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및 요한신학

세상 죄와 죽음을 지신 예수님 (요18-19장)

은총가득 2020. 4. 23. 23:55


        세상 죄와 죽음을 지신 예수님 (18-19     

 방다니엘 교수(신학박사 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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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구원(탈출) 받기 위한 과정에는 죽임 당한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른 후 죽음의 천사가 그 집을 넘어가는(유월, passover) 약속을 지키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선민에게는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죽임을 당하지 않았던 놀라운 역사가 있었다. 이것은 첫 번째 유월절로써 하나님께서 구원의 언약을 이루어주신 역사다(12). 이러한 유월절의 배경을 가지고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유월절 어린 양으로 지칭하면서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1:29)라고 선포하였다. 예수님은 유월절 어린 양과 같이 죽임을 당하고 피를 흘리시기 위하여 세상에 오셨다는 뜻이다. 이렇게 어린 양 예수님은 온 세상 사람을 구원하시는 새로운 유월절을 성취하시게 되었다. 18-19장에 기록된 예수님이 받으신 고난과 죽음과 묻힘은 유월절의 배경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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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수님은 요17장의 대제사장의 중보기도를 드리실 때에 말씀하신 대로 어느 사람들보다 먼저 하나님께 나아가서 완전한 예배를 드리시는 모습을 보여주신다. 사도바울은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12:1)고 피력한바 있으나 예수님 외에는 어느 누구라도 자기를 산 제물로 드리는 예배를 드릴 사람은 없다. 죄와 허물로 물든 죄인의 피를 하나님은 받으실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받으시고 기뻐하시는 예배는 오직 죄 없으신 예수님과 함께 드릴 수 있다. 여기에서 오직 예수님 한분만이 모든 사람을 대표(대신)할 수 있는 참사람이 되신다. 예수님은 인간이 범한 죄와 반역(sin and rebellion)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도 하시며 죄와 반역의 결과인 심판도 예수님이 대신 받으시게 된다. 하나님의 심판이 고난이든지 또는 죽음이든지 무엇이라도 예수님은 인간을 대신하여 형벌을 받으시게 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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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예수님은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17:1)라고 하면서 대제사장의 기도를 드리시기 시작할 때에 이미 죄와 반역의 결과인 죽음을 받아드리셨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아버지이실지라도 인간의 죄와 반역을 그대로 두지 않고 반드시 책벌하신다.” 아무리 죄와 허물이 없는 분이라도 예수님은 인간이 받아야 할 책망과 형벌을 자기가 앞장서서 받으시게 된 것이다. 예수님이 당하신 체포와 소송과 재판과 형벌과 죽음과 묻힘 등등은 우리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감사로 드리는 예배의 내용과 대상이 된다. 예수님은 내려갈 때까지 내려감의 처참한 모습을 요18-19장에서 보여주신다. 그 후에 비로소 하나님 아버지는 아들 예수님을 올라감의 자리에 놓아주신다. 구원의 완성은 이렇게 이루어졌다.

*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음에 대하여 상당한 오해가 있었다. 하나님께 기름 부음을 받은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시며 영원히 살아계실 것으로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으심과 떠나심을 누차 예고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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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2.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33. 이렇게 말씀하심은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보이심이러라

      34. 이에 무리가 대답하되 우리는 율법에서 그리스도가 영원히 계신다 함을 들었거늘 너는 어찌하여 인자가 들려야 하리라 하느냐 인자는 누구냐(Who is this Son of Man?)

      37. 이렇게 많은 표적을 그들 앞에서 행하셨으나 그를 믿지 아니하니

      39. 그들이 능히 믿지 못한 것은 이 때문이니 곧 이사야가 다시 일렀으되

      40. 그들의 눈을 멀게 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그들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였음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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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예수님은 죽을 것을 예견하시며 들린다,” “돌아간다,” “너희는 내가 가는 곳에 올 수 없다”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조금 더 있다가,” “아직 잠시 동안,” “때가 아직 낮이매,” “빛이 있을 동안에,” “밤이 오리니등등의 말씀을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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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조금 더 있다가(yet a little while)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가겠노라

     34. 너희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하시니

12:35.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yet a little while)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둠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둠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곳을 알지 못하느니라

13:33. 작은 자들아 내가 아직 잠시(yet a little while) 너희와 함께 있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을 것이나 일찍이 내가 유대인들에게 너희는 내가 가는 곳에 올 수 없다고 말한 것과 같이 지금 너희에게도 이르노라

9: 4. 때가 아직 낮이매(while it is day)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5.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17:12. 내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While I was with them in the world)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고 지키었나이다 그 중의 하나도 멸망하지 않고 다만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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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열거한 단어 중에서 아직 잠시 동안”(a little while)이라는 “until, as long as, 다른 활동이 있기까지는이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무슨 일(역사)가 일어날 것인지는 아무도 모르고 오직 예수님만 "아시고"(Gr. oida, know, 초자연적 영적 지식) 말씀하여 주시는 것이다. 영적인 장래의 일에 대하여는 눈과 마음이 가려진 자들에게는 알 수 없는 사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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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한복음 18:4, “예수님께서 그 당할 일을 다 아시고 나아가라고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은 앞으로 일어날 일을 미리 아셨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안다는 말은 헬라어의 “oida"이다. 그러한 지식이 주체자 자신 안에 이미 존재하기 때문에 인식한다 또는 감지한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 이것은 아는 힘이다. 한편 주체자(the subject)는 앞에 있는 대상 또는 대상자(객체, the object)에 대하여 능동적인 관계(an active relation)를 맺어줄 수 있는 적극적 기능을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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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5.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6.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knew)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42. 이르되 이는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그 부모를 우리가 아는데(know) 자기가 지금 어찌하여 하늘에서 내려왔다 하느냐

     61. 예수께서 스스로 제자들이 이 말씀에 대하여 수군거리는 줄 아시고(knew) 이르시되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

13: 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knew)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3. 저녁 먹는 중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knew)

      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하는 것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shall know)

     11. 이는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knew) 그러므로 다는 깨끗하지 아니하다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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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2.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KJV. hour, NIV. time)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17: 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KJV. hour, NIV. time)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19:14. 이 날은 유월절의 준비일이요 때(KJV. hour, NIV. hour)는 제육시라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 왕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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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헬라어에는 ”(time)라는 단어가 따로 있다. 그 대표적인 예로 “chronos”“kairos”. “chronos”(Gr)”(time), “. . . 할 때”, 또는 동안”(while)로 번역된다. 어떤 일이 일어날 정확한 때를 말할 수 없어서 기간을 뜻하는 경우에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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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5.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Gr. chronos)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둠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둠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곳을 알지 못하느니라.”

18: 4. “그가 얼마 동안(Gr. chronos)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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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ros”(Gr)계절, 시절(season), 알맞은 기회(opportunity), 특정한 때(occasion)"를 말한다. “. . . 라고 번역은 하지만 내용적으로 구체화 된 상항을 알 수 있는 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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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3. “바위 위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에 기쁨으로 받으나 뿌리가 없어 잠깐 믿다가 시련을 당할 때(Gr. kairos)에 배반하는 자요

1: 6.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Gr. chronos, time)니이까 하니

      7. 이르시되 때(Gr. chronos, times)와 시기(Gr. kairos, seasons)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여기에서 예수님은 두 가지 용어를 다 사용하신 점은 매우 흥미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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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이 받으신 고난과 십자가의 처형에 관한 기록은 사복음에 모두 기록되어 있으나 각각 특징 있게 기록하고 있다. 마태복음(26-27)에서는 인간의 연약성과 실패를 중심으로 다루면서 베드로의 배신과 가롯 유다의 불신앙을 심도 있게 다루었고, 마가복음(14-15)에서는 주님의 수난의 순서와 절차를 요약하여 기록하면서 주님의 십자가 위의 말씀들을 들을 수 있게 하였고, 누가복음(22-23)에서는 예수님의 고난에 비중을 두면서 십자가 위의 처절한 영적고통을 언급하였고, 요한복음(18-19)에서는 예수님이 인간 법정에서 재판 받으시는 모습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사복음의 기록을 종합하여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의 배경에는 어떤 핵심이 작용하고 있는가를 살피고 음미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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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 건너편으로 나가시니 그 곳에 동산이 있는데 제자들과 함께 들어가시니라고 하였다. 기드론 시내는 평소에는 간헐천이며 우기에만 시냇물이 흐른다. 그 곳에 있는 동산”(a garden)은 곧 겟세마네 동산이다. “겟세마네라는 말은 기름을 짜는 틀”(oil press)이란 뜻이다. 여기에서 예수님은 생애에서 가장 애절한 기도를 드리셨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기록을 참고하여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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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37.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 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38.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40.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42. 다시 두 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고

     44. 또 그들을 두시고 나아가 세 번째 같은 말씀으로 기도하신 후

22:41. 그들을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42.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43.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더라

     44.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in an agony) 더욱 간절히(more earnestly)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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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26:39),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22:42).

75:8. 여호와의 손에 잔이 있어 술거품이 일어나는도다 속에 섞은 것이 가득한 그 잔을 하나님이 쏟아 내시나니 실로 그 찌꺼기까지도 땅의 모든 악인이 기울여 마시리로다

51:17. 여호와의 손에서 그의 분노의 잔을 마신 예루살렘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일어설지어다 네가 이미 비틀걸음 치게 하는 큰 잔을 마셔 다 비웠도다

      19. 이 두 가지 일이 네게 닥쳤으니 누가 너를 위하여 슬퍼하랴 곧 황폐와 멸망이요 기근과 칼이라 누가 너를 위로하랴

      22. 네 주 여호와, 그의 백성의 억울함을 풀어 주시는 네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비틀 걸음 치게 하는 잔 곧 나의 분노의 큰 잔을 네 손에서 거두어서 네가 다시는 마시지 못하게 하고

25:15.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손에서 이 진노의 술잔을 받아가지고 내가 너를 보내는 바 그 모든 나라로 하여금 마시게 하라

      16. 그들이 마시고 비틀거리며 미친 듯이 행동하리니 이는 내가 그들 중에 칼을 보냈기 때문이니라 하시기로

      17. 내가 여호와의 손에서 그 잔을 받아서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신 바 그 모든 나라로 마시게 하되

      18.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과 그 왕들과 그 고관들로 마시게 하였더니 그들이 멸망과 놀램과 비웃음과 저주를 당함이 오늘과 같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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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44,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in an agony) 더욱 간절히(more earnestly)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힘쓰고 애써(Gr. agonia, agony)”라는 용어는 오직 한 번 여기에만 나온다. 육체적이고 영적인 투쟁을 의미하며 기도로 죽음을 준비하는 매우 어려운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또 예수님은 고민하고 슬퍼하사”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26:37-38)고 말씀하시고 기도하셨다. 무엇 때문에 예수님은 이러한 지경에까지 도달하게 되었는가? 육체적이고 영적인 투쟁의 내용은 무엇이기에 그렇게도 처절하단 말인가? 예수님은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다”(5:7)고 하기까지 피와 땀과 눈물의 기도를 드리기까지 한 이유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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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죄와 죽음에 관하여 명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예수님은 평소에 죽음의 필요성을 누차 강조하셨다. 그러나 죽음을 바로 앞에 놓은 상항 아래에서는 그 참상을 실감하게 된다. 특별히 영원한 죽음이라는 것은 영적 차원에서 느껴지는 것이기 때문에 육적 차원에 있는 사람들은 이해하기가 어렵고 따라서 예수님의 이러한 힘쓰고 애쓰심(agony)”을 실감할 자는 없다. 성경에 표현된 내용을 그저 지식으로 듣고 배우고 알 뿐이다.

12:32.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33. 이렇게 말씀하심은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보이심이러라

18:31.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가 그를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한이 없나이다 하니

      32. 이는 예수께서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가리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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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죄의 결과는 죽음을 가져온다. 죽음은 영원한 심판의 끔찍한 상태를 여실히 보여주는 실증(reality)이다. 예수님의 죽음은 돌이킬 수 없는 죄와 죽음을 영원한 의와 생명으로 돌이키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에덴동산에서 범한 죄악은 이제 겟세마네와 갈보리의 동산에서 형벌(죽음)을 가져온다. 첫째 아담의 죄악은 둘째 아담의 죽음에서 결론을 맺는다. 영원하신 예수님은 죄악으로 인하여 죽음을 당하시고 영원하신 하나님과 단절되는 참담한 현실로 들어가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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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7.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18.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19.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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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예수님은 세 번씩이나 아버지 하나님께 똑같은 기도를 드리셨다.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26:39). 사람은 자기들의 죄악으로 하나님을 떠나야만 하였고 하나님은 사람을 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제 예수님은 죄인과 같이 아버지의 버림을 받게 되셨다. 죄는 없어도 세상의 모든 죄를 지고 죽을 수밖에 없는 마지막 순간을 마지하신 것이다. 이것이 곧 영원과의 단절이다. 너무나도 처절한 것이다. 모든 축복은 영원 속에 포함되어 있다.” 죽음은 그 축복의 영원을 포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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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하나님은 죄를 알지도 못하신 예수님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셨고(고후5:21) 우리를 위하고 대신하여 저주를 받게 하셨다(3:13). 아버지 하나님은 택하신 자녀들을 버리지 아니하신다고 약속하셨으나 당신의 외아들(독생자)은 버려야만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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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27:46) 하며 크게 소리를 지르셨다. 이것은 바로 예수님이 받으신 ”(죽음, 형벌)이었다. 예수님은 완전한 하나님 완전한 사람이셨으나 세상 죄를 위하여 버림받고 저주를 당하셨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 하나님의 오묘하고도 놀라운 그 은혜를 우리들의 지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예수님은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절한 기도를 드리셨을 뿐이며 전적으로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셨다. “예수님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다”(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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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3.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24.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5: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2: 9.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시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9:15. 이로 말미암아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22.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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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의 죽음과 관련된 일들은 성경을 응하게 하심이었다고 가르쳐주고 있다.

(1) 19:24. 군인들이 서로 말하되 이것을 찢지 말고 누가 얻나 제비 뽑자 하니 이는 성경에 그들이 내 옷을 나누고 내 옷을 제비 뽑나이다 한 것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군인들은 이런 일을 하고

    (cf. 22:16.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17. 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 그들이 나를 주목하여 보고

               18.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2) 19:28. 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cf. 69:21. 그들이 쓸개를 나의 음식물로 주며 목마를 때에는 초를 마시게 하였사오니)

(3) 19:36. 이 일이 일어난 것은 그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리라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

    (cf. 12:46. 한 집에서 먹되 그 고기를 조금도 집 밖으로 내지 말고 뼈도 꺾지 말지며

            민 9:12. 아침까지 그것을 조금도 남겨두지 말며 그 뼈를 하나도 꺾지 말아서 유월절 모든 율례대로 지킬 것이니라)

(4) 19:37. 또 다른 성경에 그들이 그 찌른 자를 보리라 하였느니라

     (cf. 12:10.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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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의 죽음으로 인한 제자들과의 결별은 사람의 심정과 지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음으로 실망과 좌절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죽음 이전의 일들과 죽음 이후의 일들과의 사이에 연결고리가 단절되어 보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약속은 처음부터 함께라는 일체감을 이루는 일이었으나 겟세마네동산으로 가신 이후로부터는 모든 상항이 완전히 바뀌고 만다. 하늘의 권위와 능력은 사라지고 연약한 한 인간의 모습만이 나타난다. 과연 예수님의 약속을 믿을 수 있겠는가? 예수님과 하나님과의 하나 되심은 어디에 있는가? 평안과 기쁨은 유효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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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9.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20.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가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놀랍게 여기게 하시리라

      21.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6:37.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38.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8:28.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인 줄을 알고 또 내가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

      29.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12:44. 예수께서 외쳐 이르시되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며

      45.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라

      46.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둠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

14: 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9.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10.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11.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

     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17:21.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22.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23.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15: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16:23.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17:21.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22.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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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죄 없는 예수님이 사람 사이에서 당하는 모든 일은 우리 사람들이 죄와 허물로 죽은 모습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그 죄와 허물을 예수님은 다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 사람들의 죄와 허물을 수난과 죽음의 기록(:26-27)의 일부만 열거하여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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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4. 예수를 흉계로 잡아 죽이려고 의논하되

      8. 제자들이 보고 분개하여 이르되 무슨 의도로 이것(귀한 향유 한 옥합)을 허비하느냐

     15.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47. 말씀하실 때에 열둘 중의 하나인 유다가 왔는데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큰 무리가 칼과 몽치를 가지고 그와 함께 하였더라

     49. 곧 예수께 나아와 랍비여 안녕하시옵니까 하고 입을 맞추니

     51. 예수와 함께 있던 자 중의 하나가 손을 펴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

     57. 예수를 잡은 자들이 그를 끌고 대제사장 가야바에게로 가니 거기 서기관과 장로들이 모여 있더라

     60. 거짓 증인이 많이 왔으나 얻지 못하더니 후에 두 사람이 와서

     67. 이에 예수의 얼굴에 침 뱉으며 주먹으로 치고 어떤 사람은 손바닥으로 때리며

     68. 이르되 그리스도야 우리에게 선지자 노릇을 하라 너를 친 자가 누구냐 하더라

     72. 베드로가 맹세하고 또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더라

27: 2. 결박하여 끌고 가서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 주니라

      22.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하랴 그들이 다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26. 이에 바라바는 그들에게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27. 이에 총독의 군병들이 예수를 데리고 관정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그에게로 모으고

      28. 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

      29. 가시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30. 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

      31. 희롱을 다 한 후 홍포를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35. 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그 옷을 제비 뽑아 나누고 40. 이르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37. 그 머리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 예수라 쓴 죄 패를 붙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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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하신 말씀 (가상칠언, 架上七言)

(1) 23:34.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그들이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

       (“Father, forgive them, for they do not know what they are doing.”)

(2) 23: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I tell you the truth, today you will be with me in paradise.”)

(3) 19:26.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Woman, behold thy son!”)

           27.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Behold thy mother!)

(4) 27:46.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Eloi, Eloi, lama sabachthani?” - which means, “My God, my God, why have you forsaken me?”)

(5) 19:28. 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NIV, “I am thirsty.” KJV, “I thirst.”)

(6) 19: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It is finished.”)

(7) 23:46.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

        (“Father, into your hands I commit my spir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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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헬라어의 완료형 동사(Perfect Tense in Greek)의 해석

신약성경에서 완료형 동사로 나오는 헬라어는 완성된 동작을 의미하며 그 동작의 효과가 현재 그대로 유효한 상태를 지닌다. 그 동작의 결과가 현재 그대로 존속하고 있다는 뜻이다. 사고 구조로 표현한다면 . . . 그리고 아직 그대로 있다” (and now still is)고 말할 수 있다. 매우 중요하므로 반드시 기억하고 있어야 할 사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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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30. “다 이루었다”(It is finished..)는 헬라어(Gr. tetelestai)에서 완료형 동사이다. 예수님의 죽음으로 다 이루어진 구속의 역사는 그때 완성된 결과를 가져왔고 현재 그 결과가 그대로 유효하다는 명백한 뜻을 전하여준다. 한 번 이루어진 역사가 영원히 계속되고 있다는 뜻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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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9,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시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에서 관을 쓰셨다”(crowned)는 헬라어에서 완료형 동사이다. “죽음의 고난을 통과하신 예수님은 관을 (이미) 쓰셨는데” “현재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고 존재하신다는 깊은 뜻과 해석을 우리들에게 전달하여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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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I have been crucified with Christ.)라는 바울의 고백도 완료형이므로 나는 이미 죽었고 지금도 죽은 자기를 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