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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서신

로마서 16장

by 은총가득 2020. 4. 3.


로마서 16장 / 형제들에게 보내는 인사

 

본 장은 깜짝 놀랄 일들로 가득 찬 독특한 장이다! 여기 열거된 사항들을 읽어 가노라면, 바울은 사람들을 사랑하였으며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에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은 로마로 갈 것을 알고 있는 바울로 말미암아 회심한 사람들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왜냐하면 바울은 로마를 방문한 일이 없고 이들을 다른 도시들에서 만났을 것임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바울은 그의 주인이 그러하듯 양들을 그 이름으로 알고 있었으며, 각각을 향하여 개인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1. 바울이 문안하는 성도들 (롬 16:1-16)

 

로마에 사는 신자들은 한 전체적인 교회에서 모인 것이 아니고 여러 집으로 나뉘어져 있었던 것 같다(5, 10, 11, 15절). 조직적인 의미의(빌 1:1) 로마 교회가 없었다는 것은 베드로가 거기서 교회를 조직하지 않았다는 또 다른 증거이다.

 

뵈뵈는 로마로 가고 있는 집사 부인 또는 여집사인 것이 분명하며, 이 편지를 전달한 사람이다. “그녀를 영접하고... 도우라”는 구절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좋은 권고이다. 어떤 이들은 그녀가 법적인 문제가 있어 로마에 갔다고 생각하며, 그 때문에 바울은 성도들에게 특별한 문제에 봉착해 있는 그녀에게 도움을 베풀라고 부탁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다시 만난다. 바울에게 이들은 얼마나 소중한 친구들이었는가!(행 18:2-28/고전 16:19/딤후 4:19) 이 두 성도들이 언제 바울을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무릅썼는지는 알 수 없으나, 바울을 구원한 일로 말미암아 교회는 그들에게 참으로 큰 빚을 진 것이다.

 

그들은 박해로 인하여 로마를 떠났다가 고린도에서 바울을 만났고, 이제는 로마에 있는 그들의 집으로 돌아와 교회를 세우고 있는 것이다. 주님의 방법은 얼마나 놀라우며, 주님의 섭리의 역사하심은 얼마나 기이한가!

 

본 장에는 아홉 여인의 이름이 나온다.

뵈뵈(16:1), 브리스길라(16:3), 마리아(16:6), 드루배나(16:12), 버시(16:12), 드루보사(16:12), 루포의 어머니(16:13), 율리아와, 네레오의 자매(16:15)들이다. 어떤 이들은바울이 여인들을 불리하게 대한다고 비평하지만 그보다 더 이교의 속박에서 여성을 해방하고, 하나님께서 태초부터 의도하신 방법으로 여성의 권위를 존중한 사람도 없다.

 

바울이 지교회의 사역에 있어서 여성이 어떤 특정한 지위가 있다고 가르치기는 했으나, 여성을 완전히 무시한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여성들을 설교하도록 부르시지는 않는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설교자들이 여성도들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도움을 받고 축복을 받고 있는가!

 

몇몇 구절들에서 사도 바울의 “친척”을 언급한다(7, 11, 21절). 이것은 혈연의 친척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동료 유대인, 아마도 베냐민 지파를 말하는 것 같다.

 

7절은 바울보다 먼저 구원받은 두 사람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들은 또한 다른 사도들에게도 알려진 사람들이었다.

 

루포가 흥미있는 인물이다(13절). 마가복음 15장 21절은 십자가를 진 시몬이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라고 언급하고 있는데, 마가복음이 기록될 당시에는 교회들 사이에 잘 알려진 성도들이었다.

 

로마서 16장 13절에 나오는 루포의 아버지가 사실상 시몬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는 자기의 어머니를 주님께 인도하였다. 만일 그와 그의 가족이 예루살렘에 머물렀다면 바울을 자기의 집에 머물게 했을 가능성도 있다. 또한 바울이 그녀를 자기의 수양어머니로 모셨을 수도 있다.

 

2. 피해야 할 몇몇 죄인들 (롬 16:17-20)

 

이러한 경고는 인사들로 가득 찬 본 장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바울은 교회가 처한 위험을 알았으며 성도들을 경고하고 싶었다. 물론 우리는 각각 그리스도인으로서 서로를 사랑하며 서로를 용서하여야 한다. 그러나 교회 기관에 대항하는 죄들은 성경적인 징계에 따라 처리가 되어야 한다.

 

자신들의 이기적인 욕망으로 인하여 문제를 일으키는 그리스도인들이 있는데, 대개 자기들의 영광을 위하여 하는 일들을 모든 사람에게 말하고 싶어하는 교만을 범한다. 이들을 지교회에서의 친교에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그들에게 표를 해두고 그들을 피하라!” “표한다”는 말은 “주시하고 그들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 것이다.” 이 교회에서 저 교회로 달리며 문제와 분열을 일으키는 “교회 방랑자”들에게서 교회가 눈을 떼지 않는 일은 바른 일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유연하게 말하며” 단순한 사람들을 우롱하는 법을 안다. 그러나 분별력 있는 성도는 그들의 속임수를 꿰뚫어 볼 것이다. 사단을 정복하라. 그가 당신을 정복하게 하지 말라.

 

3. 영광을 받을 몇몇 종들 (롬 16:21-24)

 

베테랑들이 많이 기록된 놀라운 명단이다. 바울의 믿음의 아들이요 주님의 종인 디모데가 나온다(빌 2:19-22). 안디옥에서 초창기에 그를 조력하였던 루시오(행 13:1)도 있다(이 사람이 누가인 것 같지는 않다). 야손은 데살로니가에서 바울과 함께 여행하였으며(행 17:5-9), 소시바더는 베뢰아 사람이었다(행 20:4).

 

바울은 이 동료들을 사랑하였으며, 이들이 없었다면 사역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모두가 바울같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다른 사람들이 더 효과적으로 그리스도를 섬길 수 있도록 도울 수는 있다.

 

더디오는 성령께서 바울에게 지시하실 때 이를 편지로 받아 쓴 서기(비서)였다. 이 사람은 로마인으로서 이 편지를 받는 사람들에게 알려진 사람인 것 같다.

 

가이오는 사도행전 19장 29절에 언급된 사람과 동일 인물인 것 같다. 또는 더베의 가이오일 수도 있다(행 20:4). 이 사람이 고린도전서 1장 14절에 나오는 사람인 것은 분명하며, 바울이 고린도 사역 기간 동안에 세례(침례)를 베푼 사람들 중의 하나이다. 바울이 로마서를 쓸 때는 고린도에 있었는데, 이 말이 그가 가이오의 집에 머물고 있었다는 뜻일 수도 있다.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을 우리에게 주시는 데에 영감받은 사도와 충성된 서기(또는 비서), 친절한 그리스도인 주인, 희생적인 여인 등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용되고 있는지 알아보자.

 

에라스도는 그 도시의 재무관이었으며, 복음이 그 시의 관원 가족에게도 전해졌음을 보여 준다(빌 4:22). 그는 디모데후서 4장 20절에 언급된 동일 인물일 수도 있다.

 

“형제 구아도!” 바울에게 있어서 언급하기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성도란 없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2-13절을 읽고 여기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알아보자.

 

바울은 언제나 그의 편지들을 그의 “은혜의 표적”으로 개인적인 서명을 하였는데(살후 3:17-18) 여기 24절에서도 그렇게 하고 있다. 그는 자기의 나쁜 시력에도 불구하고 교회에 대한 비밀을 강조하는 이 위대한 송영을 첨부한 것인 듯하다. 27절에 언급된 선지자들은 하나님께서 교회와 은혜의 복음에 관한 진리들을 계시하는 데 사용하신 신약 선지자들이다(행 13:1/행 15:32/행 21:10/고전 12:28-29/고전 14:29-32/엡 2:20/엡 3:5/엡 4:11 참조).

 

이렇게 하여 로마인들에게 보내는 편지는 완성된다. 우리가 이것을 이해하고 적용한다면 27절은 현실이 될 것이다.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을지어다!”

              <Jor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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