 위에 있으니라
주께서 바빌로니아 땅의 그발 강 가에서 부시의 아들인 나 에스겔 제사장에게 특별히 말씀하셨으며, 거기에서 주의 권능이 나를 사로잡았다.
4. ○내가 보니 북쪽에서부터 폭풍과 큰 구름이 오는데 그 속에서 불이 번쩍번쩍하여 빛이 그 사방에 비치며 그 불 가운데 단 쇠 같은 것이 나타나 보이고
그 때에 내가 바라보니, 북쪽에서 폭풍이 불어오는데, 큰 구름이 밀려오고, 불빛이 계속 번쩍이며, 그 구름 둘레에는 광채가 나고, 그 광채 한가운데서는 불 속에서 빛나는 금붙이의 광채와 같은 것이 반짝이었다.
4-14절에서는 여호와를 수종드는 네 생명의 환상을 소개한다.
그 가운데 본절은 네 생명 이 자리잡은 기이한 공간에 대하여 묘사한다. 이러한 내용이 시작되는 본문의 ‘내가 보니’라는 말을 원문 그대로 번역하면 ‘그리고 내가 보았다. 그런데 보라(KJV, And I looked, and, behold)’이다. 이러한 원문의 뉘앙스를 개역 개정판 성경은 잘 드러내지 못하고 있지만, 원문으로는 에스겔 선지자 자신이 본 이상에 대해 스스로 매우 놀랐다는 사실과 함께 독자들에게 그것을 주목해서 자세히 살펴보라고 권유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당시 에스겔이 본 환상은 열린 하늘에서 펼쳐져 보인 환상으로서, 실제 모습이 아니었다. 따라서 문자적으로 해석해서는 원 저자의 의도를 왜곡하게 된다. 그것은 네 생물의 환상(4-14절), 네 바퀴의 환상(15-21절), 네 생물 머리 위에 펼쳐진 궁창의 환상(22-25절), 궁창 위 보좌 및 거기에 앉으신 여호와의 영광의 환상(26-28절)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환상은 에스겔 이전의 그 누구도 경험하지 못하였으며 에스겔 자신이 본 그 내용을 문자로 정확하게 묘사하지도 못하였을 것이다. 따라서 이 부분에 대한 해석은 무척 난해하다. 칼빈 (Calvin)도 이 에스겔의 환상의 진정한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고백했다. 따라서 세부적인 진술에 대해 일일이 알레고리적으로 해석하는 방식이라든지,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방식은 지양(止揚)되어야 하며, 이 환상에서 에스겔 선지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전체적인 메시지를 찾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
이와 유사한 환상은 제10장에서 또 한 번 언급되는데(10:1-22), 그곳에서는 이곳의 환상이 여호와의 영광과 깊이 관련된 것으로 해셜한다(10:18-20). 순수한 영(靈)이신 여호와께서는 사람의 육안으로 볼 수 없는 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께서는 인간이 절대로 볼 수 없는 자신의 모습을 다른 형태를 빌어 나타내기도 하는데, 이를 신학적 용어로 ‘신현(theophany)’이라고 칭한다. 본 환상도 이러한 신현과 관계된 것이다(Wright).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에게 보였던 영광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 및 자신의 초월적 존재 방식을 이 1:4-28절의 환상을 통해 나타내고자 하셨을지도 모른다. 이스라엘 자손의 범죄가 너무나 극심하여 넘칠 정도가 되어 그분의 영광은 더 이상 그들과 함께 하지 않으시며 그들을 떠나 버리셨는데(10:18 ; 11:22-24), 성전을 떠났던 그 영광이 이곳 포로들이 거주하는 이방 식민지에 환상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는 여호와께서 아직도 그의 언약 백성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나타내기 위함으로 여겨진다(Cooper). 당시 바벨론에 거주하고 었던 이스라엘 자손들은 세상의 진정한 주권자가 여호와가 아닌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인 것으로 여기고 절망감에 휩싸여 하루하루 무기력하게 살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에스겔 선지자는 그발 강가에서 본 여호와의 영광의 환상을 통해 그들 위에서 절대 권능으로 역사를 주관하는 이는 느부갓네살이 아닌 하늘 높은 곳에 영광 중에 좌정하사 그 백성들에게 당신의 뜻을 계시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증거하고자 하였을 것이다.
과거 시내산에서는 모든 이스라엘 족속이 여호와의 신현을 다 목도했지만(출 19:16 ; 20:18-20), 이곳에서는 오직 에스겔 선지자만이 그것도 환상의 형태로 목도했다. 여호와께서는 비록 그의 백성에 대한 관심을 계속 가지고 계시고 그들에 대한 주권을 철회하지 않았지만, 범죄하여 그 형벌을 당하고 있는 이스라엘 자손들은 영광스러운 여호와의 신현으로서의 환상을 목도할 수 있는 영적 상태에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선지자로 소명 받은 에스겔은 그 환상을 보기는 하였지만, 천상에서 임한 영광스러우며 신비로운 환상을 인간의 언어로 충족하게 표현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들 역시 그 세부적인 내용을 다 완전하게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러한 사실을 전제하고 이 환상을 마주해야 할 것이다(신 29:29 ; 롬 11:33,34).
"북쪽에서부터 폭풍과 큰 구름이 오는데"는 여호와의 임재, 혹은 영광이 북쪽에서부터 오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본 끓는 가마의 환상 역시 북쪽과 관계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문맥에서 북쪽은 북방 바벨론 세력이 예루살렘으로 진격해 오는 것과 관련된 반면(렘 1:13-15), 에스겔 선지자가 본 환상에서 북쪽은 여호와의 처소를 나타낸 것이며 그분께서 당신 자신을 드러내시는 방향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여호와는 북쪽으로부터 오시되 폭풍과 큰 구름 가운데 싸여 오신다. 폭풍과 큰 구름은 성경에서 종종 여호와의 임재시에 동반되어 일어나는 자연 현상으로 소개되었다(출 19:16-18 ; 20:18-20 ; 삼하 22:12-15 ; 욥 38:1 ; 사 29:6 ; 렘 23:19). 인간은 그 폭풍과 구름을 볼 수 있을 뿐, 그 가운데 엄재해 계시는 초월적 존재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직접 목도할 수는 없다.
폭풍과 큰 구름은 일반적으로 번쩍이는 불과 조요한 광채, 그리고 불 가운데서 보석의 눈 같이 빛나는 것을 수반하는 모습을 하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인간의 육안으로는 식별하기 힘든 광경이었다. 여기에서 개역 개정판 성경이 불에 달구어져 빛을 내는 쇠의 이미지를 벌어 ‘단 쇠 같은 것’이란 문자적으로 황갈색의 보석인 ‘호박의 눈 같은 것’이라는 의미이다. 이것이 정확하게 무엇을 지칭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본문에서 나타나는 영상, 즉 번쩍이는 불과 빛나는 광채 등과 함께 인간의 육안으로는 감히 쳐다 볼 수 없는 여호와 하나님의 찬란한 영광의 외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불이 여호와 하나님의 임재시에 나타날 때에는 보호와 심판이라는 이중적 상징성을 갖는다(창 19:24 ; 출 14:24 ; 40:38 ; 사 30:30 ; 66:15).
또한 문자적으로 ‘광채’에 해당하는 ‘노가’는 원래 빛 가운데 둘러싸여 있는 여호와(딤전 6:16)의 임재 자체로 인해 발하는 눈부신 광채를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10:4 ; 삼하 22:13 ; 겔 10:4). 본장에서 이 단어는 모두 4회 사용되어 하나님의 영광스러움을 보다 현저하게 묘사하고 있다(4,13,27,28절).
"폭풍과 큰 구름이 오는데 그 속에서 불이 번쩍번쩍하여"란 하나님이 강한 용사가 되심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구원하시는 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악을 심판하시고 보복하시는 강한 용사이시다. 언약을 깨뜨린 백성은 하나님의 임재 속에 위로를 얻기 이전에, 죄에 대한 경각심과 회개의 눈물을 먼저 배워야 한다.
5. 그 속에서 네 생물의 형상이 나타나는데 그들의 모양이 이러하니 그들에게 사람의 형상이 있더라
그러더니 그 광채 한가운데서 네 생물의 형상이 나타나는데, 그들의 모습은 사람의 형상과 같았다.
생물의 전체적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그 움직임(movement), 혹은 속도(speed)는 번개처럼 빠르며(14절), 날개를 모두 네 개 가지고 있으며(6절), 그 중 날개 둘로는 몸을 가리고(11절), 날개 둘로는 날며(9절), 날 때에는 신비스러운 소리를 내며(24절), 전후좌우로 모두 얼굴을 가지고 있는데, 그 얼굴은 각각 사람의 얼굴, 사자의 얼굴, 소의 얼굴, 독수리의 얼굴이고(10절), 다라는 견고하고 곧게 뻗어 있으며(7절), 마광한 구리 같이 빛나는 재료로 된 송아지 발바닥 같은 발바닥을 가지고 있다(7절). 그 생물은 온통 불과 햇불 같은 것으로 싸여 있으며(13절), 그 안에서 번개가 치며(13절), 그 움직임이 아무리 빠르다고 할지라도 절대로 임의로 움직이는 법이 없이 영이 지시하는 대로만 움직이며(12,20절), 바퀴가 그 생물과 함께 있고(15절), 바퀴와 생물은 절대로 따로 움직이는 법이 없다(19절). 그리고 그 생물의 머리 위로 수정 같이 말은 궁창이 펼쳐져 있고(22절), 그 궁창 위쪽으로 보좌가 있고(26절), 그 보좌 위에 사람의 모양 같은 형상이 있다(26절). 그 사람의 모양 같은 형상은 전체가 다 용광로에 벌겋게 달군 쇠와 이글거리는 불과 같은 모습으로 되어 있으며(27절), 그 사면으로 무지개 같은 광채가 나오는데(28절), 그 보좌 위의 형상이 곧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이며(28절), 거기에서 에스겔에게 주시는 말씀이 나왔다(28절).
여기서 네 생물의 형상 위에 궁창의 형상이 있고 그 궁창의 형상 위에 보좌의 형상이 있고 그 보좌의 형상 위에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이 있다는 사실은 이 생물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수종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그리고 그 생물이 모두 넷으로 되어 있고, 이 넷은 각각 전후좌우를 향하고 있으며 그것이 하나로 묶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5,10절). 따라서 이 생물은 동시에 동서 남북 사방을 볼 수 있으나 어느 한 방향으로만 움직인다. 동시에 네 곳을 볼 수 있고, 얼굴들이 각각 전후좌우를 향하고 있다는 사실은 모든 곳을 동시에 볼 수 있고 통제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초월적 · 절대적 주권을 연상케 한다(Wright).
한편 이러한 네 생물의 환상은 계 4:6-9에도 나오고 있다.
그런데 하나 다른 점은 여기의 생물들이 날개를 네 개씩 가지고 있는 반면, 계시록 환상에 나오는 생물들은 날개를 여섯 개씩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울러 계시록의 생물들은 영광과 존귀를 받기에 합당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세세토록 찬양하는 천사의 모습으로 그려져 있는 반면 여기의 생물들은 여호와의 영광을 나타내고 그의 지시대로 움직이는 수종자의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6. 그들에게 각각 네 얼굴과 네 날개가 있고
얼굴이 각각 넷이요, 날개도 각각 넷이었다.
7. 그들의 다리는 곧은 다리요 그들의 발바닥은 송아지 발바닥 같고 광낸 구리 같이 빛나며
그들의 다리는 모두 곧고, 그 발바닥은 송아지의 발바닥과 같고, 광낸 놋과 같이 반짝거렸다.
8. 그 사방 날개 밑에는 각각 사람의 손이 있더라 그 네 생물의 얼굴과 날개가 이러하니
그 생물의 사면에 달린 날개 밑에는 사람의 손이 있으며, 네 생물에게는 얼굴과 날개가 있었다.
9. 날개는 다 서로 연하였으며 갈 때에는 돌이키지 아니하고 일제히 앞으로 곧게 행하며
그들의 날개 끝은 서로 닿아 있으며, 앞으로 나아갈 때에는 몸을 돌리지 않고, 각각 앞으로 곧게 나아갔다.
10. 그 얼굴들의 모양은 넷의 앞은 사람의 얼굴이요 넷의 오른쪽은 사자의 얼굴이요 넷의 왼쪽은 소의 얼굴이요 넷의 뒤는 독수리의 얼굴이니
그 네 생물의 얼굴 모양은, 제각기, 앞쪽은 사람의 얼굴이요, 오른쪽은 사자의 얼굴이요, 왼쪽은 황소의 얼굴이요, 뒤쪽은 독수리의 얼굴이었다.
11. 그 얼굴은 그러하며 그 날개는 들어 펴서 각기 둘씩 서로 연하였고 또 둘은 몸을 가렸으며
이것이 그들의 얼굴 모양이었다. 그들의 날개는 위로 펼쳐져 있는데, 두 날개로는 서로 끝을 맞대고 있고, 또 두 날개로는 그들의 몸을 가리고 있었다.
12. 영이 어떤 쪽으로 가면 그 생물들도 그대로 가되 돌이키지 아니하고 일제히 앞으로 곧게 행하며
그들은 영이 가고자 하는 곳으로 갈 때에는, 각각 앞으로 곧게 나아갔다. 그들은 몸을 돌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13. 또 생물들의 모양은 타는 숯불과 횃불 모양 같은데 그 불이 그 생물 사이에서 오르락내리락 하며 그 불은 광채가 있고 그 가운데에서는 번개가 나며
그 생물들의 모양은 마치 활활 타는 숯불이나 횃불과 같이 보였다. 그 불은 그 생물들 사이를 오가며 빛을 냈고, 불 속에서는 번개가 튀어나오고 있었다.
14. 그 생물들은 번개 모양 같이 왕래하더라
그 생물들은 이쪽 저쪽으로 번개처럼 빠르게 달렸다.
제사장 에스겔에게 환상이 임함 ( 1:1-3 )
에스겔이 보았고 또 그 가운데서 사명을 위임받았던 환상에 대한 상황 설명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는 그 기록이 사실임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언제 어디서 특별한 방식으로 우리의 영혼에 자신을 계시하시기를 기뻐하셨는가를 기록해두는 것은 대단히 쓸모있는 일이다.
(1) 에스겔이 이 환상을 본 시기는 '제 삼십년'이었다(1절).
어떤 사람들은 이 삼십년이라는 말이 에스겔의 나이 삼십 세 되는 해라고 생각한다. 즉 에스겔이 한 사람의 제사장으로서 제사장직을 완전히 수행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은 이 삼십년이 느부갓네살의 부와 나보폴라살의 재위 삼십년 째 되는 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갈대아 역본에는 다른 시대로 봐서 '요시아 왕 시절에 한밤중 달이 뜬 후에 제사장 힐기야가 성소에서 율법서를 발견한 해로부터 삼십년 째 되는 해'라고 말하고 있다. 에스겔이 이 환상을 본 때는 6월에 해당하는 사월, 오일이었다(2절). 이 날은 아마도 안식일이었던 것 같다. 이는 3장 16절에 칠일의 마지막날(한글 개역은 '칠일 후'-역주) 즉 다음 안식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그에게 임하였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2) 하나님께서 존귀케 하셨을 때 그는 음울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그발강 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더니...여호야긴왕이 사로잡힌 지 오년 그 달 오일이라.
1) 당시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갈대아인들의 땅에서 포로가 되어 있었다.
유대국가의 몸체는 여전히 유대 땅에 존속하고 있었지만 이 사람들 초기에 포로가 된 것이다. 이들 중에는 매우 우수한 사람들도 있었다. 교훈의 말과 시정의 매는 서로 서로 보완해 가며 우리에게 큰 도움을 준다. 교훈의 말은 매의 까닭을 설명해주며, 매는 훈계를 보강하여 주는 것이고 이 둘은 공히 지혜를 가져다 준다. 그들이 포로 있는 동안에는 그들 심령을 위한 일반 은총이 결핍될 수 밖에 없으므로 하나님께서는 특별 은총을 그들에게 베푸셨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막히게 되면 다른 방법으로 교육받게 되는 것이다. 그들의 조국에 남아있는 유대인들에게는 예레미야가 있었으며 포로로 잡혀간 자들에게는 에스겔이 함께 하게 도니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흩어져 있는 어느 곳에서나 하나님께서는 마땅한 선생님을 세워 주신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2) 선지자는 그발강 가의 포로들 가운데 있었다.
성경 학자들도 이 그발강이 어떤 강인지에 대하여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 가장 선량하고 하나님과 친밀한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죄악 때문에 당하는 공적 심판, 혹은 국가적인 심판을 함께 당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한 죄악을 전혀 짓지 않은 사람들도 그 고통을 같이 느끼는 것이다. 포로가 된 사람들은 자기들과 함께 포로가 되어 같이 슬픔을 나누는 사람의 훈계는 잘 받아들일 것이다. 어느 곳에서든지 우리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유지할 수 있다. 사도 바울이 갇힌 자가 되었을 때도 복음은 자유로이 갈 길을 갔다. 사도요한이 밧모섬에 유폐되어 있었을 때 그리스도께서는 그 곳까지 그를 방문하셨었다.
(3)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자기를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다.
여기에서 선지자는 그가 보고, 듣고, 느낀 바를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1) 그는 '하나님의 이상'을 보았다(1절).
하나님을 직접 보고 살아 남아 있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상, 곧 교훈을 주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현시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었다. 에스겔의 임무는 백성들의 마음을 돌려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하는 일이었으므로 하나님의 이상을 보아야만 했다. 그러한 일을 하나님과 가까이 교제를 나누는 사람들과 하나님께 대한 지식에 감동된 사람들, 즉 다른 사람들을 하나님께 대한 지식과 사랑으로 인도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일이다. 그가 그 이상을 볼 수 있도록 '하늘이 열렸다'. 즉 그가 그 이상을 가리고 있던 흑암의 격의(distance)가 물리쳐진 것이다.
2)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3절).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분명하게 임하였다. 그리고 그가 본 것은 앞으로 들을 내용을 위하여 그를 예비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여호와의 말씀', 곧 본질적인 말씀이요(이렇게 해석하기도 한다), 그 자체가 말씀이신 그 분이 에스겔에게 사명을 주어 보내시기 위하여 임하셨다.
3) 환상을 보도록 두 눈을 여시고 말씀을 듣도록 두 귀를 여시며 그 모두를 깨달을 수 있도록 마음을 여시는 하나님의 권능을 그는 느꼈다.
네 생물의 환상 ( 1:4-14 )
이 환상의 모습과 의도는 다음과 같다.
첫째, 선지자가 소명을 주시는 하나님께 대하여 보다 높고 존귀한 생각을 갖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선지자가 보고 있는 것은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의 모양'(28절)이었다. 이와 같이 크신 하나님은 경건한 마음과 두려운 마음으로 섬김을 받으심이 마땅하다.
둘째, 시온에 남아 있거나 이미 바벨론에 잡혀 왔으나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한 경고를 무시하는 죄인들에게 경고를 주기 위함이었다. 이 환상이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한 내용이라는 것은 43장 3절로 미루어 보아 분명히 알 수 있다.
셋째,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 권능의 손 아래 자기를 낮추는 자들에게 위로를 말씀하기 위함이었다. "그들이 비록 바벨론에 잡혀와 포로의 신세가 되어있지만 하나님께서 저들과 가까이 계심을 알릴지니라. 즉 성소가 저들에게 없지만 성소의 하나님께서 저희와 함께 계심을 알릴지니라. 교회가 오랫 동안 이방 땅에 세워져 있는 때라도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처음으로 교회를 세우셨을 때 하셨던 것처럼 그들의 한가운데서 영광을 나타내실 것이라."
환상의 첫 번째 부분은 하나님의 일군인 수많은 천사들이 명령을 이행하고 그 분의 말씀을 청종하면서 하나님 곁에서 하나님을 섬기며 시중들고 있는 모습이었다.
(1) 천사들에 대한 이 환상이 도입은 장엄하며 눈이 번쩍 뜨이게 한다(4절).
선지자는 하늘이 열리는 것을 바라다 보았다. 그가 보니 앞에 가리우고 있는 안개를 내몰 듯 길을 훤히 내기 위하여 '북방에서부터 폭풍이' 몰려 왔다. 하나님께서는 폭풍을 사용하시사 하늘과 공기를 깨끗케 하시며 우리가 하늘과 교제를 나누기에 필수적인 마음의 청아함을 주실 수 있다. 이 폭풍은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기 위하여 에스겔에게 다가왔다(엘리야에게도 이 일이 일어났었다, 왕상 19:11).
(2) 환상의 내용을 살펴보자.
하나님께서 안식하고 계시는 궁창, 즉 하나님께서 타고 다니시는 병거는 '흑암과 공중의 빽빽한 구름'(시 18:11;104:3)이다. 구름에는 불이 따르게 마련이다. 하나님께서 구름 사이에 거하고 계셨던 시내산 정상에도 불이 나타났었다. 그 여호와의 영광은 '맹렬한 불'과 같았다(출 24:16,17). 그리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처음 나타나셨을 때에도 불타는 떨기 나무의 불꽃 가운데 나타나셨던 것이다. 우리 하나님은 소멸시키시는 불이시기 때문이다. 그 불은 영광으로 둘러싸여 있다.
빛이 그 사면에 비취며(4절). 우리가 비록 그 불 속을 들여다 보지도 못하며 완전하게 하나님을 발견할 수도 없으나 그 불 주위에 밝은 빛은 볼 수 있다. 모세도 하나님의 등을 볼 수 있었지만 얼굴은 뵙지 못하였었다. 하나님을 느끼기는 매우 쉽지만 그 분이 어떠하시다라고 묘사하기는 지극히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불 가운데에서 나온 생물들은 스랍(태우는 자)들로서 실제로 생물이 아니고(천사는 영이기 때문에 볼 수가 없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인도하시기에 적절한 형상을 입고 있을 뿐이었다.
그 불가운데...에서 네 생물의 형상이 나타나는데. 이 환상에 대하여는 선지자가 직접 해설해 놓은 부분이 있다. '그들이 그룹들인 줄을 내가 아니라'(참조. 겔 10:20). 그들은 생물, 곧 하나님의 피조물이요 그 손으로 직접 만드신 것들이었다. 태양은 불덩어리로 둘러 싸인 화염이지만 생물은 아니다. 선지자는 그들이 하늘의 사방으로 보내진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는 것임을 깨달았다(참조. 마 24:31).
스가랴는 동서 남북을 향해 나아가는 네 대의 병거를 보았다(슥 6:1). 하나님께서는 세상 사방에 보낼 심부름꾼들을 가지고 계신다. 그 모양이 이러하니 사람의 형상이라. 이들은 이성과 지성을 갖추었고 여호와의 등불이라 일컬어지는 사람의 영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사자들 즉 천사들은 사람의 모양을 하고 나타난다. 이는 때라 이르렀을 때,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 그 형상으로 나타나실 뿐만 아니라 그러한 속성도 지니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 네 생물 모두는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5절). 그러나 그 외에도 사자, 소, 독수리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이들은 각각 종류별로 가장 뛰어난 것으로서 사나운 짐승에서는 사자를, 유순한 짐승 가운데에서는 소를, 날짐승 가운데에서는 독수리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10절). 지상의 생물들이 가지고 있는 부분적인 완전함이 하늘의 천사에게서 한꺼번에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천사들은 사람의 명철을 갖고 있으나 실상은 훨씬 능가한다. 천사들은 또한 부드러움과 인간성에 있어서 사람과 비슷하다.
사자는 그 힘과 용감함에 있어서 사람을 능가한다. 따라서 이 점에 있어서 사자와 비슷한 천사들은 사자의 얼굴을 하고 있다.
소는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수행하는 근면과 끈기에 있어서 사람보다 뛰어나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교회를 섬기는 일을 하는 천사들은 소의 얼굴을 하고 있다.
독수리는 날렵함과 꿰뚫는 듯한 눈길, 치솟는 그 높이에 있어서 사람들을 능가한다. 따라서 위에 것을 추구하며 하나님의 깊은 신비를 멀리까지 보는 천사들은 독수리의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이다.
각각 네 얼굴과 네 날개가 있고(6절). 신앙과 소망은 영혼의 날개로서 영혼은 그 날개로 치솟아 오른다. 또 경건하고 헌신적인 사랑은 앞으로 전진해 나아갈 수 있게 만드는 하나의 날개이다. 그들의 날개는 완전한 연합과 일치를 표시하기 위하여 연결되어 있었다(9-11절). 그들의 날개 중 두 개는 그들의 몸 즉 그들이 입고 있던 영의 몸을 덮는데 사용하였다.
그들의 다리는 곧았다(7절). 즉 그들은 바르고 확실하며 굳건하게 서 있었다. 그들의 발은 날아 다녔다(70인역은 이렇게 되어 있다). 즉 그들은 너무나 신속하여 마치 날아 다니는 것 같았다.
그들은 움직이기 위한 손도 가지고 있었다(8절). 그것은 사람의 손이었다. 그 손은 봉사를 하기에 적합하도록 놀랍도록 잘 만들어졌고 이성과 명철에 의해 통제를 받는다. 송아지의 발은 그들의 동작이 신속함을 의미한다. 그 생물들은 활동하는 존재들이었다.
그들은 봉사해야 할 일이 있으면 '일제히 앞으로 곧게' 행하였다(9,10절). 만약 우리의 눈이 이와 같이 단 하나라면 우리의 몸 전체는 빛으로 가득하게 될 것이다. 눈이 하나라는 이야기는 마음의 진실성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일제히 자기의 이를 향해 앞으로 곧게 나아갈 뿐 서로를 방해하지 않는다.
행할 때에는 돌이키지 아니하고 일제히 앞으로 곧게 행하며(9,12절). 그것들의 마음은 분산되는 법이 없었다. 그것들은 돌이키지도 아니하였으며, 옆으로 비키지도 아니하였다. 신이 어느 편으로 가려면 그 생물들이 그대로 가되(12절). 하나님의 신이 가라고 하는 곳으로 그것들은 나아갔다.
선지자는 그 생물들을 그것들 자체의 빛으로 말미암아 보게 되었다(13절). 그것들은 마치 불타는 '숯불'같은 모양이었다. 선지자는 '그 생물들 사이에서 오르락 내리락' 하는 매우 발은 불을 보았는데, 그 빛으로 해서 생물들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광명의 천사들은 언제나 빛 가운데 있으나 우리는 그들과 그들이 행하는 일들을 등불에 의해서 즉 그들 사이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등불의 희미한 빛에 의해서 볼 수 있을 뿐이다. 날이 밝고 어둠이 사라지는 날이 오면 그때 우리는 그들을 분명하게 보게 될 것이다.
출처 ; 메튜헨리 주석
라파엘로 / 에스겔이 본 환상
<청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