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서신

옥중서신 서론

은총가득 2020. 5. 28. 11:24

에베소서 서론

 

1. 기본적인 배경

1) 저자
에베소서에 있어서 가장 문제시 되는 것은 저작권에 관한 문제이다. 에베소서는 인간 최고의 신적 문장,기독교신앙의 정수를 뽑아 낸 본질, 기독교 신앙의 가장 권위 있고 완전한 개요,고상하고 중요한 교리로 가득찬 서신등으로 불리워 왔다. 교회의 역사를 통하여 모든 국적을 가진 전문적 학자들과 평신도들 그리고성도들에게 그와 같은 인상을 주어왔다. 따라서 에베소서의 저작자가 주님에게서 풍부한 재능을 부여받은 바울이라는 초대교회의 보편적 증언을 부인하는 어떠한 이들에게는 무모한 짓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베소 저작에 대한 부인이 바우어에 의해 마구 성행하게 되었고,그러한 제의가 계속되어 왔다. 바울의 저작권에 대한 부인은 크게 둘로 나눌수 있다.
[1] 너무 많은 유사점을 가진다.
① 에베소서는 골로새서와 유사하다. 그래서 바울이 골로새서를 썼다면,에베소서를 쓸수 없었다는 것이다.
② 에베소서가 바울의 다른 서신들과 너무도 유사점이 많다. 이것은 무슨 말인가하면, 바울의 제자중,바울의 여러 서신이나 심지어 단어 ,어귀 등에 밝은 한 유능한 사람이 선생을 모방하여 에베소서를 썼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하여 답변한다면,학자들 가운데는 이 유사성의 실재적 범위에 대하여 많은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에베소서의 저자는 그의 주제로서 영광스러운 교회,즉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유대인과 이방인들에게 다같이 주시는 구원의 축복으로 충만해진 교회가 그의 영광을 찬양하는 주제를 가진고로 이 옥중서신 가운데 많은 귀절들이 유사한 주제로 쓰여진 다른 서신과 내용의 유사성을 갖는다는 것은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 그리고 에베소서는 변증적 자료가 별로 없다. 또한 에베소서는 대부분의 바울서신보다 늦게 쓰여진 서신이다.
③ 에베소서는 베드로 전서와 유사하다. 바울서신이 아닌 다른 신약의 문서들과 유사하다는 점을 들고 있다.
④ 에베소서는 누가복음 및 사도행전과 유사점을 가진다.
⑤ 에베소서는 요한의 저작과 유사점을 가진다.
⑥ 에베소서는 히브리서와 유사점을 가진다.
⑦ 에베소서는 야고보서와 유사점을 가진다.고 주장하고 있다.
[2] 차이점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① 단어의 차이이다.
에베소서가 너무나 많은 예외적 단어, 즉 새로운 단어들을 쓰고 있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서 의심없이 받아들이는 소위 바울 서신은 물론 신약성경 다른 어느 곳에서도 발견되지 않는 단어가 에베소서에서 발견되므로 바울의 저작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하여 답변 한다면,만약 이 주장이 의심없이 바울의 저작임을 드러내는 다른 서신에도 적용이 된다면,이 서신들에서도 다른 서신에서 발견하지 않는 새 단어들이 발견되므로 바울의 서신에서 제외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주제가 다를때 다른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그리고 흔히 바울의 다른 서신에서 없는 말이 에베소에서 발견된다는 주장은 일반적으로 말해 목회서신과 골로새서가 바울의 서신이 아니라는 무언의 가정에서 나온 것이다. 하지만 이 가정은 근거없는 것이다. 목회서신을 쓴것은 바울이었다. 그리고 에베소서에서만 발견되는 소위 예외적 단어들 중에서 돌로새서와 목회서신에서 발견되는 것들을 제외하고 나면 남은 것은 불과 얼마되지 않는다. 그렇다면,바울같이 유능한 저작자가 그 정도의 새로운 말이나 용어들의 어휘력을 가졌다는 것은 바울 저작권을 부인할 하등의 이유가 성립되지 못한다.
② 의미의 차이를 들고 있다.
③ 문체의 차이를 들고 있다.
④ 교리의 차이를 들고 있다.
먼저 신론에 있어서는 에베소서는 인간의 구원의 근거를 하나님의 영원한 섭리에 두고 있으나 다른 서신에서는 바울은 십자가를 강조한다는 것이다.
인간론의 차이에서는 에베소서는 은혜를 떠난 인간의 죄의 상태를 골로새서나 다른 서신에 비해 훨씬 부드러운 투로 서술하고 있다.
기독론의 차이에서는 에베소서는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라고 했으나 다른데서는 머리를 다만 지체중의 하나로만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엡2:16절에서는 화해를 이루신 분은 그리스도라고 하였으나 골1:20,2:13-14에서는 하나님이라고 하였다. 또한 에베소서는 그리스도의 죽음이 근본적 문제를 다루어지고 있지 않고 모든 것이 승귀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서신에서는 죄인들이 십자가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해된 것을 말하고 있느나 에베소서에서는 십자가로 인하여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화해가 이루어졌음을 가르치고 있다. 또한 에베소서는 그리스도의 승천을 가르치고 있는데 다른데는 이 승천 교리가 없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이유를 든다면,에베소서는 그리스도께서 지옥에 내려가신것을 가르치고 있는데 그것은 바울 후기의 요소라는 것이다.
구원론의 차이를 들고 있는데 에베소서에서는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을 통한 구원을 말하고 있느나 바울은 믿음으로 말미암은 칭의를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에베소서의 율법관이 비바울적이라는 것이다.
교회론의 차이를 들고 있는데 그것은 에베소서에서는 교회란 단어는 언제나 보편교회를 말하고 있는데 바울의 다른 서신들에서는 지교회를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에베소서가 교회의 통일성에 대하여 강조하고 있는 것은 이 서신이 바울의 사후에 즉 많은 파당이 생겨나 중앙집권적 교권의 강조가 요구되는때에 기록되었다는 것이다. 또 사도들과 선지자에 대해 마치 그들이 거룩하고 또 그들이 교회의 기초인양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서 바울 후기시대의 세대들을 위하여 기록된 인상을 짙게 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울이 엡2:11절을 쓸수 없다는 것이다,. 참 유대인은 아무래도 할례를 그런 경멸조의 언어로 볼수 없다는 것이다.
종말론의 차이를 들고 있는데 바울의 저작권을 부인하는 이들은 바울이 에베소서를 쓸수 없는 또 하나의 이유는 여기엔 재림이나 이에 관련된 아무런 교리도 발견할수 없다는 것이다.
[3] 결론
① 너무 많은 유사점이 있다는 것에 대하여
골로새서와 에베소서의 유사점은 주로 저자가 같다는데 그리고 시간,장소,일반적 상황이 같다는데 있다. 또한 동일 저자라는 사실은 표현과 강조에 있어서 많은 변화가 있고 이유도 설명해 준다. 그리고 바울의 저작이라고 전통적으로 믿어온 다른 서신들은 발신인과 주소에 대한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에베소서와의 유사점이란 큰것이 못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사이에는 많은 비교점이 있고 이 또같은 사상은 새로운 방향을 지시해 주고 있다. 저자의 동일성과 함께 제2의 요소인 교리의 동일성은 고려되어져야 한다. 그리고 일률적 교회의 문답식 교훈의 필료성과 새 개종자들의 증가는 표현의 일치를 가져오게 된다. 또한 신약성경 저자들의 형태와 내용의 유사성은 결국 그리스도에게까지 즉 그의 인격과 업적, 가르침까지 추적 될수 있다. 바울과 다른 저자들은 똑같이 구약의 배경에 조예가 깊었다. 이 모든 요소들은 에베소서가 바울의 저작으로서 잘못 취급되어 왔으며, 그 저자는 어ㄸ넌 모방자였으리라는 가정 보다는 바울의 저작으로 보는 것이 이 유사성들을 설명하느데 더 만족할 답을 줄 것이다.
② 차이점이 너무 많다는 이의에 대하여
단어나 문체드의 차이는 이 편지를 쓸 당시 바울의 감사에 대한 감정이 폭발된데 있으며,소위 교리의 차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수 있다. 즉 에베소서에 여러가지 교리들이 다른 서신들보다 더 강조되고 확대되고 있는게 사실이지만 다른 서신들에서 발견되는 교리들과 서로 모순이 되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③ 에베소서가 바울의 저작이라는 이유
먼저 내증을 보면 에베소서의 저자는 자신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된 바울 또는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너희 이방을 위하여 갖힌자된 나 바울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리고 에베소서의 저자는 마지막 축도에 앞서 나의 사정, 곧 내가 무엇을 하는지 너희에게도 알게 하려 하노니 사랑을 받은 현제요,주 안에서 신실한 일군인 두기고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우리 사정을 알게 하고, 또 너희 마음을 위로하게 하여 내가 특별히 저를 너희에게 보내었노라 고 말하였다.
바울의 제자요 그의 가르침에 밝은 서신의 수집자가 감히 자신을 바울과 동일시 할수 있었을까? 그리고 에베소서는 보편적으로 바울 서신이라고 인정된 로마서,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빌립보서의 모든 특징을 가지고 있다. 또한 초대 교회의 바울의 진짜 저작을 그처럼 훌륭한 문체와 논리적 전개와 고상한 내용을 가진 귀절들로 합성할수 있는 위조의 천재가 있었다는 것은 믿기 어려운 일이다. 그것도 바울의 지적능력과 영적 통찰력을 가지고 바울의 사상을 발전시키면서 아무도 구별할수 없도록 했다는 것은 더욱 믿을수 없는 일이다.
또한 외증에 있어서도 증명이 된다. 초대교회의 증언은 이미 내린 결론과 조화를 이룬다. 유세비우스는 에베소서를 바울의 진정한 서신으로 인정한다. 터툴리안도 마찬가지로 바울의 저작을 인정하고 이보다 약간 일찍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와 이레니우스는 바울의 자작을 그대로 인정하고 있다.
그리고 가장 오래된 공식적인 정경인 마르키온 정경속에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당시에는 이 서신을 바울이 기록했다는 점에 아무런 이의가 없었다. 그 이유는 마르키온은 오직 사도바울만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또한 가장 오래도니 라틴 역본 및 수리아 역본에서도 에베소서를 바울의 서신들 가운데 포함시키고 있다. 본서신은 오파이트라,발렌티누스파에 의하여 사용되었으며,폴리갑의 저작들에서와 헤르마스와 디다케 속에서도 본 서신의 언어들이 발견되고 있다.
2세기 후반기를 지나면서 헬마스의 목자,사도들의 가르침,바나바의 서신,등등에 나타난 에베소서의 암시는 제쳐두고라도 100-170년경에 살았던 저술가들에 이르면,당시에 에베소서의 저자가 이미 바울로 인정되고 있음을 발견한다.
이 외에도 본 서신의 바울적 구조와 본 서신의 언어 및 문학적 유사성, 그리고 본 서신의 신학적 유사성, 또한 본 서신의 역사적 자료들을 통하여 우리는 바울의 저작임을 결론적으로 내릴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교회는 신약의 저작들을 규정할때에 이의 없이 바울을 에베소서의 저자로 지목한 것이다. 2세기 말에 에베소서의 저자에 대하여 극소수의 이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 서신의 가치와 영감성에 대하여는 일찍부터 각처에서 인정되어 온게 사실이다. 그러므로 이 전통적 확신을 저버릴 아무런 이유가 없다.

2) 수신자 및 기록연대

에베소서에 있어서 하나의 큰 문제는 엡1:1절에 언급된 수신인에 대한 기록이 희랍어 사본에는 차이가 있다는데 있다. 초두의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된 바울은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안의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 하노니"에는 아무런 본문의 문제가 제기되지 않는다. 그러나 에베소에 있는 의 첨가된 낱말이 난점이 있다. 가장 오래된 사본들에는 이 귀절이 없다. 그래서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초기의 사본들에 "에베소에 있는"이란 귀절이 없는 이유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리고 에베소서의 참 목적지가 어디인가? 하는 점이다. 여기에 대하여 몇가지 해결책들이 제시되고 있는 것을 볼수 있다.
첬째로, 에베소서는 에베소에 있는 교인들에게 보내진 서신이 아니라 모든 성도들에게 보내진 서신이라는 것이다.
이 견해에 의하면, 서신의 제목이 무엇이든지 간에 에베소서에 있는 이란 말은 바울이 삽입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학설에는 두가지의 형태가 있는데 먼저는 바울이 그의 메세지를 참 존재를 가진 성도들에게 보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바울이 단순히 그리스도 예수안의 신실한 자들에게 썼다는 것이다.
두번째 제시는 에베소서가 어떤 제한된 지역에 살고 있는 성도들에게 보내진 서신이기는 하지만 에베소는 아니라는 견해이다.
이 이론은 특별히 애보트가 변호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에베소서는 라오디게아,히에라볼리,골로새서등의 이방 개종자들에게 썼다는 것이다.
세번째 제시는 본 서신은 에베소가 도청 소재지인 그 지방에 거주하는 신자들에게 보내졌으며, 그것은 에베소 교회뿐 아니라 주변의 여러 교회들을 위하여 쓰여졌다는 것이다. 오늘날 이 견해는 널리 지지되고 있다.
네번째 견해에 의하면, 본 서신은 한 특수 지역, 즉 빌립보서가 빌립보에 있는 교회들을 위하여 고린도잔후가 고린도 교회를 위하여 쓰여짐 같이 에베소에 있는 한 교회를 위하여 쓰여 졌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순회 서신 이론을 지지하는 이들은 다음과 같은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에베소서에 있는"이란 말은 가장 오래된 사본들 속에 없다. 따라서 에베소서가 수도인 어떤 지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한 이 에베소를 목적지로 주장할 이유가 없다. 그리고 1:15; 3:2과4:21,22등을 비교해 보면 분명히 독자들 가운데는 바울이 모르는 자들과 그가 개인적으로 가까운 관계를 갖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또한 바울이 세운 교회와 그가 개인적으로 잘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보낸 모든 서신에는 그가 교회의 영적 아버지이며,그들 중에서 해산의 고통을 한것을 기록한 귀절들이 나온다. 그런데 이런 귀절이 에베소에는 없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에베소서에는 개인적인 인사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반대하여 이 서신이 순회 서신이 아니라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주장한다.
말시온의 사본을 제외한 모든 고대 사본에는 본 서신은 "에베소인들에게"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그리고 엡1:15,3:2 과 4:21,22은 해석상의 문제이다.
또한 사도행전에 있는 바울의 활동에 대한 기록과 본 서신의 내용에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단정할 근거는 없다.
고린도후서,갈라디아서,데살로니가 전후서 역시 바울에 의하여 세워진 교회이나 인사에 대한 언급이 없다. 반대로 로마서는 바울에 의하여 세워진 교회가 아니지만 많은 인사가 나온다.
다섯번째 견해는 본서신은 라오디게아로 보내졌다.
이 가설은 마르키온 정경의 증거를 근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여러방면으로 비판을 받고 있다.
여섯번째 견해는 본 서신은 바울의 영적 유언장이었다는 것이다.
이 견해를 주장하는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본 서신이 로마 투옥 말기에 쓰여진 것으로 보며 제 2차 투옥 가설을 부인한다. 따라서 이 서신은 전체 교회에 보낸 바울 사도의 고별 메세지로 생각되고 있다.
일곱번째 견해는 본 서신은 바울 전집에 대한 서론이라는 것이다.
굳스피드와 존 낙스에 의해 제안된 이 이론은 약간의 수정과 함께 미턴에 의해 주장 되었다. 에베소서를 기록했다고 말하는 헌신적인 바울 주의자는 바울 서신들을 모르고 있을 독자들을 위해 서신들 안에 포한된 가르침에 대한 요약을 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이 서론적인 기록은 수집된 편지들이 에베소 교회에 처음 알려졌기에 "에베소인들에게"라는 명칭을 갖게 된 것이다. 이 이론은 비판을 받고 있는데 그덧은 에베소서가 바울 전집의 서두에 있었다는 증거가 없다. 그리고 에베소서6:21,22에 있는 두기고에 관한 언급은 굳스피드의 이론에서 큰 난제이다. 그리고 이 이론은 바울 서신들이 한동안 무관심의 대상이었으나 사도행전의 출판으로 관심이 되살아났다는 가정에 의존한다. 또 하나의 난점은 문헌적인 문제로서 바울 전집에 대한 서론으로 쓰여진 본 서신이 그처럼 골로새서에 의존했을 것으로 생각하기는 어렵다.
여덟번째 견해는 본 서신은 모든 기독교 세계를 위한 종교 철학을 기록한 것이다.
아홉번째 견해는 본 서신은 골로새 이단의 확장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결론적으로 이야기 한다면 본 서신의 목적지는 "에베소"였다. 즉 에베소와 그 주변의 교회들 이었다. 서신을 기록한 장소는 로마였으며,시기는 A.D 61-63의 어느 시기이었을 것이다.

3) 기록 장소

이 부분은 본 보고서의 빌립보서의 기록연대와 장소부분을 참고하기 바란다.

2. 역사적 배경

에베소 교회는 사도 바울에 의해 그의 제 2차 전도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그 기초가 세워졌다. 그리이스로 부터 시리아로 향해 가는 길에 사도바울은 브리스 길라와 아굴라를 동반하고,에베소를 방문 하였다. 거기에서 그는 이들을 이 도시에 남겨 두고 떠났다.방문은 그가 예루살렘으로 급히 서둘러 가는 도중에 잠시 머물렀던 것에 불과 하다 그러나 그는 그 지역 회당의 유대 지도자둘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그는 그들에게 감동을 주었고 따라서 그들은 바울에게 그곳에 머물러 달라고 간청하기에 이르렀다.그러나 그는 그의 계획을 바꿀수가 없었다.그래서 그는 자신이 돌라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돌아오겠노라고 그들에게 약속 했다. 이러한 사실은 확실히 이루어졌다 왜냐하면,그는 그 다음 전도 여행 일정에 에베소를 포함 시켰고,실제로 에베소에서 3년 이상을 머물렀기 때문이다. 바울은 이곳이 전도 전략상 상당히 유력한 지역임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그곳은 그 지역의 중심 도시였으며, 동서를 잇는 대로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곳에 위치했기 때문이다 에베소의 주위에는 230개의 독립된 공동체 사회가 아시아의 로마 지경내에 산재해 있었다. 만약 기독교의 신앙이 이와 같은 수도에 확고히 세워진다면,그것은 마치 바퀴의 중심에서 테두리로 힘을 옮겨지는 것과 같이 확산 될수 있을 것이다.
바울이 에베소로 돌아 왔을때 그는 자신이 없는 동안에 아볼로가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알았다. 그때는 아볼로가 고린도로 옮겨가고 있었으며,따라서 바울은 그곳에서 자신의 사업을 자유로이 강화할수 있었다,. 석달 동안 그는 유대인들과의 대결을 겪어야 했으며, 곧 반대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는 개종자들을 두란노 서원에 모아 2년동안 날마다 강론했다.
바울의 전도의 여파는 에베소지역 너머에 까지 미쳤다. 그 전지역이 영향을 받았으며,이로 인하여 도처에 개종자들이 있었다. 사업차 수도로 왔던 사람들이나 유람차 왔던 사람들을 막론하고 그들은 복음을 들었다.그래서 그들은 각기 고향에 가서 복음을 전하게 되었다.
이렇게 획기적인 전도의 확장은 사도행전19:23-41에서 묘사된 소동으로 인해 잠시 주춤하게 되었다. 이 소동이란 더메드리오라고 하는 어느 은장색이 자기의 동료들과 동맹을 결성한 사건이었다. 바울은 이미 그곳을 떠나려던 차였으며,이것은 바울이 에베소에서의 사역을 그만 두고 로마로 향하게 된 신호가 되었다. 수리아로 가는 마지막 항해중에 그는 밀레도에 도착해서 에베소의 장로들과 작별을 하면서 그들에게 엄숙하고도 감동적으로 무리의 실수에 대해 훈계하고 부탁한다. 그후로 바울은 에베소를 다시 방문할수 없었다.

3. 저술 목적

수신지에 대해 다양한 견해들이 제기되고 있는 본 서신의 저작동기와 목적을 확실하게 결정하기란 어렵다. 만일 우리가 회람이론을 가정한다면,우리는 독자들의 상황보다는 저자의 상황으로부터 목적을 제시할수 있을 것이다. 바울은 감옥에 있었기 때문에 생각할수 있는 시간을 가졌을 것이다.이러한 사실은 그 서신이 훨씬 더 명상적인 분위기를 띠고 있음과 함께 그가 다루고 있는 특별한 상황에 관련된 긴장이 없음을 잘 설명해 준다. 바울은 그리스도와 교회를 깊이 생각하고 있었고 결국 영광 받는 기독론과 그리스도안에서의 그리스도인들의 특권을 높이 찬양하게 되었다.
본 서신과 골로새서의 밀점한 관련은 에베소서의 저작 목적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이 두 서신은 다소 방법상의 차이는 있으나 동일한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바울 사도는 골로새서의 교리를 여전히 마음속에 생각하면서 이단이 존재하는 특별한 배경없이 일반적인 방법으로 그것을 다시 썼다고 생각할수 있다.
이제 바울이 이 서신을 쓴 목적을 간략하게 다음과 같이 말하수 있겠다.
1) 바울은 에베소서를 그곳 성도들의 그리스도를 중심한 신앙과 모든 성도들에 대한 그들의 사랑에 대한 그의 만족을 표현하기 위하여 기록하였다.
2) 또 하나의 연관된 목적은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속죄적 은혜를 알려주어 세상에 대하여는 축복이 되며, 몯굳게 서며,그리하여 구속주에게 영광을 돌리도록 하려는데 있었다.
3) 본 서신에서 바울은 그가 죄수로 갖혀 있는 로마의 제국과 교회 사이에 대조를 하려 했는지도 모른다.이 가능성은 같은 옥중 생활중에 쓰여진 빌립보서신에도 암시되어 있다. 만약 그렇다면,로마의 마력은 그에게는 교회의 영광으로 암시 되었을 것이다.아직 제한된 영역만을 통치하는 로마의 횡포한 독재자와 온 세게를 다스리는 교회의 은혜로우신 주님과의 대조,로마의 물리적 힘에 대한 정치적 통합과 평화의 줄로 매어진 교회의 유기적 단일성의 대조,로마의 군사적 힘과 교회의 영적 갑옷과의 대조,뢈의 시간과 변화와 성쇠속의 기초와 교회의 영원하며,끊임없는 기초와의 대조등이 바울의 의도였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골로새서 서론


1. 기본적인 배경

1) 저자 및 수신자

골로새서는 바울의 서신임에 틀림이 없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를 제기하는 자들이 그들의 주장은 크게 3가지로 요약할수 있겠는데 간략하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언어와 문체는 바울이 저자가 아님을 나타낸다. 그것은 골로새서는 신약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수 없는 단어 34개와 바울 서신의 다른 곳에는 나오지 않는 여러개의 단어를 추가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한편 바울이 즐겨 사용하는 의, 구원, 계시, 폐지하다 드으이 단어가 골로새서에는 사용되지 않고 있다. 그리고 골로새서에서 사용하는 문장은 너무 길다. 둘째는 골로새서에서 대항하여 싸우는 것은 2세기의 영지주의이다. 그러므로 1세기의 사람인 바울이 저자일수 없다. 세째는 골로새서의 고차원적 기독론은 비 바울적이다. 그것은 차라리 요한복음의 로고스의 교리의 하나라고 생각 되어진다는 것이다.
진실로 바울의 저작을 부인하는 것은 피상적이다. 이 서신 스스로가 바울의 저작임을 보여주고 있으며,(골1:1;4:18) 다른 서신에서 처럼 바울적인 성격도 분며히 나타나고 있다.
첫째로 골로새서는 에베소서와 매우 유사한 점을 가지고 있다.
두번째로 골로새서는 그 저자가 거의 모두가 바울의 서신으로 인정하는 로마서, 고린도후서,갈라디아서에서 언급된 저자와 같은 사람임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본 서신의 수신자는 골로새 교회의 성도들이다(1:2).

2) 기록장소 및 시기
에베소서와 빌립보서처럼 골로새서와 빌레몬서도 옥중 서신에 속한다. 한 서신의 저작시기와 장소가 대체적으로 4서신들 모두의 시기와 장소를 결정한다.
골로새서, 빌레몬서, 에베소서는 두기고와 오네시모가 한번의 여행 길에서 각 목적지들에 전달한 서신들이다(골4:7-9; 몬10-12절,엡6:21-22).
바울은 이 서신들을 쓸때 죄수의 몸으로 있었다(골1:24; 4:3,10,18; 몬1:9,23). 오네시모 이외에도 골로새서와 빌레몬서에서는 다른 인물들의 이름도 등장한다. 이들은 바울의 동역자들이다. 누가, 아리스다고, 마가, 에베브라, 데마 그리고 디모데의 이름도 양 서신의 문안 인사에 바울의 이름과 함께 나온다. 바울은 어느정도 복음 전파의 자유를 누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또한 놓임받기를 원했다.
이상의 내용에서 이 서신들이 로마에서 쓰여졌다는 전통적 견해에 상반되는 것은 없다. 바울이 누린 어느 정도의 자유는 로마에서의 상황에 대한 보고와 조화를 이루나 가이사랴의 감옥생활과는 일치하지 않는다. 그리고 저작 시기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A.D 61-63년경으로 본다. 좀더 자세히 알기를 원하면, 빌립보서의 부분을 참고하기 바란다.

2. 역사적인 배경

골로새 시는 미엔더 강의 지류인 루커스강 계곡지대에 있었는데 이는 현 터어키의 서부 지대에 위치한 고대 브루기아의 남부지대였다.이 도시는 에베소에서 동쪽으로 가는 주요 무역로 상에 위치 하였다. B.C 5세기에 헤로도투스는 골로새를 가리켜 군세기의 가장 위대한 도시라고 불렀고, 한세기 후에 연대기 작가 크세노폰은 부와 그 크기에 있어 인구가 조밀한 도시라고 기술했다. 한편 골로새는 모직과 피륙공업의 상업중심지 였으므로 이 도시는 상업적으로 중요한 도시였다. 그러나 로마시대에 와서 골로새의 중요성은 점차 감소되었다. 왜냐하면, 라오디게아와 히에라 폴리스 같은 이웃도시들이 자라났고, 점점 더 번창해 졌기 때문이다. 기독교 시대가 시작될 때에, 지리학자 스트라보는 골로새를 하나의 작은 도시로 기술했다. 현재 이 도시의 유적지에는 사람이 살고 있지 않다.
바울이 골로새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를 보냈을 당시에 이 도시의 주민은 브루기아 토착민과 희랍이주민으로 구성되어 있었다.그러나 역사가 요세푸스는 안티오쿠스 3세가 2세기 초에 메소포타미아와 바빌로니아로 부터 수천명의 유대인들을 이주시켜 루디아와 브루기아에 정착하여 살게 했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므로 골로새는 다양한 문화와 종교적 요소가 서로 만나고 혼합된 범 세계적 도시였다. 한가지 기억할 만한 중요한 사실은 골로새의 이단의 기원을 찾을수 있다는 것이다.
기독교 복음은 바울이 에베소에서 목회하는 동안에 골로새에 전파 되었다. 본 서신은 바울 자신이 루커스 계곡에서 복음적인 전도사역을 하지 않을것을 긍정하고 있는데 그것은 골1:4과2:1이 바울이 이 서신을 기록할 당시에 골로새교회를 방문하지 않았던 것을 나타내기 때문이다.그들을 개인적으로 만나기를 원했던 바울의 소망은 그후에도 실현되었을 것이다.
이제 골로새의 교회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하자. 골로새 교회의 설립에 대한 것은 정확히 알수는 없지만 아마도 바울이 에베소 본거지에서 일할 때 루카스 계곡에서 온 사람들이 있었음이 분명하다(행 19:8-10). 골로새의 교회가 설립된 것은 역시 이무렵 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교회에는 바울의 절친한 친구들이 있었다. 에베브라, 빌레몬, 압비아, 아킵보, 오네시모등이 있었다.
이 교회가 당면하였던 위험을 파악하는 일도 중요하다 먼저 이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골로새교회가 전적으로 또는 거의 전적으로 이방인 회심자들로 구성되었다는 사실을 염두해 두어야 한다. 따라서 이 지방에는 모든 종류의 이교들이 번창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곳의 어린 교회가 직면했던 근본적인 문제를 요약한다면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먼저 매우 부도덕한 이교주의에 다시 빠질 위험이 있었다. 그리고 골로새의 이단을 받아들일 위험이 있었다. 골로새의 이단은 첫번째의 위험에 두번째의 위험성을 더한 것이었는데 그것은 거짓철학, 유대교의 의식주의, 천사숭배, 금욕주의, 기독론, 배타주의 등이 골로새 교회의 이단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3. 저술 목적

바울이 첫번째로 로마 감옥에 갖혀 있는 동안 골로새의 목사 에바브라의 방문을 받았다.에바브라는 교회의 사정을 바울에게 이야기했다. 그 보고 내용은 대체로 매우 좋은 것이었다. 믿음과 사랑과 소망이 그들중에 명백히 있었다. 복음은 그 열매를 더해 가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도 이전의 엄청난 습관성 죄악으로 되돌아갈 위험성이 항상 존재하고 있었다.더우기 이 순간에도 거짓선생들은 그에 대한 해결책이 자신에게 있다고 교회를 미혹하고있으나 그 해결은 아니고 오히려 사태는 악화되었다. 그러므로 바울은 교리가 신실한 일꾼의 순수한 가르침을 떠나서 횡행치 못하도록 편지를 써야만 했다. 이러한 배경에서 쓴 이 서신의 목적은 다음과 같다.
1) 바울은 골로새인들에게 영혼을 파멸케 하는 이전의 악한 행실로 되돌아가지 말도록 경고하고,예수 그리스도를 완전하고 부족함이 없는 구세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자들이 주장하는 해결책이란 것에 대하여 경고하기 위해 이 편지를 썼다.
2) 골로새인들의 관심을 하나님의 사랑의 아들에게로 돌려 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믿고 사랑하고 경배하기 위함이다.
3) 또한 그들의 신실한 사역자 에바브라에 대한 존경심을 고취시키기 위해서다.
4) 골로새인들에게 용서와 자비의 덕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5) 무엇보다도 골로새의 이단 즉 거짓 가르침의 위협은 시정되어야 할 성격의 것이었으며, 이것이 본서신의 진정한 저작 목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바울은 두가지의 중요한 문제를 해결해야 했는데 그것은 그리스도의 위격과 관련된 교리적인 문제였고,다른 하나는 기독교의 삶과 관련된 실천적인 문제였다. 그래서 본 서신에는 고도의 기독론을 담고 있다. 그리스도는 다른 모든 피조물 및 창조자체보다도 먼저 계신 분이시다. 사실상 만물은 그에 의하여 창조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를 위하여 창조 되었다. 그는우주의 중심이시며, 모든 정사와 권세 및 모든 세력들 다시 말해 그의 권위에 도전하는 모든것들을 다스리신다. 뿐만 아니라 그는 하나님의 형상이시며, 하나님의 모든 충만을 소유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지적한다.
그리고 바울은 실천적인 차원의 오류를 논박하면서 단지 인간들의 의식들에 불과 하다는 사실을 근거로 금욕적 경향을 강하게 논박하고 있다. 그는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킴을 받았기 때문에 부활의 삶을 살아야 한다. 기독교인은 오직 그리스도를 붙들어야 한다. 기독교인은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을 입어야 한다. 항상 부정적인 것들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긍정적인 것들을 무시하는 엄격한 금욕주의는 반대로 금지들과 함께 적극적인 내용들도 동시에 강조되고 있다.

 

 

빌립보서 서론

 

1. 기본적인 배경

1) 저자
빌립보서를 쓴 이는 사도바울 이었다. 확실히 바울은 디모데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다. 그래서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들에게" 라고 서두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바울이 제1인칭 단수로 전체를 썼다는 사실은 양자 중 바울에게 주된 책임이 놓여 있다는 점에서 분명히 밝혀진다. 빌립보서의 저자는 디모데가 아니라 바울이었다.
전통적인 기독교 교리의 요새의 공격을 지휘한 사람은 바우어 였는데 그는 갈라디아서,고린도후서, 그리고 로마서를 제외한 나머지 사도의 이름으로 통하는 모든 서신들에 대하여 바울 저작권을 공격 하였다. 그들이 주장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로,감독들과 집사들에 대한 언급(1:1)은 바울 후기의 교회 정치 무대에 속한다. 그러나 행6:1-6, 11:30,14:23,20:27,28 그리고 살전5:12,13의 연구는 이런 직분이 빌립보서가 기록되기 오래 전부터 있었음을 지적해 주고 있다.
둘째로 본서는 원본이 아니라는 것으 보여준다. 본서는 바울 서신의 진본을 모방한 글로 가득차 있다. 그러나 만일 바울이 로마서등을 쓴것 같이 빌립보서를 썼다면 비슷한 표현을 한다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세째로 본서는 영지주의의 흔적을 보여준다. 특별히 2:5-8에서 저자는 아이온의 마지막 즉 소피아를 생각하며,충만에서 공허로 타락하는 절대자를 이해하려고 한다. 그런데 이 특이한 해석은 문맥에 모순된다.
네째는 본서는 유오디아와 순두게로 각각 대표도니 유대인 기독교파와 이방인 기독교파를 화해시키려는 바울 후기적 작품이다. 그런데 문맥은 이런 이름들이 빌립보 교회에 있는 여인들에 속하며,따라서 그들중에 어느 한 사람도 결코 반 바울적인 어느 파당의 지도자일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빌립보서는 바울이 쓴 서신이다.이 편지의 전기체 언급은 분명히 바울의 독특한 문체이며, 그 전체 내용도 바울 저작의 특징이 담겨있다.

2) 기록연대 및 장소
바울은 감옥에 있었음이 분명하기 때문에 중요한 문제는 바울의 투옥사실을 확인 하는 것이다. 전통적인 견해는 그 투옥장소가 로마라고 생각해 왔으나 이것은 두가지 다른 이론들인 가이사랴 이론과 에베소 이론에 도전을 받고 있다.
① 가이사랴설
이 가설은 다른 두이론들 보다 훨씬 설득력을 결여하고 있으며, 오늘날 이 이론을 지지하는 학자는 거의 없다, 여기에서 주장하는 것은 먼저, 바울의 투옥은 최근의 일로 보이며, 따라서 투옥 기간은 짧았다고 주장되어 왔다.그리고 3장에 있는 유대인 교사들에 대한 노박은 본 서신이 유대인 이방인의 갈등이 있던 기간에 쓰여졌으며, 그것은 빌립보서와 유사성을 가지는 바울의 초기 서신들과 같은 저작연대를 보여주는 증거로 보았다. 그리고, 빌립보서1:13에 언급된 시위대는사도랭전23:25에서 언급된 것처럼 헤롯궁전으로 이해 될수 있을 것이다. 빌립보서는 바울의 투옥이 복음을 전파하는 데에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었음을 명백히 하고 있는데 이것은 어느 정도규모의 교회를 가진 장소를 전제한다는 것이다.
② 에베소설
에베소에 투옥되었다고 가정할때 그곳에서 빌립보서를 기록하였을 가능성이 있는가? 최근에 많은 학자들이 그와 같은 견해를 취하고 있다.다른 옥중 서신들 보다도 빌립보서가 에베소에서 쓰여진 것으로 주장되고 있다. 이제 그 이론의 근거는 선물문제와 방문들, 그리고 바울과 빌립보 사이의 잦는 서신 왕래, 문헌적인 연관, 유대인 논쟁의 문제, 재판의 문제, 시위대와 사이사의 가솔들, 그리고 누가의 위치의 문제를 근거로 삼고 있다.
③ 로마설
본 서신이 로마에서 쓰여진 것으로 A.D 59-61년사이로 보는 전통적인 견해로서 가장 강력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 이 이론은 시위대(1:13)와 가이사 집(4:22)을 가장 자연스럽게 해석하는 것을 근거로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바울 사도에 관한 재판은 진행중 이었던 것처럼 보이며, 그는 임박한 느낌으로 삶과 죽음을 결정할 판결을 기다리고 있었던것 같다. 그런가 하면 많은 사람들이 용기 있게 복음을 전파한것은 상당한 규모의 교회가 이미 존재하고 있던 로마에서의 일로 쉽게 이해 될수 있으며, 이것은 가이사랴보다는 로마라는 이론에 결정적인 근거가 된다. 그리고 사도바울의 개인적 형편은 로마 투옥의 상황과 쉽게 일치한다. 바울은 가까운 장래에빌립보를 방문할수 있도록 풀려날 것이라는 강한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 로마 가설은 본 서신에 덧붙여진 마르키온의 서문에 의해 지지되고 있는데 이 마르키온 서문은 본 서신이 로마로 부터 발송 되었다고 되어 있다.

2. 역사적 배경
본 서신의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 빌립보 시의 역사와 빌립보 교회의 상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빌립보시의 역사
빌립보는 에게해에서 내륙으로 약16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으며, 이 도시의 원래 이름은 "작은 우물"이라는 뜻을 지닌 "크레니데스"였으며,이 부근에는 유명한 판게우스의 금광이 있다. 그런데 B.C 356년 마게도냐왕 필립 2세가 그곳의 많은 사람을 이주 시키고 도시를 확장,증축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본따서 이 도시의 이름을 빌립보라고 칭하였다. 그후 여러번의 정복 과정을 거쳐서 빌립보는 로마의 식민지가 되었으며,B.C42년 삼두 정치의 동맹자와 로마 공화주의자 사이에 유명한 빌립보 전쟁이 터졌다. 여기서 삼두 정치 동맹자들이 승리하고 곧 이어 B.C 31년 악티움 전쟁에서 옥타비아누스는 안토니우스를 패퇴시켜 로마의 실권자가 되면서 그의 퇴역한 군인들을 빌립보로 이주 시켰다. 이때에 빌립보의 위치가 상승하여 빌립보 시민들에게는 로마 시민권이 주어졌으며,자연히 그들은 로마시민으로서의 모든 권리를 누릴수 있게 되었다.
빌립보 지역은 로마의 군사적 전초 기지로서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중요한 통로중 하나였으며,전략상 마케도냐 지방의 제일로 꼽히는 성읍이었다. 또한 빌립보에는 헬라인,로마인,아시아인,등 여러 민족이 모여 살았으며,각종 철학,종교,미신등이 성행하였다. 이도시의 공식 언어는 라틴어 였으나 그들의 생활,언어 관습은 오히려 헬라적 이었다. 빌립보에 거주하는 유대인은 소수였으므로 회당도 없었다. 또 종교와 생활습관의 차이 때문에 그곳 사람들이 유대인을 대하는 감정은 좋지 않았다.
② 빌립보 교회
빌립보교회는 A.D50년경 바울의 2차 전도여행중에 세워졌다. 사도바울은 드로아에 있을 당시 환상중에 마게도냐를 향해 계속 나아가라는 지시를 받았는데 그 결과 빌립보는 바울이 복음을 전했던 유럽 최초의 도시가 되었다.
유럽의 첫번째 교회인 빌립보 교회의 기원에 관한 설명은 사도랭전16장에 특별히 생생하게 기록 되어 있다.여기에는 빌립보에서 기독교의 능력이 나타난 세 경우를 기록하고 있다. 그것은 먼저 아시아로 부터 온 자주장사이며,신실한 개종자인 루디아 그녀는 복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잘된 자들의 대표로 언급되어 있다. 그리고 점하는 귀신 들린 여인, 바울에 의해 그 귀신이 쫒겨나게 된다. 이것은 어두움의 세력들에 대한 그리스도의 승리를 예시하고 있다. 또 하나는 지진에 의해 자신의 곤경을 알게 된 간수 그와 그의 전 가족이 세례를 받았다. 그는 온 가족을 변화 시키는 복음의 능력을 보여준다.
본서신에 언급된 빌립보교회의 다른 구성원들은 에베브로디도,유오디아,순두게,글레멘드이다. 이 모든 이름은 빌립보 교회가 두드러지게 이방인들로 구성되었다는 것을 시사해준다. 그리고 빌립보의 교인들은 사도 바울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리고 빌립보 교회는 알렉산더 대왕의 부친에 의해 건설 되었으며,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한 역사 적인 도시에 위치해 있었다.
그러나 빌립보 교회에도 몇가지 문제가 있었다. 그것은 두 여인 유오디아와 순두게를 중심으로 한 교회안의 분열,유대주의자들의 분쟁,바울의 장기화된 투옥에 대한 비판,외부의 적에 대한 불안,해우이로 완전에 이른다는 사상,의 발생등이다.

3. 저술 목적

먼저 어떤 정황에서 이 편지를 쓰게 되었는가?를 밝히는 것이 좋을 것이다. 첫째로 감옥에서 쓰고 있다는 것이다.감옥에서 편지를 쓰면서 디모데와 에베브로 디도를 빌립보 교회에 천거하고 있다. 둘째는 에바브로디도를 통해서 빌립보교회가 보낸편지, 헌금을 잘 받았다는 영수증을 떼어 주고 있는거자. 세째는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몇가지 문제들을 이 편지에서 다루고 있다.에바브로디도에 의해서 바울에게 보고된 빌리보교회내의 분쟁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으며, 교회 전체가 하나됨이 중요하다는 사실과 하나됨을 위해서 서로 겸손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질것을 강조하고 있다. 네째는 빌립보 교회는 어쩌면 고린도후서10-13장에서 우리가 볼수 있는 유대 기독교 열광주의자들에 의해서 복음의 이해에 혼돈을 가져오고 그리스도인의 삶에 혼돈을 가져오는 문제들을 갖게 된것 같다. 마지막으로 빌립보 교회는 또 외부 세력의 계속되는 핍박아래 놓여 있었던것 같다. 그래서 바울이 빌립보 그리스도인들에게 자신의 감사함과 그들의 선물과 핍박의 상황에서 그들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고, 또 핍박의 상황에서 그들을 위로하고, 교회 자체내에서 하나됨을 유지 하도록 권면하고, 외적인 이방인들의 핍박이나 유대 열광적 그리스도인들의 훼방에 맞서서 믿음에 굳게 서도록 하기 위하여 본 서신을 기록하고 있다.
바울의 목적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수 있을 것이다. 먼저 글로서 그의 감사를 표시하기 위해서. 교회가 필요로 하는 영적 지침을 제공하기 위해서, 빌립보 교인들의 생각과 마음을 기쁨으로 채우기 위하여 그리고 더 나아가서 몇가지를 이야기 한다면,디모데가 머지 않아 방문할 것을 통보하고, 가능하다면 가까운 장래에 그들을 방문하려는 사도 바울 자신의 의도등도 있었음을 볼수 있다.

빌레몬서 서론

 

1. 기본적인 배경

 

1) 저자
본 서신의 저자가 사도바울임은 다음의 외적,내적증거에의해 분명히 드러난다. 먼저 외적 증거로는 본서가 사도바울에 의해 기록된 편지라는 점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초대교부인 익나티우스,터툴리안,오리겐등은 바울이 본 서신을 쓴 것으로 인정하였고,무라토리 단편과 마르시온 정경도 본 서신이 바울의 저작임을 인정한다.
내적 증거로는 바울은 본 서신의 서두에서 부터 자신이 발신자임을 밝히고 있으며(1:1) 후반부에서는 자신이 친필로 본 서신을 기록했음을 고백하고 있다(1:19) 뿐만 아니라 사도바울은 본 서신의 내용문맥 속에서도 자신이 저자임을 암시하고 있는바, 그는 자기 개인의 신상에 관하여,언급하면서 자신만의 톡특한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즉 자신이 갖힌 상태에 있다는 것,기도의 부탁,그의 동역자들의 문안인사,등 그 만이 전개할수 있는 자신의 일상적인 생활을 언급함으로서 바울 자신이 본 서신의 저자임을 암시하고 있다.

2) 수신자

본 서신의 수신자는 소아시아의 루쿠스 계곡에 살았던 빌레몬이라는 한 개인이다. 그러나 넓은 의미에서 본 서신의 수신자는 빌레몬 한 사람외에 여러 사람을 포함한다. 그 이유는 본 서신의 서두에는 빌레몬 한 사람이 수신인으로 되어 있지 않고 빌레몬과 및 자매 압비아와 및 우리와 함께 군사된 아킵보와 네 집에 있는 교회에게 편지하노니(1:2)라 하여 여러 사람이 수신인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며, 또한 서신의 끝 인사도 복수인 "너희"(22,25절) 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때 본 서신의 수신자는 내용상으로는 한 사람이지만 형태상으로는 여러사람이라 할수 있다. 바울은 빌레몬 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사람들도 본 서신의 내용을 알게 하여 자신이 주는 교훈을 그들로 하여금 깨닫게 하고자 하였다.

3) 기록장소 및 연대

여기에 해당하는 내용은 앞서서 설명한 옥중서신의 내용과 동일하다. 따라서 빌립보서의 부분을 참고하기 바란다.

2. 역사적 배경

좀더 자세한 배경들은 위에서 언급했던 옥중 서신들의 역사적 배경을 참고하기를 바라며, 여기서는 빌레몬이라는 사람을 소개 하기로 하겠다.
빌레몬은 바울이 오네시모를 위해 쓴 서신을 받은 교회의 유력한 지도자 였다. 성경에 보면 골로새 교회는 빌레몬 집에서 모인것으로 되어 있다. 바울은 그를 우리의 사랑하는 자요,동역자 라고 불렀다. 빌레몬서의 기록에 보면,그는 골로새 사람이요,종을 가질 정도로 재산이 있는 사람이었으며,바울의 전도로 기독교인이 되었고, 성도들을 후대한 사람이었고,골로새 교회의 직원이었던 것 같다. 빌레몬서1:2절에 보면,그는 한짐의 가장이요, 압비아는 아내요,아킵보는 아들이었던 것 같다. 바울이 골로새에 전도할 기회가 없었음을 생각할때에 그가 에베소에 있는 동안 전도했던것 같다.전설에 의하면,빌레몬은 골로새의 감독이 되었다가 네로 박해때에 그 아내와 아들과 오네시모와 함께 돌에 맞아 순교하였다 한다.

3. 저술 목적

골로새서와 빌레몬서는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래서 함께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빌레몬서를 쓴 이유에 대하여 새로운 학설이 등장하였다.이것은 낙스와 굳스피드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요컨데 그의 견해에 따르면,빌레몬의 주된목적은 오네시모가 그의 주인을 속이고,도망을 친 죄를 용서 받게 하려는 것이 아니고,오히려 이 종이 자유를 얻도록 한후 다시 바울에게 돌아와 복음 전도를 위해 일하게 하려는 것이었다라고 각색한다. 이 각색한 내용에 대하여와 그리고 비판에 부분은 여기서 모두 다루지 않겠다. 제시했던 참고 문헌을 살피면 자세히 언급되어 있다. 그래서 여기서는 이런 모든것을 무시하고 바울이 빌레몬서를 쓴 진정한 목적을 서술하고자 한다.
먼저 진정한 배경에 대해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볼수 있다. 빌레몬은 골로새 교회의 중심인물들 중의 하나였다. 그는 주님과 형제들을 사랑하였고,이에 대한 확실한 증거를 재차 삼차 나타내었다(7절) 그는 직접적이든,간접적이든 바울의 영적인 아들이었다. 하나님은 빌레몬을 변화시키기 위하여 바울을 사용하셨다. 그의 새로운 인생은 그 자신은 물론 그의 가족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주님을 영접한 친구들은 예배드리기 위하여 그들의 집에 정규적으로 모였다. 에베브라가 없을 때에는 아마도 아킵보가 예배를 인도한것 같다. 그는 디모데 처럼 격려를 받을 필요가 있는 청년이었을 것이다.
오네시모는 빌레몬 가족의 노예들 중의 하나였다. 이 노예는 도망하여 마지 가게된다. 로마에서 그 노예는 바울을 만난다. 주니께서는 이전에 이 위대한 선교사의 사역을 축복하시어 빌레몬의 마음을 변화시켰던 것처럼 이제도 그의 사도를 통해 노예의 마음을 변화시켰다. 그는 바울에게 너누 소중한 존재가 되어 바울이 그에 대하여 "내가 갖힌 중에서 낳은 아들"(10절) "내 심복(12절" 사랑받는 형제로 둘자라 내게 특별히 그러하거든 하물며, 육신과 주안에서 상관된 네게랴(16절) 신실하고 사랑받는 형제(골4:9)라고 표현 하였다. 오네시모의 인격은 이제 그의 이름과 일치하게 되었다. 그래서 바울은 그를 조력자로서 그의 곁에 두기를 원했다. 이점에 관해서는 11절을 읽고 이 노예의 이름의 동의어로 문장을 엮어간 사실에 주의 하라
그러나 바울은 오네시모를 로마에 머물게 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바울은 그를 그 주인에게 편지와 함께 돌려보내기로 작정한다. 이제는 더 이상의 노예로서가 아니고 사랑하는 형제로서 받아들이도록 권고하는 매우 사려깊은 정중한 자세로. 만일 오네시모가 불의 하였거나 갚아야 할 돈이 있으면, 바울은 기꺼이 그 돈을 자신이 갚겠다고 말한다.그에게는 명령할 권한이 있었으나 그는 오히려 빌레몬의 마음에 호소한다. 바울은 오네시모가 그의 요구보다 더 행할줄을 알았다. 사도는 현재의 갖힌바 된 자기 위치에서 해방될 소망을 갖고 있고 또한 빌레몬여 처소를 예비할것을 믿는다.
영감에 가득찬 이 서신이 많은 말로서 노예제도를 정죄하지는 않으나 실은 그 제도의 정신을 뒤집어 엎고, 그 노예를 사랑하는 형제로 변화 시킨다는 사실은 거의 덧붙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바울이 빌레몬서를 쓴 목적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수 있다.
① 오네시모에 대한 용서를 확실히 하기 위함
② 그리스도의 정신에 따라 노예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을 보여 주도록 지혜롭게 요구함으로서 노예제도의 근본을 겨누어 지적하기 위함
③ 그가 놓인후에 자신을 위한 처소를 예비케 하기 위함이라고 말할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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