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및 요한신학

요한복음 어떻게 묵상할 것인가 / 김동수

은총가득 2020. 3. 27. 17:14

 

 

요한복음 어떻게 묵상할 것인가 / 김동수

  

    -복음은 바로 예수다!

. 들어가는 말

우리 말로 요한복음이라고 부르는 것은 정확히 말하면 요한에 의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이다. 이 말은 이 책의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것이고, 요한은 이것을 기록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신약의 정경에 있는 사복음서는 모두 이런 식의 제목을 갖고 있다. 즉 마태에 의한 복음, 마가에 의한 복음과 누가에 의한 복음이다. 그런데 정경 이외의 복음서, 예를 들면 한 때 매스미디어의 주목을 받았던 유다복음서는 책 제목 자체가 유다에 의한 복음서가 아니라 유다의 복음서로 되어있다. 즉 외경 복음서는 예수보다도 저자 자신의 어떤 사상을 전파하려고 하는 의도가 더 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정경 복음서 자체에는 저자 자신의 이름도 제목에 나오지 않는다. 후대에 그것을 붙였을 뿐이다. 이것은 복음서 저자는 자신을 나타내려는 목적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가르침을 기록함으로써 복음을 소개하려는 목적으로 이 책을 썼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요한복음서는 사복음서 중의 하나다. 사복음서는 예수의 말씀과 행적을 균형 있게 기록한 책들이다(1:8). 외경 복음서 중에는 예수의 말씀만 있는 것도 있고(. 도마복음서), 수난사화만 있는 것도 있고, 어린 시절 이야기만 있는 것들도 있다. 하지만, 사복음서 모두는 예수의 가르침과 행적을 균형 있게 기록하고 있다. 예를 들어 마태는 예수의 행적과 가르침을 번갈아 가면서 배치하고 있고, 요한복음은 예수의 표적에 뒤이어 예수의 긴 강화만 뒤따른다.

 

그런데 사복음서 중에서 요한복음을 제외한 나머지 세 복음서를 공관복음서라고 부른다. 그 뜻은 같은 관점으로 기록된 복음서라는 것이지만, 사실 같은 관점이라기보다는 비슷한 관점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마태, 마가, 누가는 나름대로 독특한 관점으로 자신과 독자의 상황에서 자신의 문체로 예수의 가르침과 행적을 기록했다. 그래서 각 복음서는 독특하다. 그런 독특성이 있지만, 이것들을 요한복음과 비교하면 공관복음서는 매우 비슷하다. 예수의 사역을 갈릴리에서 시작하여 그 이외의 지역으로 확장하고 마지막으로는 예루살렘에서 끝맺는다는 것, 예수의 가르침의 주제가 하나님 나라라는 것, 예수가 하나님 나라를 비유를 통해서 설명한다는 것 등 모두 동일하다.

 

 이에 비해, 요한복음은 예수의 가르침보다는 예수 자신이 누구인가 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예수의 비유 가르침이 기록되어 있지 않으며, 공관복음에 그처럼 흔하게 기록되어 있는 축귀 기사도 없고, 예수가 사역의 시작부터 전지한 인물로 사람들과의 대화를 주도한다는 면에서 공관복음서와는 다르다. 또 문체도 매우 독특해서 비록 요한이 어떤 자료를 사용해서 이것을 기록하고 있겠지만, 사실 그 자료를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자신의 말로 표현한다는 면에서 요한은 남다르다.

 

우리가 요한복음을 올바로 이해하는 출발점은 이러한 독특한 요한의 목소리를 그대로 들으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복음서 저자 각자는 자신의 관점에서 예수가 누구인지, 또 그의 가르침과 행적은 어떤 것인지 특정한 사람들에게 알려주려는 목적으로 기록했다. 요한은 요한 나름대로의 목적이 있었고, 자신의 관점이 있었으며, 또 자기 나름대로의 문학적 표현 방식으로 이를 기술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요한복음을 잘 이해하려면 예수 이야기를 통해서 그가 무슨 말을 전달하려고 하는지 귀 기울여 들을 필요가 있다. 누가의 렌즈나 바울의 렌즈로 보지 말고, 요한 자신의 렌즈로 그를 보면서 그의 목소리 자체를 들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런데 이러한 작업은 녹녹한 일이 아니다. 우리는 어떤 글을 읽기 전에 이미 그 글에 대한 선입견 혹은 전 이해를 알게 보르게 가지고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요한의 글쓰기 방식, 내러티브의 구조, 그의 사상 체계 등에 유의하면서 그가 예수와 그의 말씀과 행적에 대해서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찾아내 보아야 할 것이다.

 

. 요한복음의 구조와 흐름

1. 요한복음의 흐름

다른 정경 복음서들과 마찬가지로 요한복음은 장절로 끊어서 읽기보다는 한 번에 쭉 읽어나가도록 기록된 것이다. 처음부터 끝가지 읽음으로써 자연스럽게 예수의 행적과 말씀과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공관복음서를 읽을 때 우리는 에피소드와 에피소드 사이에 어떤 이음새를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다. 마치 옷 안쪽을 보여서 바느질한 부분이 쉽게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요한복음서에서는 이런 이음새를 찾아내기가 좀 더 어렵다. 분명히 이음새는 있지만 마치 옷의 안쪽이 아니라 바깥쪽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비록 이음새가 있지만, 그것이 자연스럽게 하나의 옷을 형성하듯이 요한복음은 그렇게 되어 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그 바깥쪽의 이음새는 다른 복음서에서보다 더 명확하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옷의 각 부분의 색깔이 확연히 구분되기 때문이다. 요한복음은 서문(1:1-18)이라는 분명하게 구별되는 색깔부분으로 시작된다. 문학적 장르상, 이것은 산문이 아니라 시이고, 내용도 본론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을 맛보기로 핵심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또 요한복음은 에필로그(21)라는 뚜렷한 색깔의 끝 부분을 가지고 있다. 바로 앞에서 본론이 끝났는데, 새로운 내용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것을 우리는 에필로그라고 부를 수 있다. 이것을 통해서 저자는 이 책이 쓰인 정황을 말하려고 했던 것이다.

 

  또 이제 옷의 몸체라고 할 수 있는 부분도 두 부분으로 확연히 구분된다.

 첫 번째 부분에서는 예수가 표적을 행하고, 그가 과연 누구인가 하는 질문에 답하는 여러 기사들로 구성되어 있다(1:19-12). 여기서 예수는 표적을 행하고, 이에 어떤 사람들은 믿음으로, 다른 사람은 불신앙으로 반응한다. 또 불신앙으로 답한 사람들이 집단으로 나온다. 이들은 유대인이라 불리운 사람들로 당시 유대고 당국자들, 특별히 바리새인들을 가리킨다. 일반 대중들 중에는 이 표적에 대해 신앙으로 화답한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학자들은 이 부분을 흔히 표적의 책이라고 말한다.

 

두 번째 부분(13-20)은 예수가 이제 대중이 아니라 제자들과 상대하면서 예수의 사명과 그들의 사명을 가르쳐주는 것들로 구성되어 있다. 예수는 자신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서 말하고, 그것에 의해서 형성될 교회에 대해서도 말한다. 또 교회 시대에 제자들을 인도할 보혜사 성령에 대해서도 계시해주며, 이들을 위해서 길게 기도하기도 한다. 결국 예수는 십자가로 죽음의 길을 가고, 부활해서 제자들에게 성령을 수여하면서 소명을 준다. 이렇게 예수가 사명을 감당하는 것을 요한은 영광이라는 개념으로 표현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 부분을 영광의 책이라고 말한다.

 

2. 구조 한 눈에 보기

1. 프롤로그(1:1-18)

2. 표적의 책(1:19-12:50)

1) 예수 소개(1:19-51)

2) 예수의 표적과 계시(2:1-22)

3) 사람들과 호의적으로 만나는 예수(2:23-4:54)

4) 유대인들과 충돌하는 예수(5:1-10:42)

5) 영광의 시간을 향해 전진하는 예수(11:1-12:50)

3. 영광의 책(13:1-20:31)

1) 최후의 만찬장의 예수(13:1-30)

2) 예수의 고별 설교(13:31-16:33)

3) 예수의 고별 기도(17:1-26)

4) 예수의 수난(18:1-19:42)

5) 예수의 부활(20:1-31)

4. 에필로그(21:1-25)

 

 

. 요한복음의 주요 주제

1. 예수

요한복음의 제일 주제는 예수의 어떤 말씀이라기보다는 예수 자체다. 요한복음은 사실 예수가 누구냐는 문제에 대해, 요한이 답을 제시하는 것이다. 우리는 아들, 하나님의 아들, 인자, 그리스도와 같은 예수의 신분을 나타내는 말에서 그 답을 찾을 수도 있고, 예수가 자신이 누구인지를 천명한 생명의 떡, 선한 목자, 양의 문, 참포도나무, 부활과 생명 같은 말에서 그것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고난을 힘이 없어 당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순종하는 아들로서, 또한 그의 나라의 왕으로서 당당하게 수난의 길을 걸어가는 모습(18-19) 속에서 예수가 누구인지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또 항상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예수의 본질을 볼 수도 있다. 어쨌든 요한복음의 주제는 예수다.

 

2. 영생

요한복음 내러티브의 본 주제가 예수라면, 예수의 말씀의 주제는 영생이다. 예수는 사람들이 정말로 얻어야 할 것이며, 자신이 궁극적으로 주고자 하는 것을 영생이라고 말한다. 사실, 이 영생은 단순히 영원히 사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또 단순히 사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영생은 창조자이신 하나님과 그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위해 파송한 예수와 올바른 관계를 맺고 사는 삶을 가리킨다. 다른 말로 하면 인간으로서의 참살이가 영생이다. 요한은 그 영생을 주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신 분이 세상에 왔다고 말한다(10:10). 그 영생을 얻는 방법도 매우 단순하다. 바로 창조자이신 하나님과 그가 보낸 예수와 올바른 관계를 맺는 것이다(17:3). 그것은 예수를 믿는 것이다(3:16). 그것은 하나님을 창조자 아버지로, 예수를 그의 아들 구세주로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와 이런 관계를 계속 유지하면 영원히 사는 것이다. 그래서 그 영생은 그 관계를 맺을 때 이미 시작되는 것이다. 그것이 영원히 지속된다는 면에서 그것은 영원한 생명 곧 영생인 것이다. 비록 그 영생을 완전히 맛보는 것은 예수가 재림하는 때일지라도(요일 3:1-3), 신자는 지금 여기에서 그 영생을 맛보기 시작하는 것이다.

 

3. 주요 신학적 주제들

비록 요한이 겉으로 드러나게 말한 것은 아닐지라도 우리는 요한복음에서 기독교 핵심 교리가 되는 주제들을 뽑아낼 수 있다. 요한복음에서 우리는 하나님과 예수와 성령이 모두 신적인 존재이며, 상호 내주하는 관계라는 것을 볼 수 있다(1:1; 14:16; 15:26). 또 요한복음에 교회라는 말이 나오지는 않지만, 우리는 예수가 부활 후에 제자 공동체의 형성을 꿈꾸고 있던 것을 분명히 볼 수 있다(17:20-23). 또 요한복음을 통해 우리는 어떤 사람인지, 예수님의 사랑을 받고, 예수를 사랑하면 예수의 제자가 될 수 있고, 그의 사역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열두 제자든, 여성이든, 사마리아인이든, 누구든 예수를 믿으면 예수의 제자가 되는 것이다. 또 예수는 분명히 특정한 미래의 시간에 재림할 것이지만, 예수와 함께하는 그 영생의 축복 혹은 그것이 없는 심판은 이미 이 땅에서 이른다는 것을 우리는 또한 요한복음에서 만난다(3:18; 5:24). 비록 요한복음에서 직접적인 주제로 다루어지지는 않았지만, 요한복음의 정신을 따라가면 우리는 이 세상의 환경을 파괴하는, 즉 형제를 서로 사랑하지 않는 일을 하지 않게 된다는 것도 알게 된다. 요한복음은 삼위일체론, 기독론, 교회론, 종말론 등 기독교 핵심 진리 형성에 크게 기여했다.

 

. 요한복음의 현대적 적용

신구약 66권 각 성서는 각자의 역할이 있다. 어느 것도 불필요한 것이 없으며, 어느 하나만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도 아니다. 요한복음은 초기 교회에서 기독론과 삼위일체론 형성에 매우 의미 있는 공헌을 했다. 요한복음은 초신자나 기존 신자 모두에게 복음서 중의 복음서로 사랑받고 있다.

 

요한복음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영원한 진리 중 하나는 복음에 있어서 예수 중심성일 것이다. 복음은 부자되는 것에 관한 것도, 효도하는 윤리도 아니다. 사실 요한복음에서 복음은 바로 예수다. 예수는 구약에서 이스라엘을 대표했던 성전과 포도나무와 양무리를 대표한다. 예수는 모든 신자가 매일 먹어야 하는 음식이기도 하다(6:48). 예수는 모세가 예언한 그 선지자이기도 하며(6:14), 사실 요한복음에서는 예수가 곧 교회다(10:11; 15:11). 예수는 모든 것이다. 시대에 따라 복음은 다르게 주장될 위험성이 있다. 요한복음은 그것에 항상 기준을 제시한다. 예수와 관계되지 않은 어떤 것도 복음이 아니다. 그것이 좋은 것일지라도 말이다.

 

또 한 가지 21세기 교회에 요한복음이 가르치는 중요한 진리는 신분이나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든 신자는 제자라는 것이다. 요한복음에는 유대인과 헬라인 혹은 사마리아인의 차별도, 남자와 여자의 차별도, 열두 제자와 일반 제자의 차별도 없다. 요한복음에는 제자만 있을 뿐이다. 유교 문화 속에서 서열이 중요하고, 교회에서 직분도 서열로 인식되고 있고, 남녀차별이 현존하며, 우리보다 경제력이 낮은 국가에서 온 외국인에 대한 업신여김이 남아있는 우리의 현실에서 요한복음은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한 형제애와 우정이 무엇인지 가르쳐주고 있는 성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