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생명의 양식이신 예수님 (요6장)
영원한 생명의 양식이신 예수님 (요6장)
방다니엘 교수(신학박사 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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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 . .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요6:57,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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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한복음 6장의 내용은 아래와 같이 세 가지로 크게 요약할 수 있다. 요한복음의 7표적 (signs) 중에서 네 번째 표적과 다섯 번째 표적이 요6장에 기록되면서 여기에서도 표적들이 가리키는 목적이 요20:30-31의 기록과 같이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제자들이 믿고 또 믿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되는 사실들”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고 또 예수님은 표적과 더불어 말씀강론으로 “생명의 증거”를 주신내용들이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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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오병이어(五餠二魚)로 오천 명을 먹이신 예수님: 요6:1-15
둘째, 물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신 예수님: 요6:16-21
셋째, 영원한 생명의 양식이신 예수님 자신을 설명하심: 요6: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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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한복음 5장의 내용은 예루살렘에서 38년 된 불구자를 치료하여주신 표적을 중심으로 전개하고 있으며 6장의 내용은 갈릴리 지역에서 오병이어로 백성을 먹이신 표적과 물위로 걸어 제자들에게 오신 표적을 중심으로 전개하고 있다. 5장의 표적과 6장의 표적이 발생한 지역과 시간은 다를지라도 요5-6장 전체의 기록에 흐르고 있는 중요한 핵심사항은 예수님의 신성(deity, 하나님 되심)을 일관되게 증거하고 있다. 특별히 예수님은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5:17)고 말씀하시면서 아버지와 아들은 동등한 관계 속에서 말씀도 하시고 사역도 하시고 있음을 강조하셨다. 요한복음 5장에서는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요5:21), 요한복음 6장에서는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 . .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요6:57, 51)고 말씀하시며 “예수님은 영원한 생명의 원천이 되심”을 가르쳐 주셨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요6:68)라는 신앙고백을 하게 되었다. 이 세상에서는 누구도 예수님과 같이 죄로 죽은 나를 살리며 구원하여 줄 사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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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6:1-15에 기록된 오천 명을 먹이신 예수님의 표적은 공관복음(마14:14-21; 막6:30-44; 눅9:10-17)에도 일관하여 기록하고 있을 정도로 매우 중요하다. 그 중요성은 예수님께서 신성(deity)을 소유하고 계시다는 사실과 예수님과 예수님의 말씀은 사람이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는 참된 양식이라는 사실에 있다. “영원한 생명의 양식”이라는 것은 사람의 육적인 소욕을 채우는 것을 능가하여 영혼의 만족과 구원의 영원성을 주신다는 사실에 최대의 가치가 부여되고 있다. 요한복음과 공관복음에 기록된 내용들을 종합하여 비교하여 보게 되면 예수님의 성품과 예수님의 사역의 특성을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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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병이어(五餠二魚)로 오천 명을 먹이신 표적에서 먼저 알아두어야 하는 사실은 “병”(餠)이라는 말은 우리말로는 “떡”으로 번역되어 있어서 매일의 생활과 직결되지 않고 있다. “떡”이란 것은 특별한 때에 또는 일 년에 몇 차례 별미로 먹는 별식이나 과자류로 취급된다. 요6:9에는“보리 떡 다섯 개”(five barley loaves, NIV), 마14:17에는 “떡 다섯 개”(five loaves of bread, NIV), 막6:38에는 “떡 다섯 개”(five loaves, NIV), 눅9:13에는 “떡 다섯 개”(five loaves of bread, NIV)로 표현된 “떡”(우리말)은 “loaves of bread”(작은 빵 덩어리)를 의미한다. “빵”(bread)이란 것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하여 매일 삼시세끼를 반드시 먹어야 하는 “양식”이며 “밥”(food)이지 결코 “떡”(rice cake)이 아니다. “빵”(떡)을 제때에 먹지 않으면 생명을 잃고 죽게 된다. 예수님 당시에 부요한 사람들은 “밀가루 빵”(wheat bread)을 먹었고 가난한 사람들은 “보리 가루 빵”(barley bread)을 먹었다. 본문에서 어린아이가 점심용으로 가져온 것은 “작은 보리 빵”(small barley loaf)이었다. 성경에서 “빵”(bread, 떡)은 지상에서 우리들의 생명을 유지하게 하여주는 양식(food, 밥)이다. 이와 같이 영원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하여서는 영원한 생명의 양식을 먹어야 한다는 영적 가르침을 포함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첫째 시험을 당하셨을 때에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빵, bread)가 되게 하라”(마4:3)는 유혹을 “사람이 떡(빵, bread)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4:4)고 말씀하신 것을 보더라도 사람에게는 영혼의 양식을 매일 먹어야 한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쳐주신 것이다.
2. 큰 무리들은 예수님의 치유의 표적을 이미 보고 따라왔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들을 영접하사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야기하시며 병 고칠 자들은 고치시더라”(눅9:11)고 하였고 한편 무리들은 자기들의 먹을 것을 가지고 오지 않은 상태에 있었다. 예수님은 큰 무리들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다.” 그리고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방황하는 모습”(마9:36)으로 보신 것이다 (But when he saw the multitudes, he was moved with compassion on them, because they fainted, and were scattered abroad, as sheep having no shepherd.). 예수님은 무리들을 어떻게 하여야 하실지 아시고 계셨다(He already had in mind what he was going to do. 요6:6). 사람을 보시고 아시는 예수님은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채워주시는 주님(the Lord)이신 사실을 요1장에서 제자들을 부르실 때에, 요2장에서 가난의 잔치 집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실 때에, 요3장에서 방황하는 니고데모를 구원하실 때에, 요4장에서 사마리아의 여인과 동네 사람들을 부르실 때와 그리고 왕의 신하의 아들을 살려주실 때에, 요5장에서 안식일에 38년 된 불구자를 치료하실 때에 계속하여 보여주셨다. 예수님은 우리들 각자가 무엇을 어떻게 하여야 하며 우리들의 필요가 무엇인지 알고 채워주시는 주님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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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예수님은 한 나병환자를 고쳐주실 때에도 “불쌍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막1:41)고 말씀하시며 치료하여 주셨다. “불쌍히 여기사”(filled with compassion)는 “자비”(mercy)와 “사랑”(love)의 말씀이다. 예수님은 언제나 이러한 “사랑의 하나님의 동기”를 바탕으로 삼고 우리에게 오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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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일반 사람들은 예수님과 다르다. 본문을 보면 제자들은 “사람들을 다 돌려보내자”고 제안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단호하게 거절하시고 “보낼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마14:16)고 강경하게 명령하셨다. 빌립은 장정 5,000명만 먹이는 비용으로 200데나리온이 필요하다고 계산해 내었다. (한 사람의 하루 품삯이 한 데나리온인데 그것으로 25명을 먹인다고 해도 200데나리온이라는 합산이 나온다.) 불가능하다는 항거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친히 어떻게 하여야 하실 것을 미리 알고 계셨다”(요6:6)고 하였다. 여건과 환경이 하나님의 일을 못하도록 한다는 사람들의 부정적 주장에 대한 해결책을 예수님은 자상하게 보여주셨다. “예수께서 떡(빵 덩어리, five barley loaves)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요6:11)고 하였고 또 그들은 “배불렀다”(요6:12), 즉 만족하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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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오병이어는 작고 적은 자원이었으나 예수님의 손에서 크고 많은 “축복의 양식”이 되었다.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습니까”(요6:9)라고 할 정도에 불과하였으나 이것을 예수님께서 축복하실 때에 놀라운 기적이 발생하여 다 먹고도 남은 조각이 12바구니에 찼다. 장정만 5천, 여인과 아이들까지 합치면 약 2만 명이 배불리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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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오병이어의 표적에서 절대로 간과하지 말아야 할 사항은 “예수님의 제자들을 위한 준비와 신앙교육”이다. 큰 무리를 어떻게 사역하여야 하는가에 대하여 제자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예수님은 친히 사역에 임하고 계신다. 또 성경해석에 중요한 “문맥” (context)의 일관성을 오병이어 이후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바다 위로 걸어오신 표적”에서 볼 수 있다. 어떠한 악조건에서도 하나님의 일은 진행된다는 교훈에 대한 실증이다. 이러한 배경은 본문의 기록(6:5-9, 12-13, 16-21)에 자세히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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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6.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7.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8.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9.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12. 그들이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13.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16. 저물매 제자들이 바다에 내려가서
17.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는데 이미 어두웠고 예수는 아직 그들에게 오시지 아니하셨더니
18. 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나더라
19. 제자들이 노를 저어 십여 리쯤 가다가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심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7. 큰 무리를 먹이신 사례는 구약의 엘리사 선지자의 기적(왕하4:42-44)에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오병이어의 표적에 대한 예표가 된다. 제자 안드레는 오병이어를 예수님께 가지고 와서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6:9)라며 항변하는 장면과 엘리사의 사환이 보리빵 20개를 들고 “내가 어찌 이것을 백 명에게 주겠나이까”(왕하4:44)라며 불신하는 모습은 사역의 문제점을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떡”(빵)의 분배는 강행하게 되었고 결과는 배불리 먹고도 남게 되었다는 엄연한 역사적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제자들에게는 언제나 올바른 교육과 훈련이 제공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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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하4:42. 한 사람이 바알 살리사에서부터 와서 처음 만든 떡 곧 보리떡 이십 개(twenty loaves of barley bread baked)와 또 자루에 담은 채소를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린지라 그가 이르되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43. 그 사환이 이르되 내가 어찌 이것을 백 명에게 주겠나이까 하나 엘리사는 또 이르되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여호와의 말씀이 그들이 먹고 남으리라 하셨느니라 (Elisha answered, “Give it to the people to eat. For this is what the LORD says: ‘They will eat and have some left over.’”)
44. 그가 그들 앞에 주었더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먹고 남았더라
8. 큰 무리를 먹이시는 하나님의 사역은 모세의 사역에도 나타나고 있음을 예수님께서는 구약을 인용하시면서 요6:31-32에서 설명하신다. 저자 요한은 엘리사/엘리야 또는 모세를 언급하면서 예수님의 사역은 구원의 역사(salvation history)의 산 증거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가르치고 있다. 이러한 구약의 증거는 “변화산 사건”에서도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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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30. 그들이 묻되 그러면 우리가 보고 당신을 믿도록 행하시는 표적(sign)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
31. 기록된바 하늘에서 그들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
3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모세가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떡(the bread from heaven)을 준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참 떡(the true bread from heaven)을 주시나니
33.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34. 그들이 이르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I am the bread of life.)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9.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사역은 “생명의 양식”을 먹여야 하는 사역이다. 어떤 환경에서라도 “말씀 공급의 사명”은 절대로 소홀히 할 수 없다. 믿음을 가지고 “어떻게 하여야 하실 것을 미리 아시는” “예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말씀사역에 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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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그런데 예수님의 마음과 사람들의 소원은 일치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나타난다.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신 놀라운 표적(sign)을 체험한 사람들은 표적(sign)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예수님을 잡고 억지로 왕을 삼으려고 하였고 또 사람들은 계속하여 예수님을 찾았다. 예수님은 빌라도의 법정에서도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요18:36)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이제 본문에서 예수님이 주신 말씀은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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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4. 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15.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니라
26.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You seek Me, not because you saw signs, but because you ate of the loaves and were filled.)
27. 썩을 양식(food that spoils)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food that endures to eternal life)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
28. 그들이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2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The work of God is this: to believe in the one he has sent)하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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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풀어주신 목적 (6:22-27)
1.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기 위한 “은혜와 진리의 사역”(1:17)이 목적이다. 예수님은 “은혜”로 굶주린 백성들을 먹여주셨고 “진리”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주셨다. 그러나 백성들은 은혜는 받고 진리는 받지 않았다. 먹을 것은 원하였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원치 안했다. 겉 사람(육체)을 위한 음식은 환영하고 속사람(영)을 위한 음식은 배척하였다. 예수님은 “생명”을 주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러나 사람들은 “음식”을 먼저 원하였다. 뒤집힌 순서와 방법을 따랐던 사실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일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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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6.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6:27.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 치신 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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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사야 선지자는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사55:2)고 이스라엘 백성을 꾸짖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권위와 능력을 가지고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 “아버지의 인 치심을 받은 자” (On him God the Father has placed his seal of approval)로써의 말씀과 약속을 이루어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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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의 살과 피: 참된 양식과 참된 음료(6:51-59)
1. 예수님은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6:55)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셔야 영원한 생명을 가지게 되며 끊을 수 없는 관계가 성립된다. 예수님의 살과 피는 예수님의 희생과 죽음을 의미한다. 아담이 범죄 한 후에 하나님께서는 한 짐승의 가죽 옷을 입혀주셨다. 한 짐승의 모든 살과 피는 아담을 위하여 희생되었다(창3:21). 예수님의 희생과 죽음은 이와 같이 창세기에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완성한 것이다.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세상을 위하여(3:16; 6:51), 양들을 위하여(10:11, 15), 민족과 백성을 위하여(11:50, 52), 또 친구를 위하여(15:12) 죽으셨다고 가르치고 있다. 갈라디아서 2:20에서는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셨다”고 하였고, 요한1서 2:2에서는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가 온 세상을 위하여 화목제물이 되셨다”고 가르치고 있다. 따라서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므로 말미암아 우리들은 구원을 받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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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예수님의 살과 피는 매일의 생명을 유지하는 양식이다. 음식물은 반드시 매일 먹어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영혼의 생명을 날마다 유지하기 위하여서도 영혼의 양식(=예수님의 말씀)을 매일 먹어야 한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영생의 말씀이신 예수님”을 떠나갈 수 없다는 신앙고백을 하였다. 요5:39과 요6:67-69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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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6:67.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68.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69.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
3. 성찬식에서 예수님의 몸과 피를 기억하는 것은 주 예수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실 때까지 기념하는 것이며 여기에서 언급하는 살과 피는 영원히 우리들의 생명을 유지하여 주시는 예수님 자신과 예수님의 말씀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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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예수님의 생명의 피와 살에 관한 말씀에는 축복의 약속이 포함되어 있다(6:22-59).
가. 만족: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6:35)
나. 지킴: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6:39)
다. 보상: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6:40)
라. 생명의 피와 살: 영적 능력, 영적 성장, 영적 만족을 보장함(6:3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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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36.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 하였느니라
37.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38.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 요절의 말씀 (요한 6장에서)
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6:51).
2.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6:63).
3.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6: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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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6:16-21: 물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신 예수님
오병이어로 장정만 계산해도 오천 명을 배부르게 먹여주신 표적(sign)을 보여주신 이후에 바다의 험한 풍랑 속에서 생사의 갈림길에서 허덕이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바다 위로 걸어오신다. 왜 여기에서 이러한 기적적인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가를 살펴볼 때에 두 가지 중요한 이유를 발견하게 된다.
첫째, 표적(sign)의 목적을 분명하게 제시하기 위함이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큰 무리에게 필요한 음식을 충족하게 공급하여 주었다는 놀라운 사실이다. 이러한 기적을 체험한 사람들은 기적 자체에 놀라움을 나타내며 기적을 수행한 사람의 중요성을 간과하기 쉽다. 다시 말하면 오병이어의 기적에서 기적 자체와 기적을 행하신 예수님을 놀라운 사람으로 여기게 되었으나 그 예수님이 하나님의 신성(deity)을 가지신 하나님으로 여기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억지로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고 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오병이어의 성공적인 사례를 놓고 제자들도 흥분의 도가니 속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것은 자연적인 결과다. 그런데 인생의 삶은 호사다마(好事多魔)의 연속이다. 험한 풍랑 속에서 제자들은 새로운 교훈을 예수님으로부터 배워야 하였다. 풍랑의 시련 속에서 “물위로 걸어오신 예수님”을 체험한 후에 제자들은 “예수님의 생명의 떡에 관한 교훈”을 “오병이어의 표적”과 함께 연관하여 깨닫게 되었다. 실제로 “생명의 떡”에 관한 교훈은 매우 이해하기 어렵다. 예수님 자신이 “생명의 떡”이라는 말씀을 듣고 “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6:66)고 하였다. 이때 예수님은 12 제자에게 “너희도 (떠나) 가려느냐”(6:67)라고 질문하신다. 12제자를 대표하여 시몬 베드로가 이렇게 대답하였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6:68-69). 이러한 신앙고백은 누구나 할 수 없다. 오직 예수님의 행하신 기적들(miracles)을 보고 그 기적이 곧 예수님의 신성(deity)을 계시하는 표적들(signs)이라는 사실을 바르게 체험하게 하여주실 때에 비로소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고 따르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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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표적(sign)을 행하시면서 직접적으로 예수님의 신성(deity)을 계시(reveal)하여 주시려는 목적이 풍랑의 바다를 걸어오신 예수님에게서 나타난다. 격한 풍랑의 바다 위로 걸어오신 예수님의 모습은 “하나님의 나타심” (theophany)의 현장(presence)이다. 이 표적(sign)은 제자들에게만 보여주셨고 그들에게 믿음을 주시려고 하신 것이었다. 험난한 시련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될 때에 예수님을 확고부동하게 믿고 따르는 원동력이 유지된다. 이러한 체험은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함께 계신다는 믿음을 지키게 하여준다. 본문을 참고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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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6. 저물매 제자들이 바다에 내려가서
17.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는데 이미 어두웠고 예수는 아직 그들에게 오시지 아니하셨더니
18. 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나더라
19. 제자들이 노를 저어 십여 리쯤 가다가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심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20. 이르시되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It is I; don't be afraid.”) 하신대
21. 이에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배는 곧 그들이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
1. 제자들은 예수님과 동행하지 않고 바다를 건너가려고 할 때에 심한 풍랑을 만나게 되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바닷물 위로 걸어오셔서 그들과 함께하여 주실 때에 그들은 “두려워 하였다”(6:19). 심지어 제자들은 예수님을 “유령”(a ghost)으로 착각하였다(마14:26; 막6:49). 예수님은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It is I; don't be afraid.” 6:20)고 말씀하시며 제자들을 위로하셨다. 마태복음 14장의 기록을 보면 예수님께서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마14:32)고 하였다. 이때 제자들은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Truly you are the Son of God. 14:33)라는 신앙고백을 하였다. 바닷물 위로 걸어오신 표적에서 예수님의 신성을 알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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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내다”(It is I. Gk. ego eimi)라는 말은 구약에서 “여호와 하나님”(God. Jehovah)의 이름으로써 “스스로 계신 분”(“I am”)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라”(As I was with Moses, so I will be with you; I will never leave you nor forsake you.)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이름은 모세가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났을 때에 “하나님의 이름이 무엇입니까?”(출3:13)라는 질문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직접 알려주신 이름이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I am who I am” 출3:14)고 말씀하여 주셨다. “스스로 계시는 하나님”(“I am”)은 언약의 말씀(the covenant)을 일방적으로 선민에게 주시고 “그 약속을 지키시며” 언약을 맺어주신 “선민을 떠나지 아니하고 버리지 아니하고 늘 함께하여 주신다.” 예수님은 “아버지와 동등하신 아들”로써 언제나 제자들과 함께 계셔서 구원을 이루어주신다. 예수님은 승천하실 때에도 이 약속의 말씀을 제자들에게 확인하여 주셨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Surely I am with you always, to the very end of the age.” 마2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